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에서 희망을 만나다 [책익는 마을 책읽는 소리]
한흥수 (보령 책익는 마을 회원)
가슴에서 여전히 펄떡이는 유년의 기억들
두 아이의 아빠로 힘든 사회생활 속에서도 어렸을 적 기억을 떠올리면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흐릅니다. 내가 살던 마을은 작은 농촌 마을 이었습니다. 집 뒤에는 나지막한 청산이 있고, 마을 넘어 드넓은 논이 있고, 논을 지나면 역내라는 맑은 샛강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마을에는 7명의 또래 친구들이 있었는데 우리들은 틈만 나면 놀 것을 찾아 온 마을을 뒤지고 다녔습니다. 여름이면 우리의 즐거움은 단연 물고기 잡이였습니다. 수로에 얼망을 놓고 친구들이 물고기를 몰면 그 조그만 얼망 가득 붕어, 매기, 미꾸라지가 펄떡이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 물고기를 산에 가지고 가서 어죽을 끓여 먹었습니다. 한 친구는 집에서 몰래 양은솥을 가져오고, 한 친구는 고추장을 가져오고 아무것도 가져올 수 없는 친구는 삭정을 모아 불을 피웠습니다. 아무런 양념을 하지 않아도 어찌나 맛있던지 30년이 훌쩍 넘은 지 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저절로 입속에 군침이 흐릅니다.
하얀 솜 같은 매 새끼 네 마리를 애완동물로 키우다
나는 유독 동물 키우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지금은 애완동물을 키우지만 옛날에는 그럴 형편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산짐승을 잡아다 집에서 키웠습니다. 기억에 남는 애완동물은 새매였습니다. 지금은 천연기념물이기 때문에 포획 및 사육이 금지 되었지만 그때는 그런 법도 없었고, 나 또한 죄가 되는지도 몰랐습니다. 새매는 높은 소나무에 둥지를 틀고 있었기 때문에 새끼를 얻기 위해서는 위험을 감수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장대로 둥지를 한번 쑤시고 어미매가 날아오면 도망가고 또 쑤시기를 반복했더니 하얀 솜 같은 매 새끼 네 마리가 땅에 떨어졌습니다. 나는 네 마리를 집에 가져가 개구리를 잡아다 먹이를 주며 지극정성으로 키웠습니다. 그래서인지 네 마리는 모두 건강하게 자랐습니다.
어느 날 학교 갔다 왔는데 두 마리가 없어졌습니다. 어머니께 따져 물었더니 동네 아저씨가 참새를 쫓는다고 두 마리를 가져갔다고 했습니다. 급히 매를 찾아 논으로 갔더니 매의 날개는 잘려있고 끈에 묶이어 허수아비 마냥 참새를 쫓고 있었습니다. 너무 속상하고 죄책감이 밀려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두 마리를 하늘로 날려 보냈습니다. 새매는 하루는 집으로 돌아오더니 다음 날부터는 그림자도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지나고 보니 마을은 어른들의 보살핌과 교육이 살아있는 공동체였습니다.
이런 유년시절은 나에게 너무나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자연생태계를 몸으로 배우고, 친구들과 싸우면서 사회생활을 배우고, 마을에서 서리하다가 걸려 도둑질의 나쁨을 경험으로 배웠습니다. 책에서 말했듯이 지나고 보니 마을은 공동체였습니다. 아이들 끼리 어울려 놀았다고 생각했지만 항상 어른들의 보살핌과 교육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물놀이 하다 물에 빠지면 주변에 있던 어른들이 구조했고, 서로 싸우면 지나가던 어른들이 꾸중을 했으며 예의범절 또한 마을 어른들의 몫 이었습니다. 이런 마을에서 자란 어린이들이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고 발전 시켰습니다.
아이들이 무섭습니다
하지만 어른들은 어릴 적 가난했던 시절만 기억하고 모든 가치를 부와 명예로만 생각하고 소중한 아이들에게서 추억을 빼앗고 학원으로만 몰고 있습니다.
저도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아이들이 무섭습니다. 승강기에서 마주쳐도 인사도 하지 않고 계단에는 아이들이 피운 양담배가 수북이 쌓여 있고 아파트 뒤편 구석진 곳에는 깨진 술병과 먹다 남은 안주가 너저분하게 놓여 있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은 지친 마음을 손쉽게 풀 수 있는 컴퓨터 앞에 앉아 게임 삼매경에 빠져 듭니다. 게임 속에서도 여전히 경쟁은 시작됩니다. 지친 마음을 쉬려고 시작했던 게임은 어느새 더욱 심신을 피로하게 만듭니다.
이렇게 자란 똑똑한 아이들이 다스리는 미래가 어떤 모습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사랑과 기쁨이 넘치는 사회일까요, 무한 경쟁 속에서 처절하게 몸부림치는 사회일까요.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우리아이들에게 이제는 우리 부모에게 선물 받은 마을이라는 공동체를 돌려주어야 합니다.
날개를 잃고 참새를 쫓던 요즘 아이들 같은 매에게
박원순 작가는 마을의 소중함을 인식하고 사라져 가는 마을을 되살리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진솔하게 담고 있습니다. 아름다움이 저절로 느껴지는 경남 남해 다랭이 마을, 전북 임실의 치즈마을, 환경 농업공동체를 실현시킨 경북의성의 쌍호공동체마을 등 책에서 소개된 모든 마을들은 의식 있는 몇 사람에 의해 시작되었고, 모든 마을 사람들의 참여로 인해 결실을 맺고 있습니다. 마을이 사라지면 우리의 풍요롭고 아름다운 미래도 사라질 수 있습니다.
소중한 마을을 지키기 위해 정부에서는 농어촌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이 이루어져야 되고,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도 마을공동체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강구해야 됩니다. 어른들이 힘을 모아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만들고 아파트 주민끼리 서로 인사하고 나누는 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대한민국을 다시 한 번 마을 공동체로 만들어 우리가 잊고 지내던 품앗이 문화를 되살려 서로 돕고 나누는 마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이런 마을을 만들기 위해서는 부모부터 변해야 합니다. 너무 자녀들을 경쟁에 밀어 넣지 말고, 아이들이 마을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이런 마을공동체 문화가 정착 되어야 아이들의 범죄도 사라지고 국민들의 행복지수도 높아지는 진정한 선진국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끝으로 아름답던 유년시절을 추억하며 날개를 잃고 아무런 생각 없이 참새를 쫓던, 요즘 아이들 같은 매에게 다시 한 번 사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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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e시대와철학>과 <책익는 마을>의 공동기획 연재물입니다. 책과 더불어 건전한 시민문화를 만들어가는 보령 책익는 마을 주민들의 다양한 세상살이, 세상보기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오늘은 그 다섯째 글로서 박원순의 <마을에서 희망을 만나다>(검둥소 펴냄)을 다룬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