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학사상연구회의 회원들의 철학적 책읽기

플라톤의 <국가> 강해(81) [이정호 교수와 함께하는 플라톤의 『국가』]

플라톤의 <국가> 강해(81)

 

VI 본론 3 : 부정의와 현실 비판 – 현실 국가 분석(제8권-제9권) 

A. 부정의한 나라들과 부정의한 개인들.

3. 민주정과 민주정적인 인간, 필요한 욕구와 불필요한 욕구(555b-562b)-(1)

 

[555b-558c]

* 소크라테스는 이제 과두정ὀλιγαρχία에서 민주정δημοκρατία으로의 변화가 어떻게 일어나는지에 대해 언급한다. 그것은 한마디로 과두정이 좋음ἀγαθός이라고 내세우는 부에 대한 끝없는 추구ἀπληστία, 즉 최대한으로 부자πλούσιος가 되어야 한다는 끝없는 추구 때문에 일어난다.(555b) 게다가 많은 재산을 소유κεκτῆσθαι해야 통치자들οἱ ἄρχοντες이 될 수 있어서 젊은이νέος들이 자기 재산을 낭비ἀναλίσκειν해서 탕진ἀπολλύναι해버려도 법으로 막기는커녕 그들의 재산을 사들이고 돈놀이도 하여εἰσδανείζοντες 더 부유해지려고 한다. 그래야 더 존중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시민πολίτης들이 절제σωφροσύνην를 충분히 갖추기란 불가능하다,(555c) 그래서 방탕함을 방관하고 부추기는 과두정에서는 비천하지ἀγεννής 않은 사람들이 가난뱅이πένης가 되는 일이 때때로 일어난다. 그리고 그 중 빚χρέος을 지고 시민권을 박탈당한ἄτιμοι 자들의 경우 침도 달고κεκεντρωμένοι 무장도 다 갖추고서ἐξωπλισμένοι(555d) 자신의 재산을 차지한 사람들을 미워하고μισοῦντες 음모를 꾸미며ἐπιβουλεύοντες 변혁νεωτερισμός을 열망한다ἐρῶντες. 하지만 저 돈벌이꾼들οἱ χρηματισταὶ은 이를 아랑곳하지 않고 돈벌이에만 매달려 나라에는 수벌κηφήν과 거지πτωχός들이 넘쳐난다.(555e)

* 이런 해악κακός이 불타올라도ἐκκαόμενον 통치자들은 그것을 막을 법적 방도 즉 시민들이 덕ἀρετῆ에 마음 쓸 수ἐπιμελεῖσθαι밖에 없게끔 하는 법, 이를테면 자발적인 계약συμβόλαιον을 할 때(556a) 본인이 그 위험을 감수하고 계약하게 만드는 법조차 마련할 생각이 없다. 그리고 정작 통치자들 자신과 그 가족들은 호사스럽게 지내며 육체적인 것τὰ τοῦ σώματος이든 정신적인 것τὰ τῆς ψυχῆς이든 수고πονος를 감당하지 못하고(556b) 쾌락ἡδονή과 고통λύπη에 맞서 버텨내기καρτερεῖν에도 유약하고μαλακός 게으르다ἀργός. 그런데 그러한 상태에서 통치자들과 통치받는 자들이 전장에서든 여러 어려운 상황에서 서로 맞닥뜨린παραβάλλωσιν 경우 그들 자신 결코 부자들에게 얕보이지καταφρονῶνται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556c) 이를테면 부자들과 전장에 나란히 배치되었을 때 부자들이 숨을 헐떡거리며 어쩔 줄 몰라 하는 걸 종종 보게 되면서 가난한 자는 자신들이 못나서 가난하게 사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고 마침내 ‘저자들은 우리 밥이야!ἡμέτερος 별것도 아니다’εἰσὶ οὐδέν라고 여기게 되면서 서로 그 말을 퍼트린다.(556d) 그 결과 과두정의 나라들은 서로의 동맹군συμμαχία을 불러들여 내란을 벌이게 되고 결국 나라가 병들게 된다.(556e)

* 민주정은 이러한 싸움에서 가난한 자들οἱ πένητες이 승리하여νικήσαντες 상대편 가운데 일부는 죽이고ἀποκτείνωσι 일부는 추방하고서ἐκβάλωσι 남은 자들에게 이 정치체제의 시민권과 관직을 추첨κλῆρος의 방식으로 균등하게ἐξ ἴσου 나누어 줄μεταδῶσι 때 출현한다. 무력ὅπλον에 의해 세워지든, 상대편이 겁을 먹고 도망가서 세워지든, 민주정은 그와 같이 수립κατάστασις된다.(557a)

* 이어서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수립된 민주정 체제에서 사람들은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는지 즉 민주정의 기본 성격에 대해 언급한다. 이 역시 한마디로 이 나라는 자유ἐλευθερία 즉 거침없는 발언의 자유παρρησίας와 누구든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제멋대로의 자유ἐξουσία가 있는 나라이다. 그래서 이 나라에서는 각자가 자기 마음에 드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꾸려갈κατασκευάζοιτο 것이기에(557b) 이 정치체제πολιτεία는 마치 온갖 꽃ἄνθος이 수놓인 다채로운ποικίλος 겉옷ἱμάτιον처럼 모든 정치체제 가운데서 가장 아름다운καλλίστη 체제로 여겨진다.(557c) 그래서 이곳은 제멋대로의 자유 덕분에 정치체제들의 만물전παντοπώλιον에 간 사람처럼 정치체제를 탐색하기에도 맞춤한 곳이기도 하다.(557d).

* 이 나라 안에는, 설령 자네가 다스릴 능력이 있어도 다스려야 하는 강제ἀνάγκη도 없고 다스림ἄρχειν 받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다스림을 받아야 하는 강제도 없다. 전쟁 중이라 하더라도 싸워야 한다는 강제가 없고 평화εἰρήνη를 원하지 않는데도 다른 사람들이 평화롭게 지낸다고 해서 그렇게 지내야 한다는 강제도 없다. 또 관직을 맡거나 재판관 일을 하는 것δικάζειν을 금지하는 법령이 있다고 하더라도(557e) 원하면 그것을 할 수 있다. 이 정도로 이 정체는 환상적θεσπέσιος이고 또 즐겁다. 하물며 이 정치체제에서는 사형θανάτου이나 추방φυγή형의 평결을 받은 자들조차 여전히 사람들 속에 머물러 살면서, 아무도 신경 쓰지도 눈여겨보지도 않는 가운데, 마치 영웅의 혼백처럼ὥσπερ ἥρως 돌아다닌다.(558a) 이 만큼 이 정치체제는 너그럽고συγγνώμη 전혀 좀스럽지μικρολογία 않지만, 나라를 세울 때 중요하다고 이야기한 것은 무시καταφρόνησις한다. 이 체제는 월등한ὑπερβεβλημένην 자질을 지니고 어려서부터 내내 아름다운καλός 것들 속에서 놀며 나랏일을 수행해내는 뛰어난ἀγαθός 사람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그저 대중πλῆθος에게 호의εὔνους를 갖고 있다고 말하기만 하면 그 사람을 높이 평가할 정도로 그 중요한 모든 것들을 대범하게μεγαλοπρεπῶς 짓밟는다.(558b) 이런 것들이 그리고 이와 자매ἀδελφή관계에 있는 것들이 민주정의 특징이다. 이 정치체제는 다스림이 없고ἄναρχος 다채로우며ποικίλος 즐거운ἡδύς 체제이고 동등한ἴσος 자에게나 동등하지 않은 자에게나 일종의 동등함ἰσότης을 똑같이 나누어 준다.(558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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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55c ‘시민들이 절제sōprosynē를 충분히 갖추기란 불가능하며’ : 절제는 이상국가에서 생산자 즉 시민이 갖는 덕목으로 ‘물질적 욕구에 대한 절제’의 의미도 지니고 있지만 ‘다른 계층들과의 조화에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한마음 한뜻homonoia이 되는 능력’으로서 생산자 계층뿐만이 아니라 통치 계층, 전사 계층 모두에게 요구되는 공통의 덕이기도 하다.(431e-432a) 절제가 좁은 의미의 정의로 여겨지는 까닭도 그것에 있다. 그러나 앞서 살폈듯이 과두정 치하에서는 계층 간 조화와 공존의 덕으로서 이와 같은 절제가 무너져 계층들 간 상이했던 욕망들이 서로 뒤섞이면서 결국 계층 간 욕망구조가 하나로 등질화되기에 이른다. 수호자 계층은 물질적 욕구로 확장 변질된 만큼 권력으로 생산자 계층의 부를 침탈하여 더 큰 부자가 되기도 하고 처음부터 사유재산이 허용되었던 생산자 계급 또한 권력에도 관심을 갖게 된 만큼 자신들의 부로 관직을 사서 통치에 참여하고 그 힘으로 다시 더 큰 부자가 될 수 있다.

* 555d-e : 그리고 이러한 부를 위한 경쟁 과정에서 비천하지 않았던 수호자들이 가난뱅이가 되는 일도 일어나고 비천한 평민들이 자신이 모은 돈으로 관직을 사들여 마치 고귀한 자라도 된 것처럼 권력을 휘두르는 일도 일어난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보면 욕망구조의 등질화가 달성된 과두정 치하에서 평민도 정치적 욕구를 갖고 관직에 참여할 수 있음은 이미 그 자체로 민주정체의 씨앗이 뿌려지고 자라날 수 있는 최소한의 기반이 마련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최대한 부자가 되려는 세태에서 가산을 탕진하고 빚을 지거나 시민권을 박탈당하는 방식으로 소수 사회기득권층에서 밀려나거나 소외된 사람들이 침이 달린 수벌이 되어 과두정을 무너뜨리고 민주정을 세우는 주체들이 된다.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과두정이 무너지는 첫 번째 원인으로 과두주의자들이 대중을 부정의하게 대우할 때를 꼽으면서 과두정이 무너지는 여러 역사적 사례들을 들고 있다. 그러나 그 사례들에 따르면 과두정이 무너진 다음의 정치체계가 다 민주정이 되는 것은 아니다.(<정치학> 제5권 제6장 참고)

*556b ‘자발적인 계약을 할 때 본인이 그 위험을 감수하고 계약하게 만드는 법’ : 이를테면 법으로 정한 기준 이상의 폭리를 조건으로 계약할 경우 또는 가난한 자의 생존까지 위협할 정도로 채무 계약을 맺는 경우 그 계약을 무효화하는 법 등.

* 557b ‘제멋대로의 자유’exousia : 사전 상 exousia는 ‘it is allowed’, ‘is possible’의 뜻을 갖는 동사 exesti에서 나온 명사로 ‘power, authority to do a thing’, ‘permission to do’, ‘power over, licence’, ‘abuse of authority, licence, arrogance’, ‘abundance of means, resources’ 등 여러 의미를 가지고 있다. 플라톤은 이곳에서 exousia를 ‘자유’(freedom)의 뜻을 갖고 있는 eleutheria의 하나로 말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말 역본은 모두 exousia에 ‘자유’라는 말을 붙여, 정암학당 역본은 ‘제멋대로의 자유’로, 박종현은 ‘멋대로 할 수 있는 자유’로, 천병희는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자유’로 옮기고 있다. 참고로 영역본은 보통 ‘지나친 자유’ 또는 ‘방종’의 뜻을 갖는 ‘licence’로 옮기고 있다. exousia는 기본적으로 ‘정도 이상의 지나침’을 함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플라톤이 강조하는 ‘적도(適度)’to metrion와 동떨어진 것이고 동시에 부정의의 근본 특징 중 하나인 ‘더 많은 것을 가지려는 것’ 즉 ‘탐욕’으로서 pleonexia(343d, 359c)와 상통하는 것이다.

* 557b ‘거침없는 발언의 자유’parrēsia : 사전 상 parrēsia는 ‘outspokenness, frankness, freedom of speech’의 뜻을 갖는 말로 긍정적인 측면에서 보면 아테네 전성기 민주정은 물론 오늘날 민주주의가 지향하는 핵심 가치의 하나로서 ‘언론의 자유’를 의미한다. 그러나 사전 상 이 말은 나쁜 의미에서 ‘licence of tongue’ 즉 ‘아무 말이나 거리낌 없이 내뱉는 자유’라는 뜻도 함께 가지고 있다. 아마도 플라톤은 아테네 민주정이 멸망할 즈음, 진실과 무관하게 이익을 위해서라면 수사술까지 동원하여 거리낌 없이 온갖 거짓말과 음해를 저질렀던 무고꾼sykophanēs들의 행태를 떠올리며 이 말을 썼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기서 이 말은 ‘함께 진리를 찾아 대화를 나누는 소크라테스적 문답법’ 즉 dialegesthai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 557c ‘이 정치체제politeia 안에는 온갖 종류의 아주 다양한pantodapos 사람들이 생겨날 것 같네’ : 정치체제의 원어 politeia는 <국가>의 원제이기도 하지만 강해 서두에서도 밝혔듯이 ‘나라의 정치체제’라는 뜻과 더불어 ‘개인이 영혼을 다스리는 방식’, ‘시민의 일상적 삶의 방식’의 뜻도 갖고 있다. <국가>라는 제목 아래에서 나라와 개인의 영혼이 지속적으로 평행을 유지하며 갖은 원리로 설명되는 것도 그러한 까닭이다. 플라톤이 말하는 민주정체에는 이처럼 ‘제멋대로의 자유’를 구가하며 다양한 삶의 방식을 갖고 사는 사람들로 채워져 있다. 그러나 염두에 둘 것은 이들의 욕망구조는 과두정 이후 이미 물질적 욕구, 부에 대한 욕구로 획일화되어 있다. 민주정에서 다양함이란 그 부를 획득하기 위한 방편적 다양성 또는 부를 토대로 펼칠 수 있는 물질적 쾌락적 삶의 다양성을 의미할 뿐이다. 삶의 방식의 진정한 다양성은 본성에 기초한 서로 다른 적성과 소질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상이한 욕망들을 서로에 대한 침범 없이 각자의 방식으로 구현하는 데서 나온다. 플라톤의 철인왕정과 민주정이 갖는 근본적인 차이도 여기에 있다. 철인왕정에서는 욕망구조 상 철학자가 통치에 적성이 있고 다른 계층은 생산이나 제작에 소질이 있어 통치는 철학자들이 서로 돌아가며 맡고 있고, 민주정에서는 욕망구조상 물질적 욕구로 등질화되어 있으나 재화는 한계가 있어 그것의 배분을 위한 권력 내지 관직을 모두가 돌아가며 수행하고 결정 또한 모종의 질적 원리가 아니라 머릿수를 기준으로 한 단순 양적인 원리 즉 다수결에 의해 결정한다. 플라톤 말대로 정치체제의 타락이 욕망구조의 변화에 따라 생긴 것이라면 민주정의 다수결 원리와 관직의 평등한 배분은 분명 이상적인 것은 아니지만 욕망이 획일화된 타락한 민주정 단계에서는 플라톤이 보더라도 달리 어쩔 수 없는 최선의 대안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과두정이 민주정으로 바뀌게 된 것은 욕망구조는 동일함에도 정치적 결정권을 소수 부자들이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558a ‘마치 영웅의 혼백처럼’hōsper hērōs : 원문대로 번역하면 ‘마치 영웅처럼’이다. 그런데 통상 아테네에서 영웅이 거리에 나오면 시민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는다. 그러나 이곳에서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은 영웅이 아닌 범죄자일 뿐이다. 사람들이 신경을 쓰지 않는 이유는 범법 자체가 일상화되어 있어 범죄자에 무감각해서 일수도 있고 사형 또는 추방되었을 범죄자가 나돌아다닐 일이 없다고 믿고 있기 때문일 수 있다. 그리고 범죄자 입장에서 보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을 자기가 버젓이 행하고 있다는 사실에 우쭐해서 자신을 영웅처럼 느낄 수 있다. 그만큼 민주정은 타락해있다. 어쨌거나 이러한 이유로 범죄자가 영웅처럼 나돌아다니는 것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 그런데 원문대로 그냥 ‘영웅처럼’으로 번역할 경우 사실과 다르게 ‘사람들이 영웅에 신경 안 쓰는’ 이상한 경우가 되어 앞뒤에 맞게 ‘영웅의 혼백’으로 보통 번역한다. 참고로 헤시오도스 신화에서는 전장에서 용감하게 싸우다 죽어 축복의 섬에 간 네 번째 시대 사람들 즉 죽은 전사들을 hērōs로 일컫고 있다.

* 558c ‘이와 자매 관계에 있는 것들’ ; 이를테면 법보다 시민 다수의 결의psēsimata가 최고의 권위를 갖는 것.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1292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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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서 살폈듯이 과두정에서는 계층과 영혼 전체에 걸쳐 물질적 욕구의 등질화와 획일화가 전면적으로 관철되어 있다. 권력 또한 다만 부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여 관직은 소수 부자들만의 전유물이 된 상태이다. 게다가 과두정은 부에 대한 경쟁에서 뒤진 자들의 파산이나 방탕한 젊은이들의 무분별한 낭비마저 소수 부자들의 부의 축적에 득이 된다고 여겨 그것을 막기 위한 어떠한 법적 장치도 따로 마련하고 있지 않다. 이에 따라 과두정은 나날이 빈부의 양극화가 심화되어 소수 부자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두가 거지가 되는 지경에 이른다. 그러나 그럼에도 과두정은 부에 대한 끝없는 추구를 멈추기는커녕 더욱 가속화함에 따라 결국 사회적 빈곤층과 소외계층들로 하여금 변혁에 대한 열망을 갖게 만든다. 게다가 이들은 소수 통치자들과 만나거나 부딪치는 여러 경험들을 통해 결코 자신들이 그들보다 못나거나 나약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변혁의 열망을 실천적으로 구체화하기에 이르고 마침내 동맹군을 결성하거나 다른 민주정체의 나라에서 동맹군을 불러들여 내분을 일으켜 과두정을 무너뜨린다. 이렇게 해서 등장한 정치체제가 곧 과두정 다음에 민주정dēmokratia이다.

* 플라톤이 기술하고 있는 정치체제의 타락과정에는 아테네 정치현실에 대한 그 자신의 역사적 경험이 분명 반영되어 있다. 그러나 그것은 특정 국면 특히 아테네 멸망 직전 상황에 대한 일부의 서술을 제외하면 타락과정의 순서나 계기, 전체적인 흐름에서 기본적으로 실제 아테네 정치사 전체와 대부분 일치하지 않는다. 실제 아테네 정치사에서 굳이 소수의 지배로서 과두정을 찾아보자면 기원전 8세기 귀족정을 예로 들 수 있지만 그 정체는 여기에서 다루고 있는 금권정으로서 과두정으로 보기 힘들고, 설사 과두정으로 본다할지라도 그 이후 정치체제로서 민주정이 들어선 것도 아니다. 그리고 기원전 7세기 솔론이 개혁의 일환으로 채택한 제도가 이곳의 과두정처럼 토지와 재산에 따라 관직을 부여한 일종의 금권정이라고 해도, 그 체제에서는 이곳처럼 부의 소유가 무제한 허용되기는커녕 채무의 탕감과 채무 노예의 방지책 등 평민들과 가난한 자들을 위한 배려가 중요한 정책적 요소로 반영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이후에 나타난 정치체제 역시 민주정이 아니라 페이시스트라토스(기원전 600-527)의 참주정이었다. 그리고 아테네에서 민주정의 등장과 발전에 획기적인 계기가 된 사건으로 평가받고 있는 기원전 508년 클레이스테네스의 개혁 또한 금권정이 아닌 페이시스트라토스의 참주정을 타파한 데서 비롯된 것이고 그것을 주도한 클레이스테네스 자신 또한 가난한 평민이 아니라 귀족 출신이었다. 물론 아테네 정치사에서 과두주의자들은 늘 존재했지만 과두정체라는 현실 정체로서 집권했다가 민주정체로 바뀐 사례를 굳이 꼽자면 오랜 전쟁 이 가져다 준 만성적인 긴장감 때문에 기원전 411년 400인에 의해 잠시 일어났다가 패퇴된 과두정 혁명과 기원전 404년 30인 과두정이 수개월 집권했다가 민주정파에 의해 타도된 경우가 전부일 정도이다. 게다가 그 30인들 모두 비록 과두주의자들이었지만 이미 당시부터 참주들로 불리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들을 타도한 사람들이 처음으로 민주정을 수립한 사람들이 아니라 페리클레스 이래 오랜 기간 민주정파를 이끌어 온 사람들이라는 점에서도 이곳의 경우와 일치하지 않는다.

* 그리고 무엇보다 근본적인 차이는 아테네에서 민주정이 등장하고 발전한 과정 자체가 이곳에서처럼 모종의 혁명적인 과정을 통해 일시에 이룩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아테네 민주정의 발전은 멀리는 귀족과 평민의 갈등을 조정하려 했던 솔론에서부터 클레이스테네스의 개혁을 거쳐 페르시아 전쟁의 승리이후 평민 계급의 정치적 신장을 발판으로 확립된 페리클레스 시대의 전성기에 이르기까지 긴 세월 동안에 걸쳐 점진적으로 이룩된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처형과 추방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체제 변혁 관련해서 이루어진 것들은 민주정이 안정적으로 확립되기 이전 참주 페이시스트라토스나 클레이스테네스의 치하 권력 투쟁 과정에서 있었던 일들이 대부분이고, 그 이후에는 기원전 404년 30인들에 의한 무차별 처형 사건 정도를 꼽을 수 있지만 그것을 저지를 자들은 민주정파가 아닌 과두정파들이었다. 물론 체제 변혁 과정에서 일어난 일들은 아니지만 처형 관련 일들을 들자면 기원전 427년 뮈틸레네 사람들의 처형,  416년 멜로스인들에 대한 학살,  406년 아르기누사이 해전 당시 장군들의 처형과 추방을 포함해서 404년 스승 소크라테스의 처형 등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스승의 처형은 플라톤 자신에게 민주정에 대한 부정적 상념을 안겨다 준 매우 충격적인 사건이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이곳에서 플라톤은 민주정 치하에서 일어난 위와 같은 일련의 부정적 사건들을 묶어 그것들이 마치 일거에 일어난 것처럼 압축하여 기술하고 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 이곳에서 플라톤이 기술하고 있는 정치체제의 타락과정은 실제 체제 변혁 과정과 관련한 역사적 사실들에 대한 분석과 그 변화 과정에 기초하여 이른바 플라톤의 퇴보사적 역사관을 염두에 두고 기술한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살펴온 주제들 즉 이상적인 정의로운 국가와 개인 그리고 부정의한 국가와 개인 중 어느 나라와 개인이 더 행복한가를 보다 극명하게 판정하기 위해 플라톤 나름 인위적으로 기획된 이른바 방편으로서 정치체제의 타락과 변화과정에 대한 기술이라 할 것이다.

* 한편 <국가> 제8권에서 플라톤이 기술하고 있는 민주정의 특징들과 민주정 치하 민중들의 행태들은 플라톤을 반민주주의자로 규정하는 가장 직접적이고 일차적인 전거로 평가되어 왔다. 왜냐하면 플라톤 스스로 자신이 생각하는 여러 제도상 행태 상 특징들을 일단 민주정의 특징으로 규정하고 그것을 토대로 민주정을 타락한 정치제제의 하나로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이곳에서 플라톤이 압축해서 인용하고 있는 일반적이고 대표적인 특징들 가운데 제도 차원에서 제시한 것을 꼽자면 그것은 곧 ‘평민들 모두에게 재산과 신분에 상관없이 시민권과 관직을 균등하게 배분하고 그 배분 방식 또한 추첨에 따른다는 것’(557a) 그리고 그에 덧붙여 ‘그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마음대로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자유를 부여한다는 것’이다.(557b) 플라톤이 제시한 이러한 민주정의 특징들이 일단 당대 받아들여지고 있는 민주정의 일반적인 특징이라는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을 통해서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또한 <정치학> 제6권 제2장 ‘민주정의 원리와 제도’ 부분에서 민주정의 근본 원리를 자유 즉 사람이 원하는 대로 사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고 재산의 크기와 무관하게 추첨을 통해 관직을 균등하게 배분하는 것을 주요 특징으로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1317b) 그리고 이러한 점들은 실제 아테네 민주정에서도 그대로 시행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최소한 이곳에서의 민주정의 제도와 관련한 플라톤의 언급은 역사적 사실에 어긋나지 않는다. 그런 반면 민주정의 이러한 특징들은 플라톤이 앞서 이상국가론에서 언급해온 주장들과는 크게 배치된다는 점에서 타락한 정치체제의 하나로 민주정을 기술하고 있는 플라톤의 기본 의도와 부합하는 것이기도 하다. 플라톤의 이상국가론에 따르면 사회적 역할의 배분은 철저히 자연적 소질과 적성에 따른 특정의 조건 하에서 이루어져야 함에도 민주정은 어떠한 조건에 대한 고려 없이 모두를 대상으로 그것도 추첨이라는 우연적 방식으로 관직을 배분하고 있기 때문이다.

* 그러나 눈여겨 볼 것은 민주정에 대한 플라톤의 기술이 당대 민주정에 대한 일반적 인식과 역사적 사실에 부합한다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은 여기까지가 전부라는 점이다. 이곳에서 플라톤이 기술하고 있는 민주정에 대한 제도 관련  이외의 언급들을 들여다보면 그 가운데 굳이 역사적 사실 또는 당대 민주정의 일반적인 특징과 일치하는 부분은 다만 아테네가 멸망하기 직전의 모습 즉 민주정이 최악의 상태에 빠져 내전과 분란과 각자도생에 시달리며 피폐할 대로 피폐해졌을 때의 모습 정도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것을 제외한 민주정에 대한 플라톤의 나머지 기술들은 아테네 민주정이 걸어온 역사적 사실과도 거의 일치하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플라톤은 민주정의 일반적인 특징이라고 받아들이기 힘든 사항들까지 민주정의 이름으로 끌어들여 마치 민주정의 본질적인 타락상인 양 열거하고 있다. 그 결과 어느 지점에 이르면 과연 플라톤이 현실 정치체제로서 민주정을 비판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가 임의로 세운 가공의 민주정 내지 피폐한 민주정의 일단만을 부각시켜 과장해서 비판하고 있는지 구분이 안 될 정도이다. 이러한 사안들 가운데 가장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이 민주정의 가장 대표적인 특징으로 플라톤이 제시하고 있는 ‘제멋대로의 자유’exousia이다. 물론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자유’는 민주정이 근본으로 내세우는 가장 중요한 원리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플라톤이 기술하고 있는 자유는 일반적인 민주정이 지향하는 근본 원리로서 자유와 크게 다르다. 이곳에서 플라톤이 말하는 ‘제멋대로의 자유’에 따르면 다스림을 받아야 할 강제도 전쟁에 참여해야 할 강제도 없고 무엇보다 추첨을 통해 누구라도 관직에 참여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나라가 정한 법령에 따라야 할 강제도 없다. 설사 형벌의 평결을 받았어도 민주정 체제에서는 전혀 눈치도 신경도 쓸 필요 없이 형벌의 평결을 받지 않은 사람들과 똑같이 지낼 수 있다.

*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가 전하고 있는 민주정의 특징들과 실제 전성기 아테네 민주정의 실상을 들여다보면 앞서도 살폈듯이 민주정에 대해 플라톤이 이곳에서 기술하고 있는 내용들은 제도의 측면을 제외하면 당대 현실 정치체제로서 일반적인 민주정의 양태와 거리가 멀다. 우선 민주정은 재산과 신분에 상관없이 추첨을 통해 관직에 참여할 수 있고 하고 민회나 재판정에서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어떤 것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가 기술하고 있는 민주정의 일반적인 원리나 제도 또는 아테네 민주정이 취한 역사적 사실에 따르면 분명 자유가 근본 원리이기는 하지만 그곳에는 이곳에서 플라톤이 기술하고 있는 내용과 달리 엄연히 시민으로서 각 개인이 따르고 지켜야 할 법적 강제성이 존재하고 누구라도 추첨을 통해 관직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기는 하지만 그곳에는 사전에 군역과 납세 의무, 하물며 부모에 대한 공경의 의무 등 엄격한 자격 심사dokimasia는 물론 임명 후 관리들에 대한 계속적인 통제 방책epicheirotonia도 구축되어 있다. 그리고 이를 어길 경우 고발은 물론 처벌도 감내해야 했다. 그리고 관직 또한 전횡을 막기 위해 가능한 한, 한 종류의 관직이 아니라 여러 관직을 돌아가면서 맡되 기간도 짧은 기간만 맡겼다. 그리고 장군직이나 재정직 같은 전문적인 식견이 요구되는 관직은 추첨이 아니라 선출의 방식으로 임명되었고 그 또한 권력을 마음대로 행사할 수 없도록 여러 가지 견제 방책이 강구되어 있었다. 결코 제멋대로의 자유가 아닌 것이다.(e시대와 철학, 시철북 & 아카데미에 필자가 올린 ‘기획연재-고대 그리스 문화 대탐험, 주제 2 : 아테네 민주정과 그 형성’ 참고)

* 이러한 점들을 고려하면 이곳에서 플라톤이 기술하고 있는 민주정은 현실 정치체제로서 오늘날 민주주의는 두말할 나위가 없고 당대 일반적인 민주정과도 거리가 멀다. 설사 정치적 최고 결정권자로서 시민들이 그러한 정치체제를 민주정의 이름으로 수립하고 제멋대로의 자유를 선언했다하더라도 그 자체가 일체의 법적 강제성을 배제하는 것인 한, 그것은 권력에 의한 법적 강제성이라는 정치체제의 기본 특징을 결여하는 것으로서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정치체제 중 하나로 분류조차 되기 힘든 것이다. 플라톤도 언급하고 있듯이 그 민주정이 실제로는 지배하는 사람 즉 통치자가 없는 무정부 상태anarchos를 말한다면 더욱 그러하다. 민주정은 결코 무정부 상태의 정치체제가 아니다. 설령 시민이 무정부이외에 다른 통치를 배제한다고 해도 실질적으로 다스리는 자가 없다는 것은 실질적인 시민의 지배를 담보할 수 없다는 점에서도 민주정이 아니다. 철인왕은 물론 명예주의자나 과두주의자, 참주를 배제한다고 해서 바로 민주정이 되는 것은 아니다. 법적인 강제성을 갖고 지배하는 권위 있는 주체와 관료체계가 있어야 하나의 정치체제가 될 수 있다. 오늘날 무정부주의anarchism자들이 내세우는 체제는 시민 구성원 서로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시민 모두가 자율로서 서로에 대한 자발적 강제성을 갖고 성립하는 체제라는 점에서 하나의 정치체제로 불릴 수 있지만, 이곳에서 플라톤이 말하는 민주정의 시민들은 자율로서 서로에 대한 자발적 강제성을 전혀 갖고 있지 않은 그야말로 말 그대로 제멋대로 자유만을 가진 자들이다. 물론 모종의 비슷한 정치체제로서 자유방임주의 체제로 볼 수 있지 않느냐라는 반론도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자유방임주의국가가 야경국가로 불렸음이 보여주듯이 그것은 시장에 국한된 것이었고 최소한 국방과 시민 질서 등 국가 안전과 관련한 영역에서는 엄연히 정부의 역할이 존재했다. 요컨대 플라톤이 말하는 민주정은 이른바 정치체제로서 민중이 지배하는 민주정도 아니고 오늘날 말하는 자유방임주의체제도 아니다. 정확히 말한다면 그것은 정치체제가 아닌 플라톤도 내용적으로 인정했듯이 그냥 ‘다스림이 없는’ 상태이다. 이에 비해 아테네 현실 민주정이나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일반적인 민주정은 정치적 주요 결정이 옳건 그르건, 바람직하건 바람직하지 않건, 직접적이건 간접적이건 간에 다수 대중에 의해 결정되었고 그 법적인 강제성이 담보되었다는 점에서 이곳에서 플라톤이 말하는 민주정과는 근본에서부터 다른 것이다.

*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많은 연구자들이 그래왔듯이 이곳에서 플라톤이 제시한 민주정에 대한 비판들만을 토대로 플라톤을 반민주주의자로 규정하는 것은 이론적 온전성과 타당성을 갖추지 못한 일종의 범주의 오류를 범한 것이다. 물론 기타 여러 가지 관점에서 플라톤이 민주주의를 비판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가 자유방임체제로서 이곳의 민주정을 비판한다는 것을 근거로 그를 반민주주의자라고 한다면 아마도 오늘날 대부분의 민주주의 지지자들도 반민주주의자로 불려 져야 할 것이다. 오늘날의 민주주의조차 ‘제멋대로의 자유’까지 내세우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미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에서 민주정이 자유를 근본 원리로 하더라도 ‘누구나가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자유까지 유익한 일로 여길 경우 그것은 인간들 각자에게 있기 마련인 나쁜 것을 감시하고 방호할 수 있는phylattein 힘을 갖지 못하게 만들 것’이라 단언하고 있다.(1318b, 40)

* 그런데 이쯤에서 우리는 플라톤 자신 민주정과 관련한 이곳의 언급이 당대 일반적인 민주정과 차이가 있다는 것을 모를 리 없음에도 왜 민주정의 타락상을 논하는데  많은 논란거리를 안고 있는 ‘제멋대로의 자유’를 그 핵심으로 내걸었는지 그 배경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우선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이곳에서 제멋대로의 자유와 관련하여 플라톤이 설명하고 있는 민주정의 여러 모습들은 욕망구조의 측면에서 이상국가의 특징과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익히 알고 있다시피 플라톤의 이상국가를 구성하는 각 계층과 개인들은 각자의 자연적 소질에 따라 각자가 속한 사회 계층과 자신의 내적 영혼에서 각각 자신의 고유 역할과 능력을 최선으로 발휘할 때 가장 행복한 나라와 개인이 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욕망구조에서 서로 상이하고 다양한 본성들을 온전하게 보전하되 절제의 덕을 통해 그것의 조화를 구현할 때 가장 행복한 개인이 되고 가장 훌륭한 시민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곳에서 기술된 민주정과 민주정적 인간은 이미 욕망구조에서 물질적 욕구로 등질화 내지 획일화된 상태에서 실제 가능성 여부와 무관하게 일단 온갖 형태의 욕구를 아무런 장애 없이 제멋대로 충족할 수 있는 자유를 갖고 있다. 그리고 그 욕구가 어떻든 종국적 목표는 오로지 물질적 욕구 돈에 대한 욕구로 귀착해 있다. 한마디로 민주정에서는 전 계층이 돈에 대한 욕구에 예속되어 있고 그 욕구를 제한하는 어떠한 장치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러한 민주정의 삶의 양태는 분명 자연적 소질의 다양성을 토대로 서로 상이한 욕망을 가진 사람들끼리 나라에서건 영혼에서건 최선의 조화와 공존을 구현하려는 플라톤 이상 국가의 목표와 동떨어져도 한참 동떨어진 모습들이다. 그런데 지금 플라톤은 행복과 정의와 관련한 최종적인 판정을 위한 준비 차원에서 타락한 정체들과 그것의 특징들을 욕망구조의 변질 차원에서 차례대로 논하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플라톤은 ‘제멋대로의 자유’가 노정한 그와 같은 민주정의 삶의 양태들을 최악의 정치제제로서 참주정을 초래하는 가장 큰 원인으로 설정하고 있다. 참주정 직전의 타락상을 구성하는 근거로서 그러한 양태들만큼  적합한 것도 없어 보인다. 플라톤이 타락한 정치체제로서 민주정을 다루면서 여러 논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민주정에서 중시하는 자유와 다르게 유독 무제한의 자유 즉 제멋대로의 자유를 민주정의 핵심 특징으로 내세운 까닭도 그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플라톤은 민주정을 다루면서 민주정 그 자체에 대한 비판보다는 민주정이 왜 수립과 동시에 머지않아 와해될 수밖에 없는 매우 불안정한 정치체제인지를 밝힘과 동시에 민주정의 무제한의 자유가 어떻게 무제한의 예속을 초래하며 판정의 최종단계인 참주정으로 이행하는지를 드러내려 했던 것이 아닐까.

* 논의를 마무리하면서 사족 하나 첨언하려 한다. 플라톤은 여기서 이 정치체제의 타락과정을 다루면서 실제 아테네 민주정이라기보다는 욕망구조의 변질차원에서 ‘제멋대로의 자유’를 내세워 민주정 일반을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플라톤이 실제 아테네 민주정에 대해 생각만큼 부정적이진 않았다고 여기는 것은 크나큰 오산이다. 무엇보다 플라톤은 민주정의 제도적 측면뿐만이 아니라 아테네 민주정이 페리클레스 이래 역사적으로 제국주의 정책을 내세워 자신들의 패권적 욕망을 내세워 그리스 사회 전체를 패권적으로 지배했던 시절을 평생 동안 개탄해 마지 않았다. 우리가 알다시피 아테네 전성기 민주정은 제국주의에 기반해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당대의 현실은 우리가 지금까지 살핀 플라톤의 이상국가론에 완전히 배치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플라톤의 관점에서 보면 아테네 민주정은 역사적으로 그들만의 자유와 이익을 위해 이성이 아닌 물리적 군사력으로 제멋대로 다른 폴리스들을 무너뜨리고 제국주의적 패권을 관철함으로써 서로 다른 폴리스들끼리의 조화와 공존 원리로서 그리스 공동체의 보전 원리 즉 이상국가의 기본원리를 완전히 저버렸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아테네 민주정의 힘을 내세운 이러한 무차별적 침탈은 이곳에서 플라톤이 말한 ‘제멋대로의 자유’와 아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 지금까지 우리는 기본적으로 욕망구조의 변질 차원에서 플라톤의 정치체제의 타락 과정을 논의해왔지만 사실 순전히 형식적인 구도에서만 보면 흥미롭게도 플라톤은 그 타락한 정치체제들을 논하면서 우리들이 일상적으로 집착하는 가장 속물적인 그러나 가장 핵심적인 가치들을 주제어로 내세워 마치 미리 계획이라도 한 것처럼 각 정치체제에 순서대로 배정하고 있다. 이를테면 명예정의 경우에는 ‘명예’라는 가치가 과두정에서는 ‘돈’이라는 가치가 민주정에서는 ‘자유’라는 가치가 각각 중점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앞으로 다루게 될 최종적인 판정 대상으로서 참주정은 철인왕의 이성과 대립되는 반이성적 ‘권력’이 배정되어 있다. 그리고 플라톤은 그러한 논의 순서에 맞추어 과두정에서 비롯된 부에 대한 끝없는 욕망에 이어 민주정의 가장 큰 특징으로 ‘제멋대로의 자유’exousia를 제시한 후, 그것에 민주정적인 인간이 갖는 ‘불필요한ouk anagkaia 욕구’를 더해 종국적으로 판정과 비교의 최종 대상인 참주정의 특징으로서 폭압적 예속과 불법적 욕구를 제시한다. 플라톤은 정치체제의 타락과정을 그린 애초 목적대로 행복과 관련한 판정에서 철인왕정의 최종적이고도 궁극적인 비교 대상이자 최악의 정치체제로서 참주정에 그렇게 다가선다.

* 그러나 제8권을 다루는 서두에서부터 줄곧 밝혔듯이 이 모든 내용의 기저에는 역사적 정치체제들에 대한 관심보다는 인간의 욕망구조와 정치체제 간의 유기적인 관계가 근본적인 철학적 문제의식으로 자리하고 있다. 제8권을 겉으로 드러난 타락한 정치체제와 그것이 추구하는 현실 가치에만 착안하여 논구할 경우 우리는 욕망구조의 변화와 정치체제라는 플라톤 정치체제 변동론이 갖는 철학적 함축을 간과할 수 있다. 인간 욕망의 본질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현실 가치들에 대한 비판적 분석도 매우 중요한 철학적 과제이지만, 인간 본성과 정치체제의 유기적 관계에 관한 플라톤의 근원적 성찰에까지 치열하게 탐문해 들어갈 때 비로소 우리는 제8권에 담긴 정치체제 타락과정이 갖는 철학적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통해 약육강식이 일상이 된 이 짐승의 시대, 모멸의 현실을 넘어설 수 있는 희망 또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 참주정에 대한 논의에 들어가기 전에 앞서 논의 구도가 그렇듯이 민주정체에 이어 민주정적인 인간에 대한 논의가 아직 남아있다.  -끝-

 

다음 강해 :

VI 본론 3 : 부정의와 현실 비판 – 현실 국가 분석(제8권-제9권) 

A. 부정의한 나라들과 부정의한 개인들.

3. 민주정과 민주정적인 인간, 필요한 욕구와 불필요한 욕구(555b-562b)-(2)

 

 

 

 

 

플라톤의 <국가> 강해(80) [이정호 교수와 함께하는 플라톤의 『국가』]

플라톤의 <국가> 강해(80)

 

VI 본론 3 : 부정의와 현실 비판 – 현실 국가 분석(제8권-제9권) 

A. 부정의한 나라들과 부정의한 개인들.

3. 과두정과 과두정적인 인간(550c-555b)

 

[550c-552e]

* 소크라테스는 명예정에 이어 타락한 정치체제로서 과두정을 언급한다. 한마디로 과두정ὀλιγαρχία은 평가재산τίμημα에 기반한 정치체제, 즉 부자들οἱ πλούσιοι이 통치하고 가난한 자πένης들은 통치에 관여하지 못하는 나라이다.(550c) 과두정이 명예정에서 어떻게 생겨나는지는 장님τυφλός에게조차 분명하다δῆλος. 그들은 저마다 황금χρυσίον으로 채워진 보관소ταμιεῖον를 갖고 법νόμος을 왜곡하여παράγουσιν 자신만을 위해 지출δαπάνη함으로써 명예정을 파괴한다.ἀπόλλυσι. 그들의 부인들γυναῖκες도 마찬가지이다.(550d) 그리고 그들은 경쟁ζῆλος적으로 자신들 중 다수τὸ πλῆθος를 돈벌이χρηματίζεσθαι 쪽으로 나아가게 하여 그만큼 덕ἀρετὴ을 낮게 평가τίμιος하게 만든다.(550e) 덕과 부πλοῦτος는 상반되는διίστημι 것이어서 나라 안에서 부와 부자가 높게 평가받을수록 덕과 뛰어난 사람οἱ ἀγαθοί은 그만큼 낮게 평가받는다. 그래서 이들은 승리를 사랑하고φιλόνεικος 명예를 사랑하는φιλότιμος 사람 대신 결국 돈벌이를 사랑하고φιλοχρηματιστής 돈을 사랑하는φιλοχρήματος 사람이 되어(551a) 재화χρῆμα의 양πλῆθος을 법으로 정해 그 액수τίμημα에 미치는 사람만 통치에 참여시킨다. 과두정은 이렇게 해서 수립κατάστασις된 정치체제이다.

* 그러나 과두정은 그만큼 결함ἁμάρτημα을 안고 있다.(551b) 우선 1) 이 정치체제를 규정ὅρος해주는 근거, 즉 평가재산τίμημα을 근거로 삼고 있다는 것 그 자체가 결함이다. 만일 배의 키잡이κυβερνήτης로서 기술을 갖추고 있을지라도 그가 가난하면 그는 키잡이가 될 수 없다. 이 경우 항해가 엉망πονηρός이 되듯 다른 종류의 다스림ἀρχή도 엉망이 된다. 가장 어렵고도χαλεπωτάτη 가장 중요한μεγίστη 나라를 다스리는 일에서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551c) 2) 그다음의 결함은 그와 같은 나라는 하나가 아니라 둘δύο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그 나라는 가난한 자들의 나라와 부자들의 나라로 나뉘어, 같은 곳에 살면서 늘 서로에 대해 음모를 꾸민다ἐπιβουλεύοντας. 3) 게다가 그들은 전쟁πόλεμος을 수행할 수 없다는 점에서도 아름답지καλός 못하다. 대중πλῆθος을 무장시켜 동원하자니 적들보다 대중이 더 두렵고δεδιέναι 대중을 동원하지 않자니(551d) 자신들이 소수라는 점이 전장에서 드러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들은 전쟁에 돈을 들이려 하지 않는다. 4) 그리고 이러한 나라에서는 같은 사람이 여러 일에 관여해서πολυπραγμονεῖν 농사도 짓고 돈벌이도 하고 전쟁도 하는 일이 일어난다.(551e) 5) 그리고 이 정치체제는 이 모든 나쁜 것 중에서도 최대로 나쁜 이것 즉 자신의 것 전부를 파는 것ἀποδόσθαι과 또 그걸 다른 사람이 취득하는 것κτήσασθαι을 허용한다. 자신의 것을 팔아버린 사람이 나라의 구성원μέρος이 못 되는데도 나라 안에 사는 것이 허용됨으로써(552a) 그들은 그저 가난뱅이πένης이자 빈털터리ἄπορος로 전락하고 만다. 그들은 부자일 때도 재산을 탕진ἀνήλισκεν한 자에 불과했듯이 탕진한 뒤에도 마치 봉방κηρίον 안에 수벌κηφήν이 생겨나 벌집의 우환νόσημα이 되듯 나라의 우환이 된다.(552b) 이들 중 신이 처음 만든 대로 침 없는ἄκεντρος 벌들의 경우는 말년γῆρας을 거지πτωχός로 마감하겠지만 못된 짓 하는 자κάκουργος라 불리는 온갖 종류들의 놈들은 침 달린 수벌 같은 자들로서 그 나라 어딘가에 도둑κλέπτης, 소매치기βαλλαντιατόμος, 신전털이범ἱερόσυλος 등 그런 온갖 나쁜 짓의 달인들κακῶν δημιουργοί로 숨어 있을 것이 분명하다.(552c-d) 다만 과두정 체제의 나라에선 통치자들αἱ ἀρχαί이 이들을 힘으로βίᾳ 억누르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이 나라는 통치자ἄρχων들을 제외하면 거의 모두가 거지이다. 이 모두는 교육의 부재ἀπαιδευσία와 나쁜κακός 양육τροφή, 그리고 잘못 수립된 정치체제 탓이다. 이처럼 과두정체제의 나라는 이렇게 많은 나쁜 점들을, 어쩌면 이보다 더 많은 나쁜 점들을 지니고 있다.(552e)

 

[553a-555a]

* 소크라테스는 이어서 과두정 체제와 닮은 사람에 대해 언급한다. 명예정적인 사람에서부터 과두정적인 사람으로의 변화는 이를테면 명예정적인 사람의 아들이 마치 암초에 부딪히듯 아버지가 무고꾼συκοφάντης들의 모함을 받아(553a) 장군이나 관직에서 쫓겨나 사형당하거나ἀποθανόντα 추방당하는ἐκπεσόντα 일을 겪거나 시민권 박탈ἀτιμωθέντα과 함께 전 재산을 몰수당했을 때 일어난다. 이 경우 그 아들은 겁을 집어먹고(553b) 명예사랑과 기개부분을 자신의 영혼 안 왕좌에서 몰아내 곤두박질치게 만들고 가난으로 위축되어 인색하게γλίσχρως 굴며 돈벌이에 나선다. 그래서 돈을 모으면, 그때 가서 그런 자는 욕구부분τὸ ἐπιθυμητικόν 즉 돈을 사랑하는 부분τὸ φιλοχρήματον을 왕좌에 앉혀 자신 안의 대왕μέγας βασιλεύς으로 삼는다.(553c) 그 반면, 이성부분τὸ λογιστικόν과 기개부분은 욕구부분τὸ θυμοειδὲς의 노예가 된다. 이성부분은 적은 돈으로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계산λογίζεσθαι 기능으로 전락하고 기개부분은 부와 부자들, 돈벌이와 돈벌이에 도움이 되는 것 말고는 어떤 것도 명예롭게 여기지 못하게 된다. 명예를 사랑하는 젊은이에서 돈을 사랑하는 젊은이가 되는 것보다 빠르고도 강력한 변화는 달리 찾아보기 힘들다.(553d)

* 결국 이들은 돈을 가장 중하게 여긴다는 점에서, 그리고 절약하며φειδωλός 일에만 매달려 있는 사람ἐργάτης이라는 점에서 과두정 체제와 닮았다.(553e) 그는 자신에게 있는 욕구 중에서 ‘필수적인 욕구’ὁ ἀναγκαίος ἐπιθυμία들만을 채울 뿐, 그 밖의 소비ἀνάλωμα를 허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대중τὸ πλῆθος은 그런 자를 칭찬하기까지 한다.(554a) 무엇보다 그들은 교육이 부재한 탓에 수벌과 같은 욕구들이 그 사람 안에서 생겨나 때론 거지와 같고 어떤 것들은 못된 자와 같지만 다른 관심사 때문에 힘으로 그 욕구들을 억누르고 있다.(554b) 그들 또한 정의로운 자로 보여서 좋은 평판도 얻고 싶은 터라 거래관계 등에서 자신 안의 괜찮은 것으로 자기 안에 있는 다른 나쁜 욕구들을 힘으로 억누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설득πειθός이 아닌 강제ἀνάγκῃ와 공포φόβος 이를테면 재산을 잃을까 두려워 그런 것일 뿐 그 숨어있는 욕구들은 마치 그들이 고아의 후견인ἐπιτρόπευσις이 그러하듯 부정의한 짓을 저지를 수 있는 ‘제멋대로의 자유’ἐξουσία가 생겼을 때 밖으로 터져 나와 한껏 힘을 발휘한다. 그리고 남의 돈을 쓸 상황이 되면 이들 대부분에게서 수벌과 같은 종류의 욕구들이 그들 안에 있음이 드러난다. 이렇듯 이들은 대개 더 나은βελτίων 욕망ἐπιθυμία이 더 못한 욕망을 지배하기는 하겠지만 이처럼 자기 안에 내분στασίς을 겪는 이중의διπλόος 인간이다.(554c-d) 이 점 때문에 이들은 겉으로는 번듯한εὐσχήμων 사람으로 보이지만 한마음을 이룬ὁμονοητικός 조화로운ἡρμοσμένης 영혼이 갖는 참된 덕ψυχῆ ἀληθὴς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554e)” 나아가 이들은 승리를 위한 경쟁ἀγών과 좋은 평판εὐδοξία을 위해 돈을 쓰려들지도 않고. 소비적ἀναλωτικός인 욕망을 깨워 승리를 위한 동맹συμμαχία으로 불러내기도 두려워하는 까닭에 나라 안에서 승리 또는 다른 아름다운 것들을 놓고 사적으로 벌이는 경쟁에서 신통찮은φαῦλος 적수에 불과하다. 그는 과두정의 방식대로ὀλιγαρχικῶς 자기 것을 조금만ὀλίγοις 써서 싸우기 때문에 싸움에서는 대개 패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이 절약하는 돈벌이꾼χρηματιστής은 과두정체제의 나라와 닮아있다.(555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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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50c ‘과두정oligarchia…평가재산timēma에 기반한 정치체제’ : 과두정(寡頭政)의 원어 oligarchia를 말 그대로 번역하면 ‘소수가 지배하는 정치체제’이다. 헤로도토스는 <역사>(III 81)에서 과두정을 말뜻 그대로 사용하고 있지만 플라톤은 이곳에서 과두정을 아예 부자들hoi plousioi이 통치하는 체제 즉 금권정ploutokratia과 동일시하고 있다. 그것은 아테네에서건 스파르타에서건 그가 경험한 과두정 모두가 하나같이 소수 부자에 의해 지배되는 금권정의 형태를 띠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기원전 412년 아테네 과두정 치하 법령은 완전한 시민권의 자격을 재산을 기준으로 제정하고 있었다.(<투퀴디데스> VIII 65. 3, 97. 1) 이러한 이유로 플라톤은 물론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과두정을 줄곧 금권정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정치학> 제3권 1280a, 제4권 1292b 참고) 이것은 일찍이 부자들과 권력자들은 기본적으로 소수이자 뗄 수 없는 한 부류였음을 보여준다.

* 550d ‘그 변화가 어떻게 일어나는지는’ : 이곳의 언급 역시 기본적으로는 명예정에서 사실상 과두정치로 퇴보한 스파르타의 역사에 대한 그의 경험에서 나왔을 테지만 솔론의 개혁과 411년과 404년 아테네에서 일어난 과두정 혁명도 함께 고려되었을 것이다.

* 551a ‘이들은 승리를 사랑하고philonikos 명예를 사랑하는philotimos 사람 대신 결국 돈벌이를 사랑하고philochrēmatistēs 돈을 사랑하는philochrēmtos 사람이 되어, 부자를 칭송하고 경탄하여 관직에 앉히지만 가난한 자는 멸시하네.’ : 아리스토텔레스는 통치자들이 돈을 버는 것을 법률로 금지하고 있는 일부 예외적인 과두정을 근거로 과두정에 대한 이곳 플라톤의 견해가 온당치 않다고 비판하고 있지만(정치학 1316b, 1), 플라톤이 염두에 둔 것은 아마도 기원전 4세기 스파르타 과두정이었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스파르타 과두정 치하에서는 재산이 소수의 손에 놓여있었음을 인정하고 있다.(<정치학> 1307a, 35) 실제로 스파르타에서는 부담금을 낼 수 없는 사람들은 공동식사제도syssitia에 참여할 수 없었으며(<정치학> 1271a 34) 그로 인해 하급시민hypomeiones의 수가 늘어났다.

* 551b ‘과두정의 성격이 더 강한 곳에서는 더 많은 양을, 더 약한 곳에서는 더 적은 양을 지정해서’ : 플라톤적 의미의 온건 과두정에 해당하는 후자의 예로 보통 솔론의 경우를 꼽는다.

* 551b ‘이를 무력으로 관철하거나, 그보다 앞서 겁을 주어 이와 같은 정치체제를 수립하네.’ : 411년 민주정에 대한 혁명과 404년 30인 과두정 치하에서는 물론 펠로폰네소스 전쟁 기간 내내 그리스 전역에서 이 같은 폭력적인 일들이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 551c ‘배의 키잡이’kybernētēs : <국가> 488b-e, <정치가> 299b-c, <에우튀데모스> 291d 참고.

* 551d ‘그와 같은 나라는 하나가 아니라 둘dyo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네.’ : 플라톤에게 빈부의 격차는 공동체의 해체를 초래하는 가장 큰 원인으로 나라가 극복하고 감시할 가장 우선적인 과제로 여겨졌다. <국가> 422a-423b 참고

* 551d ‘대중to plētos을 무장시켜 동원하자니 적들보다 오히려 대중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고, 또 대중을 동원하지 않자니 : <투퀴디데스> VII 19. 3, IV 80 참고).

* 551e ‘우리가 전에 비난했던 것’ : 직분과 소질에 맞는 한 가지 일이 아니라 여러 일에 개입하고 참견하는 것. 374b, 434a, 443d-e 참고

* 552b ‘그들은 부자일 때도 재산을 탕진한 자에 불과했듯이’ : 과두정과 과두정적인 인간은 돈에 집착하여 돈에 인색하지만 재화의 독점 독식이 허용되고 있어 돈에 눈이 먼 그 만큼 경쟁에 뛰어들었다가 결국 재산을 탕진하고 빚까지 지는 일이 부지기수로 일어난다. 이렇게 해서 부는 소수에게 편중되고 가난하고 빈털터리가 된 사람들은 수벌 같은 자들이 된다.

* 552b ‘봉방 안에 수벌kēphēn이 생겨나 벌집의 우환νόσημα이 되듯’ : 수벌은 일벌과 달리 원래 독침도 없고 꿀도 꽃가루도 모으지 않고 오로지 여왕벌과 교미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래서 수벌은 이곳에서 게으르고 방만한 자로 비유된다. 그러나 이들 중 일부는 마치 수벌이 독침을 가진 것처럼 해악한 존재가 된다.

* 553b ‘장군으로 있거나…모함을 받아 법정으로 소환되어 사형에 처해지거나‘ : 기원전 406년 아르기누사이 해전 후 8명의 참전 장군들은 생존자 구출과 시신 수습의 실패 건으로 대중들의 분노를 사 재판에 넘겨져 2명은 추방되고 나머지 6명은 모두 사형에 처해졌다. 이때 소크라테스를 비롯한 극히 일부 시민들만이 사형에 반대했을 뿐이다. 처형 후 전후 사정을 알게 된 시민들은 처형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게 되었지만, 결과적으로 해군 지휘부 전체를 스스로 제거한 꼴이 되어 1년 후 아테네 멸망을 재촉한 아이고스포타모스 해전의 패배를 자초하고 만다. 대중들의 변덕스러움과 집단심리에 대한 플라톤의 우려가 이곳에서도 일정 부분 표명되어 있다.

* 553d ‘이성부분과 기개부분은 저 욕구부분 아래 이쪽과 저쪽 바닥에 앉혀 노예로 삼으리라고 생각하네.’ : 나라와 개인의 해체 과정에서도 나라를 구성하는 3계층, 영혼을 구성하는 세 부분은 본래의 기능을 상실한 상태로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해체는 그 계층과 부분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각각이 지니는 본래 기능의 상실이나 변질에 따라 그것들 간의 관계 내지 경계가 달라지면서 초래된다.

* 554a ‘열심히 일하는 사람’ergatēs : 단순히 일에 열심히 하는 사람이 아니라 일에만 얽매여 사는 사람을 뜻한다.

* 554a ‘필수적인 욕구’ho anangkaios epithymia : 점차 드러나겠지만 플라톤은 영혼의 욕구 부분을 필수적인 욕구, 불필요한 욕구, 불법적인 욕구로 세분화하여 각각 과두정적 인간, 민주정적 인간, 참주정적 인간에 대응시킨다. 욕구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필수적인 욕구를 넘어 불필요한 욕구, 불법적인 욕구로까지 확장 변질되는 것이 나쁜 것이다.

* 554c ‘고아의 후견인’epitropeusis : 아테네에는 미성년 유자녀의 경우, 후견인을 지정하여 상속재산의 관리와 양육 등의 책임을 지게 하는 제도가 있었다. 특히 고아의 후견인은 유언과 상속의 집행, 상속재산 관리 처분 관련하여 전적인 권한을 갖고 있어 부정의한 짓을 마음껏 저지를 수 있는 여지가 아주 컸다. <법률> 766c, 877c, 909c-d, 926b-928d 참고.

* 554d ‘자기 안에 내분 없는astasiastos 사람이 못될 것이네.’ : 440b, e, <파이드로스> 237d-e,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1099a 12 이하 참고.

* 554d-e ‘이중의diploos 인간’ : 과두정을 닮은 개인도 정의롭게 보여 좋은 평판을 얻는 것을 욕구한다. 그래서 때론 나쁜 욕구를 힘으로 억누르기도 한다. 대개는 더 나은beltiōn 욕망이 더 못한 욕망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위선은 이중의 인간이 갖는 일상의 한 단면이다. 그러나 그 억제가 자발적인 설득이 아닌 마지못한 강제에 의한 것이어서 과두정적 인간은 결국 그것을 참아내지 못하고 마치 침 달린 수벌같이 자신의 나쁜 욕망을 드러내고 만다. 특히 부정의한 짓을 제멋대로 저지를 수 있는 자유(554c)가 주어질 경우 더욱 그러하다. 위선을 부릴 하등의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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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체제와 개인은 각각 세 계층, 세 영혼의 부분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정치체제와 개인의 타락 과정은 그것들을 구성하는 세 계층 또는 세 영혼의 부분들이 갖고 있었던 관계의 변화를 통해 나타나고 그러한 관계의 변화는 각 계층 간 욕망구조의 변화 또는 영혼의 각 부분 간 욕구의 변화로 구체화된다. 명예정이 타락하여 과두정에 이르기 직전 상태의 정치체제의 경우, 통치계층과 전사 계층은 이성적 통치 및 수호 기능을 상실하여 권력을 그들의 사적 소유욕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고, 그것을 닮은 개인 또한 영혼의 이성 부분이 욕구 부분에 지배되어 이성은 물질적 욕구의 확대 장치로 도구화되어 있다. 나라건 개인이건 직분에 따라 다양했던 본래의 욕망 구조가 물질적 욕망구조로 획일화된 것이다. 그러나 아직 까지는 명예정의 잔재가 남아 있어 물질적 사적 소유욕이 채 노골화되지 않은 상태여서 생산자 계층과 영혼의 욕구 부분은 아직 통치계층의 착취와 이성의 계산적 침탈을 제대로 깨닫지 못한 채 일정 부분 자기 직분과 욕구를 유지하고 있다.

* 그러나 통치계층과 전사 계층의 사적 소유욕이 서로 간의 경쟁을 통해 나날이 증대되고 노골화되면서 그들 모두 겉만 수호자들일 뿐 실제로는 자신들의 권력을 오로지 돈을 버는데 사용하는 돈벌이 꾼들임이 드러난다. 이러자 생산자 계층은 그동안 자신들이 착취당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면서 그들 또한 본래의 물질적 욕구 외에 통치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다. 이로써 각 계층이 고유하게 갖고 있었던 분업적 욕망구조가 무너지고 모든 사람이 계층과 무관하게 전쟁도 하고 생산도 하고 관직에도 관심을 갖게 된다. 그 모두 돈을 벌기 위해서이다. 형식적으로 이들은 이제 전과 달리 무엇이든 될 수 있고 할 수 있는 멀티형 인간이 되었지만, 실질적으로 그들 모두는 하나같이 돈의 노예가 되어 있다. 본래 다층적이었던 욕망 구조가 물질적인 욕구로 획일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생산자 계층에만 허용되었던 사적 소유 또한 계층과 상관없이 모두에게 전일화되기에 이른 것이다. 이것이 명예정 다음의 타락한 정치체제로서 과두정이다. 명예정이 통치계층에서 물질적 욕구가 발단하고 확산하는 발판이었다면 그것이 폭발적으로 증대되어 계층과 무관하게 욕망구조에서 마침내 전면적인 획일화 내지 등질화가 달성된 정치체제가 곧 과두정인 것이다.

* 사실 이러한 정치체제는 내용적으로 금권정임이 분명함에도 과두정으로 불리고 있는 것은 앞서도 말했듯이 플라톤 자신이 다분히 기원전 4세기 스파르타의 과두정의 실제 전개 과정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반적인 관점에서 모두가 하나같이 돈에 대한 욕망에 사로잡혀 있으나 재화는 한정된 경우, 금권정의 과두정화는 필연에 가까운 일이다. 어느 시대, 어떤 정치체제를 막론하고 부와 권력은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착취와 무차별적 독점욕을 통해 약육강식의 논리에 따라 배타적 일극화로 내달리기 때문이다. 금전만능주의 과두정 치하에서는 글라우콘의 말 그대로 소수 통치자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두가 거지이다.(552d) 플라톤이 과두정의 나라를 두 개의 나라로 부르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머릿수 비율은 99대 1임에도 부의 99%를 1%가 차지하고 있는 어처구니없는 모멸의 현실이 정치적 의사결정을 머릿수로 결정하는 사회에서도 시장주의와 능력주의 신화에 가려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음은 실로 현대 형식 민주주의가 봉착해 있는 자가당착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오늘날 이른바 AI로 표징되는 4차 산업혁명시대가 가난한 나라로서는 엄두조차 낼 수 없을 정도의 고도의 자본 축적과 투자의 집약적 지속을 전제로 하고 있음을 고려하면, 현존하는 국가 간 계층 간 양극화는 고착화를 넘어 이전의 제국주의의 폐해와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식민 노예화 단계에까지 이르게 될지도 모른다. 물론 이곳에서 플라톤이 언급하고 있는 과두정 체제와 현대 사회를 단순 비교할 수는 없을지라도, 부와 권력의 편중이 초래할 심대한 위험과 폐해와 관련해서 이곳 과두정을 통해 플라톤이 피력하고 있는 경고의 의미는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을 것이다. 특히 과두정이 초래한 욕망구조의 등질적 획일화와 관련한 플라톤의 통찰은 근대 자유주의 철학적 담론들이 전제하는 인간의 이기적 본성이 불변의 진실일 수 없으며 사회관계의 변화에 따라 언제든 철학적으로 새롭게 재정립될 수 있는 것임을 새삼 일깨워 준다. 플라톤의 이상국가론은 인간본성과 관련한 그러한 문제들을 정치철학적 탐문을 통해 비판적으로 되묻고 있다는 점에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 다만 이곳의 과두정이 금전만능의 현대사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곳의 과두정은 오늘날 경제적 강국들이 엄청난 자본을 들여 군사력 증강에 힘쓰고 있는 것과 달리 오로지 사적 소유에만 집착할 뿐 나라를 군사적으로 수호하기 위한 공적 지출에는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551e) 그래서 과두정은 전쟁을 치를 능력이 없다. 대중을 무장시켜 동원하자니 적보다 대중이 더 두렵고 그렇게 안 하자니 자기들 소수만으로 전쟁을 치르기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551d) 이런 점에서 과두정은 국가 수호에선 무능하기 그지없는 정치체제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아직 최악의 정치체계는 아니다. 최소한 폭력적 군사주의와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플라톤이 제시하는 타락의 최후 단계로서 참주정에 이르면 마치 20세기 폭압적 정치체제들과 오늘날 패권적 강대국들의 만행을 미리 알고 있기라도 하듯 금전만능주의와 폭력적 군사주의, 정치적 독재의 결합이 얼마나 재앙에 가까운 최악의 정치체제를 낳는지가 적나라하게 묘사되고 있다.

* 플라톤이 과두정이 갖는 결함으로서 또 하나 심각하게 제기하고 있는 것은 과두정이 최소한의 생존 조건까지 무시할 정도의 독점을 무한정 허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요컨대 과두정은 ‘누군가가 자신의 것 전부를 파는 것과 또 그걸 다른 사람이 취득하는 것’을 허용한다.(552a)기록에 따르면 뤼쿠르고스의 헌법은 ‘원래 할당된 몫’archaia moira의 침탈을 철저히 금지하고 있었다. 4세기 스파르타 과두정에 이르러 이것은 크게 훼손되었지만 실제로 많은 그리스 국가들의 경우 ‘할당분’klēros을 처분하는 것은 불법이거나 적어도 불명예스러운 일이었다. 플라톤 역시 <법률>에서 가난함의 한계 즉 가난함의 임계점 이상의 재산이 시민 모두에게 보장되어야 하며 관리들은 그 할당분이 감소되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나아가 부의 축적의 경우도 그 기본 할당분의 4배까지는 허용되지만, 그 이상의 부의 획득이나 소유가 발생하는 경우 반드시 신들과 나라에 그 초과분을 바쳐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법률> 744d-745a) 이처럼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기초적인 삶의 품격을 보전하기 위한 기본 소득과 복지의 개념은 일찍이 고대 그리스 국가에서부터 제도로서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그것에 더해 플라톤은 빈부의 양극화를 막기 위해 비정상적 수준의 초과 수익 또한 중과세의 형식으로 제한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일시적 성공보수라면 모를까 최소한 정기 급여에서 개인 간 실재하는 대기업 임원과 일반 노동자들 간의 터무니없을 정도의 임금 격차는 플라톤의 관점에서 보면 그 자체로 인간의 사물화, 인간의 소외를 노골화한 것이 아닐 수 없다.

* 수벌은 <국가> 여러 곳에서 등장하는데(552c, 554b, 555d-556a, 559c-d) 이곳에서는 갖고 있던 재산을 모두 팔아버린 후 하릴없이 이곳저곳을 떠돌다가 온갖 나쁜 짓을 저질러 결국 과두정의 몰락을 앞당기는 자들로 비유되고 있다. 그러나 수벌 같은 자들의 해악은 과두정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들 중 일부는 나중 민주정 치하에서 자신 같은 부류들과 민중을 선동하는 선도자prostatēs가 되어 민주정마저 파괴하고 마침내 폭압적 참주정의 최고 통치자로 군림한다.(559c-d, 564b-566d) 과두정은 재산의 독점적 취득은 물론 전 재산의 처분까지도 무차별 허용함으로써 이러한 해악이 되는 수벌들의 출현과 양산의 기본 바탕이 된다는 점에서 이미 그 자체로 잠재적 위험을 안고 있는 정치체제이다. 그러함에도 수벌 같은 삶을 무작정 탓할 수도 없는 일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최소한의 삶의 여건이 충족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도둑질이나 체제 전복 말고 무슨 살길이 남아 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수벌 같은 삶의 잘못을 능력주의와 시장주의적 관점에서 그저 개인의 능력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오히려 사회적 위기를 증폭시키는 일이다. 플라톤 말대로 그것은 개인의 잘못 이전에 잘못된 정치체제와 그 체제가 갖는 교육 및 양육 체계에서 비롯된 것이다.(552e, 423e) 빈부의 양극화가 빚어내는 가난의 고착화는 하나의 나라를 파멸과 분열로 이끄는 최대 원인이다.(422a, 422e-423d) 수벌과 관련한 곳으로 그 밖에 참고할 곳은 헤시오도스 <일과 나날> 303 이하, 아리스토파네스 희곡 <말벌> 1071 이하, 에우리피데스 <탄원하는 여인들> 242, 크세노폰 <경제론> 17. 15, 베르길리우스 <게오르기카> iv. 168 등이 있다.

* 플라톤은 과두정의 나라를 다룬 다음 이제 과두정을 닮은 사람을 논하기 시작한다. 이곳에서 과두정을 닮은 사람은 장군이나 고위관직에 있던 아버지가 모함을 받아 사형을 당하거나 추방당하는 일을 겪은 아들로 비유된다. 졸지에 이런 일을 당하고 재산까지 잃고 나면 누구든 겁도 나고 가난으로 위축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 아들은 돈벌이만이 살길이라 생각하고 자신의 욕구부분을 왕좌로 올리고 이성부분과 기개부분을 노예로 삼는다. 이성부분의 지배를 받던 본래의 욕망구조가 기개부분의 지배로 바뀌었다가 이제 욕망부분의 지배로 타락하면서 본래의 지배 관계가 완전히 역전된 것이다. 이성이 결여한 기개는 타락에도 무모할 정도로 용감하다. 분별을 잃은 군인들의 명예욕이 맹목적인 그 만큼 돈에 대한 사랑으로 변하는 것은 한 순간의 일이다. 그리고 과두정을 닮은 사람은 겁도 많고 다시 가난하게 되는 것도 두려워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필수적인 욕구들만 채울 뿐 다른 소비는 허용하지 않고 돈이 생기면 모두 개인금고에 보관한다. 이 점 때문에 이 사람은 다른 사람들보다 절제 있고 번듯한 사람으로 보이지만 이성이 돈에 대한 욕구의 도구로 전락하여 참된 덕은 영혼에서 이미 멀찌감치 달아난 상태이다.(554e) 게다가 이들은 승리나 아름다운 것을 바라긴 하나 그것에 돈을 쓸 생각은 전혀 없어 실제로는 그와 관련한 경쟁에 아무런 적수가 되지 못한다.

* 그리고 플라톤은 과두정적 사람들의 이중적 욕구 속에 숨어 있는 위선과 권력욕을 간과하지 않는다. 이들은 겉으로는 물질적 욕구에만 기대어 부자로만 살기를 바라는 듯 보이지만 그것은 다만 평판을 의식하여 강제로 나쁜 욕구를 참고 있는 것일 뿐 재산 증대의 수단으로서 권력에 대한 욕망을 나날이 키워가고 있다. 과두정 치하에서는 부를 지니는 한, 계층에 상관없이 언제든 관직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과두정적인 사람의 욕구가 기개는 물론 통치의 욕구로까지 확장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그것들의 내적 관계가 물질적 욕구의 주도로 부와 권력을 목표로 재편되어 있을 뿐이다. 과두정에서 매관매직과 부패가 일상화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앞서 말했듯이 과두정적인 사람들은 자신들의 과두정은 물론 나중 민주정마저 파괴하고 참주정을 세워 참주로까지 등극하는 그야말로 잠재적 위험을 안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아직 과두정적인 사람의 단계에서 이러한 위험까지는 아직 본격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은 상태에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서 덕으로서 이성부분의 본래의 기능은 이미 도구적 이성으로 전락하여 날이 갈수록 빈약해가고 있고 대신 그에 반비례하여 물질적 욕구 부분은 날이 갈수록 강력함을 더해가고 있다.

* 이렇듯 과두정 치하에서는 속칭 대중들이 말하는 부자들의 경우 훌륭함을 겸비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들에게 덕aretē과 부ploutos는 상반된 것이다.(550e) 왜냐하면 부정의한 방법에 의한 수입은 정의로운 방법에 의한 경우보다 두 배 이상 크고 아름다운 일을 위한 지출은 반대로 두 배 이상 적기 때문이다. 그러한 한 그들은 결코 행복할 수 없다.(<법률> 742e-743c) 그러나 플라톤은 이상국가의 현실적 대안을 논하는 <법률>에서 조차 그렇게 불가능에 가까운 ‘훌륭한 부자들’, 즉 덕을 갖춘 부자들의 존재를 나라를 개혁하기 위한 근본적인 조건의 하나로서 여전히 붙들고 있다. 절절한 기원의 형식으로 서술되고 있는 훌륭한 부자들에 대한 아래와 같은 플라톤의 기대는 덕치와 분배에 기초한 정의로운 사회 공동체를 꿈꾸는 그의 이상이 <법률>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남아 있는 유일한 방법은 말하자면 기원하는 일이며, 오랜 기간에 걸쳐 조금씩 진행되는 조심스러운 작은 변화입니다. 이런 변화는 다음과 같은 조건에서 일어납니다. 풍부한 땅과 자신들에게 빚진 많은 사람을 보유하고 있는 어떤 개혁가들이 계속해서 있어야 하며, 이들은 공평성에 준거하여 자신들의 재산을 가난한 자들과 어떻게든 공유하고자 해야 합니다. 어떤 건 탕감해주고 어떤 건 분배해 줌으로써, 그리고 어떻게든 적도를 견지하고, 재산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탐욕이 늘어나는 것이 가난이라고 여김으로써 말입니다. 실제로 이것이 나라 보존의 가장 큰 근원이자 든든한 토대입니다.”(<법률> 736d-e)

* 이제 과두정은 민주정으로 변화한다. 과두정의 이중성에 가려진 탐욕은 제멋대로의 자유를 만나며 본색을 드러낸다. 제8권에서 나라와 사람의 타락 과정이 이어지면서 플라톤의 이상국가의 꿈은 점점 더 요원해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또한 정의가 행복임을 드러내기 위한 의도된 장치들이다. 나라가 참주정에 이르기까지 타락의 심도를 더해가면 갈수록 플라톤의 이상 국가를 향한 의지 또한 치열함을 더해간다.

* 과두정의 나라와 과두정적인 사람은 서로 닮아있기는 하지만 과두정의 사례들 하나하나에 대응시켜 유사성을 논할 필요는 없다. 이를테면 과두정적 개인에서 과두정 정치체제의 소수와 나머지 대다수에 대응하는 것은 따로 없다. 물론 통치계층은 소수이지만 그것은 철인왕정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유사성은 앞서도 강조했듯이 나라와 개인이 구성하는 계층들과 영혼 부분들이 서로 관계 맺는 방식과 관련한 유사성이다. 이를테면 과두정 치하 부자와 빈자의 관계는 과두정적 개인에서 막강해진 욕구부분과 빈약한 이성부분의 관계에 상응함과 동시에 이성부분, 기개부분, 욕구부분의 관계가 이성 또는 기개의 지배에서 오로지 물질적 금전적 지배 관계로 역전 재편되었음을 보여준다. 과두정적 인간의 이중성 또한 과두정 체제의 계층 간 갈등적 내분 관계에 상응하는 것이다. 욕망구조에서는 명예정의 경우 물질적 욕구의 지배가 은폐된 상태에서 제한적인 수준이었다면 과두정에 와서는 말 그대로 계층과 영혼 전체에 걸쳐 노골화되면서 욕구의 등질화와 획일화가 전면적으로 관철되어 있다. 그만큼 그들은 부와 권력에 두루 관심이 있다. 그럼에도 지배관계에서만은 철학자왕정에서 명예정, 과두정에 이르기까지 철학자이건 군인이건 부자이건 하나같이 권력은 소수가 차지하고 있다. 소수가 지배하는 이러한 권력관계는 이제 민주정에 가서 형식적이나마 다수 민중의 지배로 재편된다. 물론 욕구는 과두정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돈에 대한 욕구로 등질화되어 있지만, 민주정에 이르면 ‘제멋대로의 자유’exousia와 ‘불필요한 욕구’가 그것에 더해진다.

 

다음 주제 : VI 본론 3 : 부정의와 현실 비판 – 현실 국가 분석(제8권-제9권) 

A. 부정의한 나라들과 부정의한 개인들.

3. 민주정과 민주정적인 인간, 필요한 욕구와 불필요한 욕구(555b-562b)

 

 

한국철학사상연구회 2025년 가을 제69회 정기학술대회 ‘한국철학의 근현대, 그 전환의 장면들’ [2025 ‘한국철학자연합대회’] 20251025 영상 [월례발표회·세미나]

제69회 정기 학술대회는 2025 [한국철학자연합대회](주제: 기술의 도전, 철학의 응전) 한철연 세션에 한국현대철학분과 발표로 진행하였습니다.

ㅇ주제 : 한국철학의 근현대, 그 전환의 장면들
ㅇ일시 : 2025년 10월 25일(토) 14:30~18:00
ㅇ장소 : 전북대학교 인문대 1호관 213호
ㅇ주관 : 전북대학교 철학과, 범한철학회, (사)한국철학회
ㅇ주최 : (사)한국철학사상연구회

전체 사회 : 이관형(강서대학교)
▷ 개회사 14:30 회장:전호근(경희대학교)

[제1부 전통과 근대를 가로지르는 사유]
*제1발표 14:40~15:15(발표25분,토론10분)
19세기 근대 민중운동에서 ‘민중’의식과 정체성의 변화
발표:진보성(한국방송통신대학교)|토론:김정철(한국국학진흥원)
*제2발표 15:15~15:50
한국철학에서의 ‘근대’ 계승: 1900년대 초 손병희의 동학 계승
발표:박영미(한양대학교)|토론:이병태(한국철학사상연구회)
*제3발표 15:50~16:25
1920년대 『개벽』의 전통사유
발표:윤태양(건국대학교)|토론:배기호(중원대학교)

[제2부 식민과 분단을 넘어서는 철학]
*제4발표 16:30~17:05
조소앙「素昻氣說」의 한국철학적 연원과 독창성 고찰
발표:한송희(성균관대학교)|토론:오주연(건국대학교)
*제5발표 17:05~17:40
북으로 간 철학자들-1950년대 북한 철학연구의 한 장면
발표:박민철(건국대학교)|토론:유현상(한국철학사상연구회)

*종합토론 및 질의 17:40~18:00|좌장:이관형(강서대학교)


개회사 (회장: 전호근)

제1발표 [19세기 근대 민중운동에서 ‘민중’의식과 정체성의 변화]

제2발표 [한국철학에서의 ‘근대’ 계승: 1900년대 초 손병희의 동학 계승]

제3발표 [1920년대 『개벽』의 전통사유]

제4발표 [조소앙「素昻氣說」의 한국철학적 연원과 독창성 고찰]

제5발표 [북으로 간 철학자들-1950년대 북한 철학연구의 한 장면]

종합토론 및 질의|좌장:이관형(강서대학교)


 

한국철학사상연구회 2025년 봄 제68회 정기학술대회 ‘전환의 상상력: 새로운 시대를 위한 철학적 구상’ 20250628 영상 [월례발표회·세미나]

한국철학사상연구회 2025년 봄 제68회 정기학술대회 ‘전환의 상상력: 새로운 시대를 위한 철학적 구상’ 20250628 영상

  • 일시 : 2025년 6월 28일(토) 12시~
  • 장소 : 경희대 청운관 207호

※ 1부 – 1발표와 2부 – 4발표는 영상이 누락되었습니다.

[1부] 사회 : 김은주(서울시립대)
1-발표) 12·3 내란 이후 정치와 언론의 공공성 문제에 대한 단상|발표자 : 이진욱(건국대) 토론자 : 강지은(건국대)
2-발표) 막스 슈티르너의 부활|발표자 : 박종성(건국대) 토론자 : 이병태(경희대)

[2부] 사회 : 박지용(경희대)
3-발표) 쓸모의 몫과 몫의 쓸모|발표자 : 문성원(부산대) 토론자 : 이현재(서울시립대)
4-발표) 극우의 파괴력과 민주공화국의 가치들|발표자 : 연효숙(연세대) 토론자 : 이정은(연세대)
5-발표) 탈노동사회의 도래|발표자 : 이성백(서울시립대) 토론자 : 한상원(충북대)

[3부] 종합토론 – 사회 : 박민철(건국대)


1부 – 2발표 [막스 슈티르너의 부활]

2부 – 3발표 [쓸모의 몫과 몫의 쓸모]

2부 – 5발표 [탈노동사회의 도래]

종합토론


 

이병창 선생님『정신현상학 번역과 주해』출판 기념회 2부 2025.12.26. 영상 [월례발표회·세미나]

이병창 선생님『정신현상학 번역과 주해』(1·2권) 출판 기념회

 

-일시: 2025년 12월 26일 금요일 오후 3시

-장소: 한양대학교 HIT 6층 이십사절기 한양대점

-주관: (사)한국철학사상연구회

 

한철연 이병창 회원(동아대 명예교수)이 헤겔의『정신현상학』을 번역하고 주해를 단 50여 년 헤겔 연구의 결정체를 책으로 출간한 것을 기념하여 저자의 변을 듣고 대담자들을 초빙하여 심도 있는 토론을 나누었다. 한철연 회원 30여 명과 전공자, 학부/대학원생 포함 총 90여 명의 청중이 참석했다.

 

관련기사: [“괴물 같은 정신현상학과 싸우느라 50년이 흘렀다” 신간 이병창의 《정신현상학-번역과 주해》출판 기념회 참석기] https://omn.kr/2gil1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194315)

식순

♦제1부 – 사회: 박지용(한국철학사상연구회)

2:30~3:00 등록

3:00~3:05 개회 선언 및 내빈 소개

3:05~3:20 개회사 및 축사

3:20~3:30 저자 소개 및 출판 경과보고

3:30~3:50 저자 인사말 및 출간 소감

3:50~4:00 꽃다발 증정 및 케이크 커팅식

4:00~4:10 기념촬영

4:10~4:30 휴식

♦제2부 저자와의 대담

좌장: 박정하(한국철학사상연구회 / 한국철학회 회장)

4:30~4:35 대담자 및 진행방법 소개 (대담자: 연효숙, 이정은, 이종철, 최일규)

5:35~6:00 청중과의 질의응답

♦제3부 기념 만찬

6:00~7:30

유튜브 링크 : https://youtu.be/o-JVgtuI3Hk?si=FjFc9Rgk1UMXGam-


이병창 선생님『정신현상학 번역과 주해』출판 기념회 1부 2025.12.26. 영상 [월례발표회·세미나]

이병창 선생님『정신현상학 번역과 주해』(1·2권) 출판 기념회

 

-일시: 2025년 12월 26일 금요일 오후 3시

-장소: 한양대학교 HIT 6층 이십사절기 한양대점

-주관: (사)한국철학사상연구회

 

한철연 이병창 회원(동아대 명예교수)이 헤겔의『정신현상학』을 번역하고 주해를 단 50여 년 헤겔 연구의 결정체를 책으로 출간한 것을 기념하여 저자의 변을 듣고 대담자들을 초빙하여 심도 있는 토론을 나누었다. 한철연 회원 30여 명과 전공자, 학부/대학원생 포함 총 90여 명의 청중이 참석했다.

 

관련기사: [“괴물 같은 정신현상학과 싸우느라 50년이 흘렀다” 신간 이병창의 《정신현상학-번역과 주해》출판 기념회 참석기] https://omn.kr/2gil1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194315)

식순

♦제1부 – 사회: 박지용(한국철학사상연구회)

2:30~3:00 등록

3:00~3:05 개회 선언 및 내빈 소개

3:05~3:20 개회사 및 축사

3:20~3:30 저자 소개 및 출판 경과보고

3:30~3:50 저자 인사말 및 출간 소감

3:50~4:00 꽃다발 증정 및 케이크 커팅식

4:00~4:10 기념촬영

4:10~4:30 휴식

♦제2부 저자와의 대담

좌장: 박정하(한국철학사상연구회 / 한국철학회 회장)

4:30~4:35 대담자 및 진행방법 소개 (대담자: 연효숙, 이정은, 이종철, 최일규)

5:35~6:00 청중과의 질의응답

♦제3부 기념 만찬

6:00~7:30

유튜브 링크 : https://youtu.be/tuA54HCdn-E?si=YPCDNCOhDjDOhXcc


플라톤의 <국가> 강해(79) [이정호 교수와 함께하는 플라톤의 『국가』]

플라톤의 <국가> 강해(79)

 

VI 본론 3 : 부정의와 현실 비판 – 현실 국가 분석(제8권-제9권) 

A. 부정의한 나라들과 부정의한 개인들.

2. 최우수자 통치로부터 명예정으로 체제 변동 : 명예정과 명예정적인 인간(545c-550c)

 

[545c-548d]

* 소크라테스는 최선자정ἀριστοκρατία에서 명예정τιμοκρατία으로의 변화μεταβάλλει는 다스리는 자리에 있는 자들τὰς ἀρχάς 안에서 내분στάσις이 일어날 때 생긴다고 말한다. 그런 다음 소크라테스는 보조자들οἱ ἐπίκουροι과 통치자들οἱ ἄρχοντες이 어떻게 내분에 휩싸이게 되었는지를 호메로스가 그랬듯이, 무사 여신의 입을 빌려 아래와 같이 말한다.

* “최초 구성된 나라는 변하기가 어렵지만 생성된 모든 것들은 사멸φθορά하기 마련이어서 모든 시간 동안 머물러 있지 못하고 해체된다. 생명을 갖는 것들에는 각기 순환περιφορά주기가 있어서 영혼과 몸이 결실 또는 불모의 상태가 될 때가 있다. 그래서 나라의 지도자가 감각αἴσθησις을 수반한 계산λογισμός에서 출산의 적기와 불모의 시기를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경우 아이가 태어나선 안 되는 때에 아이들이 태어난다. 해체λύσις는 그렇게 해서 시작된다. … 순환 주기와 관련한 수들에 관한 이야기(생략) … 이와 같은 기하학적 수 전체가 우수한 출생과 열등한 출생을 좌우하는데 그대들의 수호자들이 이에 대해 무지해서 적절하지 않은 때에 신부와 신랑을 맺어 줌에 따라 수호자 자격이 없는 자들이 태어난다. 이후 그들이 아버지의 권력을 이어받게 되면 이들은 수호자로서 시가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신체 단련도 소홀히 한다.(546d) 이들 가운데에서 통치자들이 선발되고 그들은 헤시오도스의 종족은 물론 인간들 중 금족γένη χρυσοῦν, 은족γένη ἀργυροῦν, 청동족γένη χαλκοῦν, 철족γένη σιδηροῦν을 제대로 가려내지 못해(546e-547a) 결국 철과 은, 청동과 금이 섞임으로써 조화가 깨지고ἀνάρμοστος 불일치ἀνομοιότης와 변칙ἀνωμαλία이 발생한다. 이렇게 해서 전쟁πόλεμος과 적대ἔχθρα가 생겨나고 내분이 초래된다. 내분이 발생하면 저 종족γένος들은 둘씩 짝지어 철과 청동의 종족은 돈벌이와 땅, 집, 금은을 소유κτῆσις하는 쪽으로 나라를 끌어당기고εἱλκέτην, 금과 은의 종족은 영혼이 아직 부유하기에 덕ἀρετῆ과 원래의 체제κατάστασις 쪽으로 끌어당긴다. 이들은 이렇게 서로 격렬하게 맞서 싸우다 결국 그 중간에서 합의를 하여 땅과 집은 분배하여 사유화ἰδιώσασθαι하고 전에는 자유인 친구이자 부양인τροφεύς으로서 이들에게 수호φυλακή를 받았던 자들을 노예로 만들어 외거περίοικος노비나 가내노비οἰκέτης로 삼아 저들을 지키는 일과 전쟁을 도맡게 한다.”(545c-547b)

* 위와 같이 소크라테스는 이상국가 해체의 발단과 관련한 무사 여신의 이야기를 소개한 다음 그렇게 해서 등장하게 된 체제에 관해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먼저 이 정치체제 πολιτεία는 최선자정과 과두정 ὀλιγαρχία의 중간에ἐν μέσῳ 있는 정치체제이다. 이런 까닭에 일부는 앞선 정치체제를, 일부는 과두정을 모방하면서 명예정 자체의 고유한 특성을 드러낸다.(547c) 통치자들을 존중하고 전사 집단τὸ προπολεμοῦν을 농사γεωργία나 수공예χειροτεχνία 그 밖의 다른 돈벌이χρηματισμός들로부터 떼어놓는 일 그리고 공동식사συσσιτία를 하며 신체 단련과 전투 훈련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 등은 앞선 정치체제를 모방한 것이다.(547d) 그러나 이 체제의 통치자들은 더 이상 단순하고ἁπλόος 강직한ἀτενής 자들이 아니라 섞인μικτός 자들이어서, 지혜로운 자들을 통치자로 선임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본성상 평화εἰρήνη보다는 전쟁에 관심을 두는 사람들을 선호하며.(547e) 전쟁에 관한 계략과 전술들을 중히 여기고 온 시간을 전쟁을 수행하는데 보낸다. 이것이 이 체제의 고유한 특성이다.

* 그리고 한편 이 사람들은 과두정 하의 사람들처럼, 재물χρήματα에도 욕심이 있어서 어둠 속에서 금과 은을 모아 그것들을 숨겨 놓을 보관소ταμιεῖον와 집안 금고θησαυρός를 만들어 사적인 둥지νεοσσιά로 삼는다(548a) 그리고 그 안에서 여인들은 아무렇게 아무 곳에든 재물을 써대며 낭비한다.δαπανῷντο. 그러나 그들은 재물을 드러내놓고φανερῶς 모으지는 못하기 때문에 재물에 인색하지만, 욕망은 있어서 남의 것 쓰기를 좋아하고 마치 아버지를 피해 달아나는 아들처럼 법을 피해가며 은밀히 쾌락ἡδονή을 누리고 논변λόγος과 철학을 멀리하며(548b) 시가μουσική보다 신체단련γυμναστική을 훨씬 소중히 여긴다. 설득πειθός이 아닌 강압βία에 의한 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이다.(548c)

* 소크라테스는 명예정이 나쁜κακός 것과 좋은ἀγαθός 것이 섞여 있는 정치체제라는 글라우콘의 말에 동의하면서도 그 체제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을 기개θυμοειδής부분의 지배에 따른 승리와 명예에 대한 사랑φιλονικία καὶ φιλοτιμία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타락한 정치체제들에 대한 이곳의 논의가 그 체제의 형태들과 성품ἦθος을 남김없이 하나하나 정확하게 그려내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가장 정의로운 사람과 가장 부정의한 사람을 알아보기 위한 밑그림ὑπογραφή을 그리는 데 있음을 다시 한번 재확인한다.(548c-d)

 

[548d-550c]

* 그런 연후 소크라테스는 이제 이러한 정치체제에 상응하는 사람에 대해서 언급한다. 이때 아데이만토스는 승리에 대한 사랑에 관한 한, 글라우콘이 그에 가까운 사람이라고 말한다.(548d)이에 소크라테스는 승리에 대한 사랑에 관한 한은 그럴지 모르지만 명예정적인 사람의 특징에는 그 밖에 다른 점이 많이 있다고 말한다. 우선 명예정적인 사람은 고집이 상당히 센αὐθαδέστερον 사람이고 시가를 사랑하나 시가에 뒤처져 있으며 듣기를 좋아하긴φιλήκους 하지만 결코 연설가ῥητορικός는 아니라고 말한다.(548e) 그리고 이어서 그들은 노예δοῦλος를 그저 무시하는 정도가 아니라 험하게ἄγριος 다루는 반면 자유인ἐλεύθερος들에게는 온순하고 통치자들에게 극히 순종적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그들이 다스리기를 좋아하고φίλαρχος 명예를 사랑하지만, 전쟁과 관련해서만 그럴 뿐임을 덧붙인다. 게다가 그들은 젊어서는 재물을 무시하겠지만(549a)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점점 더 재물을 반기고ἀσπάζοιτο 사랑하는 본성도 갖게 된다. 이성λόγος을 가진 자만이 평생토록 덕의 보존σωτὴρ ἀρετῆς이 가능함에도 그는 덕을 지키는 최상의 수호자로서 이성을 결여하고 있는 것이다.(549b)

* 그런 다음 소크라테스는 명예정적인 사람을 잘 다스려지지 못하는 나라에서 사는 좋은 아버지의 어린 아들υἱός에 비유하여 아래와 같이 말한다. 그의 아버지는 나라가 제 길을 벗어나자 명예나 관직은 물론 소송δίκη 같은 일에 관여하기를 피하고 번거로운 일을 피해 자신을 낮추며 살고 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가 통치에서 비켜선 그런 남편 때문에 다른 여자들 사이에서 얕보여 화가 나있고(549c) 재물χρήματα이나 이익을 둘러싼 법정δικαστήριον 다툼에 무관심하고 그녀를 딱히 존중하지도 무시하지도 않는 것에 성질이 나서 아들에게 아버지가 남자답지 못하고 너무도 안이하다고 불평을 늘어놓는다.(549d) 그리고 집안의 하인οἰκέτης들도 때때로 그런 이야기를 몰래λάθρᾳ 아들에게 하면서 어른이 되면 돈을 빚졌거나 무슨 다른 부당한 짓을 한 자들에게 복수하고 아버지보다 더 남자다운 남자가 되라고 부추긴다.(549e) 한편 이 아들은 집 밖에 나가 자기의 일보다 남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존중받고 칭찬받는 것도 듣고 아버지 이야기도 들으면서 영혼의 이성부분τὸ λογιστικὸν에 물을 주고 자라게 하는 아버지에 이끌리기도 하고 또 욕구부분τό ἐπιθυμητικὸν과 기개부분τὸ θυμοειδές을 자라게 하는 다른 사람들에 이끌리기도 한다.(550a) 그는 본성φύσις이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이렇게 이 양쪽에 의해 이끌리다가 결국 자기 자신 안의 지배권ἀρχή을 중간의 것, 즉 승리를 사랑하는 기개부분에게 넘겨서 기상이 넘치고ὑψηλόφρων 명예를 사랑하는 사람이 된다.(550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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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46b-c ‘주기와 관련한 수들’ : 제법 길게(546b-c) 다루어지고 있는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은 정암학당 역본(2026년 2월 출간 예정)과 박종현 역본의 각주에 자세한 설명이 제시되어 있으므로 이곳에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 546e ‘헤시오도스의 종족과 금족, 은족, 청동족, 철족’ : 415a-b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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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라톤은 무사 여신의 말을 빌려 생성된 모든 것들은 사멸하듯 최초 구성된 나라도 해체하며 동식물 모두 각기 생산과 불모에서 순환periphora주기가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무사 여신의 이 말이 나라의 해체가 순환 주기를 갖고 이루어진다는 것으로 읽히면 안 된다. 나라의 해체는 순환 주기를 갖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라의 지도자가 자연적 질서로서 그 순환 주기를 제대로 포착하지 못함에 따라 일어난다. 우주는 천체들이 그러하고 계절이 그러하듯 정해진 순환 주기가 있고 그에 따라 자연에 기대 살아가는 생명체들은 모두 그 순환 주기에 딱 맞는 때 즉 적기kairos에 맞추어 살아야 한다. 나라와 개인의 해체는 이러한 적도와 적기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놓치는 데서 시작한다.

* 이상 국가의 해체과정을 담고 있는 제8권의 논의는 앞서 살폈듯이 행복의 관점에서 정의로운 나라(개인)와 부정의한 나라(개인)를 비교하려는 애초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제기된 밑그림hypographē(548c-d)이다. 다시 말해 부정의한 나라가 어떤 점에서 어떤 결함을 더해가면서 정의로운 나라와 비교조차 불가할 정도로 행복과 정반대의 위치에 자리하게 되는지를 극명하게 드러내기 위한 일종의 방편적 논의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도 이상 국가의 해체 과정은 정치체제의 역사적 변화과정을 그린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비교의 목적상 이상 국가의 결함이 발생한다면 어떻게 발생하고 점점 더 그러한 결함이 더하는 경우 단계적으로 어떤 정치체제들이 나타나게 되고 그것에 비례하여 어떤 불행들이 심도를 더하는지에 대한 논리적·심리적 귀결을 기술한 것이다.

* 사실 이론적 측면에서만 보면 철학자 왕이 통치하는 이상국가는 말 그대로 이상적인 통치자가 지배하는 한, 해체될 가능성이 없다. 플라톤도 이곳에서 통치자들이 철학자로서 자질을 하나같이 견지하는 한 비록 그들의 수가 아무리 적더라도 정치체제는 변하지 않는다고 말한다.(545d) 실제 그가 제시한 이상국가에서는 설사 어느 철학자 왕이 통치 업무에 실수를 저지를지라도 다른 여러 철학자 왕들이 돌아가며 통치를 맡아 얼마든지 실수는 수정 극복될 수 있다. 그리고 전사와 생산자 계층에서 문제가 생길 경우에도 통치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는 한, 그 또한 수정 극복될 수 있다. 그럼에도 플라톤은 이곳에서 무사 여신의 입을 빌려 이상 국가가 해체될 수 있는 가능성을 언급한다. 비록 쉽게 일어나는 일은 아니지만, 철학자 왕들 가운데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점차 다수가 되면 결국 철학자들 즉 통치자들 간에 내분이 일어나 나라는 쇠락의 길로 접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 그렇다면 이상국가에서 철학자 왕들의 통치 수행 능력상의 결함은 또 어떻게 생겨난다는 것일까? 이 역시 무사 여신의 이야기를 토대로 음미하면 아래와 같을 것이다. 통치자의 임무는 무엇보다 나라를 수호하는 일에 더해 자신과 같은 통치자를 길러내는 일이다. 그리고 이 일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선 통치자로서 자질을 갖춘 아이들이 태어나야 한다. 그런데 아이들의 태생을 관장하는 통치자가 사멸하는 존재인 한 신적인 출생의 주기에 따른 출산의 적기와 불모의 시기를 제 때에 맞추지 못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고 그러한 경우 자질이 부족한 아이들이 태어나고 이들은 자라면서 그만큼 시가와 체육 단련에도 소홀하여 수호자로서 능력을 온전히 갖추지 못한다. 이런 일들은 후계로 갈수록 더욱 심화되고 그만큼 통치자들 간 조화가 깨지고 불일치와 변칙이 생겨나면서 결국 나라는 전쟁과 내분에 휩싸이게 된다. 요컨대 무사 여신의 설명대로라면 통치자의 출산 적기와 관련한 이성적 계산 능력의 결핍으로 인해 제대로 된 자질을 가진 아이들이 태어나지 못하는 일이 거듭되면서 이상 국가의 해체가 초래되었다는 것이다.

* 그런데 무사 여신의 입을 통해 제시된 이상 국가 해체 배경과 관련한 플라톤의 설명은 앞서 그가 앞서 펼친 이상국가론과 비교해 볼 때 여러 점에서 앞뒤가 맞지 않는다. 우선 이상 국가 해체의 근본 원인을 출산 적기와 관련한 통치자의 이성적 계산 착오에서 찾는 것부터 수긍이 되지 않는다. 물론 통치자가 계산 착오를 범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생성물 일반의 근원적 사멸성에서 찾는 것은 받아들일 만하다. 그러나 인물로서 어떤 아이의 잘못된 태생이 제도로서 정치체제의 해체로 곧바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후계 출산을 위한 통치자의 계산 착오가 간단없이 지속적으로 반복된다면 정치체제의 결함 내지 해체는 필연적일 수 있다. 그러나 이곳 이상 국가는 한 사람의 철학자 왕이 권력을 독점하여 임의로 권력을 좌지우지하는 것도 아니고 수호자 태생이라고 해서 아무나 다 권력을 세습할 수 있는 체제도 아니다. 이곳 이상 국가는 다수의 철학자 왕들이 돌아가며 통치를 하는 체제이고 그들 모두 각고의 노력과 검증을 통과한 사람들임을 고려하면 설령 일시적 실수는 있을지 몰라도 모두가 그것도 지속적으로 능력 결핍 상태에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러한 한, 통치자들이 출산 적기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일이 반복해서 지속적으로 일어날 수 없으며 앞서 언급했듯이 설사 일시적 착오가 있더라도 그것은 다른 철학자 왕들에 의해 언제라도 수정 극복될 수 있다. 그리고 수호자의 자식들이라고 해서 모두가 통치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금족으로 태어났다고 해도 선발과정에서 능력이 검증되지 않으면 퇴출될 수 있고 은족으로 태어났다 해도 선발과정에서 출중한 능력이 발견되면 수호자가 될 수 있다. 50세에 이르러 좋음의 형상들을 본 철학자들 다수로 구성된 통치자 계층 대다수가 앞서 살폈듯이 일거에 지속적으로 능력 결핍 상태에 있을 가능성 또한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통치자로서 임명되는 근거 또한 그가 단순히 혈통 때문이 아니라 철저한 교육과 선발과정을 거쳐 진정한 철학자로서 자질을 검증받았기 때문이다. 무사 여신이 언급하고 있는 통치 권력의 계승은 마치 세습 군주정처럼 통치 능력과 무관하게 특정 통치자가 순전히 혈통에 의해서만 특정 통치자에게 권력을 세습할 경우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이곳 철학자왕정은 일인 세습 군주정이 아니다. 비록 이상 국가의 권력 계승은 수호자의 후손들에 제한되어 있을지라도 어느 특정인에게 세습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호자들 가운데 최상의 기준으로 선발된 철학자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진다. 아무리 우생학적 관점이 중요하더라도 이상 국가 해체의 발단과 관련한 이곳의 내용은 <국가>에서 플라톤 자신 그토록 강조한 교육의 중요성을 지나칠 정도로 무시하고 있다.

* 한편 이곳에서 무사 여신의 입으로 제시되고 있는 우주의 자연적 주기와 관련한 수에 관한 언급들은 기본적으로 통치자들에게서 수학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특히 그 수들은 모두 사람의 임신과 태생의 적기는 물론 우주 자연의 주기적 순환과 규칙을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조화와 질서를 강조하는 플라톤 우주론과도 잘 부합한다. 그러나 장황할 정도로 길게 나열된 그 수식들과 그것이 포함하는 난해성은 달리 보면 수학에 뛰어난 발군의 통치자일지라도 계산에 완전할 수 없음을 보여주기 위한 수사적 장치일 수도 있다. 사실 이상 국가의 해체를 설명하기 위해 굳이 정밀성과 거리가 먼 신화적 이야기를 끌어들여 복잡한 수식을 늘어놓는 것부터 이미 어색하다. 게다가 내용에서도 역술가처럼 태생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인 양 결론 내리고 있는 것 또한 플라톤답지 못하다. 이로 미루어 짐작컨대 이상 국가의 해체가 자신의 기존 주장과 배치된다는 것을 플라톤 자신 이미 의식하고 있다. 사실 이상국가는 이곳에서 논의의 방편상 해체 하강의 방향으로 그려지고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나쁜 정치체제들에 대한 경험들을 토대로 그것의 극복을 위해 구축한 상승 형성 과정의 최종 도착지이다. 그러나 플라톤은 이제 논의의 목적과 구도 상 이상국가의 해체를 논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플라톤이 최소한 해체의 발단에 관한 한, 자신이 아닌 무사 여신들을 끌어들여 말하는 것도 이러한 사정 때문이었을 것이다

* 어쨌거나 일단 이상국가의 해체가 통치계층의 내분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통치 기능의 마비가 발생했다는 것이고 그것은 이상국가를 구성하는 세계층간의 본성에 따른 조화로운 의존적 분업관계가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세 계층 간의 조화가 갖는 유기성을 고려하면, 한 계층 특히 통치를 담당하는 계층의 내분은 필연적으로 나머지 계층에까지 영향을 미쳐 그들의 직분에 따른 본래 역할에도 금을 가게 만든다. 플라톤의 말 그대로 조화가 깨지고 불일치와 변칙이 발생하는 것이다.(547a) 통치자 계층의 내분을 별 설명 없이 바로 이어서 보조자들과 통치자들 간의 내분으로 확대해서 말하는 것도(545d) 그 때문이다. 이러한 부조화, 불일치와 변칙은 내용적으로 그들의 본래적인 직분과 역할에 대한 변화로 나타난다. 통치 계층의 이성에 따른 통치 기능이 쇠락하면서 전사 계층의 기개가 점차 그 자리를 차지하고 그만큼 전사 계층의 직분이 흔들리게 되면서 통치 계층에 대한 전사 계층의 의심이 싹튼다. 이러한 의심은 전사 계층의 전에 없던 통치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결국 통치계층과 전사 계층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통치 권력을 두고 두 계층 간의 적대적인 투쟁이 야기된다. 그리고 이들 사이의 권력 투쟁은 이미 그들 자신이 갖고 있었던 최소한의 이성적 영혼과 명예 및 기개의 손상은 물론 통합의 원리로서 절제의 정신까지 훼손하여 생산자 계층에게만 고유했던 물질에 대한 사적 소유욕에까지 확장되어 결국은 생산자들의 사유재산을 권력의 힘으로 착취하는 단계에 이른다. 이러한 타락상 일반이 이른바 이상 국가의 해체과정에서 맞이하는 첫 번째 단계로서 명예정timokratia이다.

* 이 체제의 명칭이 명예정인 것은 이상국가에서 이성 기능이 쇠락하면서 공동식사와 신체단련, 그리고 전사다운 기개와 명예가 일정부분 존중되고 있다는 점에서(547d) 붙여진 것이다. 그러나 명예정이 이상적 철인왕정에서 과두정으로 타락해가는 중간 과정에 있는 정치체제임을 염두에 두면 나중으로 갈수록 최소한 허울로서 유지하던 명예조차 헌신짝처럼 내팽개쳐지는 지경에 이르고 결국 오로지 물질적 욕망에 눈이 먼 금권정으로서 과두정과 별반 다름없는 정치체제로 전락한다. 지성을 결여한 맹목적 충성과 명예욕이 맞이하는 필연적 귀결이다. 다만 명예정이 과두정과 다른 것은 국가의 세 계층이 허울뿐이나 명목상 유지되고 있고 탐욕도 아직은 덜 노골화되어 있다는 점이다.(547d) 그러나 내용에서는 이미 권력이 사유재산욕을 증대하는 수단으로 전락한 이상 생산자 계층에 대한 수호는 말만 수호일 뿐 실제로는 보다 효율적인 착취를 위한 통제와 감시로 변질되어 본래의 상호 의존관계가 아닌 주인과 노예의 관계로 변모한다. 그리고 수호자들은 본성상 평화보다는 전쟁을 선호하는 까닭에 지혜로운 자들을 배제한 상태에서 자신들의 금고를 지키기 위해 하루가 멀게 전쟁을 일삼는다.(547a) 수호자들에 대한 생산자 계층의 불만이 쌓여가고 그에 따라 생산자들에게서 통치에 대한 관심마저 들어서기 시작하는 것도 이때이다. 금은이 섞이고 은동이 섞인 다음 그 둘이 다시 섞여 모두가 비슷한 성질로 변해간다. 이상 국가의 근본 원리로서 본성에 따른 다양한 욕망들의 분업적 공존은 무너지고 계층 간 욕망구조의 변화 즉 욕망의 등질화가 이미 명예정 단계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547e)

* 이상국가의 명예정에로의 타락과정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이상국가의 통치기능의 마비에 따라 생산자 계층만이 누렸던 사유재산에 대한 욕망이 통치자와 보조자들 일반 즉 수호자 계층에까지 확대되었다는 점이다. 사실 물질적 욕망이 선도하는 사적인 탐욕은 제1권에서 등장한 트라쉬마코스의 주장의 핵심을 이루는 것으로서 플라톤이 이상 국가를 통해 극복해야 할 가장 강력한 안티테제를 구성한다. 게다가 그러한 강력한 장애가 이상국가의 해체과정을 논의하는 첫 단계에서부터 등장했다는 것은 나라가 타락을 더해갈수록 그러한 장애 또한 더욱 강력해질 것임을 함께 고려할 때 나라의 최고 권력을 손아귀에 쥔 자들에게 사적 소유가 얼마나 위험천만한 근원적 해악인지 그리고 그것을 뿌리 뽑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플라톤 자신 뼛속 깊이 통감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 명예정은 앞서 살폈듯이 이후의 타락한 정치체제들과 달리 기존의 타락한 정치체제로부터가 아닌 철학자 왕정이라는 바람직한 정치체제로부터 나온 정치체제이다. 그래서 명예정이 갖는 중간적 성격과 양면성에는 명예정이 지니는 일부 바람직한 측면이 포함되어 있다. 이를테면 군인다운 기개와 명예, 질서와 규율을 중시하고 신체 단련에 열심을 보이며 충성심도 강하다. 플라톤이 명예정의 대표적인 사례로 스파르타를 들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종종 플라톤의 이상 국가가 스파르타를 모델로 했다고 말하곤 하지만 플라톤이 명예정을 타락한 정치체제의 하나로 분류하고 있다는 사실에서부터 이미 그 말은 진실이 아니다. 다만 명예정으로서 스파르타 정치체제가 지니는 양면적 특성 가운데 수호자가 갖추어야 할 자질이 포함되어 있을 뿐이다. 스파르타에 대한 플라톤의 긍정적인 평가는 거기까지이다. 스파르타는 철학자 왕정과 달리 이성의 지위를 군사조직과 전략의 하녀로 끌어내렸을 뿐만 아니라 신민을 노예로 여겨 수호의 대상이 아닌 엄혹한 통제와 감시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야말로 군국주의 국가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러한 강압에 의한 결속과 비자발적인 절제는 쾌락과 금전의 유혹에 노출되면서 너무도 쉽게 무너져 내렸다. 그들이 그토록 동경하던 누구도 넘볼 수 없을 정도의 국가조직의 강력함과 단합된 삶의 방식은 이성의 원리가 결여할 때 오히려 그 반대의 길로 간다는 것을 그들은 깨닫지 못했다. 플라톤은 물론이고 아리스토텔레스까지 일찍이 이러한 점들을 충분할 정도로 간파하고 있었다.(플라톤 <법률> 633b,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1333b 참고)

* 플라톤은 이제 논의 계획에 따라 명예정의 나라를 논한 다음에 그에 상응하는 명예정적인 인간에 대해 언급한다. 명예정적인 인간은 명예정이 철학자왕정과 과두정 중간에 있는 것처럼 성격 또한 양쪽에 걸쳐 있다. 시가를 사랑하지만 뒤처지고 통치자에게는 순종적이지만 노예들에게는 가혹하다. 그리고 젊어서는 재물을 무시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그것을 반가워한다. 플라톤은 이런 사람을 잘 다스려지지 못하는 나라에 사는 좋은 아버지의 아들로 비유한다. 아버지는 잘못된 나라에서 명예나 관직을 맡기를 피하고 소송도 관여하지 않을 정도로 나름 염치가 있고 겸손한 이른바 좋은 사람이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관직이나 재물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남편 때문에 다른 여자들 사이에서 얕보이고 있음을 참지 못할 정도로 허영에 절어 있어 남편을 남자답지 못하고 안이한 사람으로 못마땅하게 여기고 틈만 나면 아들에게 장차 아버지 같은 사람이 되어선 안 된다고 가르친다. 그리고 집안의 하인들조차 이 아들에게 아버지처럼 나약한 사람이 되지 말 것을 선의의 충고인 양 수시로 던져댄다. 이들 어머니와 하인들은 오로지 타인의 시선과 인정에 기대어 삶의 만족을 느낄 뿐 내적 자부심의 토대로서 그 자체로 좋은 것에 대한 어떤 인식도 이해도 갖고 있지 않다. 이에 따라 아들은 아버지와 이들 사이에서 때론 이성 부분 쪽으로 때론 욕구 부분 쪽으로 이끌리다가 결국 자기 사신의 안의 지배권을 중간의 것 즉 승리를 사랑하는 기개 부분에 넘겨 이른바 명예정적인 인간이 된다.(550b)

* 앞에서 플라톤은 명예정의 나라를 다루면서 주로 나쁜 쪽에 비중을 두어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 이곳 명예정적인 인간을 다루면서는 아버지의 아들이 어떻게 양면적인 성격을 갖게 되었는가에 대해서만 언급하고 있을 뿐 그 후 어떤 심리적 변화과정을 거쳐 어떻게 물질적 탐욕에 휩싸여 과두정적인 인간에로까지 타락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별다른 언급이 없다. 물론 이상국가의 유기체적 성격상 통치기능의 마비가 세 계층 모두에 두루 영향을 미쳐 결국은 세 계층의 분업적 공존과 조화를 깨트리는 근본 원인이 되고 끝내는 생산자 계층에 대한 착취로까지 이어졌음을 고려하면 명예정적인 인간 또한 이미 영혼의 이성 부분이 마비되면서 세 부분의 영혼들 간의 조화가 무너지고 결국은 물질적 욕구 부분이 지배하는 인간으로 변모하게 될 것임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국가>가 소문자로서 개인을 잘 들여다보기 위해 대문자로서 나라를 먼저 살피는 방식을 취하고 있음을 고려하면 어쨌거나 개인에 대한 고찰이 논의의 중심을 이루고 분량 또한 더 많을 것이라 예상하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러나 실제 내용을 들여다보면 분량에서건 비중에서건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플라톤은 대문자를 들여다보는 일에 크게 치우쳐 있다. 이 점은 <국가>의 근본 관심 내지 주제를 형식적인 논의 구도만을 토대로 영혼론 내지 도덕 심리학에 있다고 주장하는 일부 학자들의 견해가 그다지 설득력이 없음을 보여준다. 아무려나 플라톤의 정치철학이 외적인 나라의 경영과 개인의 내적 영혼의 관리를 불가분의 것으로 전제하고 성립하는 한, 그 양쪽 가운데 어느 한쪽의 관점만으로 <국가>의 전모나 특징을 이해할 수 있다는 주장은 이미 그 자체로 한계가 있다.

* 플라톤의 이상국가는 우리가 살펴왔듯이 서로 다른 본성을 가진 사람들이 각자 자신에게 고유한 소질에 맞는 직분을 택해 자신의 욕망을 마음껏 구현하면서 서로 조화롭게 공존하는 나라이다. 그리고 그것이 플라톤이 말하는 정의의 본질 즉 분업적 공존의 틀 안에서 각자의 본성에 맞는 자기다움을 실현하고 그것을 통해 자신과 공동체의 행복을 함께 누리는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옆에는 언제라도 이성을 무너뜨릴 기세로 이기적 탐욕이 자리하고 있다. 물론 플라톤의 이상 국가는 인간의 본성에 기초한 다양한 욕망을 모두가 함께 구현할 수 있는 방식을 통해 이러한 이기적 탐욕이 자라날 수 있는 여지를 최소화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장치를 구비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나라가 단순한 소망이 아니라 실질적인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토대 또한 인간의 본성이 지니는 근원적 다양성과 그것의 상호 의존성에 대한 믿음을 통해 굳건하게 확보되어 있다. 그러나 이곳 제8권의 이상국가의 해체과정을 보면 인간 본성에 관한 플라톤의 믿음은 철학자들에서조차 마치 살얼음 위를 걷듯 위태로워 보인다. 이미 플라톤 자신 해체의 첫 단계에서부터 이기적 탐욕이 언제라도 이성의 통제를 흔들어 놓을 수 있을 정도로 위협적이라는 것을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러하다 보니 제8권에 들어와선 나라와 개인의 통치 원리로서 이성의 지배가 철학자들을 포함해서 나머지 대다수 사람의 본성에서 어떤 방식으로건 과연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정말 인간의 본성으로 가능키나 한 것인지 의심마저 든다. 게다가 플라톤은 제8권의 논의에서 우리의 그러한 의심을 더욱 크게 만들 정도로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의 정치체제로 거침없이 우리를 몰아간다. 그러나 제8권에서 우리가 느끼는 이러한 혼란 또한 장차 부정의에 대한 정의의 극적인 비교 우위를 드러내기 위해 주도면밀하게 준비된 계획의 일부이자 밑그림인 것이다.(548c-d)  플라톤은 제8권을 포함해서 <국가> 전체의 논의를 통해 정의로운 국가를 세우고 지켜가는 것이 매우 어렵고 힘든 일 지라도 결코 그것을 향한 뜨거운 열망마저 포기되어선 안 된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위해 이성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토대로 모멸의 현실을 딛고 일어나 불굴의 의지로 철학을 통한 영혼의 자기 고양과 이론적 실천적 투쟁을 하나같이 이어가야 한다는 것을 시종일관 강조하고 있다. 플라톤의 이상국가론은 정의로운 국가의 현실 구현을 철학의 힘으로 앞당기고 좀 더 강건하게 견인하기 위한 이념적 지표이자 어떠한 위협에도 결코 와해되지 않을 사상 투쟁의 굳건한 기반이다.  정의는 결코 강자의 이익이 아니다. -끝-

 

다음 주제 : VI 본론 3 : 부정의와 현실 비판 – 현실 국가 분석(제8권-제9권) 

A. 부정의한 나라들과 부정의한 개인들.

3. 과두정과 과두정적인 인간(550c-555b)

플라톤의 <국가> 강해(78) [이정호 교수와 함께하는 플라톤의 『국가』]

플라톤의 <국가> 강해(78)

 

VI. 본론 3 : 부정의와 현실 비판 – 현실 국가 분석(제8권-제9권)

 A. 부정의한 나라들과 부정의한 개인들.

  1. 도입부 : 원래 문제로 복귀. 고찰의 방법과 순서(제8권 543a-545c)

 

* 소크라테스는 말로 세운 정의로운 나라와 사람에 대한 논의를 마친 후 제5권에 들어와 애초의 논의 목적 즉 정의와 부정의 중 어느 것이 진정 행복을 가져다주는지를 비교 판정하기 위해 부정의한 나라와 사람을 다루려고 한다. 그러나 글라우콘과 아데이만토스가 끼어들어 그러한 논의에 들어가기 전에 우선 앞서 말로 세운 나라에서 처자 공유에 관해 갖고 있던 자신들의 의문부터 해명해 줄 것을 요구한다. 이에 소크라테스는 마지못해 그들의 요구에 응하게 되면서 제5권부터 논의는 애초의 계획에서 벗어나 처자 공유가 필요하고 가능할 수 있는 조건들로서 철학자와 철학자 왕정 그리고 그들을 위한 교육과정에 대한 논의가 다루어진다. 일탈의 형식으로 진행된 위와 같은 논의가 제7권 말미에서 모두 마무리되자 소크라테스는 이제 애초의 계획에 따라 다루려고 했던 주제 즉 부정의한 나라와 사람에 대한 문제를 다시 꺼내든다. 이렇게 제8권은 주제 상 제7권이 아닌 제4권을 이어받는 것으로 시작한다.

 

[543a-545c]

* 소크라테스는 여인γυνή들과 아이παῖς들의 공유κοινός는 물론 모든 교육παιδεία과 전시나 평시 활동에서 남녀가 공동으로 해야 하고 철학과 전쟁 관련 일 모두에서 가장 뛰어난 자들이 왕들βασιλέας이 되어야 한다는 것(543a) 그리고 일단 통치자들οἱ ἄρχοντες이 세워지면, 전쟁의 선수ἀθλητής와 수호자φύλαξ로서 그들이 함께 지내야 할 거처οἰκήσεις를 포함하여 소유와 보수μισθός 그리고 임무와 관련해서 그들이 감당해야 할 일들이 무엇인지가 동의되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543b) 그런 연후 그는 글라우콘에게 원래의 논의를 벗어났다가 다시 여기로 오게 된 사정을 기억해 볼 것을 요구한다. 이에 글라우콘은 소크라테스가 좋은ἀγαθός 나라와 그것을 닮은 좋은 사람을 세웠음을(543d) 그리고 사실 그보다 한층 더 아름다운καλλίω 나라와 사람을 이야기할 수 있으면서도 그랬음을 환기시킨 후 제대로 된ὀρθός 그 나라 외에 결함 있는ἡμαρτημένας 네 종류의 나라들과 그 나라들을 닮은 사람들을 모두 살펴보기로 했음을 기억해 낸다.(543e) 그리고 그 목적 또한 누가 가장 뛰어나고ἄριστον 누가 가장 못났는지κάκιστον 의견의 일치를 본 후, 그들 중 누가 가장 행복하고 εὐδαιμονέστατος 누가 가장 못난 자이자 가장 비참한ἀθλιώτατος 자인지를 고찰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것도 확인한다.(544a) 그리고 글라우콘은 그때 폴레마르코스와 아데이만토스가 끼어들어 처자 공유와 관련한 이의를 제기하는 바람에 네 종류의 정치체제에 대한 논의가 중지되었다가 여기로 이어진 것이라는 것도 함께 기억해낸다. 이에 소크라테스는 글라우콘의 기억을 칭찬한다. 그러자 글라우콘은 레슬링선수처럼 그때와 똑같은 붙들기 자세로 전 같은 질문을 드릴 테니 그때의 주제로 돌아가 네 종류의 정치체제에 대해 말해줄 것을 요구한다.(544b)

* 소크라테스는 글라우콘의 요구를 받아 그 네 종류의 정치체제를 아래와 같이 제시한다. 첫 번째는 우선 크레타체제Κρητική 또는 스파르타체제Λακωνικὴ이고 두 번째 체제는 과두정ὀλιγαρχία 체제 그리고 세 번째는 이 체제와 대립하는 것이면서 이것에 이어서 생기는ἐφεξῆς γιγνομένη 민주정δημοκρατία 체제이다. 그리고 네 번째는 이 모든 정치체제로부터 벗어나 있는διαφέρουσα 것이자 가장 말기에 이른 질병νόσημα과 같은 체제로서 참주정τυραννὶς 체제이다.(544c) 그리고 세습왕정δυναστεῖαι βασιλεῖαι이나 매매왕정ὠνηταὶ βασιλεῖαι 같은 정치체제들도 있는데 그것들은 저 네 개의 체제들 사이 어디 쯤 속할 법한 것들이다.(544d)

* 소크라테스는 정치체제에 상응하여 인간 성격의 종류ἀνθρώπων τρόπων εἴδη도 존재한다고 말한다. 요컨대 최선자정으로서 철학자왕정과 앞서 다룬 네 개의 결함 있는 정치체제에 상응하여 개인의 영혼도 다섯 가지로 존재한다. 우선 최선자정ἀριστοκρατίᾳ을 닮은 사람은 이미 설명했듯이 뛰어나고 정의로운 사람이다.(544e) 그리고 이보다 못난 나머지 네 종류의 사람으로서 첫 번째는 스파르타 정치체제에 상응하는, 승리를 사랑하고φιλόνικος 명예를 사랑하는φιλότιμος 인간, 두 번째는 과두정적인ὀλιγαρχικός 인간, 세 번째는 민주정적인δημοκρατικός 인간, 그리고 네 번째는 참주정적인τυραννικός 인간이다. 이어서 소크라테스는 이들을 살펴 가장 부정의한ἀδικώτατον 자와 가장 정의로운 사람을τῷ δικαιοτάτῳ 맞세워 놓으면 순수한ἄκρατος 정의δικαιοσύνη와 순수한 부정의ἀδικία가 그것을 지닌 사람들의 행복εὐδαιμονία과 불행ἀθλιότης에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견주어 보려는 우리의 고찰도 완결될 것이라고 말한다.(545a) 그러면 트라쉬마코스에 설득되어 부정의를 추구할지, 아니면 지금 드러나고 있는 논의에 설득되어 정의를 추구할지도 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545b)

* 그런데 소크라테스는 이러한 네 종류의 인간, 네 종류의 영혼을 살피면서 앞서 성품ἦθος에 대한 고찰σκοπεῖν을 시작할 때 방식 그대로 개인ἰδιώτης보다는 정치체제를 먼저 살핀다. 그래서 그때와 마찬가지로 소크라테스는 이곳에서도 명예를 사랑하는φιλότιμος 정치체제 즉 명예정τιμοκρατία이나 명예통치정τιμαρχία을 먼저 살피고 그 정치체제와 상응하는 인간을 고찰하고 같은 방식으로 이어서 과두정과 과두정적인 인간, 민주정과 민주정적인 인간을 관찰하고 마지막으로 참주정과 참주정적인 영혼을 살피겠다고 말한다. 그래야 애초 제기한 문제들을 판정κριτής하기에 충분할 것이기 때문이다.(545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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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43a – 543b : 이곳에서 동의된 것으로 언급되고 있는 내용들은 제3권, 제4권에서 다룬 수호자들의 생활 방식(415d-421c)과 임무(421c-427c) 그리고 철학자의 자질(484a-487a)과 철학자 왕(497a-502c)을 다루고 있는 부분을 참고.

* 543b ‘전쟁의 선수athlētēs’ : 403e에서 소크라테스는 수호자들을 가장 큰 시합의 선수들로 언급하고 있다.

* 543d ‘좋은 나라와 그것을 닮을 좋은 사람을 세웠음을’ : 제5권 서두 449a 참고

* 543e ‘그보다 한층 더 아름다운 나라와 사람’ : 플라톤의 이상 국가를 굳이 구분하려고 하면 제2권에서 제4권까지 말로 세운 나라와 나중 제7권에서 제시된 철학자 왕이 다스리는 나라로 나눌 수 있다. ‘한층 더 아름다운 나라와 사람’은 그 두 나라 중 후자를 가리키는 것이긴 하지만 말로 세운 나라에서 언급된 통치자의 자질을 보면 내용적으로 이미 철학자를 가리킨다는 점에서 그 두 나라는 다른 나라가 아니다. 이곳의 표현은 다만 논의의 단계상 말로 세운 나라의 통치자가 명시적으로 철학자임이 드러났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 543e ‘그 나라 외에 결함 있는 네 종류의 나라들과 그 나라들을 닮은 사람들’을 모두 살펴보기로 했음을 기억해낸다. : 제4권 445c, 제5권 449a 참고

* 544a ‘누가 가장 행복하고 누가 가장 못난 자이자 가장 비참한 자인지를 고찰하기 위한 것이었다’ : 제2권 361d 참고

* 544c 크레타체제와 스파르타체제 :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제2권 제9장-제10장 (1269a30 – 1272b20) 참고. 플라톤은 이곳에서 이 체제를 명예를 사랑하는 정치체제 즉 명예정timokratia의 다른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다.

* 544c 질병nosēma : 참주정은 플라톤뿐만 아니라 당대 민주정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질병으로 여겨졌고 실제로 그렇게 불렸다. 이소크라테스 <헬레네 찬가> 34 참고.

* 544d 매매왕정ōnētai basileiaiι :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러한 정치제제를 ‘관직을 높은 재산 자격 조건에 따라서 임명하고 그들 자신 그러한 자격을 지니는 남아 있는 자들을 임명하는 경우’로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명예정이라는 명칭을 평가재산timēma에 기반하여 수립된 금권정의 의미로 사용한다는 점에서 플라톤이 규정하고 있는 이곳의 명예정과 내용상 차이가 있다. 그만큼 명예정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명칭은 아니다. 플라톤에게 금권정은 이곳에서는 과두정에 해당한다(550c). <정치학> 제4권 1292b. 플라톤 <법률> 680a-b, <니코마코스 윤리학> 제9권 제10장 참고.

* 544e ‘최선자정’aristokratia : 플라톤의 철학자 왕정에서 왕은 한 사람일 수도 있고 여럿일 수도 있다. 플라톤에게 중요한 것은 왕의 수가 아니라 그 왕이 철학자인가이다. 플라톤은 직위명이 아니라 실제 최고 권력자dynatēs를 거론할 때 기본적으로 복수를 사용하고 있다.(473d) 그래서 플라톤 스스로도 철학자 왕들이 여럿인 체제를 최선자정aristokratia으로 부르기도 한다.(445d) 철학자의 지배라는 점에서 플라톤에게 철학자왕정basileia과 최선자정aristokratia은 아무런 차이가 없다. aristokratia는 이후 정치사에서 귀족정aristocracy을 나타내는 말로 사용되면서 플라톤의 철인왕정이 귀족정으로 불리는 배경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일반적인 의미에서 귀족정은 귀족이 곧 철학자가 아니라는 점에서 철학자왕정과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그것은 이곳 기준에서 보면 높게는 명예정에 낮게는 과두정에 가깝다.

* 545d ‘개인보다는 정치체제들에서 먼저 시작했듯’ : 제2권에서 소크라테스는 대문자 비유를 끌어들여 소문자보다 대문자가 보기 쉽듯이 인간 개인의 영혼에 대한 논의를 나라의 계층에 대한 논의로 확대해 정치체제를 먼저 다루고 있다.(368d-369a). 이곳에서도 소크라테스는 나라를 먼저 살핀 후 개인의 영혼을 유추하던 앞의 논의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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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8권은 나라의 타락 과정과 그에 닮은꼴로 대응해 있는 영혼의 타락 과정을 일련의 연속된 흐름의 형식으로 기술하고 있다. 그래서 제8권에서 플라톤이 의도하는 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나라의 타락 과정 각각의 내용을 세부적으로 살피기 전에 그 흐름 전체를 크게 염두에 두는 것이 필요하다. 플라톤이 논의에 앞서 타락 과정에 포함된 정치체제 전체를 미리 순서에 따라 제시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점을 고려하여 그 전체 흐름을 내용적으로 좀 더 풀어서 정리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무엇보다 타락은 이상 국가를 구성하는 세 계층 가운데 통치 계층의 타락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통치 계층의 변화는 마치 도미노처럼 계층 간 내분stasis을 일으켜 우선 전사 계층의 변화를 초래하고 끝내는 생산자 계층의 변화로까지 이어진다. 이러한 과정에서 가장 먼저 통치계층이 이성 능력의 결함에 따라 후계 권력으로 갈수록 통치 능력을 상실하여 전사 역할 정도만을 수행할 정도로 타락하면 철인왕정은 명예정timokratia으로 전락한다. 그리고 통치 기능이 마비됨에 따라 전사 계층들도 점차 본분을 넘어 통치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수호자 계층 간 권력 투쟁이 일어나고 끝내는 그 권력 투쟁에서 승리한 소수 전사들이 통치하는 과두정oligarchia이 들어선다. 이미 명예심조차 상실하고 부와 권력의 맛을 본 과두주의자들은 권력을 부를 축적하는 최상의 방편으로 여겨 매관매직은 물론 생산자 계층의 재산마저 착취하여 나라는 갈수록 부자들과 가난한 자들로 양극화된다. 민주정dēmokratia은 이러한 소수 과두주의자들의 착취로 빈곤의 나락에 빠진 민중들이 혁명을 통해 과두정을 무너뜨리고 수립한 정체이다. 민주정에 이르면 기능 분업적 계층은 남아 있어도 적성에 따라 소속을 구분하는 장치는 모두 와해되어 본래 소질이나 직분에 상관없이 시민이라면 누구나 다 추첨에 따라 관직도 맡을 수 있고 전사가 되어 나라를 위해 싸울 수도 있고 그렇게 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자유방임의 상태에서 모든 사람의 욕구만은 이미 물질적 욕구로 일양화되어 있다. 그에 따라 어떤 일을 하건 부의 획득이 삶의 유일한 목표가 되어 날로 경쟁이 격화되고 급기야 서로에 대한 모함과 소송이 판을 치면서 나라는 극도의 분열과 혼란에 빠져든다. 그러자 이러한 혼란을 틈타 민회를 조종하는 자들 중 가장 사나운 무리들이 가난한 민중을 등에 업고 최고 권력을 탈취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그들은 권력을 장악한 후 빈민층을 구제하기는커녕 되레 자신에게 집중된 권력을 이용해 오직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데 몰두하고 그것을 지속적으로 가능케 하기 위해 폭압적인 독재 권력 체제를 구축하기에 이른다. 이렇게 해서 민주정은 가장 나쁜 정치체제로서 참주정tyrannis으로 전락한다.

* 앞으로 이러한 타락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기 전에 미리 염두에 둘 것이 이밖에 몇 가지가 더 있다. 우선 이러한 나라의 타락과정 모두 이를테면 명예정, 과두정. 민주정, 참주정에로의 타락 과정 모두 자신이 속한 계층이 본래의 직분을 수행하지 못해 발생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 과정에서도 본래의 분업적 계층 자체는 여전히 살아 있으며 비록 소수이긴 하지만 자신이 속한 계층의 본래 직분에 충실한 사람들 또한 여전히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명예정이 전사 중심의 과두정으로 타락했다고 해서 통치 계층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통치 계층에 속한 사람들 모두가 다 자신의 직분을 버린 채 전사가 되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과두정이 민주정으로 변모했다고 하더라도 통치 계층, 전사 계층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들 모두가 자신의 직분을 잃고 생산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타락이라는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다만 자신이 속한 계층의 본분에 충실한 사람들이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가면서 자신이 속한 계층에서 이른바 주도권을 상실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개인의 타락 과정도 나라의 타락 과정과 마찬가지이다. 그 과정에서 개인들은 자신의 영혼 세 가지 부분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지만, 그들 세 부분의 영혼들 내부 간 갈등이 진행되면서 그들 상호 간의 지배 관계가 점차 다르게 변모한다. 이를테면 명예정적인 사람의 경우 그 사람의 영혼이 모두 기개적 영혼으로 변화된 것이 아니라 그 역시 영혼 삼분설에 따라 이성적 부분의 영혼, 기개적 부분의 영혼, 욕구적 부분의 영혼을 다 갖고 있되, 기개적 부분의 영혼과 다른 영혼과의 지배 관계가 달라지게 된 것이다. 즉 기개적인 영혼의 부분이 그 사람의 생각과 행위를 결정하는 주도권을 갖고 나머지 부분 이를테면 이성 부분을 도구적으로 이용하고 통제하는 상태가 된 것이다. 과두정적 인간, 민주정적인 인간, 참주정적인 인간들 모두 마찬가지이다. 그러한 인간들 모두 각기 서로 다른 영혼 부분들을 가지고 있되, 그러한 그들 서로의 관계에서 이성적 영혼 부분이 약화되어 본래의 조화로운 관계가 무너지고 그에 비례하여 타락한 영혼 부분이 다른 영혼 부분을 압도하여 자신의 성향에 맞추어 주도적인 역할을 행사함에 따라 각기 그러한 인간들이 된 것이다. 그런데 다른 한편 이것을 뒤집어 보면 타락 과정이 더 이상 회복이 불가능한 필연의 과정이 아니라 비록 쉽지는 않지만 여전히 온전한 영혼을 보전하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언젠가 극복과 반전이 이루어질 수 있는 최소한의 여지 즉 가능성이 남아 있음을 함께 보여준다.

* 이밖에 제8권의 논의가 이루어지게 된 배경을 이해하는 차원에서  염두에 두어야 할 중요한 점이 또 있다. 그것은 나라의 타락 과정과 개인 영혼의 타락 과정 모두 대문자와 소문자의 관계가 그렇듯이 형식적으로는 서로 대응 관계를 갖고 각기 독립적으로 서술되고 있다고 할지라도 내용에서 보면 그것들은 결코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는 점이다. 앞서 이상 국가를 다룰 때 나라와 영혼의 유기적 성격을 강조했던 것 그대로 플라톤은 결함 있는 나라들의 변화를 언급하면서도 각각의 나라들과 그 계층을 구성하는 개인들 영혼의 변화를 유기적으로 연관해 서술하고 있다. 이 점은 이제 우리가 제8권을 살피면서 지속적으로 주목해야 할 주제 즉 플라톤의 정치체제 변동론이 근대적인 의미에서 일반적인 정치철학적 주제로서 다루고 있는 정체체제 변동론과 그 본질적 성격에서 근본적인 차이점을 갖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점차 밝혀지겠지만 화두 차원에서 미리 이야기하자면 플라톤의 정치체제 변동론의 특징은 인간의 이기적 본성을 전제로 두고 성립된 근대적 의미의 정치체제 변동론과 달리 인간 본성의 중층성을 토대로 인간의 내적 영혼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 정치체제 변동론 즉 인간 욕망구조의 변화와 상호 유기적인 관계를 갖고 그 결과로서 드러나는 정치체제 변동론이라는 점이다. 플라톤의 정치철학을 이른바 영혼의 정치철학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즉 정의로운 나라는 계층 간 조화라는 사회적 조건에서만이 아니라 개인들의 내적 상태, 즉 정의로운 영혼에로의 자기 고양이 담보될 때 비로소 가능하고, 부정의한 나라 역시 같은 방식으로 부정의한 영혼들의 내적 관계에 상응하여 그 관계가 본래의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에 비례하여 각각 그에 상응하는 부정의한 나라로 전락한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오늘날 최상의 정치체제로 여겨지고 있는 민주정은 본래의 각기 다른 영혼들이 이성 부분의 주도하에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관계에서 최하급의 영혼 즉 물질적 욕구가 주도하는 관계로 전락한 상태 즉 본래의 다양하고도 중층적인 본성 상태에서 벗어나 모든 사람들이 마치 그들 모두가 하나같이 물질적인 욕구만 갖고 태어난 것처럼 여기고 있는 상태에서 채택된 정치체제, 다시 말해 플라톤의 관점에서 보면 궁극적으로는 인간 본성의 고양과 회복을 통해 극복해야 할 정치체제인 것이다.

* 그리고 위에 추가해서 미리 논의해 볼 사안이 있다면 그것은 제8권에서 플라톤이 그리고 있는 나라와 개인의 타락 과정이 실제 정치체제의 역사적 변화와 관련하여 플라톤의 퇴행사적 역사관 내지 그 자신의 비관적인 숙명론을 반영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토인비(A. Toynbee)가 그 대표적인 학자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언급되고 있는 정치체제 변화는 비록 타락하는 한 방향으로 흘러가지만, 그것을 근거로 플라톤이 실제로 정치체제가 그렇게 변화해왔고 변화해 갈 것이라고 여겼다고 이해하는 것은 잘못이다. 이곳에서 서술되고 있는 타락 과정은 원천적으로 정의로운 나라와 부정의한 나라를 서로 비교하여 어느 쪽이 더 행복한지를 판정하기 위한 목적으로 애초부터 상정이 예고된 것이다. 다시 말해 정의로운 나라가 갖고 있는 특성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가장 부정의한 나라가 있다면 그런 나라가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떤 방식으로 어떤 점에서 그러한 나라가 되었는지를 드러낸 후 그 결함들과 나쁜 점들을 근거로 그 나라가 좋음과 행복의 측면에서 정의로운 나라와 결코 비교조차 될 수 없을 정도의 최악의 나라임을 밝히려는 것이다. 한마디로 그것은 논의 목적상 일종의 설명을 위해 채택된 논리적 심리적 귀결 방식에 따라 이르게 된 나라일 뿐 실제 역사적 전개에 대한 기술이 아니다. 실제 현실에서는 그러한 귀결을 이끄는 조건들이 결코 일양적일 수 없고 언제든 달라질 수 있는 한, 그 변화의 실제적 방향과 흐름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플라톤에게 바람직한 방향과 목표는 분명 주어져 있지만, 그것의 도달 여부는 능력에 따른 가능성의 영역이지 필연의 영역이 아니다. 게다가 누구나 다 인정하듯이 플라톤의 <국가>의 근본 주제가 이상적인 나라를 세우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음을 고려하면 오히려 퇴행사적 역사관보다는 절망적인 현실을 딛고 일어서 이상을 향해 나아가려는 진취적인 역사관으로 평가하는 것이 플라톤의 근본 의도에 부합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여러 번 밝혔듯이 플라톤 철학은 경직된 정적인 목적론이 아니라 목적을 행한 분투 어린 노력, 가능적 능력을 확보하기 위한 동적인 함양을 강조하는 역동적 목적론의 성격을 갖고 있다. 말년의 <법률> 또한 가능성 차원에서 현실에 부합하는 최선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한 조건들의 탐색이 주를 이루고 있다. 굳이 실제 역사와 관련지어 생각한다 해도 플라톤이 그린 이상 국가는 아테네 정치사에서 존재한 적도 없거니와 실제 역사적 전개 과정 또한 이곳의 내용과 일치하지 않는다. 물론 타락의 과정을 설명하는 구체적인 문맥에는 플라톤이 살아오면서 겪었던 역사적 경험들이 분명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한 까닭에 플라톤이 제시하고 있는 특정 정치적 변화 국면에 대한 설명들은 실제 일어난 역사적 현상을 이해하는 데 탁월한 통찰력을 제공해주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이곳의 서술과 설명의 초점은 정치체제들의 역사적 변화를 규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정의가 행복임을 증명하려는 애초의 논의 목적에 부합할 수 있도록 정치체제와 인간 본성의 유기적 관계를 철학적으로 해명하는데 모아져 있다. 특히 나중에 밝혀지겠지만 그러한 해명과정에서 인간의 본성과 관련한 개인의 심리 내지 욕망 구조의 변화가 정치체제를 결정하는 중대 변수로 설정되어 있다는 점은 매우 중요한 철학적 의미를 지닌다.

* 이상이 제8권의 논의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전에 미리 염두에 두어야할 몇 가지 사항들이다. 제8권을 살피는 동안 우리는 이러한 사항들이 갖는 철학적 의미를 지속적으로 음미하게 될 것이다. -끝-

 

다음 주제 :

VI 본론 3 : 부정의와 현실 비판 – 현실 국가 분석(제8권-제9권)

 A. 부정의한 나라들과 부정의한 개인들. .

  2. 최우수자 통치로부터 명예정으로 체제 변동 : 명예정과 명예정적인 인간(545C-550C)


 

이규성 철학 연구회 2025년 10월 제20차 정기세미나│『중국현대철학사론』7장. ‘도’의 형이상학과 ‘이사겸중’의 지식론: 김악림(金岳霖)│발제: 인현정 / 토론: 한대석│2025.10.31. [월례발표회•세미나]

-주제: 이규성 선생의 김악림 연구(중국철학사론 7장)
-발제: 인현정 선생님(한철연 회원)|토론: 한대석 선생님(충남대)
-일시: 2025년 10월 31일(금) 오후 4시
-장소: 한철연 세미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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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성 선생이 지은 대작 『중국현대철학사론』 독해도 거의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이번 10월 모임에서 김악림을 다루고 다음 모임에서 장세영을 다루면, 마칠 듯합니다.

이번 모임에서는 중국 현대철학자 김악림(金岳霖, 1895~1984)을 다루고자 합니다.

이규성 선생에 따르면, 그는 중국의 특수성을 반영하는 중국철학과 중국에서 발견되는 철학을 구분했다고 합니다.

중국에서 발견되더라도, 보편성을 지닌 철학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인데, 그에게서 보편적인 것은 ‘ 리적이고 분석적인 것’이라고 합니다. 명료한 진리에 기초하여 논리적으로 전개된 철학이라 분석철학의 이상을 담은 말로 보입니다.

물론 여기서 논리란 형식논리학을 의미합니다.

그는 철학을 보편성과 특수성이 공존하는 것으로 보는데, 철학의 필수 조건은 논리학과 지식론이지만, 특수성은 자기 사회나 시대를 반영하는 윤리와 정치사상을 의미한다고 봅니다. 김악림은 후자의 측면에서는 노자나 장자의 초탈한 삶을 추구했다고 하네요.

그는 청년기 개혁적 자유주의, 윤리적 사회주의에 관심을 가졌으며, 장개석의 파시즘이나 공산당의 지배에 대해서는 반대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역사는 그가 지향하는 것과는 반대로 흘러갔으니, 그는 현실로부터 내적으로 망명한 상태에서 논리와 명료한 진리를 추구하면서 현실적으로는 방관자로서 “권태로운 무심함을 즐겼다”고 합니다.

어떻든, 그가 명료한 진리를 어떻게 논리적으로 전개시켰는지 궁금한데요. 이번 발제는 인현정 선생님이 맡아주셨고, 토론은 충남대 철학과에서 분석철학과 논리학을 연구하는 한대석 선생님이 맡아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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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CCESvI24z3Y

[영상없음] 이규성 철학 연구회 2025년 8월 제19차 정기세미나│『중국현대철학사론』 6장. 동서 ‘융회’와 형식주의 신이학: 풍우란(馮友蘭)-발제: 박영미│2025.08.22. [월례발표회•세미나]

이번 19차 정기세미나는 기술적 문제로 유튜브 영상이 제공되지 않습니다. 양해바랍니다.
세미나 사진과 박영미 선생님의 발제문은 아래 한철연 홈페이지 링크로 접속하여 첨부파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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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규성 철학(사상) 연구회] 제19차 연구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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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동서 ‘융회’와 형식주의 신이학: 풍우란(馮友蘭) (『중국현대철학사론 6장』)
-발제: 박영미 선생님
-일정: 2025년 8월 22일 금요일 오후 4시
-장소: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세미나실(줌 온라인 병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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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차 이규성 선생 사상 모임에서는 이규성 선생님이 지은 중국 현대철학사론 가운데 6장 풍우란 편을 읽고 토론하고자 합니다.
풍우란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중국 현대철학자입니다. 그의 중국현대철학사는 중국철학을 이해하는 안내서로 여겨졌습니다.
그 책 덕분에 한국의 많은 학자들이 풍우란의 사상의 중국철학을 이해하는 방법이나 그 해석하는 관점에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제가 풍우란을 잘 알지 못하지만, 이규성 선생이 쓴 글의 서문을 통해 보면 풍우란은 동서 융회의 관점에 서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송대 이학이 플라톤적 이데아론과 통하는 것으로 보는데, 그런 이데아에 이르는 길은 오히려 논리적 길이라 합니다.
이 논리적 길은 사변적인 방법을 의미하기보다 오히려 논리적 분석을 통해 그 의미를 끊어버리는 회의주의적 방법으로 보입니다.
그런 점에서 천리에 이르는 길은 최종적으로는 선적인 직각을 통한 길입니다.
풍우란은 선적인 직각을 통해 우주와 합일하며 이를 통해 인생의 이상을 세우고 여기서 내적 초월과 외적인 도덕의 합일을 추구했다고 합니다.
풍우란은 이를 바탕으로 사회를 건설함으로써 중국의 제국주의적 침략과 내적인 혼란을 극복하려 하였다는 거죠.
설명 대로면 거의 플라톤적 사유를 빼다 박은 듯이 보이는 데(제가 제대로 이해하는지 모르겠지만),
풍우란의 사상을 통해 이규성 선생이 보여주려고 했던 것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