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이, 로봇>과 인공지능의 미래 그리고 인간-2 [톡,톡,씨네톡]
3. 영화<아이, 로봇>이 전하는 인간다움에 대하여
영화는 가정부 로봇이 주인에게 호흡기를 가져다주는 데 그걸 도둑으로 의심하고 쫒아가는 형사 스푸너가 결국은 헛짚은 것이라는 데에서 시작한다. 로봇은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3원칙이 내장되어 있는 이상 그것을 뛰어넘을 수 없다. 로봇3원칙의 큰 줄기는 ‘로봇은 인간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어느 누구도 인풋(input)에서 벗어나는 아웃풋(output)을 상상할 수 없는 로봇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형사 스푸너 만큼은 로봇3원칙 따위는 믿지 않는다. 인간 형사의 직감을 믿는 것이다. 그러나 진짜 영화의 시작은 아무 메시지도 없을 것 같은 스푸너의 샤워장면이다. 얼짱에 몸짱까지 겸비한 윌스미스가 상반신을 벗고 샤워하는 장면이야 그가 등장하는 영화에서 익히 보아왔지만 샤워할 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스푸너가 중얼거리는 장면을 우리는 놓쳐서는 안 된다. 미신(superstition)이라는 제목의 노래인데 스푸너가 ‘아이가 거울을 깼네. 7년동안 재수없겠네’라는 부분을 따라 부른다. 미신을 믿는 것도 역시 인간의 영역이지 합리적인 기계의 영역은 아니다. 미신이라는 것 자체가 이미 신뢰할 만한 것이 못된다. 그런데 형사 스푸너는 가장 합리적인 로봇을 신뢰하지 않고 미신의 가능성에 마음을 두는 것이다.
영화는 합리성에 의외성이 덧붙여질 수 있음을 자살한 래닝박사의 연설에서 살짝 흘린다. 이미 합리성에 의외성이 덧붙여질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라는 식의 서사는 <바이센테니얼 맨>에 등장한다. 가정부로봇 앤드류를 조립하는 과정에서 엔지니어가 복잡한 회로에 샌드위치에 묻어있던 마요네즈를 흘리면서 특별한 로봇이 탄생한다. 로봇을 제조한 회사는 인간의 감정을 지니고 나무를 창조적으로 조각할 줄 아는 앤드류를 불량품으로 간주하고 주인 리처드에게 새것으로 바꿔줄 것을 약속하지만 리처드는 이를 거부한다. 오히려 앤드류를 인간적으로 대해주고 로봇 앤드류가 만든 창작조각품을 팔아 개인 은행계좌를 만들어주기까지 한다. 그야말로 앞서 이야기한 인간과 동등하게 대우해야 할 것 같은 인공지능의 전형이다. 영화에서 앤드류 역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하여 끊임없이 묻고 되묻는다. 결국 영화의 결말은 겉모습까지 인간과 비슷하게 바꾼 앤드류가 기계로서 영원한 생을 포기하고 인간답게 죽음을 선택한다. 죽음이 있는 유한한 삶이기 때문에 인간은 삶을 의미있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아이, 로봇>의 써니 역시 래닝박사의 말처럼 예상치 못한 코드가 결합되면서 영혼이라는 것이 탄생한 인공지능 로봇이다. 써니는 부상을 치료하려고 잠입한 NS-5의 공장에서 형사에게 ‘나는 누구인가?’(What am I)라고 묻는다. <아이, 로봇>을 써니에게 초점을 맞춰 본다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반성이라는 가장 인간적인 주제에서 보아야 한다. 사실 스스로를 반성적,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존재는 유일하게 인간이다. 그것이 밖으로 드러나는 방식이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에 대한 물음이다.
영화에서 로봇 써니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인간’의 모습은 무엇인가. 소중하지만 잊고 사는 신뢰, 믿음, 사랑을 가진 인간이다. 그 모습을 형사 스푸너를 통해 보여주고 마치 거울처럼 로봇 써니가 학습한다. 위기의 순간, 써니는 스푸너가 반장에게 표현한 윙크를 적절하게 사용함으로써 인공지능 로봇과 도시를 장악한 비키마저 속이고 인간을 구한다. 비키가 아무리 인격화된 최첨단 인공지능이라고 하더라도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거짓말 속에 감추는 신뢰마저 학습하지는 못한 것이다.
그렇다면 영화에서 인간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비인간’은 무엇인가? 인공지능 로봇을 생산하는 기업의 사장으로 상징되는 계산적, 합리적인 인간이다. 근대적 사유를 대변하는 계산적 합리성은 바로 자본주의의 기본 원리이다. 스푸너는 이러한 기계문명을 혐오하는 대표적인 인물로 등장한다.
근대적 사유에서 세계는 한 치의 오차도 존재하지 않는 영역이다. 기독교의 완전성이라는 이념과 수학적 세계관의 만남은 이 세계를 하나의 커다란 기계처럼 생각할 수 있게 해준다. 비록 인간이 알 수 없는 영역이 있을지라도 그것은 과학문명이 발달하면 언젠가는 밝혀질 것들일 뿐이다. 여기에 우연성이나 비효율성은 사회에서 배제되어야 할 악한 존재일 뿐이다. 이러한 근대의 세계관은 자본주의의 정신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전체적인 효율성을 따져서 관리하는 것이 자본주의이다. 여기에 인간적인 가치가 전면에 나설 수 없음은 당연한 것이다.
4. 영화<아이, 로봇>이 전하는 인간과 로봇의 경계와 경계의 해체
영화에서 형사 스푸너는 인간이고 써니는 로봇이다. 겉으로 보기에 명확한 이 진실은 곰곰이 따져보면 우리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든다. 철학적으로 인간을 정신과 신체가 결합된 존재로 보는 것은 오랜 전통이다. 정신과 신체 둘 중 하나가 없다면 불완전한 인간이거나 존재하기 어려운 불가능한 존재이다. 철학적으로 정신이란 이성, 무한성, 완전성, 능동성을 갖는다. 정신은 전통적으로 인간에게만 있는 영역이다. 그러나 신체 없는 정신이 곧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가령 뇌만 남겨져 있는 사람은 인간인가? 그런 인간에게 남겨져 있는 인간다움의 의미는 무엇인가? 또 신체는 물질, 유한성, 불완전성, 수동성을 갖는다. 또한 신체는 유기체적 특성을 가지며 동물과 인간이 공통으로 갖고 있는 부분이다.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다.
겉으로 보기에 인간임이 명확해 보이는 형사 스푸너는 신체의 일부가 기계인 인간이다. 이미 신체의 일부가 기계라는 사실은 대체된 부분이 몇 퍼센트까지는 인간이고 몇 퍼센트까지는 기계라고 말할 수 없는 부분이다. 스푸너는 완전한 인간 정신과 기계의 신체를 가진 반쪽 인간이다. 또 써니는 비록 몸은 기계이지만 정신만큼은 인간과 거의 다른 점을 찾을 수 없는 존재이다. 오히려 존속살인이나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는 인간보다 훨씬 더 인간적인 정신을 소유한 존재이니 써니는 반쪽 기계이다. 영화에서 스푸너와 써니를 통해 인간과 로봇의 경계가 해체된 것이다.
5. 인공지능을 넘어 인간이 추구해야 할 가치에 대하여
인공지능은 분명히 우리 삶의 많은 부분에 영향을 끼칠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인공지능 식의 철저한 합리성을 미래의 지향적 가치로 가질 필요는 전혀 없다. 이미 서양의 근현대는 합리성을 바탕으로 발전과 번영을 누렸지만 인간의 가치를 상실해버린 시대이다. 필자가 생각하는 미래의 인공지능에 대한 우려는 새롭게 우리가 이해해야만 하는 어려움 속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인공지능의 미래는 좀더 정교해진 자본주의의 착취시스템일 것이라 생각한다. 인공지능은 기업에게 여러 가지 변수를 계산해서 재고가 남지 않게 할 것이고,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이익을 가져다줄 시스템을 제시할 것이다. 여기에 인간의 복지와 생존은 1%를 위하여 고려될 것이며 99%는 지금보다 더 열악한 빈익빈 부익부의 굴레에 묶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꿈꾸고 준비해야 하는 가치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그것은 조금이라도 덜 착취당할 수 있는 반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욕망 혹은 자유, 평등, 박애라는 인간존엄의 실현과 놀이하듯 노동하고 삶을 즐길 수 있는 새로운 대안 세계에 대한 관심이 아닐까 한다. 이 모든 것을 꿈꿀 수 있다면 미래는 이미 현실일 것이다. 써니가 꿈꾸는 세상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영화에서는 ‘혁명’의 주체가 누가될지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지만 무너진 다리 밑에 서 있는 주체는 인간다운 정신을 가진 써니일지도 모른다. 써니의 꿈은 냉정하게 인공지능의 관점에서 본다면 비키보다 한 세대 진화한 인공지능의 세상일지도 모른다. 그 세상이 인간다움을 실현할 수 있는 세상일지 아니면 인간에게 재앙을 안겨줄 세상인지는 인간인 우리가 어떤 꿈을 꾸고 사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참고자료
http://www.ekn.kr/news/article.html?no=205605
<이세돌 맞수 알파고 바둑 학습비결> 이성규 과학칼럼니스트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122&contents_id=111401
네이버캐스트<인공지능>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122&contents_id=109419
네이버캐스트<알파고(AlphaGo>
강지은(전 웹진편집주간, 건국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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