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학사상연구회의 회원들의 철학적 책읽기

한국철학사상연구회 2025년 가을 제69회 정기학술대회 ‘한국철학의 근현대, 그 전환의 장면들’ [2025 ‘한국철학자연합대회’] 20251025 영상 [월례발표회·세미나]

제69회 정기 학술대회는 2025 [한국철학자연합대회](주제: 기술의 도전, 철학의 응전) 한철연 세션에 한국현대철학분과 발표로 진행하였습니다.

ㅇ주제 : 한국철학의 근현대, 그 전환의 장면들
ㅇ일시 : 2025년 10월 25일(토) 14:30~18:00
ㅇ장소 : 전북대학교 인문대 1호관 213호
ㅇ주관 : 전북대학교 철학과, 범한철학회, (사)한국철학회
ㅇ주최 : (사)한국철학사상연구회

전체 사회 : 이관형(강서대학교)
▷ 개회사 14:30 회장:전호근(경희대학교)

[제1부 전통과 근대를 가로지르는 사유]
*제1발표 14:40~15:15(발표25분,토론10분)
19세기 근대 민중운동에서 ‘민중’의식과 정체성의 변화
발표:진보성(한국방송통신대학교)|토론:김정철(한국국학진흥원)
*제2발표 15:15~15:50
한국철학에서의 ‘근대’ 계승: 1900년대 초 손병희의 동학 계승
발표:박영미(한양대학교)|토론:이병태(한국철학사상연구회)
*제3발표 15:50~16:25
1920년대 『개벽』의 전통사유
발표:윤태양(건국대학교)|토론:배기호(중원대학교)

[제2부 식민과 분단을 넘어서는 철학]
*제4발표 16:30~17:05
조소앙「素昻氣說」의 한국철학적 연원과 독창성 고찰
발표:한송희(성균관대학교)|토론:오주연(건국대학교)
*제5발표 17:05~17:40
북으로 간 철학자들-1950년대 북한 철학연구의 한 장면
발표:박민철(건국대학교)|토론:유현상(한국철학사상연구회)

*종합토론 및 질의 17:40~18:00|좌장:이관형(강서대학교)


개회사 (회장: 전호근)

제1발표 [19세기 근대 민중운동에서 ‘민중’의식과 정체성의 변화]

제2발표 [한국철학에서의 ‘근대’ 계승: 1900년대 초 손병희의 동학 계승]

제3발표 [1920년대 『개벽』의 전통사유]

제4발표 [조소앙「素昻氣說」의 한국철학적 연원과 독창성 고찰]

제5발표 [북으로 간 철학자들-1950년대 북한 철학연구의 한 장면]

종합토론 및 질의|좌장:이관형(강서대학교)


 

한국철학사상연구회 2025년 봄 제68회 정기학술대회 ‘전환의 상상력: 새로운 시대를 위한 철학적 구상’ 20250628 영상 [월례발표회·세미나]

한국철학사상연구회 2025년 봄 제68회 정기학술대회 ‘전환의 상상력: 새로운 시대를 위한 철학적 구상’ 20250628 영상

  • 일시 : 2025년 6월 28일(토) 12시~
  • 장소 : 경희대 청운관 207호

※ 1부 – 1발표와 2부 – 4발표는 영상이 누락되었습니다.

[1부] 사회 : 김은주(서울시립대)
1-발표) 12·3 내란 이후 정치와 언론의 공공성 문제에 대한 단상|발표자 : 이진욱(건국대) 토론자 : 강지은(건국대)
2-발표) 막스 슈티르너의 부활|발표자 : 박종성(건국대) 토론자 : 이병태(경희대)

[2부] 사회 : 박지용(경희대)
3-발표) 쓸모의 몫과 몫의 쓸모|발표자 : 문성원(부산대) 토론자 : 이현재(서울시립대)
4-발표) 극우의 파괴력과 민주공화국의 가치들|발표자 : 연효숙(연세대) 토론자 : 이정은(연세대)
5-발표) 탈노동사회의 도래|발표자 : 이성백(서울시립대) 토론자 : 한상원(충북대)

[3부] 종합토론 – 사회 : 박민철(건국대)


1부 – 2발표 [막스 슈티르너의 부활]

2부 – 3발표 [쓸모의 몫과 몫의 쓸모]

2부 – 5발표 [탈노동사회의 도래]

종합토론


 

이병창 선생님『정신현상학 번역과 주해』출판 기념회 2부 2025.12.26. 영상 [월례발표회·세미나]

이병창 선생님『정신현상학 번역과 주해』(1·2권) 출판 기념회

 

-일시: 2025년 12월 26일 금요일 오후 3시

-장소: 한양대학교 HIT 6층 이십사절기 한양대점

-주관: (사)한국철학사상연구회

 

한철연 이병창 회원(동아대 명예교수)이 헤겔의『정신현상학』을 번역하고 주해를 단 50여 년 헤겔 연구의 결정체를 책으로 출간한 것을 기념하여 저자의 변을 듣고 대담자들을 초빙하여 심도 있는 토론을 나누었다. 한철연 회원 30여 명과 전공자, 학부/대학원생 포함 총 90여 명의 청중이 참석했다.

 

관련기사: [“괴물 같은 정신현상학과 싸우느라 50년이 흘렀다” 신간 이병창의 《정신현상학-번역과 주해》출판 기념회 참석기] https://omn.kr/2gil1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194315)

식순

♦제1부 – 사회: 박지용(한국철학사상연구회)

2:30~3:00 등록

3:00~3:05 개회 선언 및 내빈 소개

3:05~3:20 개회사 및 축사

3:20~3:30 저자 소개 및 출판 경과보고

3:30~3:50 저자 인사말 및 출간 소감

3:50~4:00 꽃다발 증정 및 케이크 커팅식

4:00~4:10 기념촬영

4:10~4:30 휴식

♦제2부 저자와의 대담

좌장: 박정하(한국철학사상연구회 / 한국철학회 회장)

4:30~4:35 대담자 및 진행방법 소개 (대담자: 연효숙, 이정은, 이종철, 최일규)

5:35~6:00 청중과의 질의응답

♦제3부 기념 만찬

6:00~7:30

유튜브 링크 : https://youtu.be/o-JVgtuI3Hk?si=FjFc9Rgk1UMXGam-


이병창 선생님『정신현상학 번역과 주해』출판 기념회 1부 2025.12.26. 영상 [월례발표회·세미나]

이병창 선생님『정신현상학 번역과 주해』(1·2권) 출판 기념회

 

-일시: 2025년 12월 26일 금요일 오후 3시

-장소: 한양대학교 HIT 6층 이십사절기 한양대점

-주관: (사)한국철학사상연구회

 

한철연 이병창 회원(동아대 명예교수)이 헤겔의『정신현상학』을 번역하고 주해를 단 50여 년 헤겔 연구의 결정체를 책으로 출간한 것을 기념하여 저자의 변을 듣고 대담자들을 초빙하여 심도 있는 토론을 나누었다. 한철연 회원 30여 명과 전공자, 학부/대학원생 포함 총 90여 명의 청중이 참석했다.

 

관련기사: [“괴물 같은 정신현상학과 싸우느라 50년이 흘렀다” 신간 이병창의 《정신현상학-번역과 주해》출판 기념회 참석기] https://omn.kr/2gil1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194315)

식순

♦제1부 – 사회: 박지용(한국철학사상연구회)

2:30~3:00 등록

3:00~3:05 개회 선언 및 내빈 소개

3:05~3:20 개회사 및 축사

3:20~3:30 저자 소개 및 출판 경과보고

3:30~3:50 저자 인사말 및 출간 소감

3:50~4:00 꽃다발 증정 및 케이크 커팅식

4:00~4:10 기념촬영

4:10~4:30 휴식

♦제2부 저자와의 대담

좌장: 박정하(한국철학사상연구회 / 한국철학회 회장)

4:30~4:35 대담자 및 진행방법 소개 (대담자: 연효숙, 이정은, 이종철, 최일규)

5:35~6:00 청중과의 질의응답

♦제3부 기념 만찬

6:00~7:30

유튜브 링크 : https://youtu.be/tuA54HCdn-E?si=YPCDNCOhDjDOhXcc


플라톤의 <국가> 강해(79) [이정호 교수와 함께하는 플라톤의 『국가』]

플라톤의 <국가> 강해(79)

 

VI 본론 3 : 부정의와 현실 비판 – 현실 국가 분석(제8권-제9권) 

A. 부정의한 나라들과 부정의한 개인들.

2. 최우수자 통치로부터 명예정으로 체제 변동 : 명예정과 명예정적인 인간(545c-550c)

 

[545c-548d]

* 소크라테스는 최선자정ἀριστοκρατία에서 명예정τιμοκρατία으로의 변화μεταβάλλει는 다스리는 자리에 있는 자들τὰς ἀρχάς 안에서 내분στάσις이 일어날 때 생긴다고 말한다. 그런 다음 소크라테스는 보조자들οἱ ἐπίκουροι과 통치자들οἱ ἄρχοντες이 어떻게 내분에 휩싸이게 되었는지를 호메로스가 그랬듯이, 무사 여신의 입을 빌려 아래와 같이 말한다.

* “최초 구성된 나라는 변하기가 어렵지만 생성된 모든 것들은 사멸φθορά하기 마련이어서 모든 시간 동안 머물러 있지 못하고 해체된다. 생명을 갖는 것들에는 각기 순환περιφορά주기가 있어서 영혼과 몸이 결실 또는 불모의 상태가 될 때가 있다. 그래서 나라의 지도자가 감각αἴσθησις을 수반한 계산λογισμός에서 출산의 적기와 불모의 시기를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경우 아이가 태어나선 안 되는 때에 아이들이 태어난다. 해체λύσις는 그렇게 해서 시작된다. … 순환 주기와 관련한 수들에 관한 이야기(생략) … 이와 같은 기하학적 수 전체가 우수한 출생과 열등한 출생을 좌우하는데 그대들의 수호자들이 이에 대해 무지해서 적절하지 않은 때에 신부와 신랑을 맺어 줌에 따라 수호자 자격이 없는 자들이 태어난다. 이후 그들이 아버지의 권력을 이어받게 되면 이들은 수호자로서 시가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신체 단련도 소홀히 한다.(546d) 이들 가운데에서 통치자들이 선발되고 그들은 헤시오도스의 종족은 물론 인간들 중 금족γένη χρυσοῦν, 은족γένη ἀργυροῦν, 청동족γένη χαλκοῦν, 철족γένη σιδηροῦν을 제대로 가려내지 못해(546e-547a) 결국 철과 은, 청동과 금이 섞임으로써 조화가 깨지고ἀνάρμοστος 불일치ἀνομοιότης와 변칙ἀνωμαλία이 발생한다. 이렇게 해서 전쟁πόλεμος과 적대ἔχθρα가 생겨나고 내분이 초래된다. 내분이 발생하면 저 종족γένος들은 둘씩 짝지어 철과 청동의 종족은 돈벌이와 땅, 집, 금은을 소유κτῆσις하는 쪽으로 나라를 끌어당기고εἱλκέτην, 금과 은의 종족은 영혼이 아직 부유하기에 덕ἀρετῆ과 원래의 체제κατάστασις 쪽으로 끌어당긴다. 이들은 이렇게 서로 격렬하게 맞서 싸우다 결국 그 중간에서 합의를 하여 땅과 집은 분배하여 사유화ἰδιώσασθαι하고 전에는 자유인 친구이자 부양인τροφεύς으로서 이들에게 수호φυλακή를 받았던 자들을 노예로 만들어 외거περίοικος노비나 가내노비οἰκέτης로 삼아 저들을 지키는 일과 전쟁을 도맡게 한다.”(545c-547b)

* 위와 같이 소크라테스는 이상국가 해체의 발단과 관련한 무사 여신의 이야기를 소개한 다음 그렇게 해서 등장하게 된 체제에 관해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먼저 이 정치체제 πολιτεία는 최선자정과 과두정 ὀλιγαρχία의 중간에ἐν μέσῳ 있는 정치체제이다. 이런 까닭에 일부는 앞선 정치체제를, 일부는 과두정을 모방하면서 명예정 자체의 고유한 특성을 드러낸다.(547c) 통치자들을 존중하고 전사 집단τὸ προπολεμοῦν을 농사γεωργία나 수공예χειροτεχνία 그 밖의 다른 돈벌이χρηματισμός들로부터 떼어놓는 일 그리고 공동식사συσσιτία를 하며 신체 단련과 전투 훈련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 등은 앞선 정치체제를 모방한 것이다.(547d) 그러나 이 체제의 통치자들은 더 이상 단순하고ἁπλόος 강직한ἀτενής 자들이 아니라 섞인μικτός 자들이어서, 지혜로운 자들을 통치자로 선임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본성상 평화εἰρήνη보다는 전쟁에 관심을 두는 사람들을 선호하며.(547e) 전쟁에 관한 계략과 전술들을 중히 여기고 온 시간을 전쟁을 수행하는데 보낸다. 이것이 이 체제의 고유한 특성이다.

* 그리고 한편 이 사람들은 과두정 하의 사람들처럼, 재물χρήματα에도 욕심이 있어서 어둠 속에서 금과 은을 모아 그것들을 숨겨 놓을 보관소ταμιεῖον와 집안 금고θησαυρός를 만들어 사적인 둥지νεοσσιά로 삼는다(548a) 그리고 그 안에서 여인들은 아무렇게 아무 곳에든 재물을 써대며 낭비한다.δαπανῷντο. 그러나 그들은 재물을 드러내놓고φανερῶς 모으지는 못하기 때문에 재물에 인색하지만, 욕망은 있어서 남의 것 쓰기를 좋아하고 마치 아버지를 피해 달아나는 아들처럼 법을 피해가며 은밀히 쾌락ἡδονή을 누리고 논변λόγος과 철학을 멀리하며(548b) 시가μουσική보다 신체단련γυμναστική을 훨씬 소중히 여긴다. 설득πειθός이 아닌 강압βία에 의한 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이다.(548c)

* 소크라테스는 명예정이 나쁜κακός 것과 좋은ἀγαθός 것이 섞여 있는 정치체제라는 글라우콘의 말에 동의하면서도 그 체제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을 기개θυμοειδής부분의 지배에 따른 승리와 명예에 대한 사랑φιλονικία καὶ φιλοτιμία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타락한 정치체제들에 대한 이곳의 논의가 그 체제의 형태들과 성품ἦθος을 남김없이 하나하나 정확하게 그려내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가장 정의로운 사람과 가장 부정의한 사람을 알아보기 위한 밑그림ὑπογραφή을 그리는 데 있음을 다시 한번 재확인한다.(548c-d)

 

[548d-550c]

* 그런 연후 소크라테스는 이제 이러한 정치체제에 상응하는 사람에 대해서 언급한다. 이때 아데이만토스는 승리에 대한 사랑에 관한 한, 글라우콘이 그에 가까운 사람이라고 말한다.(548d)이에 소크라테스는 승리에 대한 사랑에 관한 한은 그럴지 모르지만 명예정적인 사람의 특징에는 그 밖에 다른 점이 많이 있다고 말한다. 우선 명예정적인 사람은 고집이 상당히 센αὐθαδέστερον 사람이고 시가를 사랑하나 시가에 뒤처져 있으며 듣기를 좋아하긴φιλήκους 하지만 결코 연설가ῥητορικός는 아니라고 말한다.(548e) 그리고 이어서 그들은 노예δοῦλος를 그저 무시하는 정도가 아니라 험하게ἄγριος 다루는 반면 자유인ἐλεύθερος들에게는 온순하고 통치자들에게 극히 순종적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그들이 다스리기를 좋아하고φίλαρχος 명예를 사랑하지만, 전쟁과 관련해서만 그럴 뿐임을 덧붙인다. 게다가 그들은 젊어서는 재물을 무시하겠지만(549a)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점점 더 재물을 반기고ἀσπάζοιτο 사랑하는 본성도 갖게 된다. 이성λόγος을 가진 자만이 평생토록 덕의 보존σωτὴρ ἀρετῆς이 가능함에도 그는 덕을 지키는 최상의 수호자로서 이성을 결여하고 있는 것이다.(549b)

* 그런 다음 소크라테스는 명예정적인 사람을 잘 다스려지지 못하는 나라에서 사는 좋은 아버지의 어린 아들υἱός에 비유하여 아래와 같이 말한다. 그의 아버지는 나라가 제 길을 벗어나자 명예나 관직은 물론 소송δίκη 같은 일에 관여하기를 피하고 번거로운 일을 피해 자신을 낮추며 살고 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가 통치에서 비켜선 그런 남편 때문에 다른 여자들 사이에서 얕보여 화가 나있고(549c) 재물χρήματα이나 이익을 둘러싼 법정δικαστήριον 다툼에 무관심하고 그녀를 딱히 존중하지도 무시하지도 않는 것에 성질이 나서 아들에게 아버지가 남자답지 못하고 너무도 안이하다고 불평을 늘어놓는다.(549d) 그리고 집안의 하인οἰκέτης들도 때때로 그런 이야기를 몰래λάθρᾳ 아들에게 하면서 어른이 되면 돈을 빚졌거나 무슨 다른 부당한 짓을 한 자들에게 복수하고 아버지보다 더 남자다운 남자가 되라고 부추긴다.(549e) 한편 이 아들은 집 밖에 나가 자기의 일보다 남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존중받고 칭찬받는 것도 듣고 아버지 이야기도 들으면서 영혼의 이성부분τὸ λογιστικὸν에 물을 주고 자라게 하는 아버지에 이끌리기도 하고 또 욕구부분τό ἐπιθυμητικὸν과 기개부분τὸ θυμοειδές을 자라게 하는 다른 사람들에 이끌리기도 한다.(550a) 그는 본성φύσις이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이렇게 이 양쪽에 의해 이끌리다가 결국 자기 자신 안의 지배권ἀρχή을 중간의 것, 즉 승리를 사랑하는 기개부분에게 넘겨서 기상이 넘치고ὑψηλόφρων 명예를 사랑하는 사람이 된다.(550b)

——————————

* 546b-c ‘주기와 관련한 수들’ : 제법 길게(546b-c) 다루어지고 있는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은 정암학당 역본(2026년 2월 출간 예정)과 박종현 역본의 각주에 자세한 설명이 제시되어 있으므로 이곳에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 546e ‘헤시오도스의 종족과 금족, 은족, 청동족, 철족’ : 415a-b 참고

——————————–

* 플라톤은 무사 여신의 말을 빌려 생성된 모든 것들은 사멸하듯 최초 구성된 나라도 해체하며 동식물 모두 각기 생산과 불모에서 순환periphora주기가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무사 여신의 이 말이 나라의 해체가 순환 주기를 갖고 이루어진다는 것으로 읽히면 안 된다. 나라의 해체는 순환 주기를 갖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라의 지도자가 자연적 질서로서 그 순환 주기를 제대로 포착하지 못함에 따라 일어난다. 우주는 천체들이 그러하고 계절이 그러하듯 정해진 순환 주기가 있고 그에 따라 자연에 기대 살아가는 생명체들은 모두 그 순환 주기에 딱 맞는 때 즉 적기kairos에 맞추어 살아야 한다. 나라와 개인의 해체는 이러한 적도와 적기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놓치는 데서 시작한다.

* 이상 국가의 해체과정을 담고 있는 제8권의 논의는 앞서 살폈듯이 행복의 관점에서 정의로운 나라(개인)와 부정의한 나라(개인)를 비교하려는 애초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제기된 밑그림hypographē(548c-d)이다. 다시 말해 부정의한 나라가 어떤 점에서 어떤 결함을 더해가면서 정의로운 나라와 비교조차 불가할 정도로 행복과 정반대의 위치에 자리하게 되는지를 극명하게 드러내기 위한 일종의 방편적 논의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도 이상 국가의 해체 과정은 정치체제의 역사적 변화과정을 그린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비교의 목적상 이상 국가의 결함이 발생한다면 어떻게 발생하고 점점 더 그러한 결함이 더하는 경우 단계적으로 어떤 정치체제들이 나타나게 되고 그것에 비례하여 어떤 불행들이 심도를 더하는지에 대한 논리적·심리적 귀결을 기술한 것이다.

* 사실 이론적 측면에서만 보면 철학자 왕이 통치하는 이상국가는 말 그대로 이상적인 통치자가 지배하는 한, 해체될 가능성이 없다. 플라톤도 이곳에서 통치자들이 철학자로서 자질을 하나같이 견지하는 한 비록 그들의 수가 아무리 적더라도 정치체제는 변하지 않는다고 말한다.(545d) 실제 그가 제시한 이상국가에서는 설사 어느 철학자 왕이 통치 업무에 실수를 저지를지라도 다른 여러 철학자 왕들이 돌아가며 통치를 맡아 얼마든지 실수는 수정 극복될 수 있다. 그리고 전사와 생산자 계층에서 문제가 생길 경우에도 통치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는 한, 그 또한 수정 극복될 수 있다. 그럼에도 플라톤은 이곳에서 무사 여신의 입을 빌려 이상 국가가 해체될 수 있는 가능성을 언급한다. 비록 쉽게 일어나는 일은 아니지만, 철학자 왕들 가운데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점차 다수가 되면 결국 철학자들 즉 통치자들 간에 내분이 일어나 나라는 쇠락의 길로 접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 그렇다면 이상국가에서 철학자 왕들의 통치 수행 능력상의 결함은 또 어떻게 생겨난다는 것일까? 이 역시 무사 여신의 이야기를 토대로 음미하면 아래와 같을 것이다. 통치자의 임무는 무엇보다 나라를 수호하는 일에 더해 자신과 같은 통치자를 길러내는 일이다. 그리고 이 일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선 통치자로서 자질을 갖춘 아이들이 태어나야 한다. 그런데 아이들의 태생을 관장하는 통치자가 사멸하는 존재인 한 신적인 출생의 주기에 따른 출산의 적기와 불모의 시기를 제 때에 맞추지 못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고 그러한 경우 자질이 부족한 아이들이 태어나고 이들은 자라면서 그만큼 시가와 체육 단련에도 소홀하여 수호자로서 능력을 온전히 갖추지 못한다. 이런 일들은 후계로 갈수록 더욱 심화되고 그만큼 통치자들 간 조화가 깨지고 불일치와 변칙이 생겨나면서 결국 나라는 전쟁과 내분에 휩싸이게 된다. 요컨대 무사 여신의 설명대로라면 통치자의 출산 적기와 관련한 이성적 계산 능력의 결핍으로 인해 제대로 된 자질을 가진 아이들이 태어나지 못하는 일이 거듭되면서 이상 국가의 해체가 초래되었다는 것이다.

* 그런데 무사 여신의 입을 통해 제시된 이상 국가 해체 배경과 관련한 플라톤의 설명은 앞서 그가 앞서 펼친 이상국가론과 비교해 볼 때 여러 점에서 앞뒤가 맞지 않는다. 우선 이상 국가 해체의 근본 원인을 출산 적기와 관련한 통치자의 이성적 계산 착오에서 찾는 것부터 수긍이 되지 않는다. 물론 통치자가 계산 착오를 범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생성물 일반의 근원적 사멸성에서 찾는 것은 받아들일 만하다. 그러나 인물로서 어떤 아이의 잘못된 태생이 제도로서 정치체제의 해체로 곧바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후계 출산을 위한 통치자의 계산 착오가 간단없이 지속적으로 반복된다면 정치체제의 결함 내지 해체는 필연적일 수 있다. 그러나 이곳 이상 국가는 한 사람의 철학자 왕이 권력을 독점하여 임의로 권력을 좌지우지하는 것도 아니고 수호자 태생이라고 해서 아무나 다 권력을 세습할 수 있는 체제도 아니다. 이곳 이상 국가는 다수의 철학자 왕들이 돌아가며 통치를 하는 체제이고 그들 모두 각고의 노력과 검증을 통과한 사람들임을 고려하면 설령 일시적 실수는 있을지 몰라도 모두가 그것도 지속적으로 능력 결핍 상태에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러한 한, 통치자들이 출산 적기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일이 반복해서 지속적으로 일어날 수 없으며 앞서 언급했듯이 설사 일시적 착오가 있더라도 그것은 다른 철학자 왕들에 의해 언제라도 수정 극복될 수 있다. 그리고 수호자의 자식들이라고 해서 모두가 통치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금족으로 태어났다고 해도 선발과정에서 능력이 검증되지 않으면 퇴출될 수 있고 은족으로 태어났다 해도 선발과정에서 출중한 능력이 발견되면 수호자가 될 수 있다. 50세에 이르러 좋음의 형상들을 본 철학자들 다수로 구성된 통치자 계층 대다수가 앞서 살폈듯이 일거에 지속적으로 능력 결핍 상태에 있을 가능성 또한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통치자로서 임명되는 근거 또한 그가 단순히 혈통 때문이 아니라 철저한 교육과 선발과정을 거쳐 진정한 철학자로서 자질을 검증받았기 때문이다. 무사 여신이 언급하고 있는 통치 권력의 계승은 마치 세습 군주정처럼 통치 능력과 무관하게 특정 통치자가 순전히 혈통에 의해서만 특정 통치자에게 권력을 세습할 경우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이곳 철학자왕정은 일인 세습 군주정이 아니다. 비록 이상 국가의 권력 계승은 수호자의 후손들에 제한되어 있을지라도 어느 특정인에게 세습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호자들 가운데 최상의 기준으로 선발된 철학자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진다. 아무리 우생학적 관점이 중요하더라도 이상 국가 해체의 발단과 관련한 이곳의 내용은 <국가>에서 플라톤 자신 그토록 강조한 교육의 중요성을 지나칠 정도로 무시하고 있다.

* 한편 이곳에서 무사 여신의 입으로 제시되고 있는 우주의 자연적 주기와 관련한 수에 관한 언급들은 기본적으로 통치자들에게서 수학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특히 그 수들은 모두 사람의 임신과 태생의 적기는 물론 우주 자연의 주기적 순환과 규칙을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조화와 질서를 강조하는 플라톤 우주론과도 잘 부합한다. 그러나 장황할 정도로 길게 나열된 그 수식들과 그것이 포함하는 난해성은 달리 보면 수학에 뛰어난 발군의 통치자일지라도 계산에 완전할 수 없음을 보여주기 위한 수사적 장치일 수도 있다. 사실 이상 국가의 해체를 설명하기 위해 굳이 정밀성과 거리가 먼 신화적 이야기를 끌어들여 복잡한 수식을 늘어놓는 것부터 이미 어색하다. 게다가 내용에서도 역술가처럼 태생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인 양 결론 내리고 있는 것 또한 플라톤답지 못하다. 이로 미루어 짐작컨대 이상 국가의 해체가 자신의 기존 주장과 배치된다는 것을 플라톤 자신 이미 의식하고 있다. 사실 이상국가는 이곳에서 논의의 방편상 해체 하강의 방향으로 그려지고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나쁜 정치체제들에 대한 경험들을 토대로 그것의 극복을 위해 구축한 상승 형성 과정의 최종 도착지이다. 그러나 플라톤은 이제 논의의 목적과 구도 상 이상국가의 해체를 논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플라톤이 최소한 해체의 발단에 관한 한, 자신이 아닌 무사 여신들을 끌어들여 말하는 것도 이러한 사정 때문이었을 것이다

* 어쨌거나 일단 이상국가의 해체가 통치계층의 내분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통치 기능의 마비가 발생했다는 것이고 그것은 이상국가를 구성하는 세계층간의 본성에 따른 조화로운 의존적 분업관계가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세 계층 간의 조화가 갖는 유기성을 고려하면, 한 계층 특히 통치를 담당하는 계층의 내분은 필연적으로 나머지 계층에까지 영향을 미쳐 그들의 직분에 따른 본래 역할에도 금을 가게 만든다. 플라톤의 말 그대로 조화가 깨지고 불일치와 변칙이 발생하는 것이다.(547a) 통치자 계층의 내분을 별 설명 없이 바로 이어서 보조자들과 통치자들 간의 내분으로 확대해서 말하는 것도(545d) 그 때문이다. 이러한 부조화, 불일치와 변칙은 내용적으로 그들의 본래적인 직분과 역할에 대한 변화로 나타난다. 통치 계층의 이성에 따른 통치 기능이 쇠락하면서 전사 계층의 기개가 점차 그 자리를 차지하고 그만큼 전사 계층의 직분이 흔들리게 되면서 통치 계층에 대한 전사 계층의 의심이 싹튼다. 이러한 의심은 전사 계층의 전에 없던 통치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결국 통치계층과 전사 계층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통치 권력을 두고 두 계층 간의 적대적인 투쟁이 야기된다. 그리고 이들 사이의 권력 투쟁은 이미 그들 자신이 갖고 있었던 최소한의 이성적 영혼과 명예 및 기개의 손상은 물론 통합의 원리로서 절제의 정신까지 훼손하여 생산자 계층에게만 고유했던 물질에 대한 사적 소유욕에까지 확장되어 결국은 생산자들의 사유재산을 권력의 힘으로 착취하는 단계에 이른다. 이러한 타락상 일반이 이른바 이상 국가의 해체과정에서 맞이하는 첫 번째 단계로서 명예정timokratia이다.

* 이 체제의 명칭이 명예정인 것은 이상국가에서 이성 기능이 쇠락하면서 공동식사와 신체단련, 그리고 전사다운 기개와 명예가 일정부분 존중되고 있다는 점에서(547d) 붙여진 것이다. 그러나 명예정이 이상적 철인왕정에서 과두정으로 타락해가는 중간 과정에 있는 정치체제임을 염두에 두면 나중으로 갈수록 최소한 허울로서 유지하던 명예조차 헌신짝처럼 내팽개쳐지는 지경에 이르고 결국 오로지 물질적 욕망에 눈이 먼 금권정으로서 과두정과 별반 다름없는 정치체제로 전락한다. 지성이 결여한 맹목적 충성과 명예욕이 맞이하는 필연적 귀결이다. 다만 명예정이 과두정과 다른 것은 국가의 세 계층이 허울뿐이나 명목상 유지되고 있고 탐욕도 아직은 덜 노골화되어 있다는 점이다.(547d) 그러나 내용에서는 이미 권력이 사유재산욕을 증대하는 수단으로 전락한 이상 생산자 계층에 대한 수호는 말만 수호일 뿐 실제로는 보다 효율적인 착취를 위한 통제와 감시로 변질되어 본래의 상호 의존관계가 아닌 주인과 노예의 관계로 변모한다. 그리고 수호자들은 본성상 평화보다는 전쟁을 선호하는 까닭에 지혜로운 자들을 배제한 상태에서 자신들의 금고를 지키기 위해 하루가 멀게 전쟁을 일삼는다.(547a) 수호자들에 대한 생산자 계층의 불만이 쌓여가고 그에 따라 생산자들에게서 통치에 대한 관심마저 들어서기 시작하는 것도 이때이다. 금은이 섞이고 은동이 섞인 다음 그 둘이 다시 섞여 모두가 비슷한 성질로 변해간다. 이상 국가의 근본 원리로서 본성에 따른 다양한 욕망들의 분업적 공존은 무너지고 계층 간 욕망구조의 변화 즉 욕망의 등질화가 이미 명예정 단계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547e)

* 이상국가의 명예정에로의 타락과정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이상국가의 통치기능의 마비에 따라 생산자 계층만이 누렸던 사유재산에 대한 욕망이 통치자와 보조자들 일반 즉 수호자 계층에까지 확대되었다는 점이다. 사실 물질적 욕망이 선도하는 사적인 탐욕은 제1권에서 등장한 트라쉬마코스의 주장의 핵심을 이루는 것으로서 플라톤이 이상 국가를 통해 극복해야 할 가장 강력한 안티테제를 구성한다. 게다가 그러한 강력한 장애가 이상국가의 해체과정을 논의하는 첫 단계에서부터 등장했다는 것은 나라가 타락을 더해갈수록 그러한 장애 또한 더욱 강력해질 것임을 함께 고려할 때 나라의 최고 권력을 손아귀에 쥔 자들에게 사적 소유가 얼마나 위험천만한 근원적 해악인지 그리고 그것을 뿌리 뽑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플라톤 자신 뼛속 깊이 통감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 명예정은 앞서 살폈듯이 이후의 타락한 정치체제들과 달리 기존의 타락한 정치체제로부터가 아닌 철학자 왕정이라는 바람직한 정치체제로부터 나온 정치체제이다. 그래서 명예정이 갖는 중간적 성격과 양면성에는 명예정이 지니는 일부 바람직한 측면이 포함되어 있다. 이를테면 군인다운 기개와 명예, 질서와 규율을 중시하고 신체 단련에 열심을 보이며 충성심도 강하다. 플라톤이 명예정의 대표적인 사례로 스파르타를 들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종종 플라톤의 이상 국가가 스파르타를 모델로 했다고 말하곤 하지만 플라톤이 명예정을 타락한 정치체제의 하나로 분류하고 있다는 사실에서부터 이미 그 말은 진실이 아니다. 다만 명예정으로서 스파르타 정치체제가 지니는 양면적 특성 가운데 수호자가 갖추어야 할 자질이 포함되어 있을 뿐이다. 스파르타에 대한 플라톤의 긍정적인 평가는 거기까지이다. 스파르타는 철학자 왕정과 달리 이성의 지위를 군사조직과 전략의 하녀로 끌어내렸을 뿐만 아니라 신민을 노예로 여겨 수호의 대상이 아닌 엄혹한 통제와 감시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야말로 군국주의 국가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러한 강압에 의한 결속과 비자발적인 절제는 쾌락과 금전의 유혹에 노출되면서 너무도 쉽게 무너져 내렸다. 그들이 그토록 동경하던 누구도 넘볼 수 없을 정도의 국가조직의 강력함과 단합된 삶의 방식은 이성의 원리가 결여할 때 오히려 그 반대의 길로 간다는 것을 그들은 깨닫지 못했다. 플라톤은 물론이고 아리스토텔레스까지 일찍이 이러한 점들을 충분할 정도로 간파하고 있었다.(플라톤 <법률> 633b,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1333b 참고)

* 플라톤은 이제 논의 계획에 따라 명예정의 나라를 논한 다음에 그에 상응하는 명예정적인 인간에 대해 언급한다. 명예정적인 인간은 명예정이 철학자왕정과 과두정 중간에 있는 것처럼 성격 또한 양쪽에 걸쳐 있다. 시가를 사랑하지만 뒤처지고 통치자에게는 순종적이지만 노예들에게는 가혹하다. 그리고 젊어서는 재물을 무시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그것을 반가워한다. 플라톤은 이런 사람을 잘 다스려지지 못하는 나라에 사는 좋은 아버지의 아들로 비유한다. 아버지는 잘못된 나라에서 명예나 관직을 맡기를 피하고 소송도 관여하지 않을 정도로 나름 염치가 있고 겸손한 이른바 좋은 사람이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관직이나 재물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남편 때문에 다른 여자들 사이에서 얕보이고 있음을 참지 못할 정도로 허영에 절어 있어 남편을 남자답지 못하고 안이한 사람으로 못마땅하게 여기고 틈만 나면 아들에게 장차 아버지 같은 사람이 되어선 안 된다고 가르친다. 그리고 집안의 하인들조차 이 아들에게 아버지처럼 나약한 사람이 되지 말 것을 선의의 충고인 양 수시로 던져댄다. 이들 어머니와 하인들은 오로지 타인의 시선과 인정에 기대어 삶의 만족을 느낄 뿐 내적 자부심의 토대로서 그 자체로 좋은 것에 대한 어떤 인식도 이해도 갖고 있지 않다. 이에 따라 아들은 아버지와 이들 사이에서 때론 이성 부분 쪽으로 때론 욕구 부분 쪽으로 이끌리다가 결국 자기 사신의 안의 지배권을 중간의 것 즉 승리를 사랑하는 기개 부분에 넘겨 이른바 명예정적인 인간이 된다.(550b)

* 앞에서 플라톤은 명예정의 나라를 다루면서 주로 나쁜 쪽에 비중을 두어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 이곳 명예정적인 인간을 다루면서는 아버지의 아들이 어떻게 양면적인 성격을 갖게 되었는가에 대해서만 언급하고 있을 뿐 그 후 어떤 심리적 변화과정을 거쳐 어떻게 물질적 탐욕에 휩싸여 과두정적인 인간에로까지 타락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별다른 언급이 없다. 물론 이상국가의 유기체적 성격상 통치기능의 마비가 세 계층 모두에 두루 영향을 미쳐 결국은 세 계층의 분업적 공존과 조화를 깨트리는 근본 원인이 되고 끝내는 생산자 계층에 대한 착취로까지 이어졌음을 고려하면 명예정적인 인간 또한 이미 영혼의 이성 부분이 마비되면서 세 부분의 영혼들 간의 조화가 무너지고 결국은 물질적 욕구 부분이 지배하는 인간으로 변모하게 될 것임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국가>가 소문자로서 개인을 잘 들여다보기 위해 대문자로서 나라를 먼저 살피는 방식을 취하고 있음을 고려하면 어쨌거나 개인에 대한 고찰이 논의의 중심을 이루고 분량 또한 더 많을 것이라 예상하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러나 실제 내용을 들여다보면 분량에서건 비중에서건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플라톤은 대문자를 들여다보는 일에 크게 치우쳐 있다. 이 점은 <국가>의 근본 관심 내지 주제를 형식적인 논의 구도만을 토대로 영혼론 내지 도덕 심리학에 있다고 주장하는 일부 학자들의 견해가 그다지 설득력이 없음을 보여준다. 아무려나 플라톤의 정치철학이 외적인 나라의 경영과 개인의 내적 영혼의 관리를 불가분의 것으로 전제하고 성립하는 한, 그 양쪽 가운데 어느 한쪽의 관점만으로 <국가>의 전모나 특징을 이해할 수 있다는 주장은 이미 그 자체로 한계가 있다.

* 플라톤의 이상국가는 우리가 살펴왔듯이 서로 다른 본성을 가진 사람들이 각자 자신에게 고유한 소질에 맞는 직분을 택해 자신의 욕망을 마음껏 구현하면서 서로 조화롭게 공존하는 나라이다. 그리고 그것이 플라톤이 말하는 정의의 본질 즉 분업적 공존의 틀 안에서 각자의 본성에 맞는 자기다움을 실현하고 그것을 통해 자신과 공동체의 행복을 함께 누리는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옆에는 언제라도 이성을 무너뜨릴 기세로 이기적 탐욕이 자리하고 있다. 물론 플라톤의 이상 국가는 인간의 본성에 기초한 다양한 욕망을 모두가 함께 구현할 수 있는 방식을 통해 이러한 이기적 탐욕이 자라날 수 있는 여지를 최소화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장치를 구비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나라가 단순한 소망이 아니라 실질적인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토대 또한 인간의 본성이 지니는 근원적 다양성과 그것의 상호 의존성에 대한 믿음을 통해 굳건하게 확보되어 있다. 그러나 이곳 제8권의 이상국가의 해체과정을 보면 인간 본성에 관한 플라톤의 믿음은 철학자들에서조차 마치 살얼음 위를 걷듯 위태로워 보인다. 이미 플라톤 자신 해체의 첫 단계에서부터 이기적 탐욕이 언제라도 이성의 통제를 흔들어 놓을 수 있을 정도로 위협적이라는 것을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러하다 보니 제8권에 들어와선 나라와 개인의 통치 원리로서 이성의 지배가 철학자들을 포함해서 나머지 대다수 사람의 본성에서 어떤 방식으로건 과연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정말 인간의 본성으로 가능키나 한 것인지 의심마저 든다. 게다가 플라톤은 제8권의 논의에서 우리의 그러한 의심을 더욱 크게 만들 정도로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의 정치체제로 거침없이 우리를 몰아간다. 그러나 제8권에서 우리가 느끼는 이러한 혼란 또한 장차 부정의에 대한 정의의 극적인 비교 우위를 드러내기 위해 주도면밀하게 준비된 계획의 일부이자 밑그림인 것이다.(548c-d)  플라톤은 제8권을 포함해서 <국가> 전체의 논의를 통해 정의로운 국가를 세우고 지켜가는 것이 매우 어렵고 힘든 일 지라도 결코 그것을 향한 뜨거운 열망마저 포기되어선 안 된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위해 이성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토대로 모멸의 현실을 딛고 일어나 불굴의 의지로 철학을 통한 영혼의 자기 고양과 이론적 실천적 투쟁을 하나같이 이어가야 한다는 것을 시종일관 강조하고 있다. 플라톤의 이상국가론은 정의로운 국가의 현실 구현을 철학의 힘으로 앞당기고 좀 더 강건하게 견인하기 위한 이념적 지표이자 어떠한 위협에도 결코 와해되지 않을 사상 투쟁의 굳건한 기반이다.  정의는 결코 강자의 이익이 아니다. -끝-

 

다음 주제 : VI 본론 3 : 부정의와 현실 비판 – 현실 국가 분석(제8권-제9권) 

A. 부정의한 나라들과 부정의한 개인들.

3. 과두정과 과두정적인 인간(550c-555b)

플라톤의 <국가> 강해(78) [이정호 교수와 함께하는 플라톤의 『국가』]

플라톤의 <국가> 강해(78)

 

VI. 본론 3 : 부정의와 현실 비판 – 현실 국가 분석(제8권-제9권)

 A. 부정의한 나라들과 부정의한 개인들.

  1. 도입부 : 원래 문제로 복귀. 고찰의 방법과 순서(제8권 543a-545c)

 

* 소크라테스는 말로 세운 정의로운 나라와 사람에 대한 논의를 마친 후 제5권에 들어와 애초의 논의 목적 즉 정의와 부정의 중 어느 것이 진정 행복을 가져다주는지를 비교 판정하기 위해 부정의한 나라와 사람을 다루려고 한다. 그러나 글라우콘과 아데이만토스가 끼어들어 그러한 논의에 들어가기 전에 우선 앞서 말로 세운 나라에서 처자 공유에 관해 갖고 있던 자신들의 의문부터 해명해 줄 것을 요구한다. 이에 소크라테스는 마지못해 그들의 요구에 응하게 되면서 제5권부터 논의는 애초의 계획에서 벗어나 처자 공유가 필요하고 가능할 수 있는 조건들로서 철학자와 철학자 왕정 그리고 그들을 위한 교육과정에 대한 논의가 다루어진다. 일탈의 형식으로 진행된 위와 같은 논의가 제7권 말미에서 모두 마무리되자 소크라테스는 이제 애초의 계획에 따라 다루려고 했던 주제 즉 부정의한 나라와 사람에 대한 문제를 다시 꺼내든다. 이렇게 제8권은 주제 상 제7권이 아닌 제4권을 이어받는 것으로 시작한다.

 

[543a-545c]

* 소크라테스는 여인γυνή들과 아이παῖς들의 공유κοινός는 물론 모든 교육παιδεία과 전시나 평시 활동에서 남녀가 공동으로 해야 하고 철학과 전쟁 관련 일 모두에서 가장 뛰어난 자들이 왕들βασιλέας이 되어야 한다는 것(543a) 그리고 일단 통치자들οἱ ἄρχοντες이 세워지면, 전쟁의 선수ἀθλητής와 수호자φύλαξ로서 그들이 함께 지내야 할 거처οἰκήσεις를 포함하여 소유와 보수μισθός 그리고 임무와 관련해서 그들이 감당해야 할 일들이 무엇인지가 동의되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543b) 그런 연후 그는 글라우콘에게 원래의 논의를 벗어났다가 다시 여기로 오게 된 사정을 기억해 볼 것을 요구한다. 이에 글라우콘은 소크라테스가 좋은ἀγαθός 나라와 그것을 닮은 좋은 사람을 세웠음을(543d) 그리고 사실 그보다 한층 더 아름다운καλλίω 나라와 사람을 이야기할 수 있으면서도 그랬음을 환기시킨 후 제대로 된ὀρθός 그 나라 외에 결함 있는ἡμαρτημένας 네 종류의 나라들과 그 나라들을 닮은 사람들을 모두 살펴보기로 했음을 기억해 낸다.(543e) 그리고 그 목적 또한 누가 가장 뛰어나고ἄριστον 누가 가장 못났는지κάκιστον 의견의 일치를 본 후, 그들 중 누가 가장 행복하고 εὐδαιμονέστατος 누가 가장 못난 자이자 가장 비참한ἀθλιώτατος 자인지를 고찰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것도 확인한다.(544a) 그리고 글라우콘은 그때 폴레마르코스와 아데이만토스가 끼어들어 처자 공유와 관련한 이의를 제기하는 바람에 네 종류의 정치체제에 대한 논의가 중지되었다가 여기로 이어진 것이라는 것도 함께 기억해낸다. 이에 소크라테스는 글라우콘의 기억을 칭찬한다. 그러자 글라우콘은 레슬링선수처럼 그때와 똑같은 붙들기 자세로 전 같은 질문을 드릴 테니 그때의 주제로 돌아가 네 종류의 정치체제에 대해 말해줄 것을 요구한다.(544b)

* 소크라테스는 글라우콘의 요구를 받아 그 네 종류의 정치체제를 아래와 같이 제시한다. 첫 번째는 우선 크레타체제Κρητική 또는 스파르타체제Λακωνικὴ이고 두 번째 체제는 과두정ὀλιγαρχία 체제 그리고 세 번째는 이 체제와 대립하는 것이면서 이것에 이어서 생기는ἐφεξῆς γιγνομένη 민주정δημοκρατία 체제이다. 그리고 네 번째는 이 모든 정치체제로부터 벗어나 있는διαφέρουσα 것이자 가장 말기에 이른 질병νόσημα과 같은 체제로서 참주정τυραννὶς 체제이다.(544c) 그리고 세습왕정δυναστεῖαι βασιλεῖαι이나 매매왕정ὠνηταὶ βασιλεῖαι 같은 정치체제들도 있는데 그것들은 저 네 개의 체제들 사이 어디 쯤 속할 법한 것들이다.(544d)

* 소크라테스는 정치체제에 상응하여 인간 성격의 종류ἀνθρώπων τρόπων εἴδη도 존재한다고 말한다. 요컨대 최선자정으로서 철학자왕정과 앞서 다룬 네 개의 결함 있는 정치체제에 상응하여 개인의 영혼도 다섯 가지로 존재한다. 우선 최선자정ἀριστοκρατίᾳ을 닮은 사람은 이미 설명했듯이 뛰어나고 정의로운 사람이다.(544e) 그리고 이보다 못난 나머지 네 종류의 사람으로서 첫 번째는 스파르타 정치체제에 상응하는, 승리를 사랑하고φιλόνικος 명예를 사랑하는φιλότιμος 인간, 두 번째는 과두정적인ὀλιγαρχικός 인간, 세 번째는 민주정적인δημοκρατικός 인간, 그리고 네 번째는 참주정적인τυραννικός 인간이다. 이어서 소크라테스는 이들을 살펴 가장 부정의한ἀδικώτατον 자와 가장 정의로운 사람을τῷ δικαιοτάτῳ 맞세워 놓으면 순수한ἄκρατος 정의δικαιοσύνη와 순수한 부정의ἀδικία가 그것을 지닌 사람들의 행복εὐδαιμονία과 불행ἀθλιότης에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견주어 보려는 우리의 고찰도 완결될 것이라고 말한다.(545a) 그러면 트라쉬마코스에 설득되어 부정의를 추구할지, 아니면 지금 드러나고 있는 논의에 설득되어 정의를 추구할지도 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545b)

* 그런데 소크라테스는 이러한 네 종류의 인간, 네 종류의 영혼을 살피면서 앞서 성품ἦθος에 대한 고찰σκοπεῖν을 시작할 때 방식 그대로 개인ἰδιώτης보다는 정치체제를 먼저 살핀다. 그래서 그때와 마찬가지로 소크라테스는 이곳에서도 명예를 사랑하는φιλότιμος 정치체제 즉 명예정τιμοκρατία이나 명예통치정τιμαρχία을 먼저 살피고 그 정치체제와 상응하는 인간을 고찰하고 같은 방식으로 이어서 과두정과 과두정적인 인간, 민주정과 민주정적인 인간을 관찰하고 마지막으로 참주정과 참주정적인 영혼을 살피겠다고 말한다. 그래야 애초 제기한 문제들을 판정κριτής하기에 충분할 것이기 때문이다.(545c)

————————-

* 543a – 543b : 이곳에서 동의된 것으로 언급되고 있는 내용들은 제3권, 제4권에서 다룬 수호자들의 생활 방식(415d-421c)과 임무(421c-427c) 그리고 철학자의 자질(484a-487a)과 철학자 왕(497a-502c)을 다루고 있는 부분을 참고.

* 543b ‘전쟁의 선수athlētēs’ : 403e에서 소크라테스는 수호자들을 가장 큰 시합의 선수들로 언급하고 있다.

* 543d ‘좋은 나라와 그것을 닮을 좋은 사람을 세웠음을’ : 제5권 서두 449a 참고

* 543e ‘그보다 한층 더 아름다운 나라와 사람’ : 플라톤의 이상 국가를 굳이 구분하려고 하면 제2권에서 제4권까지 말로 세운 나라와 나중 제7권에서 제시된 철학자 왕이 다스리는 나라로 나눌 수 있다. ‘한층 더 아름다운 나라와 사람’은 그 두 나라 중 후자를 가리키는 것이긴 하지만 말로 세운 나라에서 언급된 통치자의 자질을 보면 내용적으로 이미 철학자를 가리킨다는 점에서 그 두 나라는 다른 나라가 아니다. 이곳의 표현은 다만 논의의 단계상 말로 세운 나라의 통치자가 명시적으로 철학자임이 드러났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 543e ‘그 나라 외에 결함 있는 네 종류의 나라들과 그 나라들을 닮은 사람들’을 모두 살펴보기로 했음을 기억해낸다. : 제4권 445c, 제5권 449a 참고

* 544a ‘누가 가장 행복하고 누가 가장 못난 자이자 가장 비참한 자인지를 고찰하기 위한 것이었다’ : 제2권 361d 참고

* 544c 크레타체제와 스파르타체제 :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제2권 제9장-제10장 (1269a30 – 1272b20) 참고. 플라톤은 이곳에서 이 체제를 명예를 사랑하는 정치체제 즉 명예정timokratia의 다른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다.

* 544c 질병nosēma : 참주정은 플라톤뿐만 아니라 당대 민주정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질병으로 여겨졌고 실제로 그렇게 불렸다. 이소크라테스 <헬레네 찬가> 34 참고.

* 544d 매매왕정ōnētai basileiaiι :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러한 정치제제를 ‘관직을 높은 재산 자격 조건에 따라서 임명하고 그들 자신 그러한 자격을 지니는 남아 있는 자들을 임명하는 경우’로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명예정이라는 명칭을 평가재산timēma에 기반하여 수립된 금권정의 의미로 사용한다는 점에서 플라톤이 규정하고 있는 이곳의 명예정과 내용상 차이가 있다. 그만큼 명예정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명칭은 아니다. 플라톤에게 금권정은 이곳에서는 과두정에 해당한다(550c). <정치학> 제4권 1292b. 플라톤 <법률> 680a-b, <니코마코스 윤리학> 제9권 제10장 참고.

* 544e ‘최선자정’aristokratia : 플라톤의 철학자 왕정에서 왕은 한 사람일 수도 있고 여럿일 수도 있다. 플라톤에게 중요한 것은 왕의 수가 아니라 그 왕이 철학자인가이다. 플라톤은 직위명이 아니라 실제 최고 권력자dynatēs를 거론할 때 기본적으로 복수를 사용하고 있다.(473d) 그래서 플라톤 스스로도 철학자 왕들이 여럿인 체제를 최선자정aristokratia으로 부르기도 한다.(445d) 철학자의 지배라는 점에서 플라톤에게 철학자왕정basileia과 최선자정aristokratia은 아무런 차이가 없다. aristokratia는 이후 정치사에서 귀족정aristocracy을 나타내는 말로 사용되면서 플라톤의 철인왕정이 귀족정으로 불리는 배경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일반적인 의미에서 귀족정은 귀족이 곧 철학자가 아니라는 점에서 철학자왕정과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그것은 이곳 기준에서 보면 높게는 명예정에 낮게는 과두정에 가깝다.

* 545d ‘개인보다는 정치체제들에서 먼저 시작했듯’ : 제2권에서 소크라테스는 대문자 비유를 끌어들여 소문자보다 대문자가 보기 쉽듯이 인간 개인의 영혼에 대한 논의를 나라의 계층에 대한 논의로 확대해 정치체제를 먼저 다루고 있다.(368d-369a). 이곳에서도 소크라테스는 나라를 먼저 살핀 후 개인의 영혼을 유추하던 앞의 논의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

* 제8권은 나라의 타락 과정과 그에 닮은꼴로 대응해 있는 영혼의 타락 과정을 일련의 연속된 흐름의 형식으로 기술하고 있다. 그래서 제8권에서 플라톤이 의도하는 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나라의 타락 과정 각각의 내용을 세부적으로 살피기 전에 그 흐름 전체를 크게 염두에 두는 것이 필요하다. 플라톤이 논의에 앞서 타락 과정에 포함된 정치체제 전체를 미리 순서에 따라 제시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점을 고려하여 그 전체 흐름을 내용적으로 좀 더 풀어서 정리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무엇보다 타락은 이상 국가를 구성하는 세 계층 가운데 통치 계층의 타락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통치 계층의 변화는 마치 도미노처럼 계층 간 내분stasis을 일으켜 우선 전사 계층의 변화를 초래하고 끝내는 생산자 계층의 변화로까지 이어진다. 이러한 과정에서 가장 먼저 통치계층이 이성 능력의 결함에 따라 후계 권력으로 갈수록 통치 능력을 상실하여 전사 역할 정도만을 수행할 정도로 타락하면 철인왕정은 명예정timokratia으로 전락한다. 그리고 통치 기능이 마비됨에 따라 전사 계층들도 점차 본분을 넘어 통치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수호자 계층 간 권력 투쟁이 일어나고 끝내는 그 권력 투쟁에서 승리한 소수 전사들이 통치하는 과두정oligarchia이 들어선다. 이미 명예심조차 상실하고 부와 권력의 맛을 본 과두주의자들은 권력을 부를 축적하는 최상의 방편으로 여겨 매관매직은 물론 생산자 계층의 재산마저 착취하여 나라는 갈수록 부자들과 가난한 자들로 양극화된다. 민주정dēmokratia은 이러한 소수 과두주의자들의 착취로 빈곤의 나락에 빠진 민중들이 혁명을 통해 과두정을 무너뜨리고 수립한 정체이다. 민주정에 이르면 기능 분업적 계층은 남아 있어도 적성에 따라 소속을 구분하는 장치는 모두 와해되어 본래 소질이나 직분에 상관없이 시민이라면 누구나 다 추첨에 따라 관직도 맡을 수 있고 전사가 되어 나라를 위해 싸울 수도 있고 그렇게 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자유방임의 상태에서 모든 사람의 욕구만은 이미 물질적 욕구로 일양화되어 있다. 그에 따라 어떤 일을 하건 부의 획득이 삶의 유일한 목표가 되어 날로 경쟁이 격화되고 급기야 서로에 대한 모함과 소송이 판을 치면서 나라는 극도의 분열과 혼란에 빠져든다. 그러자 이러한 혼란을 틈타 민회를 조종하는 자들 중 가장 사나운 무리들이 가난한 민중을 등에 업고 최고 권력을 탈취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그들은 권력을 장악한 후 빈민층을 구제하기는커녕 되레 자신에게 집중된 권력을 이용해 오직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데 몰두하고 그것을 지속적으로 가능케 하기 위해 폭압적인 독재 권력 체제를 구축하기에 이른다. 이렇게 해서 민주정은 가장 나쁜 정치체제로서 참주정tyrannis으로 전락한다.

* 앞으로 이러한 타락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기 전에 미리 염두에 둘 것이 이밖에 몇 가지가 더 있다. 우선 이러한 나라의 타락과정 모두 이를테면 명예정, 과두정. 민주정, 참주정에로의 타락 과정 모두 자신이 속한 계층이 본래의 직분을 수행하지 못해 발생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 과정에서도 본래의 분업적 계층 자체는 여전히 살아 있으며 비록 소수이긴 하지만 자신이 속한 계층의 본래 직분에 충실한 사람들 또한 여전히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명예정이 전사 중심의 과두정으로 타락했다고 해서 통치 계층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통치 계층에 속한 사람들 모두가 다 자신의 직분을 버린 채 전사가 되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과두정이 민주정으로 변모했다고 하더라도 통치 계층, 전사 계층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들 모두가 자신의 직분을 잃고 생산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타락이라는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다만 자신이 속한 계층의 본분에 충실한 사람들이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가면서 자신이 속한 계층에서 이른바 주도권을 상실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개인의 타락 과정도 나라의 타락 과정과 마찬가지이다. 그 과정에서 개인들은 자신의 영혼 세 가지 부분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지만, 그들 세 부분의 영혼들 내부 간 갈등이 진행되면서 그들 상호 간의 지배 관계가 점차 다르게 변모한다. 이를테면 명예정적인 사람의 경우 그 사람의 영혼이 모두 기개적 영혼으로 변화된 것이 아니라 그 역시 영혼 삼분설에 따라 이성적 부분의 영혼, 기개적 부분의 영혼, 욕구적 부분의 영혼을 다 갖고 있되, 기개적 부분의 영혼과 다른 영혼과의 지배 관계가 달라지게 된 것이다. 즉 기개적인 영혼의 부분이 그 사람의 생각과 행위를 결정하는 주도권을 갖고 나머지 부분 이를테면 이성 부분을 도구적으로 이용하고 통제하는 상태가 된 것이다. 과두정적 인간, 민주정적인 인간, 참주정적인 인간들 모두 마찬가지이다. 그러한 인간들 모두 각기 서로 다른 영혼 부분들을 가지고 있되, 그러한 그들 서로의 관계에서 이성적 영혼 부분이 약화되어 본래의 조화로운 관계가 무너지고 그에 비례하여 타락한 영혼 부분이 다른 영혼 부분을 압도하여 자신의 성향에 맞추어 주도적인 역할을 행사함에 따라 각기 그러한 인간들이 된 것이다. 그런데 다른 한편 이것을 뒤집어 보면 타락 과정이 더 이상 회복이 불가능한 필연의 과정이 아니라 비록 쉽지는 않지만 여전히 온전한 영혼을 보전하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언젠가 극복과 반전이 이루어질 수 있는 최소한의 여지 즉 가능성이 남아 있음을 함께 보여준다.

* 이밖에 제8권의 논의가 이루어지게 된 배경을 이해하는 차원에서  염두에 두어야 할 중요한 점이 또 있다. 그것은 나라의 타락 과정과 개인 영혼의 타락 과정 모두 대문자와 소문자의 관계가 그렇듯이 형식적으로는 서로 대응 관계를 갖고 각기 독립적으로 서술되고 있다고 할지라도 내용에서 보면 그것들은 결코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는 점이다. 앞서 이상 국가를 다룰 때 나라와 영혼의 유기적 성격을 강조했던 것 그대로 플라톤은 결함 있는 나라들의 변화를 언급하면서도 각각의 나라들과 그 계층을 구성하는 개인들 영혼의 변화를 유기적으로 연관해 서술하고 있다. 이 점은 이제 우리가 제8권을 살피면서 지속적으로 주목해야 할 주제 즉 플라톤의 정치체제 변동론이 근대적인 의미에서 일반적인 정치철학적 주제로서 다루고 있는 정체체제 변동론과 그 본질적 성격에서 근본적인 차이점을 갖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점차 밝혀지겠지만 화두 차원에서 미리 이야기하자면 플라톤의 정치체제 변동론의 특징은 인간의 이기적 본성을 전제로 두고 성립된 근대적 의미의 정치체제 변동론과 달리 인간 본성의 중층성을 토대로 인간의 내적 영혼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 정치체제 변동론 즉 인간 욕망구조의 변화와 상호 유기적인 관계를 갖고 그 결과로서 드러나는 정치체제 변동론이라는 점이다. 플라톤의 정치철학을 이른바 영혼의 정치철학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즉 정의로운 나라는 계층 간 조화라는 사회적 조건에서만이 아니라 개인들의 내적 상태, 즉 정의로운 영혼에로의 자기 고양이 담보될 때 비로소 가능하고, 부정의한 나라 역시 같은 방식으로 부정의한 영혼들의 내적 관계에 상응하여 그 관계가 본래의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에 비례하여 각각 그에 상응하는 부정의한 나라로 전락한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오늘날 최상의 정치체제로 여겨지고 있는 민주정은 본래의 각기 다른 영혼들이 이성 부분의 주도하에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관계에서 최하급의 영혼 즉 물질적 욕구가 주도하는 관계로 전락한 상태 즉 본래의 다양하고도 중층적인 본성 상태에서 벗어나 모든 사람들이 마치 그들 모두가 하나같이 물질적인 욕구만 갖고 태어난 것처럼 여기고 있는 상태에서 채택된 정치체제, 다시 말해 플라톤의 관점에서 보면 궁극적으로는 인간 본성의 고양과 회복을 통해 극복해야 할 정치체제인 것이다.

* 그리고 위에 추가해서 미리 논의해 볼 사안이 있다면 그것은 제8권에서 플라톤이 그리고 있는 나라와 개인의 타락 과정이 실제 정치체제의 역사적 변화와 관련하여 플라톤의 퇴행사적 역사관 내지 그 자신의 비관적인 숙명론을 반영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토인비(A. Toynbee)가 그 대표적인 학자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언급되고 있는 정치체제 변화는 비록 타락하는 한 방향으로 흘러가지만, 그것을 근거로 플라톤이 실제로 정치체제가 그렇게 변화해왔고 변화해 갈 것이라고 여겼다고 이해하는 것은 잘못이다. 이곳에서 서술되고 있는 타락 과정은 원천적으로 정의로운 나라와 부정의한 나라를 서로 비교하여 어느 쪽이 더 행복한지를 판정하기 위한 목적으로 애초부터 상정이 예고된 것이다. 다시 말해 정의로운 나라가 갖고 있는 특성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가장 부정의한 나라가 있다면 그런 나라가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떤 방식으로 어떤 점에서 그러한 나라가 되었는지를 드러낸 후 그 결함들과 나쁜 점들을 근거로 그 나라가 좋음과 행복의 측면에서 정의로운 나라와 결코 비교조차 될 수 없을 정도의 최악의 나라임을 밝히려는 것이다. 한마디로 그것은 논의 목적상 일종의 설명을 위해 채택된 논리적 심리적 귀결 방식에 따라 이르게 된 나라일 뿐 실제 역사적 전개에 대한 기술이 아니다. 실제 현실에서는 그러한 귀결을 이끄는 조건들이 결코 일양적일 수 없고 언제든 달라질 수 있는 한, 그 변화의 실제적 방향과 흐름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플라톤에게 바람직한 방향과 목표는 분명 주어져 있지만, 그것의 도달 여부는 능력에 따른 가능성의 영역이지 필연의 영역이 아니다. 게다가 누구나 다 인정하듯이 플라톤의 <국가>의 근본 주제가 이상적인 나라를 세우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음을 고려하면 오히려 퇴행사적 역사관보다는 절망적인 현실을 딛고 일어서 이상을 향해 나아가려는 진취적인 역사관으로 평가하는 것이 플라톤의 근본 의도에 부합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여러 번 밝혔듯이 플라톤 철학은 경직된 정적인 목적론이 아니라 목적을 행한 분투 어린 노력, 가능적 능력을 확보하기 위한 동적인 함양을 강조하는 역동적 목적론의 성격을 갖고 있다. 말년의 <법률> 또한 가능성 차원에서 현실에 부합하는 최선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한 조건들의 탐색이 주를 이루고 있다. 굳이 실제 역사와 관련지어 생각한다 해도 플라톤이 그린 이상 국가는 아테네 정치사에서 존재한 적도 없거니와 실제 역사적 전개 과정 또한 이곳의 내용과 일치하지 않는다. 물론 타락의 과정을 설명하는 구체적인 문맥에는 플라톤이 살아오면서 겪었던 역사적 경험들이 분명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한 까닭에 플라톤이 제시하고 있는 특정 정치적 변화 국면에 대한 설명들은 실제 일어난 역사적 현상을 이해하는 데 탁월한 통찰력을 제공해주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이곳의 서술과 설명의 초점은 정치체제들의 역사적 변화를 규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정의가 행복임을 증명하려는 애초의 논의 목적에 부합할 수 있도록 정치체제와 인간 본성의 유기적 관계를 철학적으로 해명하는데 모아져 있다. 특히 나중에 밝혀지겠지만 그러한 해명과정에서 인간의 본성과 관련한 개인의 심리 내지 욕망 구조의 변화가 정치체제를 결정하는 중대 변수로 설정되어 있다는 점은 매우 중요한 철학적 의미를 지닌다.

* 이상이 제8권의 논의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전에 미리 염두에 두어야할 몇 가지 사항들이다. 제8권을 살피는 동안 우리는 이러한 사항들이 갖는 철학적 의미를 지속적으로 음미하게 될 것이다. -끝-

 

다음 주제 :

VI 본론 3 : 부정의와 현실 비판 – 현실 국가 분석(제8권-제9권)

 A. 부정의한 나라들과 부정의한 개인들. .

  2. 최우수자 통치로부터 명예정으로 체제 변동 : 명예정과 명예정적인 인간(545C-550C)


 

이규성 철학 연구회 2025년 10월 제20차 정기세미나│『중국현대철학사론』7장. ‘도’의 형이상학과 ‘이사겸중’의 지식론: 김악림(金岳霖)│발제: 인현정 / 토론: 한대석│2025.10.31. [월례발표회•세미나]

-주제: 이규성 선생의 김악림 연구(중국철학사론 7장)
-발제: 인현정 선생님(한철연 회원)|토론: 한대석 선생님(충남대)
-일시: 2025년 10월 31일(금) 오후 4시
-장소: 한철연 세미나실
*
이규성 선생이 지은 대작 『중국현대철학사론』 독해도 거의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이번 10월 모임에서 김악림을 다루고 다음 모임에서 장세영을 다루면, 마칠 듯합니다.

이번 모임에서는 중국 현대철학자 김악림(金岳霖, 1895~1984)을 다루고자 합니다.

이규성 선생에 따르면, 그는 중국의 특수성을 반영하는 중국철학과 중국에서 발견되는 철학을 구분했다고 합니다.

중국에서 발견되더라도, 보편성을 지닌 철학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인데, 그에게서 보편적인 것은 ‘ 리적이고 분석적인 것’이라고 합니다. 명료한 진리에 기초하여 논리적으로 전개된 철학이라 분석철학의 이상을 담은 말로 보입니다.

물론 여기서 논리란 형식논리학을 의미합니다.

그는 철학을 보편성과 특수성이 공존하는 것으로 보는데, 철학의 필수 조건은 논리학과 지식론이지만, 특수성은 자기 사회나 시대를 반영하는 윤리와 정치사상을 의미한다고 봅니다. 김악림은 후자의 측면에서는 노자나 장자의 초탈한 삶을 추구했다고 하네요.

그는 청년기 개혁적 자유주의, 윤리적 사회주의에 관심을 가졌으며, 장개석의 파시즘이나 공산당의 지배에 대해서는 반대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역사는 그가 지향하는 것과는 반대로 흘러갔으니, 그는 현실로부터 내적으로 망명한 상태에서 논리와 명료한 진리를 추구하면서 현실적으로는 방관자로서 “권태로운 무심함을 즐겼다”고 합니다.

어떻든, 그가 명료한 진리를 어떻게 논리적으로 전개시켰는지 궁금한데요. 이번 발제는 인현정 선생님이 맡아주셨고, 토론은 충남대 철학과에서 분석철학과 논리학을 연구하는 한대석 선생님이 맡아주셨습니다.

*

유튜브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CCESvI24z3Y

[영상없음] 이규성 철학 연구회 2025년 8월 제19차 정기세미나│『중국현대철학사론』 6장. 동서 ‘융회’와 형식주의 신이학: 풍우란(馮友蘭)-발제: 박영미│2025.08.22. [월례발표회•세미나]

이번 19차 정기세미나는 기술적 문제로 유튜브 영상이 제공되지 않습니다. 양해바랍니다.
세미나 사진과 박영미 선생님의 발제문은 아래 한철연 홈페이지 링크로 접속하여 첨부파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
*
○ [이규성 철학(사상) 연구회] 제19차 연구모임
*
-주제: 동서 ‘융회’와 형식주의 신이학: 풍우란(馮友蘭) (『중국현대철학사론 6장』)
-발제: 박영미 선생님
-일정: 2025년 8월 22일 금요일 오후 4시
-장소: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세미나실(줌 온라인 병행)
*
제19차 이규성 선생 사상 모임에서는 이규성 선생님이 지은 중국 현대철학사론 가운데 6장 풍우란 편을 읽고 토론하고자 합니다.
풍우란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중국 현대철학자입니다. 그의 중국현대철학사는 중국철학을 이해하는 안내서로 여겨졌습니다.
그 책 덕분에 한국의 많은 학자들이 풍우란의 사상의 중국철학을 이해하는 방법이나 그 해석하는 관점에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제가 풍우란을 잘 알지 못하지만, 이규성 선생이 쓴 글의 서문을 통해 보면 풍우란은 동서 융회의 관점에 서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송대 이학이 플라톤적 이데아론과 통하는 것으로 보는데, 그런 이데아에 이르는 길은 오히려 논리적 길이라 합니다.
이 논리적 길은 사변적인 방법을 의미하기보다 오히려 논리적 분석을 통해 그 의미를 끊어버리는 회의주의적 방법으로 보입니다.
그런 점에서 천리에 이르는 길은 최종적으로는 선적인 직각을 통한 길입니다.
풍우란은 선적인 직각을 통해 우주와 합일하며 이를 통해 인생의 이상을 세우고 여기서 내적 초월과 외적인 도덕의 합일을 추구했다고 합니다.
풍우란은 이를 바탕으로 사회를 건설함으로써 중국의 제국주의적 침략과 내적인 혼란을 극복하려 하였다는 거죠.
설명 대로면 거의 플라톤적 사유를 빼다 박은 듯이 보이는 데(제가 제대로 이해하는지 모르겠지만),
풍우란의 사상을 통해 이규성 선생이 보여주려고 했던 것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플라톤의 <국가> 강해(77) [이정호 교수와 함께하는 플라톤의 『국가』]

플라톤의 <국가> 강해(77)

 

C. 철인통치자의 교육 목표와 교과목(502c-541b)

5. 영혼의 전환과 참된 실재로의 상승을 위한 교과목들(제7권 521c-541b)

3) 교과목들의 대상과 부과 방법, 시기와 구체적 프로그램(535a-541b)

 

[535a-541b]

* 소크라테스는 서곡으로서 예비적인 배울 거리들에서부터 본곡으로서 변증술에 이르기까지 배울 거리 전반에 대한 언급을 마무리한 후에 그 배울 거리들을 누구에게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부여할지를 배정하는 일이 남아있다고 말한다. (535a) 우선 누구를 배움의 대상으로 삼을지를 다루면서 소크라테스는 이전 통치자를 선발할 때 기준으로 삼았던 자연적 성향들을 다시 끌어들인다. 여기서 언급되고 있는 그 자연적 성향 내지 그에 적합한 자들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가장 안정적이고βεβαιοτάτος 가장 용감하며ἀνδρειοτάτος 가능한 한 가장 잘생긴εὐειδεστάτος 자.(535a) 성품τὰ ἤθη이 고상하고γενναῖος 강건하며βλοσυρός 배울 거리와 관련해서 예리하고δριμύτης 학습 능력이 뛰어난 자.(535b) 기억력이 좋고μνήμων 강인하며ἄρρατος 모든 점에서 고생을 마다하지 않는φιλόπονος 자.(535c) 철학의 불명예ἀτιμία는 이러한 자격에 맞지 않은οὐ κατ᾽ ἀξίαν 사람들 즉 적자γνήσιος 아닌 서자νόθος들이 철학을 접했기 때문이다.(535c)

* 그리고 철학을 접하는 자가 고생을 마다하지 않음φιλοπονίᾳ에서 절름발이χωλός여서는 안 된다. 이를테면 신체 관련 일들에서는 고생을 마다하지 않으면서, 배움을 좋아하지는 않는 경우가 그렇다.(535d) 그와 마찬가지로 진리와 관련해서도 의도적인ἑκούσιος 거짓ψεῦδος은 미워하고 성을 내지만, 의도하지 않은 거짓은 가볍게 받아들이고, 발각되어도 성내지 않는 자들은 불구ἀνάπηρος의 영혼을 가진 자로 마치 돼지 닮은ὕειος 짐승θηρίον처럼 무지ἀμαθίᾳ 속에서 맘 편히 뒹군다.(535e) 절제σωφροσύνη, 용기ἀνδρεία, 호방함μεγαλοπρέπεια, 그리고 덕ἀρετή의 부분들과 관련해서도 누가 서자이고 누가 적자인지를 경계해야 한다.(538a) 적자가 아닌 자들을 교육할 경우 나라πόλις와 정치체제πολιτεία를 구하지 못하고 철학을 한층 더 큰 비웃음의 홍수 속에 빠트린다.(536b)

* 그런데 소크라테스는 느닷없이 우리가 놀이하고 있었다는 것ὅτι ἐπαίζομεν을 잊고 너무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것 같아 자신이 우스운 꼴이 되었다고 말한다. 철학이 부당하게 흙탕물을 뒤집어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성이 나서 그랬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통치자 선발ἐκλογή 관련 이야기로 돌아가 이번에는ἐν δὲ ταύτῃ 연장자πρεσβύτης를 선발하면 안 될 것이라 말한다.(536c) 산술과 기하를 비롯한 모든 예비교육προπαιδεία은 아이παῖς들일 때 제공되어야 하고 방식 또한 ‘강제로 배우는 가르침의 형태’ἐπάναγκες μαθεῖν τὸ σχῆμα τῆς διδαχῆς가 되어선 안 된다. 자유인ἐλεύθερος이 아닌 노예δουλεία처럼 억지로 배우는 것은(536d) 몸과 달리 영혼에 전혀 머물러 있지 않으므로 아이들을 양육할 때는 놀이 삼아παίζοντας 배우게 해야 한다. 그래야 ‘각자가 어디에 적성이 있는지’ἐφ᾽ ὃ ἕκαστος πέφυκεν도 잘 살필 수 있다.(536e)

* 그리고 아이들을 말에 태워 전쟁터에 데리고 가서 구경하게 해야 하고 좀 안전하다면 새끼 사냥개들처럼 피 맛도 보게 하여 모든 고생과 배울 거리와 두려움φόβος 속에서 가장 잘 대처하는ἐντρεχής 자를 선발해야 한다. 그리고 이 선발은 2년에서 3년 동안 필수적인 신체단련γυμνάσιον 기간이 지나 스무 살이 된 자 중에서 이루어지되(537b) 선택된 이들은 배울 거리들 상호 간의 친족 관계οἰκειότης와 ‘있는 것의 본성에 대해 전체적인 조망’σύνοψις τῆς τοῦ ὄντος φύσεως을 갖도록 해야 한다. 왜냐하면, 전체적인 조망을 하는 사람ὁ συνοπτικὸς이 곧 변증술에 밝은 사람διαλεκτικός이기 때문이다.(537c)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적법한νόμιμος 일들에서 누가 가장 잘 머물러 있는지μόνιμος 등을 잘 살펴보고 이들이 서른 살이 되면 이들 중에서 다시 선택해서 변증술적 대화διαλέγεσθαι의 힘을 통해 시험하면서 누가 ‘있는 것’ 자체αὐτὸ τὸ ὂν에 진리ἀληθεία와 함께 다다를 수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고 말한다.(537d)

* 그런데 소크라테스는 이 교육 단계에서 아주 많이 경계해야 할 일이 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오늘날 변증술적 대화와 관련해서 나쁜κακός 일이 많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그것을 하는 사람들은 불법παρανομία으로 가득 차 있는데 그들이 그렇게 된 것이 놀라운θαυμαστός 일이 아니어서 그들을 이해해 줄 수συγγιγνώσκεις도 있지 않겠냐고 글라우콘에게 묻고(537e) 그들이 변증술적 대화와 관련해서 그렇게 된 사정을 비유를 들어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누군가 부모가 바뀌어 부유하고 큰 가문에서 많은 아첨꾼κόλαξ 사이에서 자라나 어른이 된 후 부모가 바뀌었음을 알게 되고 진짜 부모도 찾지 못했을 경우, 그 이전과 이후 그의 태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살펴보자.(538a) 그가 진실을 모를 때에는 부모와 친척들을 아첨하는 사람들보다 더 존중했을 것이고, 그들에게 불법적인 행동이나 말을 덜 했을 것이고, 중대한 일들과 관련해서 아첨꾼들보다 그들에게 불복하는 일이 덜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을 알고 나면 반대로 부모에 대한 존중은 줄어드는 대신 이전보다 현저하게 아첨꾼들의 말을 따르며,(538b) 그들의 방식대로 삶을 살고 드러내놓고 그들과 사귈 것이다.”

* 그러나 글라우콘은 이 비유εἰκών가 논변λόγος을 배우기 시작하는 사람들과 어떤 점에서 관련이 있는지를 묻고 그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또 아래와 같이 설명을 이어간다. “어려서부터 우리에게는 정의로운δίκαιος 것들과 아름다운καλός 것들에 대한 신념δόγμα들이 있어 마치 부모γονεύς에게 양육되듯이 우리는 이 신념들에 복종하고 존중하면서 그 속에서 양육된다.(538c) 그런데 동시에 우리에겐 이것들과 반대로 쾌락ἡδονή을 수반하는 다른 활동ἐπιτήδευμα들도 있어 우리의 영혼이 아첨하는 쪽으로 이끌리기도 한다. 이때 다소라도 균형 잡힌 사람들은 그것에 설득되지 않고 이겨내지만, 때론 누군가 ‘아름다운 것이란 무엇인가?’τί ἐστι τὸ καλόν라는 질문에 접한 후 다양한 방식으로 논변에 의해 논박ἔλεγχος당할 경우(538d) 그는 그릇된 믿음δόξα 속으로 내동댕이쳐진다. 이 경우 그의 삶은 자신의 영혼에 아첨하는 삶βίον τὸν κολακεύοντα이 된다.”(539a)

* 이어서 소크라테스는 글라우콘에게 ‘논변을 배우기 시작하는 사람들의 상황이 이렇다면 그건 이해συγγνώμη해줄 만한 여지가 많지 않은가’를 묻고 글라우콘 또한 그에 동의하며 연민ἔλεος을 살 만한 일이라고 말한다.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그 서른 살 먹은 자들에 대해서 이러한 연민이 생기지 않도록 모든 점에서 조심하면서 논변을 배우기 시작하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539a)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그렇게 크게 조심해야 하는 것εὐλάβεια 한 가지로 젊어서 논변λόγος을 맛보지 않도록μὴ γεύεσθαι 하는 것이라 말한다. 젊은이νέος들이 처음 논변을 맛보면 그것을 그들은 마치 애들 장난παιδιή처럼 사용해서 항상 반박ἀντιλογία하는 데 써먹고 또 논박하는ἐξελέγχοντας 사람들을 흉내 내서 스스로 남들을 논박하면서, 논변을 도구로 삼아καταχρῶνται 마치 사냥개 새끼σκυλάκιον처럼 매번 옆에 있는 사람들을 끌어당겨서 찢어발기기σπαράττειν를 즐기기 때문이다.(539b) 스스로 많은 이들을 논박하거나 많은 이들에게 논박당하기도 하다 보면, 그들은 전에 믿었던 것들에 대한 전면적인 불신으로 급격하게 빠져들게 되고 이로 인해서 그들 자신과 철학 전체가 남들에게 비방을 받게 된다.(539c)

* 그러나 나이가 좀 든 사람ὁ πρεσβύτερος은 그러한 광기μανία에 참여하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고, 변증술적 대화διαλέγεσθαι와 진리 탐구σκοπεῖν τἀληθὲς를 원하는 자를 흉내 낼 것이다. 그래서 자기 자신도 더 균형을 갖춘μέτριος 사람이 될 것이다.(539c)

*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다른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열심히 논변에 참여하며 단련하는 기간을 5년 정도로 제시한다. 그리고 그 기간에 단련을 마치면 이후 15년 동안 즉 쉰 살이 될 때까지 그들을 다시 저 동굴로 내려가게 해야 하고, 전쟁과 관련한 일들을 관장하고 젊은이들에게 맞는 관직ἀρχαί을 맡도록 강제해야ἀναγκαστέος 한다. 그들이 경험에서 남들에게 뒤지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도 그들이 여전히 제자리를 지키는지ἐμμενοῦσιν 시험받아야βασανιστέος 한다.(539d-e)

* 이렇게 쉰 살이 되어 모든 과정을 통과하고 일ἔργον에서나 앎ἐπιστήμη에서나 모든 점에서 모든 식으로 가장 뛰어난 성취를 보인 이들을 드디어 최종 목적지τέλος로 인도해야 한다. 그리고 영혼의 눈길을 들어 올려 만물에 빛을 제공하는 것 자체를 바라보도록 강제해야 한다. 그리고 ‘좋음 자체’τὸ ἀγαθὸν αὐτό를 보고 나면 그것을 본παράδειγμα으로 삼고서, 남은 삶τὸν ἐπίλοιπον βίον 동안 대부분 시간을 철학을 하며 지내겠지만, 차례가 오면 각자가 나랏일로 고생하면서 나라를 위한 통치 업무를 불가피한ἀναγκαῖος 것으로 받아들여 수행해야하고 자신들과 비슷한 다른 이들을 교육하여 나라의 수호자φύλαξ로 남겨두어야 한다. 그런 연후 그들은 복된 자들의 섬μακάρων νήσος으로 떠나, 거기에 거주할 것이다. 이들은 신령들δαίμοσιν 또는 행복하고 신적인 사람들로 여겨지고, 나라는 이들을 위한 기념비를 세우고 공적인 제사를 지낼 것이다.(540b-c)

* 소크라테스가 위와 같이 배울 거리들을 누구에게 어떻게 배정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를 마무리하자 글라우콘은 마치 조각가처럼, 통치자들을 완전히 아름다운 자들로 만들었다고 말한다. 이때 소크라테스는 그러한 통치자들이 남성만이 아니라 여성 통치자들τὰς ἀρχούσας도 포함하고 있음을 다시 환기한다.(540c) 그리고 끝으로 소크라테스는 앞서 다루었던 나라와 정치체제와 관련한 모든 이야기가 전적으로 기원εὐχή에 불과한 것들이 아니라 어렵긴 하지만 어떤 식으로는 가능한 것들이라고 말한다. 여럿이든 한 명이든ἢ πλείους ἢ εἷς 진정한 철학자들이 나라의 권력자가 되어 오늘날의 명예들은 멸시하고, 정의로운 것에 봉사하고 그것을 증진토록 하면서 나라를 바로잡을 때가 바로 그때이다.(540d-e)

*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위와 같은 나라와 정치체제를 가장 쉽고 빠르게 수립하기 위해 통치자들은 나라 안에 있는 열 살 이상의 사람들은 모두 시골로 보내버리고 그들의 아이들을 넘겨받아서, 부모들도 가지고 있는 오늘날의 습성에서 벗어나게 하고, 우리가 앞서 설명했던 것과 같은 자신들의 생활방식과 법들 속에서 양육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해야 나라 자체도 행복하고 그 나라를 이루는 집단τὸ ἔθνος도 가장 크게 이득을 볼 것ὀνήσειν이기 때문이다.

* 이에 글라우콘은 그런 나라가 언젠가 생겨난다면 어떤 식으로 생겨날지에 대해 지금까지 이야기가 잘 된 것 같다고 말하고 소크라테스 또한 그런 나라와 그런 나라와 닮은ὅμοιος 사람에 대한 논의가 충분히 이루어졌다고 말한다. 이로써 정의로운 나라와 정치체제 그리고 그러한 나라를 닮은 정의로운 사람에 관한 이야기가 모두 마무리 된다.(541a)

– 제7권 끝 –

 

————————-

* 535c ‘앞서도 말했듯이’ : 이 부분은 제6권 495c-496a에서 언급된 내용을 가리킨다.

* 535c-d ‘서자’nothos, ‘절름발이’chōros : 신분으로서 ‘적자와 서자’, 신체 상태로서 ‘사지 멀쩡한artimelēs 자와 절름발이’가 차별적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물론 내용적으로 그 말들은 장차 나라의 수호자와 통치자가 되어야 할 사람들의 자질에 걸맞게 영혼과 신체의 균형을 갖춘 자와 그렇지 못한 자를 구분하기 위해 사용된 것이다. 그렇지만  플라톤의 그 말은 그 또한 신분적 차이와 신체적 장애 여부를 사회적 차별의 기준으로 당연시했던 당대의 정치·사회적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 535e ‘의도하지 않은 거짓은 가볍게 받아들이고 자신이 모르고 있다는 게 발각되어도 성내지 않고 마치 돼지 닮은 짐승처럼 무지 속에서 맘 편히 뒹구는 영혼’ : 제2권(372d)에 나오는 ‘돼지들의 나라’가 말해주듯 이곳에서도 돼지는 무지와 탐욕을 상징하는 동물로 나온다. 소크라테스가 <변명>(38a)에서 말했듯이 ‘반성적 성찰이 없는 삶은 사람으로서 살 가치가 없는 삶이다’ho de anexetastos bios ou biōtos anthrōpō. 누구든 실수를 한다. 그러한 한, 사람의 위대함은 실수나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남에 의해서건 자신에 의해서건 그 실수나 잘못이 드러나는 대로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아파하며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반성하고 다짐하는 데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신의 실수를 변명하는데 너무나 익숙하고 어떤 때는 변명은커녕 아예 뻔뻔스러운 태도를 취하기도 한다. 그런 영혼이야말로 돼지 닮은 짐승처럼 무지 속에서 맘 편히 뒹구는 그런 영혼이다. 설사 거짓이나 잘못이 없더라도 그것을 자부하기 이전에 더 잘하지 못하거나 잘한 것이 없음을 부끄러워하고 혹시나 나의 무지가 타인의 눈물이 되지 않을까 늘 지적 긴장을 보전하는 것이 곧 지성이다. 세속 지식은 타자를 이기는 힘에 비례하여 커지지만, 지성은 타자의 고통에 대한 감수성에 비례하여 커지고 자라난다.

* 536c ‘우리가 놀이paidia를 하고 있었다는 것hoti epaizomen을 내가 잊고 있었네. 그래서 너무 열을 내며enteinamenos 말을 했군.’ : 놀이하고 있었다고 해서 한갓 장난치고 있었다는 의미로 이해해선 안 된다. <파이드로스>(276a-e)를 보면 ‘배우는 사람의 혼에 앎과 함께 글로 쓰이며 자기 자신을 방어할 능력이 있으면서 그래야 마땅할 사람들을 상대로 이야기하고 침묵할 줄 아는 이야기’를 ‘더없이 아름다운 놀이’로 표현하고 있다. 이곳에서 말하는 ‘놀이’도 소크라테스와 글라우콘 등 대화 상대자들이 일정한 논의 주제를 가지고 서로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표현한 말이다. 그런데 소크라테스는 지금 놀이의 주제에 맞지 않게 혼자 흥분하여 배울 거리에 적합하지 않은 자들을 지나치게 길게 이야기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래서 스스로 책망하고 있다. 이것은 소크라테스가 당대 철학에 적합하지 않은 자들을 얼마나 혐오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들이 철학에 끼치는 해악에 대해 얼마나 분노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대표적으로 소피스트들을 비롯해 이른바 철학자를 자칭하는 이소크라테스 같은 당대 지식인들이 그들이다. 제6권 495c에서도 이 부분을 연상시키는 장면이 나온다. 그곳에서 소크라테스는 가짜 철학자들을 비판하면서 이소크라테스로 짐작되는 인물에 대해 그답지 않게 대머리에 작달막한 외모까지 끌어들여 다소 흥분상태로 비난하고 있다. 이곳에서 느닷없이 다른 곳에서와 달리 통치자의 여러 조건 중 잘 생김을 꺼내든 일도 그 때문일까?

* 536c ‘이전에 통치자를 선발할 때에는 우리가 연장자를 선발했지만, 이번에는 그러면 안 될 것이네.’ : 문장만 보면 3권(412c)에서 언급했던 통치자 선발 방식을 이번에는 바꾸겠다는 것으로 읽힐 수도 있다. 그러나 통치자의 선발 기준은 이곳에서도 쉰 살 이후로 언급된다는 점에서 내용 상 바뀌는 것은 없다. 게다가 제2권과 3권에서 수호자를 위한 교육을 다루면서 이미 전 연령의 단계마다 시험과 선발이 주어진다는 점이 언급되고 있음을 고려하면(412d-e) 이 부분을 그렇게 해석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바로 이어지는 문맥도 통치자의 선발 방식의 변경이 아니라 다만 배울 거리는 장차 통치자가 될 나이 어린 예비 통치자 때부터 제공되어야 한다는 것이 강조될 뿐이다. 이렇게 보면 ‘이번에는en tautē 그러면 안 될 것’이라는 문장에서 ‘이번’은 ‘배울 거리를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부여할지’에 관한 ‘이번’ 논의를 가리키고 ‘그러면 안 될 것’이란 그에 관한 논의에서 전번처럼 연장자를 불쑥 제시하지 않고 습득 능력이 뛰어난 젊은 시절부터 교육해야 한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라 할 것이다.

* 537a ‘아이들을 말에 태워 전쟁터에 데리고 가서 구경하게 해야 하며’ : 이 이야기는 앞서 제5권에서 언급된 내용이다.(467c-e)

* 537e ‘오늘날 변증술적 대화와 관련해서 나쁜 일이 많이 벌어지고 그걸 하는 사람들은 불법paranomia으로 가득 차 있는 것 같네’ : 불법으로 가득 차 있다는 말은 그들이 현실에서 많은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변증술의 맛만 보고 함부로 사용하는 사람들의 영혼 상태가 불법 상태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변증술을 제대로 배우는 것이 그만큼 매우 어려운지라 안타깝게도 초기 단계에서 그런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이어지는 소크라테스의 언급은 그런 일들이 많이 발생하는 것에 대한 자신의 안타까운 심정을 담고 있다. 그러나 변증술의 그릇된 사용이 초래하는 위험이 워낙 심대한 만큼 최대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시작하는 단계에서부터 신중하고도 철저한 준비와 대책이 필요하다.

* 538d ‘질문이 찾아와서’, ‘논변이 그를 논박하는데’ : 변증술은 앞선 강해에서 살폈듯이 기본적으로 끈질긴 질문과 그에 대한 대답의 상승적 반복을 통해 좀 더 확실한 진실로 다가가는 토론 과정을 토대로 한다. 그것은 입장이 다른 복수의 사람들끼리 문답을 통해 혹은 혼자 자문자답 형식의 치열한 사색을 통해서도 가능하다. 소크라테스는 여기서 그러한 변증술적 문답 과정을 보다 생동감 있게 표현하기 위해 질문과 논변을 의인화하고 있다.

* 539b ‘젊은이들이 처음 논변을 맛보면 마치 애들 장난처럼 사용해서 항상 반박하는 데 써먹고’, : 논변은 변증술적 논변을 말한다. <필레보스> 15d-16a, <변명> 23c에서도 소크라테스는 이런 양태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어서 보이는 ‘‘마치 사냥개 새끼처럼 매번 옆에 있는 사람들을 끌어당겨서 찢어발기기를 즐기기 때문’이란 표현은 제1권에서 소크라테스가 트라쉬마코스를 두고 ‘마치 야수처럼 혼신의 힘을 가다듬어 찢어발기기라도 할 듯이 우리한테 덤벼든다’(336b)고 말한 것과 거의 그대로 일치한다.

* 539d ‘이것보다 먼저 이야기된 것들도’ : 539b에서 언급된 크게 조심해야 하는 것 즉 젊어서 논변의 맛 정도만 보고 섣불리 그 논변을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 539e ‘다시 저 동굴로 내려가게 해야 하며’ : 애초의 동굴 비유에서는 수감자가 풀려나 동굴 바깥으로 나와 태양을 본 다음 동굴로 내려가지만, 여기에서는 태양 즉 좋음의 형상을 보기 전에도  동굴로 내려간다.  이것은 쉰 살 이후 본격적으로 통치자로서 현실 통치 업무에 임하기 전에 실습 차원에서 15년 동안 통치 보조 업무를 의무적으로 수행하는 것을 말한다.   

* 540a ‘영혼의 눈길을 들어 올려 만물에 빛을 제공하는 것 자체를 바라보도록 강제해야 한다.’ : 이 말은 변증술 교육을 억지로 하게 한다는 것이 아니라 변증술의 최종단계인 좋음의 형상을 본다는 것 자체가 그만큼 매우 힘들고 어려운 것이므로 그것을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이루어낼 수 있도록 좀 더 강화된 방식으로 좀 더 주도면밀하고 철저한 방식으로 교육을 수행한다는 것을 말한다. 쉰 살에 이르러 모든 점에서 모든 식으로 가장 뛰어난 성취를 이룬 자들은 그만큼 이미 최종 목적지에 이르려는 자발적인 의지로 충만해 있는 사람들로서 어떠한 어려움이라도 감내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 540b ‘복된 자들의 섬’makrōn nēsos : 헤시오도스 <일과 나날> 171에 나오는 신들과 영웅들이 사는 축복의 섬. 생전에 훌륭한 업적을 이루었거나 착하게 산 사람들도 사후에 그곳으로 갈 수 있다고 믿었다. 519c에도 나온다.

———————-

* 이곳의 논의 주제는 ‘배울 거리들을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부여할지를 배정하는 일’이다. 이에 따라 이 부분(535a-541b)은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다. 1) 우선 누가 배움의 대상으로 적합한지와 관련하여 이전에 수호자의 선발 기준을 논의할 때 제시되었던 수호자의 기본 자질과 성향들이 다시 소환된다.(535a-536b) 2) 이어서 그들을 대상으로 언제부터, 어떠한 방식으로 그리고 무엇에 중점을 두어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다룬다.(536c-537d) 3) 그런 연후 그러한 교육 단계에서 경계해야 일들, 즉 철학적 자질이 부족한 자들이 저지르는 일과 그럴 경우 발생하는 나쁜 일에 대한 논의가 비유까지 포함해서 제법 길게 논의된다.(537e-539c) 4) 그래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변증술을 배우기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을 잘 가려내야 하고, 나아가 그 배움의 중요성만큼 얼마 동안 어떻게 그것을 단련하고 실천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 즉 앞서 논의 주제로 제시되었던 배울 거리에 대한 배정의 문제가 연령별, 단계별로 다루어진다.(539d-540c) 5) 그리고 끝으로 이제까지 논의해온 나라와 정치체제들이 실현 가능한지에 관한 언급이 간략히 주어진 후, 양육과 관련해서 현재 상태에서 그런 나라를 가장 쉽고 빠르게 수립하기 위한 과도기적 방안이 제시된다.(540c-541b)

* 1) 그런데 누구에게 배정될지에 대한 논의는 특별히 새로울 것이 없다. 배울 거리들의 배정 대상은 당연히 통치가가 될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곳에서 소크라테스가 개진하고 있는 배울 거리들의 대상이 갖추어야 할 기본 성향과 소질들 또한 모두가 제3권 수호자의 성향(375a-376c)과 제5권 철학자의 자질(484a-487a) 부분에서 다루어진 내용들과 크게 차이가 없다. 그럼에도 이곳에서 그것을 따로 반복하고 있는 이유는 통치자가 되기 위한 배움의 과정 특히 최종적인 배울 거리로서 변증술의 습득 과정이 아무나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매우 특별하고도 높은 수준의 것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다만 ‘가장 잘생긴’eueidestatos이라는 외모 관련 조건은 통치자의 성향으로 여기서 처음 언급된 것이다. 오히려 그 말은 제6권 494c에서 부유하고 명문 태생이지만 지성은 갖추지 않을 수 있는 자를 언급할 때 한 번 사용된 적이 있다. 알키비아데스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 점에서도 외모상 잘 생김은 다른 조건들과 달리 통치자의 필수 조건으로 제시된 것은 아닐 것이다. 전승에 따르면 소크라테스조차 이 기준엔 부합하지 않는다.

* 2) 여기선 위와 같은 자질을 가진 자들 대상으로 언제부터, 어떠한 방식으로 그리고 무엇에 중점을 두어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다룬다. 우선 나이가 들면 배우기 어려우므로 교육은 어려서부터 시작되어야 하고 방식 또한 자유인답게 강제가 아닌 놀이를 하듯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 물론 교육 과정에는 일정한 강제가 개입된다. 그러나 그 경우도 그 강제의 의미를 인지하고 그것을 감내하려는 자발적인 의지가 전제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른바 억지 내지 강요와 근본적으로 구분된다. 게다가 어려서부터 전쟁터에도 데려가 새끼 사냥개들처럼 피 맛도 보게 해야 한다. 그런 연후 필수적인 신체단련 기간이 지나 스무 살 즈음에 이르면 나중 최종적인 배울 거리로서 변증술을 습득하기 위한 예비적인 교육이 이루어진다. 그 과정에서 ‘전체적인 조망 능력’이 주요 과제로 제시된다. 이것은 변증술적 능력의 요체가 ‘전체를 조망하는 능력’synopis 즉 복잡다단한 사안들을 총체적이고도 통일적인 관점에서 파악할 수 있는 능력임을 잘 보여준다. 앞선 강해에서도 살폈듯이 변증술은 총체적인 관점에서 ‘모든 것을 조정하고 모든 것을 다스리며 모든 것을 유용하게 만드는 기술’(<에우튀데모스>290d)이며 ‘누구든지 듣는 사람들의 본성들을 일일이 헤아릴 뿐만 아니라 있는 것들을 부류에 따라 일일이 나누고 그 하나하나를 한 형태에 포괄하는’ 능력이고, ‘하나의 형상이 많은 것들을 관통하여 모든 곳에 퍼져 있음을 그리고 서로 다른 많은 형상들이 하나의 형상에 의해 바깥으로부터 둘러싸여 있음을 분명하게 지각하는’ 능력(<소피스트>(253d )이다.

* 3) 논의의 주제가 ‘배울 거리를 누구에게 어떻게 배정할 것인가’임을 고려하면 ‘배정에 있어 고려해야 할 적극적인 사안’이 중심 내용이 될 것이라 예상되지만 정작 내용을 보면 ‘배정에 있어 경계해야 할 사안’이 논의의 주를 이루고 있다. 이곳에서 교육 단계에서 많이 경계해야 할 일이란 앞서 살폈듯이 철학에 적합하지 않은 이른바 서자나 절름발이가 그 한계를 드러내 영혼이 불법으로 가득 차게 되는 일이다. 그러므로 그런 일이 생겨나지 않도록 시험이나 선발 과정에 철저함을 기해야 한다. 그러나 십 년 동안 예비 교과와 철학 일반을 마친 사람들을 대상으로 누가 변증술에 적합한지 아닌지를 가려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때까지는 누가 진짜 적자인지 서자인지 본인은 물론 다른 사람들도 채 인지하지 못한 상태인 데다가 설사 적자라고 하더라도 반드시 시험을 이겨낼 것이라는 보장도 없기 때문이다.

* 소크라테스의 비유에서 자신이 서자임을 알게 된 사람은 서른 살에 이르러 변증술을 배우기 시작하는 단계에서 철학에 부적절한 자임이 드러난 자를 말한다. 그리고 아첨꾼이란 그들에게 지혜를 가르친다는 명목으로 그들을 유혹하는 당대 소피스트들과 수사학자들 즉 가짜 철학자들을 가리킨다. 그러나 젊은이들 모두 서른 살이 될 때까지는 친부모 밑에서 즉 전통적 신념들을 잘 보전하며 자라왔다고 여기고 있고 이후 변증술을 모두 배우기까지의 기간 또한 절대 짧지 않은 터라, 그들 중 누가 적자와 서자인지 즉 누가 철학에 적합하고 누가 그렇지 않은지를 가려내기란 크게 신중을 요하는 일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이후 교육 단계에서 여러 가지 시험의 방식으로 일부가 변증술에 부적합한 자로 판정되었을지라도 그간의 사정이 이러하므로 그들에게 이해와 연민이 따를 수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그러한 이해와 연민이 생겨나지 않도록 최대한 배움의 시작 단계에서부터 누가 변증술에 적합한지를 잘 가려내지 않으면 안 된다. 철학에 부적합한 젊은이들이 제대로 가려지지 못했을 경우 변증술의 힘의 크기만큼 왜곡된 변증술이 초래할 수 있는 부정적인 결과 또한 심대하기에 더욱 그러하다.(539b-c)

* 플라톤이 가히 실감 날 정도로 생생하게 그리고 있는 이러한 그릇된 가짜 철학자들의 모습과 그들에 의해 발생할 수 있는 위험들은 당대 지식인들에 대한 플라톤이 겪은 절망스런 체험에서 나온 것으로 플라톤 자신의 절절하고도 심각한 우려를 가득 담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당대 아테네의 지적 상태는 오늘날의 철학적 상황에 비추어도 그리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특히 어설프게 논박의 기술을 익혀 당대 지식계를 주도하고 있는 가짜 철학자들의 모습은 오늘날 철학계를 여전히 주름잡고 있지만, 오히려 철학 자체의 위상과 영향력을 그 어느 시대보다 떨어뜨리고 있는 현대 영미 분석철학의 모습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플라톤이 2500년 전 토로하고 있는 ‘마치 사냥개 새끼처럼 매번 옆에 있는 사람들을 끌어당겨서 찢어발기기를 즐긴다’는 표현은 오늘날 철학계를 주름잡고 있는 영미 분석철학자들의 행태와 너무도 닮아 있다. 그들은 문제 해결을 위한 절박한 상황에서 생각을 창조하고 구성하는 일에 전혀 관심이 없다. 더욱 한심한 것은 형이상학적 문제의식으로 가득한 플라톤 철학 분야에서조차 분석철학자들이 창궐하고 있다는 점이다. 나날이 분화되어가는 오늘날 학문 현실에서 여전히 앎의 극치로서 철학의 총체성이 요구되는 상황임에도 그들이 생산하는 담론들은 마치 사사로운 써클 활동처럼 공적 삶의 세계와 단절되어 그들만의 세계에 갇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한 놀이로 그들끼리만 공유된다. 논리적 분석과 비판이 진정 의미 있으려면 그 절차의 형식적 정밀성을 따지기 전에 삶의 현실과 관련하여 과연 무엇을 위한 비판과 분석인지, 무엇을 위한 정확성인지를 먼저 되새겨 봐야 한다. 마치 어설프게 변증술의 맛만 보고 전체를 조망하지 않고 그저 형식적 논박을 즐기고 있는 이른바 아첨꾼이나 서자들처럼 철학의 총체성을 간과한 채 그저 주어진 것에 대한 파편적 분석에만 몰두하는 자들은 시대를 불문하고 플라톤의 말대로 가짜 지성, 가짜 철학자들일 뿐이다.

* 그런데 변증술 교육 과정에서 경계할 일로 소크라테스가 제기하고 있는 것과 관련하여 오늘날 전체주의의 폐해를 경험한 우리로서 좀 더 짚어 볼 물음이 있다. 앞서 살폈듯 변증술 교육에서 플라톤이 경계하는 것은 변증술의 요체 중 하나인 질문과 대답 능력 즉 집요하고도 끈질기게 진실에 다가가는 고도의 문답 능력이 잘못 전수되어 초래될 수 있는 위험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변증술의 또 다른 요체이자 핵심 즉 ‘전체를 조망하는 능력’이 잘못 전수되었을 경우 어떤 부작용이 초래될 수 있을지도 함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일련의 문답 과정에서 일어나는 부작용도 심대하긴 하지만 그야말로 진실 전체를 모든 국면에서 모든 방식으로 전도시킬 수 있는 최종적인 단계에서 발생하는 위험에 비할 바가 못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들은 오늘날 이른바 나치즘, 파시즘, 스탈리니즘 등 이른바 전체주의 정치체제들이 모든 국면에서 전체를 내세워가며 얼마나 나랏일을 황폐화시켰는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20세기 이후 많은 사상가들은 그러한 정치체제들은 물론 플라톤의 정치체제까지 민주주의의 적으로 비난을 퍼붓고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플라톤은 오늘날 전체주의 정치체제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모자라지 않은 참주정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변증술에서 경계해야 할 사안을 다루면서 ‘전체를 조망하는 능력’이 초래하는 부작용의 경우는 단 한마디도 언급하고 있지 않다. 왜 그랬을까? 단적으로 말해 그것은 플라톤 자신 그 자체로 이미 애초부터 변증술의 ‘전체를 조망하는 능력’을 참주나 이른바 전체주의자들이 갖춘 능력과 비슷하기는커녕 아예 거론할 만한 어떠한 접점조차 갖고 있지 않은 그야말로 정반대의 것으로 여겼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실 오늘날 자유주의자들은 단지 권력자의 머릿수를 기준으로 철인왕정과 참주정을 동일시하고 있지만 플라톤의 관심은 오로지 권력이 철학적 지성을 갖추고 있느냐에 있었다. 그러므로 플라톤에게 철인왕정과 참주정은 원천적으로 처음부터 비교조차 될 수 없는 것이었다. 철인왕정은 본질적으로 좋음과 아름다움 자체를 자연세계를 구성하는 우주적 실재이자 진실이며 나아가 정의로운 나라의 토대임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앞으로 제8권에서 밝혀지겠지만 참주정은 위와 같은 우주적 진실과 정의라는 모두의 좋음을 부정하고 오로지 특정 개인 내지 기득권자들만의 좋음을 즉 배타적 이기적 탐욕만을 정치의 원리이자 목표로 내세운다. 그럼에도 오늘날 많은 자유주의자들은 좋음의 형상의 존재와 그것을 통해 나라에서 우주적 좋음을 구현하려는 플라톤의 절절한 선의지를 단칼에 외면하고 플라톤의 철인왕정을 마치 현대 폭압적 전체주의 체제의 시조인 양 비하하고 있다. 물론 그것은 근대 자연과학의 발달과 20세기 피폐한 전체주의적 정치체제의 등장 이후 이른바 ‘선한 우주agathos kosmos’에 대한 믿음 자체가 무너져 버린 데 기인한 것이긴 하다. 그러나 자연사 및 세계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철인왕정에 대한 그들의 비난은 그 시대 나름의 의미와 타당성을 가질 수는 있어도 그들의 견해가 우주적 실재를 관통하고 지배하는 원리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근거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최소한 우리는 현 단계에서 가히 시간적으로 무한하고 공간적으로 무한하다 싶을 정도의 우주가 실재하며 나아가 그 우주가 일정한 질서와 법칙 이른바 자연의 제일성(齊一性, unifomity)을 갖고 있다는 것을 우주적 진실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 과학 또한 그러한 전제와 토대 위에서 성립한다. 플라톤의 철인왕정 또한 그러한 믿음을 토대로 우주의 일부로서 인간적 삶의 공동체를 목표로 최대한 우리가 바라고 지향할 수 있는 이상적 푯대로 제시된 것이다. 물론 플라톤의 철인왕정은 오늘날의 관점에서 당연히 비난의 대상이 될 만한 사안들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폭압적 전체주의에 대한 플라톤의 혐오는 현대 자유주의자들보다 컸으면 컸지 절대로 작지 않다. 아무려나 플라톤이 살았던 시대건 오늘날이건, 플라톤이건 현대 자유주의자들이건 궁극적으로는 모두가 하나같이 서로 다른 욕망을 가진 사람들끼리 조화를 이루며 평화롭게 공존하길 원한다. 그러한 한, 상이한 여럿의 조화와 공존을 본질로 하는 좋음의 형상 자체는 쉽게 외면할 일이 아니고 또 그렇게 외면될 수도 없다. 그것은 인간의 본성 내부에 현존하는 불멸의 힘이자 희망으로 끝없이 도전을 이겨내고 우리 영혼을 북돋고 고양시키며 인간의 역사를 견인하고 구성하는 하나의 실재체ousia가 아닐 수 없다.

* 4)에서는 변증술의 부작용이 생겨나지 않도록 변증술을 배우기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을 잘 가려내야 하고, 나아가 그 배움의 중요성만큼 얼마의 기간 동안 어떻게 그것을 단련하고 실천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 즉 앞서 논의 주제로 제시되었던 배울 거리에 대한 배정의 문제가 다루어진다. 소크라테스가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그 구체적인 연령별 단계별 내용을 어린 아이 시절부터의 교육을 포함하여 함께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i) 4-5살부터 17-18살까지 : 시가 및 체육 교육

시가교육(376e-403c)과 신체 단련 교육 즉 체육 교육(403c-412b)은 제2권과 제3권에서 다루고 있다.

ii) 17, 18-20살(2-3년) : 필수적인 신체 단련 기간(537b)

이 기간은 청소년 시절 시가와 더불어 진행된 체육 교육이 아니라 군대에서 의무적으로 복무하는 기간을 말한다.

iii) 20-30살(10년) : 변증술을 위한 예비적 배울 거리들을 배우는 기간(537c)

스무 살이 된 자 중 선발된 자를 대상으로 교육이 이루어지는 이 기간은 변증술에 적성이 있는지 없는지를 가늠하는 가장 큰 시험이 되는 기간이다.

iv) 30-35살 : 변증술을 단련하는 기간(537d-539e)

서른 살이 된 자들을 대상으로 오로지 변증술적 논변에 참여하고 그것을 단련케 하는 기간이다. 이때 변증술의 맛만을 보고 그릇되게 사용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초기 단계부터 조심해야 하고 만약 그런 경우가 생기는 경우 그런 자들을 걸러내야 한다.

v) 35-50살(15년) : 의무적으로 나랏일을 실제 경험하고 실습하는 기간(539e)

앞선 모든 과정에서 가장 뛰어난 자들로 하여금 경험에서 남들에 뒤지지 않도록 전쟁 업무를 포함하여 그들에게 맞는 관직을 의무적으로 수행케 하는 기간이다. 통치자가 나랏일을 관장하는 최고 관리직이라면 이들은 그들을 보조하는 관료들이라 할 것이다.

vi) 50살 이후 : 통치자로 임명되어 번갈아 가며 통치 업무를 수행하는 기간(540a-b)

이들 중 쉰 살에 이른 자들을 대상으로 다시 선발 과정을 거쳐 변증술의 최종단계인 좋음의 형상을 본 자들을 통치자로 임명한다. 이들은 남은 생애 대부분을 철학을 하며 지내면서 자신의 차례가 되면 좋음 자체를 본으로 삼아 통치 업무를 수행하고 동시에 장차 통치자가 될 수호자들을 길러낸다. 그리고 사후에는 복된 자들의 섬에서 거주한다.(540b-c)

 

* 5) 그리고 끝으로 소크라테스는 앞서 다루었던 나라와 정치체제와 관련한 모든 이야기가 전적으로 기원euchē에 불과한 것들이 아니라 어렵긴 하지만 어떤 식으로는 가능한 것들이라고 말한다. 플라톤의 이상국가의 실현 가능성과 관련한 이전의 논의(강해 64)에서도 이미 살폈듯이 매우 제한적인 조건에서만 가능할 정도로 그 실제적인 가능성은 극히 낮다. 그런 점에서 <국가>의 정치체제는 플라톤에게도 실제로는 말 그대로 말로 세우는 이상으로서 정치체제이다. 그리고 철학자 왕이 ‘한 명이냐 여럿이냐’의 문제 역시 앞선 강해(강해 44)에서 살폈듯이 플라톤에게는 별 의미가 없다. 오로지 중요한 것은 이곳에서도 언급하고 있듯이 ‘여럿이든 한 명이든’ 그 사람이 진정한 철학자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플라톤은 이곳에서 제5권(456a-466e)에서 이미 밝혔듯이 그 통치자에 여성 또한 포함되어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있다.

*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나라와 정치체제를 가장 쉽고 빠르게 수립하기 위한 방안을 이곳에서 제기하고 있는데 그것은 말로 세운 국가가 안정적으로 구축된 이후 상시적으로 시행되는 방안이 아니라 현실국가를 이상 국가로 정화하는 단계에서 과도기적으로 요구되는 방안이다.

 

* 이로써 제5권에 들어와 배우자 공유에 대한 이의가 제기되면서 논의 일탈의 형식으로 제시된 주제 즉 통치자로서 철학자 왕의 불가피성 그리고 그들을 위한 교육 내용과 단계에 관한 논의가 제7권을 끝으로 모두 마무리된다. 그러니까 정의로운 나라와 사람 그리고 그 반대로 부정의한 나라와 사람을 비교하여 누가 더 행복한가를 살피고자 했던 최초의 논의 계획의 전반부 즉 정의로운 나라와 그 나라를 닮은 정의로운 사람에 관한 논의가 모두 마무리된 셈이다. 이제 부정의한 나라와 그것을 닮은 사람에 관해 논의할 차례이다. 제8권부터 우리는 그 주제와 마주한다. -제7권 끝-

 

다음 주제 : VI 본론 3 : 부정의와 현실 비판 – 현실 국가 분석(제8권-제9권)

A. 부정의한 나라들과 부정의한 개인들.

  1. 도입부 : 원래 문제로 복귀. 고찰의 방법과 순서(543a-545c)

플라톤의 <국가> 강해(76) [이정호 교수와 함께하는 플라톤의 『국가』]

플라톤의 <국가> 강해(76)

 

C. 철인통치자의 교육 목표와 교과목(502c-541b)

5. 영혼의 전환과 참된 실재로의 상승을 위한 교과목들(제7권 521c-541b)

2) 본 교과목 : 철학적 문답법 – 변증술(531d-535a)

 

[531d-535a]

* 소크라테스는 앞서 다룬 배울 거리들이 본 곡το νόμος을 배우기 위한 서곡το προοίμιον에 지나지 않음을 밝힌다. 아무리 그것들에 대단한 사람들일지라도 그들은 ‘변증술에 능한 자들’οἱ διαλεκτικοὶ이 아니기 때문이다.(531d) 그런 연후 소크라테스는 바로 변증술적 대화’τὸ διαλέγεσθαι가 연주하는 바로 그 본 곡을 아래와 같이 언급한다. ‘그것은 마치 시각 능력이 마침내 생물들 자체와 별들 자체, 그리고 마지막으로 태양 자체 보기를 시도하듯이 누군가가 변증술적 대화에 착수해서 모든 감각을 배제하고 논변λόγος을 통해 “‘각각의 있는 것 자체’αὐτὸ ὃ ἔστιν ἕκαστον를 향해 나아가ὁρμᾶν, 있는 것인 ‘좋음 자체’αὐτὸ ὃ ἔστιν ἀγαθὸν를 지성적 이해νόησις 자체에 의해 파악λαβή하는 것”이다. 즉 마치 ‘동굴을 벗어난 수감자’가 가시적인 것의 끝점τέλος에 도달하듯이, 가지적인 것의 바로 그 끝점에 도달하는 그 여정πορεία이 곧 ‘변증술’διαλεκτική이라 불리는 것이다.(532a-b)

* 그리고 그 여정에 이르기까의 과정들 즉 결박δεσμός으로부터 풀려나기, 그림자σκιά들 쪽에서 영상εἴδωλον들과 빛 쪽τὸ φῶς을 향해 방향을 바꾸기μεταστροφή, 동굴κατάγειος에서 나와 태양ἥλιος까지 올라가기ἐπάνοδος,(532b) 그리고 거기에서 아직은 동식물들τὰ ζῷά τε καὶ φυτὰ과 태양의 빛을 볼 수 있는 능력은 없지만, 있는 것들의 그림자와 물ὕδωρ에 비친 ‘신적인 상들’φαντάσματα θεῖα을 보기 등은 영혼 안의 가장 훌륭한βέλτιστος 것을 있는 것들 중에 가장 좋은ἄριστος 것을 구경θέα할 수 있도록 이끌어 올리는 힘δύναμις을 가지고 있다.(532c)

* 이와 같이 소크라테스가 본 곡에 대한 운을 떼자 글라우콘은 그것을 받아들이기도 받아들이지 않기도 쉽지 않은 일이어서 앞서 서곡에 대해 설명 했던 것처럼 본 곡도 설명해주기를 요청한다. 우선 그는 변증술적 대화τὸ διαλέγεσθαι의 힘δύναμις은 어떤 성격τρόπος의 것이며, 어떤 식으로 분류되고διέστηκεν, 또 어떤 길들ὁδοί을 따라가는지를 묻는다.(532d). 이 길들이 드디어 바로 그곳, 거기에 도달한 사람들οἷ ἀφικομένῳ에게는 길로부터의 휴식ἀνάπαυλα이자 ‘여정의 종착지’τέλος τῆς πορείας와 같은 것이 되는 그곳으로 인도하는ἄγουσαι 길들이기 때문이다.(532e)

* 이에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열의προθυμία야 조금도 부족함이 없을 테고, 이제부터 비유εἰκών를 통해서가 아니라 내게 보이는 대로 참된 것 자체’αὐτὸ τὸ ἀληθές,ὅ γε δή μοι φαίνεται를 보게 될 테지만 그리고 그것이 진짜 그런지 아닌지는 더 이상 자신 있게 주장할 만한 일이 아니지만, 더 이상은 따라올 수 없을 것이라 말한다.(533a) 그리고 그는 각각의 것 자체 모두에 관하여 체계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별도의 연구 즉 변증술적 대화의 힘뿐이고 다른 모든 기술들은 사람들의 믿음δόξα들과 욕구ἐπιθυμία들과 관련되어 있거나, 생성γένεσις 또는 조립σύνθεσις된 것들과 관련되어 있거나, 아니면 그러한 것들을 보살피는 쪽πρὸς θεραπεία으로 모두 방향이 맞춰져 있다τετράφαται고 말한다.(533b) 그리고 ‘있는 것’τὸ ὄν에 어느 정도 관여한다고 우리가 주장한 나머지 것들, 즉 기하학과 그에 뒤따르는 것들도, ‘있는 것’을 깨어 있는 상태로 볼ὕπαρ 수는 없다고 말한다. 그것들은 가정ὑπόθεσις들을 사용하되 그 가정들에 대한 설명λόγον διδόναι은 제공할 수 없어서 그것들을 건드리지 않고 내버려 두기ἐῶσι 때문이다. 이와 같이 첫 원리ἀρχὴ는 물론 결론τελευτή과 그 중간의 것들τὰ μεταξὺ도 알지 못하는 것으로 짜여진 경우’ἐξ οὗ μὴ οἶδεν συμπέπλεκται 설사 정합성ὁμολογία을 이룬다 해도 결코 앎ἐπιστήμη이 될 수 없다.

*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변증술적 연구ἡ διαλεκτικὴ μέθοδος만이 스스로 확고하게 만들기βεβαιώσηται위해 가정들을 제거하면서ἀναιροῦσα 첫 원리 자체로 나아가며πορεύεται,(533c) 우리가 설명한 기술들τέχναι을 ‘영혼의 전환을 함께 돕는 조력자’συνερίθος καὶ συμπεριαγωγός로 삼고서 그야말로 ‘야만의 늪에’ 묻혀 있는 영혼의 눈ἐν βορβόρῳ βαρβαρικῷ τινι τὸ τῆς ψυχῆς ὄμμα κατορωρυγμένον’을 ‘조용히 이끌어 위로 인도한다.’ἠρέμα ἕλκει καὶ ἀνάγει ἄνω고 말한다.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앞서 설명한 기술들을 우리는 습관ἔθος 때문에 종종 앎ἐπιστήμη이라고 불렀지만, 이것들에게는 믿음δόξα보다는 밝고 앎보다는 어두운 다른 이름이 필요하여 앞에 어딘가에서 우리는 이것을 사고διάνοια라고 불렀지만, 내가 보기에, 살펴볼 것이 우리 앞에 이토록 많이 놓여 있으므로 이름ὄνομα을 가지고 왈가왈부ἀμφισβήτησις할 일은 아니라고 말한다.(533d) 그런 연후 앞에서 그랬듯이, 첫 번째 부분은 앎ἐπιστήμη이라고 부르고, 두 번째는 사고διάνοια, 세 번째는 확신πίστις, 네 번째는 짐작εἰκασία이라고 부르고 뒤의 둘은 합쳐서 믿음δόξα으로, 앞의 둘은 합쳐서 지성적 이해νόησις라고 부르면 충분하다고 덧붙인다. 그리고 이어서 그는 믿음은 생성γένεσις과 관련되고 지성적 이해는 있음οὐσία과 관련되며, 있음과 생성의 관계는 지성적 이해와 믿음의 관계와 같으며 지성적 이해와 믿음의 관계는 앎과 확신의 관계, 그리고 사고와 짐작의 관계와 같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다만 이것들이 대상으로 하는 것들 사이에 어떤 비례ἀναλογία가 성립하는지와, ‘믿음의 대상과 지성적 이해의 대상 각각을 둘로 나누는 것’διαίρεσιν διχῇ ἑκατέρου, δοξαστοῦ τε καὶ νοητοῦ은 우리가 해온 논의의 몇 배나 되는 논의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서 내버려 두자고 말한다.(534a)

* 소크라테스는 위와 같이 각각의 것의 있음οὐσία에 대해 설명λόγος을 할 수 있는 자를 ‘변증술에 밝은 자’διαλεκτικός로 그리고 그럴 수 없는 자는 스스로와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을 제시’λόγον διδόναι할 수 없는 자로서 지성νόος을 갖추지 못한 자로 부르고 좋음τὸ ἀγαθός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즉 ‘좋음의 형상’τὸ ἀγαθοῦ ἰδέα을 설명을 통해 다른 모든 것들로부터 구별해서 규정할 수 없는 사람,(534b) 그래서 마치 전투에서처럼 모든 논박ἔλεγχος을 헤쳐 나가면서 믿음이 아니라 있음에 의거해서 검토하고자ἐλέγχειν 애를 쓰며 그 설명λόγος을 유지한 채로ἀπτωτί 이 모든 상황을 뚫고 나가지διαπορεύηται 못하는 사람은 좋음 자체αὐτὸ τὸ ἀγαθὸν도 그리고 다른 어떤 좋은 것도 알지 못하는 자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그런 사람은 행여 어떤 영상을 포착한다고 하더라도 앎이 아니라 믿음으로 포착하는 것이며, 현재의 생에서 꿈꾸고ὀνειροπολοῦντα 졸면서ὑπνώττοντα 지내다가 여기서 깨어나기ἐξεγρέσθα 전에 하데스에 먼저 도착해서 완전히 잠들 것이라고 말한다.(534c)

*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아이들을 논의가 아니라 언젠가 실제로 양육하게 될 경우, 그들이 마치 무리수ἄλογος 길이의 선분들과 같은 상태로 나라의 통치자ἄρχων가 되어 가장 중요한 일들을 주재하는κυρίους 것을 허용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질문하고 대답하기를 가능한 한 가장 잘할 줄 아는 자가 되게 만드는’ἐξ ἧς ἐρωτᾶν τε καὶ ἀποκρίνεσθαι ἐπιστημονέστατα οἷοί τ᾽ ἔσονται 교육παιδεία에 그들이 참여하도록 법을 제정할 것을 제안한다.(534d)

* 그런 연후 소크라테스는 위와 같은 자신의 설명이 변증술ἡ διαλεκτικὴ이 마치 갓돌θριγκός처럼 배울 거리들τὰ μαθήματα 위에 놓이고, 이것보다 위에 놓여 마땅한 다른 배울 거리μάθημα는 이제 더 없는 것으로 보이게 했는지를 확인한 후(534e) 배울 거리들에 대한 문제가 드디어 마무리τέλος되었다고 말하고 이제 배울 거리들을 누구에게 그리고 어떤 방식τρόπος으로 부여할지를 배정διανομή하는 일이 남아있다고 말한다.(535a)

———————————–

* 533c ‘첫 원리archē는 물론 결론teleutē과 그 중간의 것ta metaksy들’ :  점차 밝혀지겠지만 변증술적 앎의 총체성은 철학의 총체성이 그러하듯 비록 추상적이기는 하지만 구체적 개별자들을 하나로 관통하여 존재 세계에 대한 총체적 견지를 가져다주고 나아가 그것을 토대로 개별 존재들 각각의 본질에 대한 원리적인 포착을 가능하게 해준다. 그리고 플라톤의 형상은 위계상 최상의 실재 세계를 구성하지만, 철학자 왕에게 그 형상적 앎이 요구되는 근원적인 이유와 목표는 오히려 형상과 무(mē on) 사이에 존재하는, 끝없이 차이를 노정하는 중간의 것들 즉 현실 세계의 인식과 구원에 있다. 즉 형상의 인식은 실천적으로는 하나의 방편인 것이다. 변증술을 통해 좋음의 형상을 아는 사람은 마치 전투에서처럼 모든 논박을 헤쳐 나가면서 믿음이 아니라 있음에 의거해서 검토하고자 애를 쓰면서 그 설명을 유지한 채로 현실의 모든 상황을 뚫고 나가는 사람이다.(534c) 변증술이 철학자 왕이 배우고 알아야 할 궁극의 교과인 이유이다.

* 533d ‘이름을 가지고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다’ : 플라톤은 선분의 비유를 이곳에서 다시 요약하고 있는데 제5권(474c-480a)과 제6권 선분의 비유(509c-513c)의 내용과 비교하여 epistēmē의 범위를 다소 다르게 기술하고 있다. ‘이름을 가지고 왈가왈부 할 일이 아니다’라는 이곳 언급은 그것을 의식하고 한 말로 보인다. 그런데 본 강해 64에서 살폈듯이 그의 그러한 용어 사용에서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플라톤 자신 최소한 기하학, 천문학 등 일반 학술technai이 포함하는 ‘사고’dianoia의 학적 수준을 일종의 앎이자 지성적 이해로 넓게 포함시켜 평가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우리가 해온 논의의 몇 배나 되는 논의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서 말이지’(534a)도 인지적 상태들 사이에 성립하는 비례관계가 그 대상들 사이에 성립하는 비례관계와 같지 않을 수도 있다는 해석을 낳는 부분이지만 내용적으로 보면 이 역시 dianoia의 대상에 일정 부분 학적인 성격을 유연하게 인정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강해 64 해당부분 참고)

* 534b ‘설명을 제시하는 것’logon didonai : logon didonai는 플라톤 철학을 설명할 때 핵심적으로 제시되는 용어의 하나이다. 플라톤에게 지성nous을 갖춘다는 것은 특정 입장의 강요나 압박, 선전·선동이 아니라 스스로와 다른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대화의 방식으로 충분히 ‘설명을 제시하는 것’이다.

* 534d ‘무리수 길이의 선분들과 같은 상태로’ : ‘무리수’로 번역한 그리스어는 ‘alogos’이다. 그것은 logos(정수들의 비율)가 없는 상태를 의미하지만 ‘비이성적’이라는 의미도 있다는 점에서 이 부분은 일종의 말 유희를 포함하고 있다. 플라톤은 좋음에 대한 설명 또한 이성적 설명을 넘어선 것으로 여기고 있다.

——————————–

* 변증술의 원어 dialektikē는 어원상 ‘대화하다’, ‘토론하다’, ‘끄집어내다’를 의미하는 dialegō에서 파생된 형용사 dialektikos(문답에 능한)의 여성형이다. 그래서 그 말은 명사형으로는 그리스어 사전상 표제어로 나오지 않는다. 그 말이 플라톤 고유의 철학적 문답의 기술 즉 he dialektikē technē를 나타내는 하나의 명사 ‘dialektikē’로 사용된 곳은 이곳(532b)이 처음이다. 물론 제논(Zeno of Elea)도 이 말을 문답술의 의미로 사용했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전하고 있지만(<단편집> 단편 65) 전거상 구체적인 내용을 갖고 고도의 철학적 문답기술로 제시한 것은 플라톤이 처음이다. 이후 철학사를 통해 수많은 철학자들이 쓰고 있는 이른바 ‘변증법’dialectics이라는 이름은 바로 플라톤이 <국가>에서 명명한 이 dialektikē에 뿌리를 두고 있다. 우리말 역본에서 dialektikē를 ‘문답법’이 아닌 ‘변증술’로 번역하고 있는 것도 플라톤 고유의 방법론이라는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그러한 철학사적 연관도 함께 고려한 것이리라.

* 물론 dialektikē라는 말이 <국가>에서 처음 사용되었다고 해서 플라톤의 변증술이 <국가>에서 처음 제시된 철학적 방법론은 아니다. 나중 살피겠지만 dialektikē와 거의 병용하다피시 사용되고 있는 dialegesthai(변증술적 대화 – dialegō의 중간태 현재 부정사. 중간태는 동사가 의미하는 행동이 자신에게 미치는 경우 쓰이는 그리스어 특유의 변화형)란 말과 ‘변증술에 능한’을 의미하는 dialektikos란 말이 이미 그 이전 대화편들에서도 많이 나온다. 그럼에도 이곳 <국가>에서 변증술에 관한 플라톤의 언급이 중요한 것은 그 자신 앞서 본문 요약이 보여주듯 동굴의 비유와 선분의 비유를 모두 끌여들여 변증술의 핵심을 매우 적극적인 방식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플라톤은 변증술을 ‘동굴을 벗어난 수감자가 동물들 자체와 별들 자체 그리고 마지막으로 태양 자체를 보기를 시도하는 것’에 비유하면서 구체적으로 “dialegesthai에 착수해서 모든 감각을 배제하고 논변logos을 통해 각각의 있는 것 자체를 향해 나아가, 있는 것인 ‘좋음 자체’를 지성적 이해 자체에 의해 파악하는 것”, “마치  수감자가 동굴 바깥 가시적인 것의 끝점에 도달하듯이, 가지적인 것의 바로 그 끝점에 도달하는 여정poreia”’(532a-b)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결박으로부터 풀려나기부터 있는 것들의 그림자와 물에 비친 사람들이나 신적인 상들을 보기까지의 과정을 앞서 설명한 산술과 기하학 등 학술들이 수행한 작업으로서 ‘야만의 늪에 묻혀 있는 영혼의 눈을 조용히 위로 이끌어’ 종착지인 좋음의 형상에 이르게 하는 힘, 즉 변증술을 가능케 만드는 힘으로 규정하고 있다.(532c) 동굴의 비유 해당 부분(516a)에 따르면 이 신적인 상들을  본 연후 눈이 익숙synētheia해져 비로소 동굴 바깥 실물들을 보게 되고 이어서 하늘에 있는 것들과 하늘 자체를 보는 것이 가능하다. 이것은 플라톤이 수감자가 결박에서 풀려나 동굴 바깥에 이르러 물에 비친 사람들과 신적인 상들을 보는 단계까지의 과정과 그 단계를 넘어 실물들을 보고 하늘을 본 후 끝내 태양을 보기까지의 여정을 구분함과 동시에 후자의 여정 즉 “실재 세계로 들어와 실물들 즉 ‘각각 있는 것 자체’auto ho estin hekaston인 형상들을 본 후 지성적 이해를 통해 형상들 전체를 하나로 꿰뚫고 있는 ‘좋음의 형상’이라는 끝점에 도달하기까지의 여정”을 변증술로 규정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 그리고 플라톤은 <국가>에서 위와 같이 변증술을 규정한 후, 이후의 대화편들 구체적으로 <파이드로스>, <소피스트>, <필레보스>, <정치가>에 이르러 이른바 모음(종합)synagē과 나눔(분할)diairesis의 방법을 끌어들여 최고류는 물론 형상 세계 전체의 상호 관계에 대한 논의에 집중하면서 그 탐문의 기술을 다시 한 번 ‘변증술’로 부르고 있다. 이것이 곧 많은 학자들이 공통으로 이름을 붙인 이른바 플라톤의 ‘후기 변증술’이다. 나중 이 후기 변증술을 간략히 살펴보겠지만 나눔과 모음을 변증술의 방법으로 처음 제시하고 있는 <파이드로스>의 경우 그 모음의 방법은 ‘흩어져 있는 여럿들 모두를 함께 보면서 단일한 형상으로 이끄는 것’으로, 그리고 나눔의 방법은 ‘서투른 푸주한처럼 부분 부분을 부숴트리는 것이 아니라, 형상에 따라 자연적인 마디 그대로 자를 줄 아는 것’으로 정의되고 있다.(265d-266c) 그러나 모음과 나눔의 방법으로서 새롭게 제시된 이른바 후기 변증술이라고 해서 앞서 <국가>에서 정의된 변증술과 무관하거나 다른 성격의 것이라 생각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내용상 모음과 나눔이라는 표현이 명시적으로 나타나지 않았을 뿐, <국가>에서도 오름길의 마지막 단계 즉 형상들과 그것들의 관계와 위계 그리고 좋음의 형상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변증술로 규정하고 있고, 내림의 과정에서도 형상들 각각의 진상과 상호 관계가 다시 조명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앞서 살폈듯이 동굴의 비유에서 수감자는 동굴 바깥으로 나와  각각의 사물들과 동식물들 자체와 별들 자체 등 사물세계 전체를 본 후 마지막으로 태양 자체를 본다. 다시 말해 수감자는 형상으로서 각각의 실물들을 본 다음 그 실물들과 그 실물들의 결합물로 가득한 바깥 세계 즉 지상과 하늘에 존재하는 실재 세계 전체는 물론 그 결합의 궁극 원리로서 좋음 자체도 인식한다. 그뿐만 아니라 선분의 비유에서도 플라톤은 그러한 과정을 간략하지만 보다 명시적인 방식으로 아래와 같이 언급하고 있다. 즉 변증술을 통해 오름의 과정에서 “이성 자체가 첫 원리를 포착한 다음 이번에는 이 원리에 의존하고 있는 것들을 고수하면서 다시 결론 쪽으로 내려가되 그 어떤 감각적인 것도 전혀 이용하지 않고 형상들 자체만을 이용하여 이것들을 통해 이것들 속으로 들어가서 형상들에서 또한 끝을 맺는다.”고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511b-c) 이 언급은 앞서 언급한 후기 변증술 즉 모음의 방법으로 하나의 유(類)genos를 포착한 다음 나눔의 방법으로 그 유를 종(種)들eidē로 나누되 정의할 부류의 본질적 성질이 드러날 수 있도록 최하종atoma eidē에 이르기까지 나누는 절차와 내용상 큰 차이가 없다. 

* 그러나 이러한 후기 변증술이 비록 <국가> 이후 후기 대화편들에 와서 모음과 나눔이라는 구체적인 방법론으로 제기되었다고 해도 그 변증술의 기본 성격과 목표와 지향은 <국가>에서 ‘변증술적 힘의 성격과 분류, 방향’을 묻는 글라우콘의 문제의식(532d-e)이 보여주듯 <국가>를 포함해서 그 이전 대화편들에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이미 제기되어 왔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사실은 플라톤이 변증술을 다루면서 사용하고 있는 용어들만 추적해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앞서 살폈듯이 dialektikē라는 말이 처음 사용된 것은 분명 이곳 <국가>가 처음이다. 그렇지만 <국가>에서 조차 그 말은 532b, 536d 두 군데 정도에서 사용할 뿐, 변증술을 거론할 때면 그 이전부터 사용했던 dialektikos와 dialegesthai를 그대로 쓰고 있다. 아니 <국가>에서 변증술을 나타내는 말로 오히려 그 말들이 훨씬 많이 사용되고 있다.(dialegesthai : 511b, 511c, 525d, 532a, 532d, 533a, 537d, 537e, 539c, dialektikos : 290c, 531d, 534b). 그에 따라 그 말들은 이른바 후기 변증술을 본격적인 주제로 포함하고 있는 대화편들 즉 <파이드로스>, <소피스트>, <필레보스>, <정치가>에서도 너무나 당연하듯 자연스럽게 사용된다. 게다가 이제 주목할 것은 그 말들은 그곳에서만이 아니라 쟁론술eristikē과 대비하여 함께 참과 존재를 탐구하는 철학적 문답법의 의미로 이미 <국가> 이전부터 사용되어왔다는 점이다. 물론 그 말들은 상용어라는 점에서 꼭 변증술적 문답의 의미로만 쓰인 것은 아니지만 이를테면 <변명>에서는 물론(40c), <프로타고라스>에서도 소크라테스와 대화자들 사이에서 dialegesthai가 철학적 문답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고(335a, 336c) <고르기아스>(448d)에서도 소크라테스는 그 말을 철학적 문답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메논>(75d)에서는 dilektikos가 ‘진리를 답하는 것뿐만 아니라 묻는 사람이 안다고 인정하는 그런 것들을 가지고 답하는 것’으로 언급되고 있고  <크라튈로스>(389d)에서도 dialektikos가 변증술 관련 용어로 사용되면서 ‘입법가의 일을 잘 감시할 수 있는 사람’으로 언급되고 있다.  중기 대화편이기는 하지만 <에우튀데모스>(290c)에서도 그 말이 나온다. 그리고 <테아이테토스>(167e)에서도 <필레보스>(17a)에서처럼 dialegesthai가 쟁론술과 구분되는 진정한 철학의 방법임이 강조되고 있다. 서양 역본은 물론 우리말 역본에서 ‘dialectics’, ‘변증술’이란 단어가 수없이 등장함에도 정작 그것의 원어가 꼭 dialektikē가 아닌 이유도, 그리고 변증술 관련 원어 색인에 dialektikē만이 아니라 dialektikos, dialegesthai가 병기되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것은 dialektikē라는 말이 비록 <국가>에서 처음 사용되었을지라도 <국가> 등 중기대화편에서는 물론 그 이전의 대화편들에서도 참과 존재를 탐구하는 플라톤 고유의 철학적 문답법으로서 변증술이 두루 개진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 이렇게 볼 때 우리는 플라톤의 변증술을 가장 좁은 의미에서 모음과 나눔의 방법으로서 후기 변증술로 규정할 수도 있지만, 넓은 의미에서 보면 <국가>의 동굴의 비유 전체 과정이 그러하듯 감각지로부터 벗어나 좋음의 형상에 이르기까지의 진리 탐구 과정 전체 즉 초기 대화편들에서부터 후기 대화편들에 이르기까지 플라톤이 사용하고 있는 철학적 문답법 모두를 변증술로 부를 수도 있다. 실제로 많은 학자들은 플라톤이 사용하는 철학적 문답법 일반을 넓은 의미의 변증술로 규정하고 그것이 논의하는 주제와 구체적인 방식에 따라 그 변증술을 내용적으로 세 단계의 형태로 구분하고 있다. <국가>의 변증술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철학적 문답법으로서 변증술 일반에 대한 이해 또한 필요하다는 점에서 그 내용을 간단히 살피면 아래와 같다.

* 우리가 익히 알고 있다시피 플라톤의 대화편은 우연과 편견이 가득한 일상에서 참을 찾기 위한 dialogs 즉 대화에서 출발한다. 그에 따라 초기 대화편들은 대체로 일상적 믿음과 편견에 대해 비판적 물음을 던지는 방식으로 ti esti 즉 사물과 사태에 대한 ‘정의(定義)’를 근본 주제로 다루고 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때 그러한 정의를 다루는 과정에서 문답의 방식으로 사용된 것이 이른바 소크라테스의 논박elenchos의 방법과 산파술maieutikē이다. 이런 점에서 이러한 방법들 또한 넒은 의미의 변증술의 하나로서 앞에서 언급한 변증술의 단계별 형태를 기준으로 가장 첫 번째 것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문답 끝에 제시되고 있는 마지막 결론은 늘 유보된 상태에서 ‘무지의 지’를 깨닫는 데 머물러 있다. 그렇지만 점차 이러한 무지의 지에 대한 깨달음은 참된 실재에 대한 앎의 욕구를 다시 촉발시키고 그에 따라 물음은 ‘정의’의 문제를 넘어서서 즉 실재에 대한 탐문으로 이어져 믿음doxa와 구분되는 ‘있는 것 그 자체’to on kath’ hauto‘ 즉 ’형상‘에 대한 앎epistēmē이 보다 진전된 철학적 문답법의 주제로서 탐색되기에 이른다. <국가>의 선분의 비유와 동굴의 비유를 보면 일상의 대화에서 시작한 이러한 탐문의 과정이 앎을 향한 오름길anodos의 모습으로 잘 그려져 있다. 그래서 그 단계의 오름길에서는 어떤 한 부류의 사물들과 하나의 어떤 이데아 내지 형상이 맺고 있는 관계가 논의의 주제를 이루면서 이른바 methesis, parousia, koinōnia라는 용어가 그 관계를 설명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이것은 초기대화편에서 제기된 ti esti의 물음이 ’무지의 지‘에 대한 깨달음을 넘어서 사물들에 분유된 실재의 흔적을 추적하여 종국에는 그 실재 자체를 적극적으로 발견하려는 탐문으로 진전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른바 <파이돈>, <국가> 등 중기 대화편의 주제가 그에 해당하는데 우선 <국가>만 보더라도 플라톤은 선분의 비유와 동굴의 비유를 통해 그러한 실재 내지 참된 앎의 조건과 성격 그리고 그 대상을 구체적이고도 적극적으로 개진하고 있다. 특히 <파이돈>에서는 거짓을 폭로하는 논박을 뛰어넘어 참된 앎과 실재로 육박하려는 플라톤의 의지를 잘 보여주는 방법으로서 이른바 ‘가정hypothesis의 방법’이 제시되고 있다.(99c-100a) 플라톤은 그곳에서 영혼 불멸을 증명하는 차선의 방법으로 가장 강하다고 판단되는 명제를 가정한 다음 그야말로 정립과 반정립의 방식으로 참에 가까운 것으로 인정될 수 있는 보다 상위의 가정에로 끊임없이 고양시켜 그렇게 이른 최선의 원리를 가정하여 그것을 근거로 답을 제시한다. 이것은 <국가>에서 가정들을 끊임없이 제거하면서 형상적 앎에 이르는 이성 자체의 문답법과 다를 바가 없다. 이런 점에서 가정의 방법 또한 변증술의 한 형태로 앞서 언급한 단계 가운데 두 번째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국가>에서 이 두 번째 형태는 동굴의 비유로 보자면 동굴을 벗어나 바깥 세계에 들어서 눈이 익숙해져 마침내 실물들을 마주한 상태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 그런데 플라톤은 개별 실재들에 대한 앎에 도달한 것을 넘어 그 실재 세계 전체에 대한 앎 즉 모든 형상들의 결합과 그 관계에 대한 물음으로 영혼의 힘을 더욱 고양시켜 마침내 그러한 형상들 모두를 포괄하는 종국의 원리를 포착한 후 그것을 통해 최고류에서 최하종에 이르기까지 형상들 서로의 관계 또한 해명하려 한다. 이것이 바로 앞서 간략하게 언급한 후기 대화편들에서 제시되고 있는 모음(종합)synagogē과 나눔(분할)diairesis의 방법으로서 후기 변증술 즉 변증술의 단계별 형태상 세 번째 것이다. 이 단계에서도 methesis, parousia, koinōnia란 말이 나오는데 이때 그 말은 사물과 형상 간의 관계가 아닌 형상들 상호 관계를 나타내는 말로 쓰인다. 실제로 <파이드로스>(266b), <필레보스>(16b)에선 ‘변증술이 가장 바람직한 철학적 방법’임이 소크라테스의 입을 통해 직접적으로 언명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앞서 말한 <국가> 이후 대화편들 모두에서도 이른바 후기 변증술을 구성하는 구체적인 내용들이 논의 주제의 하나로 심도 있게 다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대로 그 대화편들 모두 변증술과 관련하여 주제적으로 변증술을 모음(종합)과 나눔(분할)의 방법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공통점을 갖고 있다.

* 이러한 플라톤의 후기 변증술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그 요체를 개요 수준에서나마 몇 대화편을 소재로 좀 더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우선 <파이드로스>의 경우는 ‘dialektikos’를 ‘하나를 그리고 여럿을 볼 수 있는 자’라고 부르고 광기mania를 예로 들어 바로 나눔과 모음에 의해 그 구분이 가능함을 설명한다. 즉 모음이란 앞서 인용한 대로 ‘흩어져 있는 여럿들 모두를 함께 보면서 단일한 형상으로 이끄는 것’이되 그 목적은 각각을 규정하면서 설명하고자 하는 것을 항상 분명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눔이란 ‘형상들의 결합 관계를 하나로 꿰뚫은 다음 그것에 따라 개별 형상들을 본래의 자연적인 마디 그대로 자를 줄 아는 것’으로 정의된다.(265d-266c) 그리고 <소피스트>는 변증술적 앎을 ‘유에 따라서 분리하고 동일한 형상을 다른 것으로 간주하지 않고 다른 형상을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지 않는 것’으로 규정한다. 따라서 ‘이 앎을 행할 수 있는 자는 하나의 형상이 많은 – 각각 하나가 따로 떨어져 놓여 있는 – 것들을 관통하여 모든 곳에 퍼져 있음을 그리고 서로 다른 많은 형상들이 하나의 형상에 의해 바깥으로부터 둘러싸여 있음을 분명하게 지각한다. 또 그는 다른 한편으로 하나의 형상이 다른 많은 전체들을 관통하여 하나 속에서 합쳐 있음을 그리고 많은 형상들이 전적으로 분리되어 구별돼 있음을 분명하게 지각한다. 즉 이것이, 그것들 각각이 어떻게 결합할 수 있고 또 그럴 수 없는지를 유에 따라서 분리할 줄 아는 기술 즉 변증술이다.(253d-e) 그리고 <필레보스>, <정치가>에서도 모음과 나눔의 방법으로서 이를테면 에로스, 소피스트. 정치가 등을 정의하는 데 변증술이 활용되고 있다. 특히 <필레보스>에서는 변증술이 무엇보다도 어떤 하나의 유genos와 무수한 것들의 중간에 있는 종들eidē이 얼마나 되는지를 밝혀내는 방법임도 새삼 강조된다.(16d-17a) 즉 중간에 있는 것들이 얼마나 되는지를 아는 것 또한 그 분야에 밝은 사람이라는 게 플라톤의 생각이다. 이곳 <국가> 533c에서 첫 원리, 결론과 더불어 변증술적 앎의 대상의 하나로 언급되고 있는 ‘중간의 것들ta metaksy도 위에서 언급한 중간에 있는 것들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렇게 보면 변증술은 인간의 정신이 존재 세계 전체를 파악하고자 할 때 이 목표에 성공적으로 도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밟을 수밖에 없는 사유의 통로로서 제안된 것이라 할 것이다. 그래서 플라톤은 ‘변증술에 능한dialktikos 사람’을 ‘전체를 조망하는 사람’ho synoptikē이라고도 부른다.(537c) 다시 말해 변증술은 플라톤의 실재에 관한 탐문과정에서 부분들로부터 그 부분이 속해 있는 전체에 관한 관심으로 또는 전체 속에서의 부분들의 위치로 관심이 이동했기 때문에 생긴 것이라 볼 수 있다. 플라톤은 앞서 ‘철학자의 자질'(제6권 484a-487a)을 논하면서도 철학자를 이미 ‘신적인 것 전체to holon와 인간적인 것 전체를 항상 모두pantos 추구하려는 영혼’을 그리고 ‘모든 시간과 존재를 관조theōria하는 정신’을 가진 자로 언급하고 있다.(486a)

* 후기 변증술과 관련한 위와 같은 내용들은 각 대화별로 이미 많은 학자들 사이에서 세부적인 분석은 물론 그것의 통일적 설명을 둘러싸고 다양한 해석과 논쟁이 전개되어 왔다. 그 점에서 <국가>를 다루는 본 강해에서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깊이 있게 다루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본 강해는 철학적 문답법으로서 <국가>가 다루고 있는 dialektikē의 기본적인 의미와 후기 변증술에 관한 논의들을 최대한 간명하게 살펴보는 것에 머물되, 다만 추가적인 관심이 있는 독자들을 위하여 해당 대화편들에서 변증술이 다루어진 주요 부분과, 그것과 관련하여 우리나라에서 발표된 관련 논문들 몇 개를 아래와 같이 소개하고자 한다. 논문들의 경우 국회도서관이나 대학 도서관에서 제목들을 검색하면 쉽게 접근할 수 있고 텍스트의 경우는 원문 역본을 참고해야만 기본적인 학술적 이해가 가능하다.

* <국가> 이후 변증술이 다루어진 주요 전거들 : <파이드로스> 265a-266d, 276e-277c, <소피스트> 252c-259d, 264c-268d, <필레보스> 16a-18d, 55c-59d, <정치가> 260a-263b, 285a-287c, 303d.

* 변증술 관련 우리나라 학자들의 주요 논문들 : 플라톤의 dialektikē와 측정술(박종현), 플라톤의 전기 변증론 연구(김남두), 플라톤의 <필레보스>편을 통해 본 변증술의 성격과 쓰임새(이기백), 플라톤의 후기 변증술 연구(김대오), <소피스트>를 중심으로 한 플라톤 존재론과 변증법 개념(김혜경), <politeia>에서 hypothesis와 dialektikē(정준영), 플라톤의 <소피스테스>편에서 변증술과 존재론(김태경), 플라톤의 후기 변증술(김태경), 플라톤의 <정치가>에서 정치술과 변증술의 관계(이성훈) 등.

* 위의 모든 논의들을 간략히 정리하자면 아래와 같다. 1) 플라톤은 <국가>에서 변증술을 ‘각각의 실물들에 대한 앎을 넘어 실물 세계 전체 즉 모든 형상들을 포괄하고 관통하는 궁극적인 기초이자 첫 원리로서 좋음의 형상을 지성적 이해로 파악하는 기술’로 처음 규정하고 있다. 2) 그러나 철학적 문답을 통한 참된 앎의 탐문과정 일반으로서 넓은 의미의 변증술은 <국가>이전에 이미 초기 대화편부터 플라톤 고유의 철학적 방법으로 제시되어왔다. 3) <국가>는 사물과 실재의 관계 차원에서 실재에 대한 앎의 문제를 다루고 있음과 동시에 그것을 넘어 존재 세계를 구성하는 전체 형상들의 관계에 대한 견해 또한 큰 그림 차원에서 표명하고 있다. 4) 이른바 <국가> 이후 후기 변증술이란 이러한 <국가> 변증술의 큰 그림을 토대로 유와 종들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존재 세계 전체에 대한 앎에 확실성을 뒷받침하기 위한bebaiōsētai 실제적인 목표를 갖고 제시된 것이다. 요컨대 플라톤의 변증술은 여럿을 꿰뚫고 있는 하나로서 최종적 진실인 ‘좋음의 형상’을 포착하고 그것을 토대로 현실 세계 여럿의 본질과 관계를 규명해내는 즉 존재 세계 전체에 대한 진실을 최대한 명백하게 밝혀내는 철학 방법이라 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도 <국가>에서 표명된 ‘좋음의 형상’은 존재 세계를 구성하는 여럿들 각각의 저다움과 그것들의 선하고 조화로운 하나됨을 담보하는 궁극의 원리로서 변증술의 궁극의 목표가 된다.

* 그러나 전체 개별과학에 통달한 신적 존재나 만물박사라면 모를까 존재 세계 전체에 대한 진실을 하나하나에서부터 원리에 이르기까지 모두 알아내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다만 플라톤의 변증술을 근대 이후 철학과 개별과학의 관계와 관련하여 제시된 철학에 관한 정의들과 연관지어 음미한다면 철학적 방법론의 고전적 시원으로서 플라톤의 변증술이 갖고 있는 의미를 일정 부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철학의 정의로서 두 가지 정도를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철학은 여러 개별과학의 기본 개념을 명확하게 하며 서로 다른 개별과학들의 성과를 종합하여 존재 세계에 대한 하나의 종합적인 관점을 갖게 하는 원리적 지식이다”(B. Russell). “철학은 특수과학에서 얻은 인식을 모순 없는 체계로 통일하여 과학에서 사용되는 인식의 방법과 전제들을 그 통일된 원리로 설명할 수 있는 보편학”(W. Wundt)이다. 요컨대 플라톤의 변증술은 세계에 대한 총체적 앎을 추구하는 고전적인 의미에서 철학적 방법론의 이상적 푯대이자 끝없는 질문을 통해  앎의 명백성을 근거지우려는 철학 정신의 토대이다. 그리고 좁은 의미의 변증술의 기본 방법으로서 모음(여럿에서 그것을 꿰뚫고 있는 하나를 포착하는 것)과 나눔(하나로부터 그것이 꿰뚫고 있는 여럿을 구분해내는 것)의 방법은 아리스토텔레스가 규정한 형식논리적 귀납법과 연역법을 넘어 치열한 문답 과정을 통해, 추상적 개념들이 아닌 존재 세계의 실상으로서 형상들의 결합 관계를 해명하는 실질적인 연역과 귀납 능력으로서 철학적 분석과 종합의 토대가 된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진정한 정치가로서 철학자왕에게 요구되는 측정술metrētikē과 직조술hypanitiē 또한 지행합일의 관점에서 이러한 변증술적 앎을 포착한 후 그것을 토대로 온갖 양상으로 뒤섞여 있는 이른바 현실세계 중간의 것들을 적도(to metron)에 따라 분별 있게 헤아리고 상호 반대적인 것조차 하나로 묶어내는 고도의 실천기술이자 이상적 정치술이라 할 것이다. 이곳에서 철학자왕이 배워야 할 지고의 배울 거리로 변증술이 제시되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정치를 바로하기 위함이다.

* 한편 흥미롭게도 크세노폰(Xenophon)의 <소크라테스의 회상>을 보면 ‘소크라테스가 dialegesthai란 말은 모여서 종에 따라 사물들을 분류하고 의논하는 것에서 나왔다고 말했다’는 내용이 실려 있는데(4권 5장 12절) 이때 dialegesthai의 의미를 단순히 ‘대화하다’로 옮길 경우 뭔가 부자연스럽고 어색하다. 오히려 앞의 논의와 연관하여 생각하면 그 말은 ‘변증술적 문답’으로 옮기는 것이 딱 맞아 보인다. 크세노폰이 인용한 내용이 정말 역사적 소크라테스가 한 말이라면 이것은 역사적 소크라테스와 후기의 플라톤 사이에 최소한 dialegesthai의 의미와 관련해선 별다른 견해 차이가 없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지엽적이나마 역사적 소크라테스가 무지의 지에만 머물러 있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증거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흥미를 끈다.

* 끝으로 플라톤 철학에서 대화와 문답의 방법으로서 변증술이 갖는 철학적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보는 것으로 논의를 마무리하기로 한다. 앞에서도 살폈듯이 dialektikē와 dialegesthai, dialektikos는 모두 동사 dialegō에서 나온 말로서 각기 어원상 ‘문답을 나누다’, ‘토론하다’, ‘끄집어내다’, ‘문답에 능하다’ 등을 나타내는 일상적 상용구로 쓰이다가 플라톤에 이르러 명실 공히 플라톤 철학의 방법론 즉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으며 진리 내지 해결책을 구해가는 절차 또는 과정’으로 확립된 말이다. 물론 이러한 말들은 점차 플라톤 고유의 철학적 방법론으로 구체화되어 가지만, 나중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그리고 플라톤 철학 자체를 이해하기 위해서도 dialektikē의 근본정신 즉 그것이 원천적으로 dialegein, dialogos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이 갖는 철학적 의미와 가치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이 근본정신을 풀어서 말하자면 곧 1) 대화dialogos라는 가장 기초적이고 일상적인 상황에서 시작하여 일단의 의문을 제시한 후 그 답을 끌어내고 2) 다시 한 발짝 더 나가 그 답에 대한 의문을 제시하고 다시 또 그에 대한 답을 내놓으면서 3) 갈수록 고도화되는 추상적 논변까지도 감내해가며 4) 끝내 ‘모두가 진리로서 받아들일 수 있는 답이 나올 때까지 치열하게 질문을 던지고 끝내 설명이 가능한 대답을 내놓는 것’이다. 이것은 플라톤의 dialektikē가 철학 정신의 빛나는 토대이자 이념적 시원임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준다. 훗날 테제와 반테제로 이어지는 끊임없는 모순 극복의 논변들 또는 존재 세계의 모순을 상호지양의 방식으로 끝까지 끌어올려 존재 세계의 운동과 변화, 방향과 목적을 해명하려는 일련의 세계관 철학을 왜 ‘변증법’(dialectics)라 부르는지, 그리고 인간이 다가설 수 있는 지적 궁리의 궁극적인 정점에서 ‘튀는 불꽃에서 댕겨진 불빛처럼 불현듯eksaiphnēs’(<일곱번째 편지> 341c-d) 직관으로 마주하는 진리의 빛이 왜 불가불 형이상학적 초월의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는지도 그리고 그럼에도 왜 나름의 설명력과 설득력을 갖는지도 이미 플라톤의 dialektikē가 함축하고 있는 근본정신을 통해 해명되고 있다할 것이다. 그리고 그 궁극의 직관적 진리마저 궁극의 끝점이되 실제로는 끝없이 살아 숨 쉬며 약동하는  끝점으로, 철학자는 첫 원리 좋음의 형상을 본 후에도 다시 동굴로 내려가 문답을 지속하며 영혼의 고양과 실천을 통해 그 진리를 끝없이 충전하고 구현한다. 

* 참고로 dialektikē, dialegesthai가 복수의 사람들 또는 사람들 사이의 대화 또는 토론의 의미를 갖지만 플라톤 말대로 ‘영혼이 영혼 자신과 나누는 말 또한 대화'(<테아이테토스> 189e, <소피스트> 264a-b)인 한, 개인이 치열한 내면의 사색을 통해 궁극의 진리를 직관하는 것 또한 진리 탐구의 치열한 과정으로서 dialektikē의 극치에서 충분히 주어질 수 있는 일이다. 533a에서 소크라테스가 글라우콘에게 비록 상호 문답을 통해 이어져 온 진리 탐색의 과정임에도 이제 더 이상 따라올 수 없다(533a)고 말하고 있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홀로 하나의 화두를 두고 치열한 사색과 명상을 통해 끝내 돈오(頓悟)에 이르는 불가의 견성론도 방법론적으로는 dialektikē와 일정부분 상통한다 할 것이다. 종종 우리는 플라톤 철학 내지 그의 형이상학적 논변이 갖는 독단주의(dogmatism)를 비판하지만,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지적 역량을 총동원해 더 이상 의문을 던지기 힘들 정도의 수준까지 치열하게 끌고 가는 그 변증술적 문답의 과정 자체가 그것의 뿌리에 자리하고 있음을 고려하면 플라톤 철학이 독단의 철학 이전에 끊임없는 질문의 철학, 의심의 철학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섣부른 답도 문제이지만 답을 내놓지 않는 것도 문제이다. 플라톤이 내놓는 답은 문제상황 하에서 사람이 할 수 있는 궁극에 이를 정도의 모든 의문과 절실함을 바탕으로 한다. 이처럼 삶의 현장에서 서로 다른 입장이나 주제를 가지고 치열하게 묻고 또 물으며 설명이 가능한 최선의 답을 찾아가는 것 그것이 플라톤의 변증술의 기본 정신이다. 민주주의의 본질이 의심이라면 플라톤 철학은 그 민주주의의 건강성을 담보하는 철학적 토대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플라톤은 이곳에서도 우리가 법제화하여야 할 교육의 목표를 아래와 같이 제안하고 있다. 교육paideia은 ’무엇보다도 질문하고 대답하기를 가능한 한 가장 잘할 줄 아는 자를 만드는 일‘이다.(534d) -끝-

다음 주제 : C. 철인통치자의 교육 목표와 교과목(502c-541b)
5. 영혼의 전환과 참된 실재로의 상승을 위한 교과목들(제7권 521c-541b)
3) 교과목들의 대상과 부과 방법, 시기와 구체적 프로그램(535a-541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