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찍어요? [카메라 옵스큐라]
사진기 들고 뒷골목 헤매길 만 6년, 햇수로 8년째 접어듭니다. 비슷하게 영혼이 고장난 동행이 있어 긴 방랑에 지치기는커녕 더욱 기꺼이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어떤 목적을 갖고 골목을 헤맨 것은 분명 아닙니다만 어쨌든 허튼짓의 흔적들과 이야기가 남아 이렇게 ‘카메라 옵스큐라’에 담습니다.
사진 찍는 ‘철학도’들의 수다라서 주로 사진과 피사체, 촬영과 감상, 혹은 사진 너머에 대한 철학적 수상들이며, 당연히 그간 얻은 이미지도 함께 합니다.
프롤로그 ; “뭘 찍어요?”
대개는 재개발 예정이거나 진행 중인 옛 동네 골목들을 돌면서 사진을 찍는데, 이때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뭘 찍어요?”다. 사실 이 물음의 함축은 맥락에 따라서 꽤나 복합적이다. 주변의 지인들이 그렇게 묻는다면 가벼운 호기심 때문인지라 대답 또한 가볍다. 너무 가벼워서 그때그때 뭐라 대답했는지 사실 기억도 나질 않는다.
부담스러운 경우는 촬영 중 골목의 주인들(엄밀히 말하자면 그곳에 있어야 할 생존의 이유가 있는 이들)이 그렇게 물어 올 때다. 호기심, 의심, 경계, 적대, 심지어 기대와 욕망 등 복잡한 정서적 반응이 때론 강하게 감지되기도 하거니와 어쨌거나 그 시공간의 이방인으로서 위축될 수밖에 없어서 늘 곤혹스럽다.
그나마 마음 편히 대답할 수 있는 경우는 사람들이 별반 경계심 없이, 때론 미소와 함께 조용히 물어 올 때다. 이 허름한 골목에 애써 뭐 찍을 게 있냐며. 왠지 고마운 마음에 공손히 답하긴 하지만, 대개 “꽃이 예뻐서요.”처럼 어정쩡한 것이 되고 만다. 장황하게 설명하기도 그렇고, 침묵할 수도 없어서다. 그렇다고 고스란히 거짓말은 아닌 게 딱히 꽃이 아니더라도 분명 눈을 끄는 피사체들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수십년 전에 시간이 멈춘 듯한 모습의 골목은 언뜻 뒤숭숭하고 침침해 보이지만 몇 번을 되풀이해서 다녀도 늘 새롭다. 길의 너비며 방향, 이어짐과 막다름, 담벼락의 빛깔과 재질, 집과 계단의 모양새, 텃밭과 화분, 그리고 사람들이 어우러지는 정경은 또 날씨와 계절, 아침과 오후, 사람들의 필요와 취향 등 수없이 많은 변항들의 함수다. 그렇기에 매순간 어떻게 다른 광경으로 다가올지 그 어떤 예단도 용납하지 않는다. 몇 년을 곱씹어도 버릇처럼 골목에 다시 접어드는 것은 이 공간이 피사체로서 또 성찰의 단초로서 항상 새롭고 묵직하기 때문이다.
오래된 동네 골목이 갖는 이 경탄할 만한 면모는 기실 피맺힌 그 탄생과 소멸의 역사가 낳은 부산물이다. 이 골목들은 처음부터 권력의 통제와 기획 하에 형성되지 않았다. 이른바 저임금 노동력으로서 도시에 유입된 사람들이 일제시대의 토막촌, 전후의 판자촌을 중심으로 생존을 위해 만들어낸 것이며, 서툴고 거친 합의와 치열한 삶이 창조한 미증유의 자율적 건축공간이다.
집이 들어설 자리를 비켜 길이 났으니 곧을 리 없고 또 그 길을 비켜 다른 집이 들어섰기에 집모양새가 반듯할 리 없다. 몇 번의 대선과 총선이 지나가면서 언발에 오줌 누는 권력의 생색내기를 제외하곤, 어떤 지원과 배려도 없이 수백 수천만 그 주인들이 자신들의 생존만큼이나 힘겹게 수십년간 고치고 가꿔온 것이다.
이름도 취지도 쌍스러운 서울의 르네‘쌍’스 따위가 아니더라도 골목은 이미 오래 전부터 학살되고 있었다. 그 주인들과 함께. 몇 년간의 출사가 어쩌면 골목들에 대한 조문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지난 겨울엔 기어이 그 주인들의 진짜 장례식에 다녀오고 말았다.
내일 또 나는 골목에 간다. 그 임종을 위해. 또 혹시 모를 심폐소생을 위해.
이병태 / admin@ad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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