놀이의 해방적 본질: 나는 왜 밤새 놀아도 또 놀고 싶은가? <광진정보도서관 아주 사소한 물음에서 시작하는 철학> 4
놀이의 해방적 본질:?나는 왜 밤새 놀아도 또 놀고 싶은가??<광진정보도서관 아주 사소한 물음에서 시작하는 철학> 4
강경표(중앙대)
1.?피로사회?-?우리에겐 박카스뿐인가?
나도 별반 다르지 않은 일상을 보낸다.?일을 마치고 집에 오면 밥을 먹고,소파에 눕는다.?마누라 눈치가 없을라치면 발도 안닦는다.?리모컨을 찾아 뉴스를 틀고 뒹굴뒹굴하다 잠이 들 때도 많다.?총각 때는 술자리도 많았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드물다.?아니 사실 두렵다.?속된 말로,?체력이 달린다.
“철학은 사소한 물음으로부터 시작된다”는 말을 대학 첫 강의 때 들었다.?그리고 지금은 그 말을 학생들에게 되풀이하고 있다.?과연 그럴까??반문해 본다.?미안하다!?학생들에게 거짓말을 했다.?철학은 사소한 물음으로부터 시작할 수는 있다.?그러나 시작뿐이다.?사유의 치열함 속으로 한 걸음 내딛는 그 순간부터 철학자의 치밀한 사유를 따라가는 과정이 나도 버겁다.?그래서일까? “피곤하다”는 말을 할 때가 많다.?특히 마누라한테.
값이 싸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사무실을 방문할 때 피로회복제를 사가는 경우가 많다.?그 피로회복제에는?“당신이 말하지 않아도 나는 당신의 피로를 알고 있다”는 묵시론이 깔려 있다.?무엇 때문에 당신이 피곤한지는 모른다.?중요한 것은 구체적 사실이 아니라 구조에 있다.?한병철은『피로사회』에서 그것을?“성과주체가 스스로를 착취하는 일상 속에서 살고 있기”때문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괜찮아~?잘 될거야~”라는 노랫말처럼?‘긍정성의 과잉’?이 강요되고 강도 높은 자기 관리를 요구하는 세상에서 사노라면,?만성적으로 피곤한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호모 라보란스(Homo Laborans)가 인간의 본질이라 믿으며 살아간다.?게으름에는 비난의 눈초리를 보내고,?성실함은 당연시 한다.?당신의 성실함에 박카스를 권한다.?당신의 성실함에 보내는 작은 찬사다.?그러나 디오니소스(Dionysos)1)는 도취와 광기,?그리고 술이다.?회식 자리가 광란으로 치닫는 이유이기도 하다. ‘불금(불타는 금요일)’이 필요한 이유다.?밤새 놀아도 더 놀고 싶다.?놀이(play)가 인간만의 본질이기 때문일까??아니다!?놀이가 삶에서 철저하게 분리되었기 때문이다.
2.?놀이를 잊은,?그래서 동물만도 못한 삶
시간을 돌려보자.?당신이 성실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재미가 있어서 성실하게 보이던 시절이 있었다.?바로 어린시절-노는게 생활이었던 때였다.?노동과 구별할 필요도 없었다.?놀이가 곧 노동이고 놀다보니 피곤해서 잠이 들었다.?다음날도,?그 다음날도 놀면 됐다.?그것으로 족했다.?사실 당신은 놀이(play)로부터 성실함을 배우고 끈기도 길렀다.?그러나 이젠 어른이다.?놀면 안 된다.?놀면 백수고,?낙오자,?루저일 뿐이다.?간혹 놀기만 해도 되는 사람이 있긴 하다.?돈이 많은 경우에는 놀아도 된다.?그러니 대부분의 어른들은 놀 수가 없다.
놀이를 인간만의 본질로 규정한 사람들도 있다.?바로 호모루덴스(Homo Ludens)다.?그러나 우리 주변에 호모루덴스는 없는 것처럼 보인다.?사실 놀이가 인간만의 본질이라는 것도 틀린 것이다.?동물도 놀기 때문이다.?동물의 놀이와 인간의 놀이가 차이가 있다면,?동물은 커서도 잘 놀지만 인간은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인간이 놀 수 있는 것은 어릴 때로 한정된다. 그마저도 어른보다 더 바쁜 요즘 아이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노는 것을 잊는 것이 어른이 되는 길이다.?놀이를 망각하라!?당신이 꿈꿔야 하는 것은 집,?자동차,?재테크뿐이다.?길어진 수명에 대비해야 하며,?노동하는 육체를 위해 건강을 챙겨야 한다.?당신이 정규직이라면 정년을 향해 달리면 되고,?비정규직이라면 정년을 찾아 달려가면 된다.?그렇게?65세까지는 놀지 말고 살아야 한다.?그러나 이런 삶의 지속은,?놀아야 할 때 놀이를 망각했기 때문에 순간순간 당혹스러운 문제로 다가온다.?당신은 아이처럼 노는 법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아이와 놀아줄 수 없다.?나이가 들어 노동시장에서 쫓겨났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시장을 그리워할 수밖에 없다.?노동시장의 구조를 바꾸면 어떨까??놀면서 일할 수 있는 회사가 있다면,?우리도 노는 법을 잊지 않을 수 있을까??최소한 노동이 즐거워지지 않을까?
3.?노동?Vs?노동
고전에서 노동과 관련한 글귀를 찾아보자.?일반적으로 노동은 기피의 대상이지만 기원전?7세기 헤시오도스에게는 그렇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일하지 않으면서 사는 사람은 일벌이 모은 꿀을 먹기만 하며 그 수고를 착취하는 꼬리 뭉툭한 게으른 수벌과 기질이 같다.?이런 사람은 신도 인간도 인정하지 않는다.?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노동을 적당한 순서에 따라 받아들여 제철에 나는 곡식으로 곳간을 가득 채워야 한다.?사람은 노동을 통해 번식하고 부유해진다.?신들이 보기에도 일하는 사람이 더욱 사랑스럽다.?노동은 비난의 대상이 아니지만,?노동하지 않는 것은 비난의 대상이다.?일하는 사람은 부를 차지해서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의 부러움을 살 것이다.
-헤시오도스『노동과 나날』中-
누군가 나에게 무슨 일을 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만약 내가 철학하는(philosophieren)?일을 한다고 말한다면 사람들은 비웃을 것이다.?내가 생각해도 우습다.?전문적으로 생각만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가당키나 한 말인가??그런데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도 있다.
다른 질문을 해보자.?구걸은 노동일까??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니라고 할 것이다.?그러나 조지 오웰은 생각이 달랐다.
거지는 노동을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하지만 대체 노동이 뭘까??인부는 곡괭이를 휘두르며 일한다.?거지는 화창한 날씨에나,?궂은 날씨에나,?하지정맥이 툭툭 불거져 나와도,?만성 기관지염에 시달려도 문밖에서 일한다.?구걸도 다른 활동과 마찬가지로 노동이다.?물론 무익하기는 하지만 그럴싸한 노동 중에도 무익한 활동은 많다.?……?현실적으로 보면 거지는 수중에 들어오는 것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때문에 여느 사업가와 다르지 않다.?거지는 대부분의 현대인에 못지않게 자신의 명예를 지킨다.?단지 부자가 될 수 없는 노동을 선택하는 실수를 저질렀을 뿐이다.
-조지 오웰『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中-
철학하는 것도 노동이다.?누군가는?‘잡다한 생각을 하는 것이 무슨 일인가 놀이지’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사실 철학자들이 치밀하게 생각을 탐구하는 것은 꽤나 머리 아픈 일이면서도 부자가 될 수 없는 노동 중 하나일 뿐이다.
4.?놀면서 일할 수 있는 회사 그러나 사실은 놀이 착취
놀면서 일하는 회사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대부분의 노동자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모델의 회사들이 있다.?미국의 구글이 그렇고,?한국에도 제니퍼소프트가 그렇다.?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회사를 부러워한다.?최소한 노동시간만이라도?35시간으로 줄어든다면,?야근만 없다면,?주말 근무만 없다면,?우리는 더 놀 수 있지 않을까?
부러움을 뒤로 하고,?잠시 고민을 해보자.?대량생산체제에서 우리는 항상 노동 착취를 당해왔다.?지금은 금융자본과 함께 신용을 착취당하고 있다. 당신은 신용을 담보로 학자금 융자를 받았고,?전세자금 융자를 받았다.?그리고 당신은 그 신용을 지키기 위해 다시 당신의 노동을 팔고 있다.?놀면서 일하는 회사도 별반 다르지 않지 않을까??구글과 같은 회사는 새로운 착취의 유형을 보여줄 뿐이다.?놀면서 일한다는 회사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한한 상상력과 창의력이다.
칸트는?“놀이가 상상력의 바탕”이라고 말한바 있다.?놀이는 상상력에 있어 필수적인 요소다.?당신에게서 무한한 상상력과 창의성을 원하기에 놀이(play)를 권할 뿐이다.?지금은 구글과 같은 회사가 적기 때문에 놀면서 일하는 것이 부러워 보일 수 있다.?놀이와 일을 병행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꿈의 직장이라고 불릴 수 있다.?그러나 많은 회사가 구글과 같은 형태가 된다면 놀이 착취도 본격화될 것이다.
5.?놀이의 해방적 본질 그리고?『에코토피아 뉴스』
놀이란 무엇인가??놀이에 대한 다양한 연구들이 존재하고 놀이를 정의하려는 일련의 시도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그러나 놀이를 연구하고 정의한다고 해서 놀이를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놀이는 현상으로 나타날 뿐이다.또한 감정으로 느낄 수 있을 뿐이다.?우리가 놀이를 통해 얻는 것은 즐거움이며,?때로는 그 즐거움에서 해방감을 느낀다.?나는 놀이의 본질은 놀이의 무목적성에 있다고 생각한다.?놀이에는 목적이 없다.?단지 즐거우면 된다.목적이 없다는 것은 무언가를 추구하기 위해 합리적·?논리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놀이는 촘촘하게 짜인 이성의 그물을 벗어나게 해준다.?그 그물에서 벗어날 때 우리의 상상력과 창의력도 반짝하고 빛나는 게 아닐까?
문제는 놀이를 우리의 삶으로 어떻게 다시 끌어들일 수 있는가에 있다.?우리가 놀이를 삶에 두는 방식은 취미생활이다.?이런 방식의 놀이가?‘불금’을 즐기는 것보다 좀 더 건전해 보일 수는 있다.?그러나 이것도 결국 노동을 위한 활력을 재생산하는 도구에 불과하다.?나도 이 굴레를 벗어나지는 못했다.?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일과 놀이와 삶이 하나가 되는 시대를 살 수 있을까??희망을 품으면서도 아직은 절망적이다.『에코토피아 뉴스』의 글귀로 이 감정을 대신한다.
“아니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겁니다.?당신은 우리와 함께일 수 없습니다.?당신은 전적으로 과거의 불행한 시대에 속하므로 우리의 행복조차 당신을 지치게 만들 겁니다.?다시 돌아가세요.”
-윌리엄 모리스『에코토피아 뉴스』中-
-주석-
1) ?디오니소스를 로마 신화에서는 바카스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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