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형성 과정[철학을다시 쓴다]-17
공동체 형성 과정[철학을다시 쓴다]-17
윤구병(도서출판 보리 대표)
*이 글은 보리출판사의 허락을 받아 게재한 것임을 알립니다.
◆ 공동체 형성 과정
공동체는 크게 세 유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회’라고 할 때 큰 틀의 공동체를 가리키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농경사회, 유목사회, 도시사회. 여기서 도시사회도 특성에 따라 두 가지로 갈라질 수 있죠. 서구 마르크시스트들이 따로 구별하는 ‘아시아적인 전제’가 이루어지는 도시사회와 지중해 연안에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이룬 해안도시 사회. 성격이 다르죠. 농경사회와 유목사회는 어디에서나 크게 다르지 않고 비슷한 측면이 드러납니다. 저번 시간에 제가 최초 공동체를 형성하고 산 사람들은 여자들이었다고 말씀드린 적 있나요? 충분히 설명을 안 했나요? 그러면, 지금부터 여러분들이 듣는 것은 전혀 객관적인 근거도 없고 누가 책으로 쓴 바도 없는, 저의 상상과 몽상, 때로는 망상까지 곁들여진 이야기라고 여기고, 열심히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시기 바랍니다. 어쩌다가 머릿속에 남는 것이 있으면 담아두셔도 되고요.
저희 집안 이야기이기도 한데, (제 아들에 따르면 저는 사람보다 오랑우탄에 더 가깝다고 하니까.) 저희 집안사정과 곁들여서 이야기를 풀어 볼까 합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지구의 기후변화는 단속적으로 혹은 일정한 주기를 두고 계속적으로 이루어져왔습니다. 지금은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가장 최근의 빙하기가 지나고 나서 간빙기에 해당합니다. 몇만 년 전에 천천히 날씨가 풀리기 시작해서 간빙기가 시작했다고 그랬나요? 고생물학자나 지질학자 같은 사람들 증언을 들으셨을 텐데, 저나 여러분들이나 숫자에 약하기는 마찬가지인 거 같습니다. 한 이만 년 전 정도 됐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하는 이야기는 잘못된 정보일 수도 있으니 꼭 믿지는 마십시오. 독일 사람들은 이런 말을 싫어하죠. 정밀과학, 엄밀 과학 바탕 위에서 실증적인 검증이 이루어지지 않은 이론에 대해서는 질색하는 사람들입니다. 어쨌든 그건 상관이 없는 이야기이고, 간빙기가 시작된 게 이만 년 전 이라고 생각해 봅시다.
“긴 세월 동안에 빙하기와 간빙기가 지구를 번갈아가면서 덮쳤는데, 빙하기가 오게 되면 인류들은 어디에 주로 모여 살았을까요?”
“동굴 속.”
“동굴 속? 뭐, 그렇죠. 그런데 적도 부근에 살았겠죠? 다른 데는 북극에서부터 지금의 한대지방, 온대지방까지 전부 얼음으로 뒤덮이게 되고 오직 적도부근만 말하자면 따뜻한 곳이었을 테니까.”
빙하기 때의 적도 부근을 상상 속에 그려 봅시다. 빙하기 때 적도 부근은 어떤 기온상태고, 어떤 동물과 식물들이 자라고 있었을까요? 지금은 적도가 열대우림지역이 되어 있어서 사람이 살기에 상당히 거북한 곳이고, 지나치게 많은 비와 따가운 햇살이 내리 쬐이고 있지요? 간빙기가 오면서 점점 날씨가 풀림에 따라서 적도 지역에서 생활 조건이 악화되면서 식물들 가운데 꽃피고 열매 맺는 나무들도 점점 온대 지방으로 퍼져 가고, 짐승들의 먹이가 되는 풀들도 온대지방으로 확산되면서 자연환경의 변화에 따라 사람도 적도를 중심으로 남과 북으로 옮아 살게 되었겠죠? 실제로 빙하기에는 적도 지방에 과일나무도 많이 있었고, 짐승들이 풀 뜯어먹고 살기 좋은 초원 상태고 넝쿨식물이 우거지지 않은 아주 살기 좋은 곳이었다고 봅니다. 게다가 적도 지역은 어떻습니까?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나누어지나요? 아니죠? 정말 철없는 곳이었겠죠. 그래서 사람이나 다른 동물이나 풀이나 나무 같은 것도 철없이 살 수 있었고, 철없이 살 수 있는 곳이 낙원이죠. 낙원에서는 먹이를 얻으려고 머리를 쓸 필요가 없죠. 손만 뻗으면 먹을 것이 있고, 낮과 밤의 기온 차이가 없으니까 따로 입고 벗고 할 필요도 없고요.
기독교에서 이야기하는 에덴동산은 아마 빙하기 때의 적도 모습이었을 것이다. 하나님이 이 에덴동산에다가 지혜의 열매가 달린 생명의 나무를 하나 두고 그 생명수 아래서 배꼽 없는 아담과 이브가 살도록 했는데 어느 날 하나님도 경악할 만한 일이 일어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생명수에 열매가 열린 것입니다. 생명수라는 것은 영원히 살 수 있는 나무이기 때문에 생명수이죠. 그런데 그 생명수에 열매가 달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실제로 그 생명수는 언젠가 죽고 그 열매가 간직하고 있는 씨앗이 떨어져서 재생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죠~ 그것은 하나님의 처지에서 살피면 엄청나게 큰 재난이죠. 아담과 이브에게 생명수를 보고 날마다 그 그늘에서 절하고 영생을 누리라고 했는데 갑자기 열매가 맺히니까 (제가 지금 소설을 쓰는 겁니다, 소설을 쓰는 건데…….), 아무튼 열매가 달리니까 하나님이 깜짝 놀라서 절대로 그 열매에 손대지 말라고 이야기를 하죠. 그런데 어디선가 뱀이 나타나서 저 열매를 먹는 게 좋다고 이브를 꼬시죠. 실제로는 하나님도 너희 목숨 영원토록 보장 못하니까 저 열매 먹어라, 이런 식으로 꼬였겠죠. 결국 그 꼬임에 넘어가 아담과 이브는 지혜의 열매를 나누어 먹습니다. 하나님이 이 꼴을 보고 노여워해서 니네들은 이제 이 에덴에선 살 수가 없다 하여 아담과 이브가 쫓겨나죠.
그런데 이 시점이 간빙기하고 겹쳤다고 생각해 봅시다. 간빙기와 겹쳐서 실제로 기온이 높아지니까 그 동안 그렇게 살기 좋았던 적도 부분이 열대우림지역으로 바뀌면서 초원에서 넝쿨이 우거진 밀림지대가 되고 바닷물 수위가 점점 높아져서 전에는 가까이에 있는 바닷가에 가면 늘 조개를 주워 마음껏 배불리 먹고 살아남을 수 있었는데 개펄이 죄다 물속에 잠겨 버리고 점점 살기 어려워집니다. 갖가지 열매가 주렁주렁 달리던 나무들도 남과 북으로 흩어져서, 아까 이야기한 대로, 나무도 그렇고, 낟알이 달린 풀도 그렇고 거기에 따라서 짐승들도 전부 먹이를 찾아서 남과 북으로 퍼져나가고 사람도 그 운명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고 칩시다. 온대 지방이라는 곳이 어떤 곳입니까? 철 있는 곳이죠. 봄, 여름, 가을, 겨울. 한철 한철이 들고 나는 곳, 그래서 온대지방으로 옮겨간 사람들은 한 철 한 철 나면서 철이 나고 한 철 한 철 접어들면서 철이 들어야 살 수 있는 곳으로 바뀌는 것이죠. 그 전까지는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이 보장해줘서 영원히 살 수 있었으니까 서로 부둥켜안고 뒹굴고 살아도 먹을 것이 지천으로 널려 있고 몸에 옷을 걸칠 필요도 없었겠죠. 그럴 필요가 뭐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이제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생명의 동산인 에덴동산으로부터 쫓겨났으니까 우리가 때맞추어 재생산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배를 맞춰서 배꼽 달린 아이들인 카인과 아벨을 낳았다고 그러죠.
이렇게 해서 태어난 아이들 가운데, 카인은 농사를 짓고, 아벨은 목축을 하죠. 유목사회와 농경사회가 여기에서 갈라지는 계기가 되죠. 그렇죠? 말하자면 카인은 농사짓기에 알맞은 땅을 찾아내서 씨 뿌리고 짐승 길들이고 하면서 주저앉아 사는데, 아벨은 짐승들을 데리고 초원을 찾아서 멀리멀리 떠나는 운명에 놓인 것이죠. 그런데 성서를 보면 카인이 아벨을 죽였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농경 공동체가 유목 공동체보다도 더 지배적인 공동체가 되었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어요. 원시 공동체는 아프리카에서부터 소단위로 이루어진, 농경 공동체라고 보는 것도 가능합니다.
포유류 가운데 제법 기특한 게 인간 수컷입니다. 왜 그러냐면 유인원까지 포함해서 포유류 가운데서 암컷에게 씨만 뿌려놓고 달아나지 않는 수컷이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 수컷은 암컷이 둘러놓은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못해요. 그러니까 사람 암컷들이 얼마나 영악하냐 하면 수컷들을 가두어 놓고 부릴 수 있는 힘을 지녔어요. 여자는 온전한데 남자들은 그에 못 미쳐서 바보라는 뜻으로 ‘반편’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왜 반편이냐고요? 생물학적으로도 증거가 있습니다. 사람이 더불어 살려면 언어를 통해서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데 사람 수컷의 두뇌는 말을 주고받을 때 왼쪽 뇌만 작용을 합니다. 그쪽에만 불이 들어와요. 암컷은 왼 뇌 오른 뇌 두 쪽 다에 언어중추가 갖추어져 있습니다. 여자가 온전한 인간이라 하면 남자는 반편이라는 말이 맞아요. 그래서 반편인 남자를 길들이기가 참 쉽기는 쉬웠겠어요.
사정은 이렇습니다. 말하자면 그 동안에는 수컷이 게을러도 먹고 살 수 있었습니다. 적도 부근에서만 살았다면 손만 뻗으면 늘 먹을 것이 주렁주렁 달려 있으니까 일하지 않고 먹고 살 수 있었는데 얼음이 풀리면서 적도를 중심으로 양쪽에 있는 온대 지방으로 옮겨 살면서 널리 풀밭이 펼쳐져 있고 나무들이 듬성듬성 서 있는 곳, 지금 아프리카 나이로비 국립공원같이 온갖 야생동물들이 뛰어다니는 그런 비슷한 곳이 사방에 널려 있으니까 수컷들은 사냥하러 간다 하고 떼 지어서 몰려나갑니다. 요즘 아주 정밀한 조준 망원경이 있는 사냥총 가지고도 짐승사냥하기가 쉽지 않지요? 그런데 꼬챙이 하나 들고 거기에다가 돌멩이 둘둘 감아가지고 무슨 사냥이 되었겠습니까? 그냥 가사노동에서부터 벗어나는 구실로 우르르 떼 지어서 다니는데, 그러다보니 쫄쫄 굶고, 가을이나 겨울이 오면 먹고 살길이 어디 있어요? 동굴에 불 피워 놓고 덜덜덜 떨다가 굶어죽기 직전에 나와서 옛날에 씨만 뿌리고 달아난 암컷들에게 간단 말이죠. 짐승이나 사람이나 애를 배고 갓난애가 생기면 속수무책일 경우가 많습니다. 어디 돌아다니지도 못하고 좁은 지역에 모여 살면서 가까이 있는 풀이나 낟알 같은 것들을 입에 넣고 씹어보면서 먹을 만하다 싶으면 캐다가 주변에 심고, 씨 뿌리고 해서 농작물들을 기르기 시작하고 짐승 새끼가 우연히 발견되면 주워다가 우리 속에 가둬서 기르기 시작하죠. 수컷들이 돌아와 보니까 그동안 다 굶어 죽었을 줄 알았던 암컷들이 살아남았고, 곡식도 저장해 놓고 짐승도 길들이고 해서 겨울날 채비를 다해 놓았단 말이죠. 그러니까 우리도 같이 살자고 궁둥이를 슬그머니 들이민 거죠. 그래서 모계사회가 시작된 거죠. 주권의 출처는 경제권에 있는데 공동체를 형성하고 경제활동을 해서 생산을 하고 재생산을 하는 기초를 닦아놓은 게 여자들이고, 남자들은 여자들이 이루어놓은 공동체에 빌붙어 산 거죠. 여자공동체에. 남자들은 기분 나쁠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실제로 모계 사회가 수십만 년 지속된 데에는 이런 역사적인 배경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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