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의 <국가> 강해(77) [이정호 교수와 함께하는 플라톤의 『국가』]
플라톤의 <국가> 강해(77)
C. 철인통치자의 교육 목표와 교과목(502c-541b)
5. 영혼의 전환과 참된 실재로의 상승을 위한 교과목들(제7권 521c-541b)
3) 교과목들의 대상과 부과 방법, 시기와 구체적 프로그램(535a-541b)
[535a-541b]
* 소크라테스는 서곡으로서 예비적인 배울 거리들에서부터 본곡으로서 변증술에 이르기까지 배울 거리 전반에 대한 언급을 마무리한 후에 그 배울 거리들을 누구에게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부여할지를 배정하는 일이 남아있다고 말한다. (535a) 우선 누구를 배움의 대상으로 삼을지를 다루면서 소크라테스는 이전 통치자를 선발할 때 기준으로 삼았던 자연적 성향들을 다시 끌어들인다. 여기서 언급되고 있는 그 자연적 성향 내지 그에 적합한 자들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가장 안정적이고βεβαιοτάτος 가장 용감하며ἀνδρειοτάτος 가능한 한 가장 잘생긴εὐειδεστάτος 자.(535a) 성품τὰ ἤθη이 고상하고γενναῖος 강건하며βλοσυρός 배울 거리와 관련해서 예리하고δριμύτης 학습 능력이 뛰어난 자.(535b) 기억력이 좋고μνήμων 강인하며ἄρρατος 모든 점에서 고생을 마다하지 않는φιλόπονος 자.(535c) 철학의 불명예ἀτιμία는 이러한 자격에 맞지 않은οὐ κατ᾽ ἀξίαν 사람들 즉 적자γνήσιος 아닌 서자νόθος들이 철학을 접했기 때문이다.(535c)
* 그리고 철학을 접하는 자가 고생을 마다하지 않음φιλοπονίᾳ에서 절름발이χωλός여서는 안 된다. 이를테면 신체 관련 일들에서는 고생을 마다하지 않으면서, 배움을 좋아하지는 않는 경우가 그렇다.(535d) 그와 마찬가지로 진리와 관련해서도 의도적인ἑκούσιος 거짓ψεῦδος은 미워하고 성을 내지만, 의도하지 않은 거짓은 가볍게 받아들이고, 발각되어도 성내지 않는 자들은 불구ἀνάπηρος의 영혼을 가진 자로 마치 돼지 닮은ὕειος 짐승θηρίον처럼 무지ἀμαθίᾳ 속에서 맘 편히 뒹군다.(535e) 절제σωφροσύνη, 용기ἀνδρεία, 호방함μεγαλοπρέπεια, 그리고 덕ἀρετή의 부분들과 관련해서도 누가 서자이고 누가 적자인지를 경계해야 한다.(538a) 적자가 아닌 자들을 교육할 경우 나라πόλις와 정치체제πολιτεία를 구하지 못하고 철학을 한층 더 큰 비웃음의 홍수 속에 빠트린다.(536b)
* 그런데 소크라테스는 느닷없이 우리가 놀이하고 있었다는 것ὅτι ἐπαίζομεν을 잊고 너무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것 같아 자신이 우스운 꼴이 되었다고 말한다. 철학이 부당하게 흙탕물을 뒤집어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성이 나서 그랬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통치자 선발ἐκλογή 관련 이야기로 돌아가 이번에는ἐν δὲ ταύτῃ 연장자πρεσβύτης를 선발하면 안 될 것이라 말한다.(536c) 산술과 기하를 비롯한 모든 예비교육προπαιδεία은 아이παῖς들일 때 제공되어야 하고 방식 또한 ‘강제로 배우는 가르침의 형태’ἐπάναγκες μαθεῖν τὸ σχῆμα τῆς διδαχῆς가 되어선 안 된다. 자유인ἐλεύθερος이 아닌 노예δουλεία처럼 억지로 배우는 것은(536d) 몸과 달리 영혼에 전혀 머물러 있지 않으므로 아이들을 양육할 때는 놀이 삼아παίζοντας 배우게 해야 한다. 그래야 ‘각자가 어디에 적성이 있는지’ἐφ᾽ ὃ ἕκαστος πέφυκεν도 잘 살필 수 있다.(536e)
* 그리고 아이들을 말에 태워 전쟁터에 데리고 가서 구경하게 해야 하고 좀 안전하다면 새끼 사냥개들처럼 피 맛도 보게 하여 모든 고생과 배울 거리와 두려움φόβος 속에서 가장 잘 대처하는ἐντρεχής 자를 선발해야 한다. 그리고 이 선발은 2년에서 3년 동안 필수적인 신체단련γυμνάσιον 기간이 지나 스무 살이 된 자 중에서 이루어지되(537b) 선택된 이들은 배울 거리들 상호 간의 친족 관계οἰκειότης와 ‘있는 것의 본성에 대해 전체적인 조망’σύνοψις τῆς τοῦ ὄντος φύσεως을 갖도록 해야 한다. 왜냐하면, 전체적인 조망을 하는 사람ὁ συνοπτικὸς이 곧 변증술에 밝은 사람διαλεκτικός이기 때문이다.(537c)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적법한νόμιμος 일들에서 누가 가장 잘 머물러 있는지μόνιμος 등을 잘 살펴보고 이들이 서른 살이 되면 이들 중에서 다시 선택해서 변증술적 대화διαλέγεσθαι의 힘을 통해 시험하면서 누가 ‘있는 것’ 자체αὐτὸ τὸ ὂν에 진리ἀληθεία와 함께 다다를 수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고 말한다.(537d)
* 그런데 소크라테스는 이 교육 단계에서 아주 많이 경계해야 할 일이 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오늘날 변증술적 대화와 관련해서 나쁜κακός 일이 많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그것을 하는 사람들은 불법παρανομία으로 가득 차 있는데 그들이 그렇게 된 것이 놀라운θαυμαστός 일이 아니어서 그들을 이해해 줄 수συγγιγνώσκεις도 있지 않겠냐고 글라우콘에게 묻고(537e) 그들이 변증술적 대화와 관련해서 그렇게 된 사정을 비유를 들어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누군가 부모가 바뀌어 부유하고 큰 가문에서 많은 아첨꾼κόλαξ 사이에서 자라나 어른이 된 후 부모가 바뀌었음을 알게 되고 진짜 부모도 찾지 못했을 경우, 그 이전과 이후 그의 태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살펴보자.(538a) 그가 진실을 모를 때에는 부모와 친척들을 아첨하는 사람들보다 더 존중했을 것이고, 그들에게 불법적인 행동이나 말을 덜 했을 것이고, 중대한 일들과 관련해서 아첨꾼들보다 그들에게 불복하는 일이 덜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을 알고 나면 반대로 부모에 대한 존중은 줄어드는 대신 이전보다 현저하게 아첨꾼들의 말을 따르며,(538b) 그들의 방식대로 삶을 살고 드러내놓고 그들과 사귈 것이다.”
* 그러나 글라우콘은 이 비유εἰκών가 논변λόγος을 배우기 시작하는 사람들과 어떤 점에서 관련이 있는지를 묻고 그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또 아래와 같이 설명을 이어간다. “어려서부터 우리에게는 정의로운δίκαιος 것들과 아름다운καλός 것들에 대한 신념δόγμα들이 있어 마치 부모γονεύς에게 양육되듯이 우리는 이 신념들에 복종하고 존중하면서 그 속에서 양육된다.(538c) 그런데 동시에 우리에겐 이것들과 반대로 쾌락ἡδονή을 수반하는 다른 활동ἐπιτήδευμα들도 있어 우리의 영혼이 아첨하는 쪽으로 이끌리기도 한다. 이때 다소라도 균형 잡힌 사람들은 그것에 설득되지 않고 이겨내지만, 때론 누군가 ‘아름다운 것이란 무엇인가?’τί ἐστι τὸ καλόν라는 질문에 접한 후 다양한 방식으로 논변에 의해 논박ἔλεγχος당할 경우(538d) 그는 그릇된 믿음δόξα 속으로 내동댕이쳐진다. 이 경우 그의 삶은 자신의 영혼에 아첨하는 삶βίον τὸν κολακεύοντα이 된다.”(539a)
* 이어서 소크라테스는 글라우콘에게 ‘논변을 배우기 시작하는 사람들의 상황이 이렇다면 그건 이해συγγνώμη해줄 만한 여지가 많지 않은가’를 묻고 글라우콘 또한 그에 동의하며 연민ἔλεος을 살 만한 일이라고 말한다.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그 서른 살 먹은 자들에 대해서 이러한 연민이 생기지 않도록 모든 점에서 조심하면서 논변을 배우기 시작하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539a)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그렇게 크게 조심해야 하는 것εὐλάβεια 한 가지로 젊어서 논변λόγος을 맛보지 않도록μὴ γεύεσθαι 하는 것이라 말한다. 젊은이νέος들이 처음 논변을 맛보면 그것을 그들은 마치 애들 장난παιδιή처럼 사용해서 항상 반박ἀντιλογία하는 데 써먹고 또 논박하는ἐξελέγχοντας 사람들을 흉내 내서 스스로 남들을 논박하면서, 논변을 도구로 삼아καταχρῶνται 마치 사냥개 새끼σκυλάκιον처럼 매번 옆에 있는 사람들을 끌어당겨서 찢어발기기σπαράττειν를 즐기기 때문이다.(539b) 스스로 많은 이들을 논박하거나 많은 이들에게 논박당하기도 하다 보면, 그들은 전에 믿었던 것들에 대한 전면적인 불신으로 급격하게 빠져들게 되고 이로 인해서 그들 자신과 철학 전체가 남들에게 비방을 받게 된다.(539c)
* 그러나 나이가 좀 든 사람ὁ πρεσβύτερος은 그러한 광기μανία에 참여하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고, 변증술적 대화διαλέγεσθαι와 진리 탐구σκοπεῖν τἀληθὲς를 원하는 자를 흉내 낼 것이다. 그래서 자기 자신도 더 균형을 갖춘μέτριος 사람이 될 것이다.(539c)
*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다른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열심히 논변에 참여하며 단련하는 기간을 5년 정도로 제시한다. 그리고 그 기간에 단련을 마치면 이후 15년 동안 즉 쉰 살이 될 때까지 그들을 다시 저 동굴로 내려가게 해야 하고, 전쟁과 관련한 일들을 관장하고 젊은이들에게 맞는 관직ἀρχαί을 맡도록 강제해야ἀναγκαστέος 한다. 그들이 경험에서 남들에게 뒤지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도 그들이 여전히 제자리를 지키는지ἐμμενοῦσιν 시험받아야βασανιστέος 한다.(539d-e)
* 이렇게 쉰 살이 되어 모든 과정을 통과하고 일ἔργον에서나 앎ἐπιστήμη에서나 모든 점에서 모든 식으로 가장 뛰어난 성취를 보인 이들을 드디어 최종 목적지τέλος로 인도해야 한다. 그리고 영혼의 눈길을 들어 올려 만물에 빛을 제공하는 것 자체를 바라보도록 강제해야 한다. 그리고 ‘좋음 자체’τὸ ἀγαθὸν αὐτό를 보고 나면 그것을 본παράδειγμα으로 삼고서, 남은 삶τὸν ἐπίλοιπον βίον 동안 대부분 시간을 철학을 하며 지내겠지만, 차례가 오면 각자가 나랏일로 고생하면서 나라를 위한 통치 업무를 불가피한ἀναγκαῖος 것으로 받아들여 수행해야하고 자신들과 비슷한 다른 이들을 교육하여 나라의 수호자φύλαξ로 남겨두어야 한다. 그런 연후 그들은 복된 자들의 섬μακάρων νήσος으로 떠나, 거기에 거주할 것이다. 이들은 신령들δαίμοσιν 또는 행복하고 신적인 사람들로 여겨지고, 나라는 이들을 위한 기념비를 세우고 공적인 제사를 지낼 것이다.(540b-c)
* 소크라테스가 위와 같이 배울 거리들을 누구에게 어떻게 배정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를 마무리하자 글라우콘은 마치 조각가처럼, 통치자들을 완전히 아름다운 자들로 만들었다고 말한다. 이때 소크라테스는 그러한 통치자들이 남성만이 아니라 여성 통치자들τὰς ἀρχούσας도 포함하고 있음을 다시 환기한다.(540c) 그리고 끝으로 소크라테스는 앞서 다루었던 나라와 정치체제와 관련한 모든 이야기가 전적으로 기원εὐχή에 불과한 것들이 아니라 어렵긴 하지만 어떤 식으로는 가능한 것들이라고 말한다. 여럿이든 한 명이든ἢ πλείους ἢ εἷς 진정한 철학자들이 나라의 권력자가 되어 오늘날의 명예들은 멸시하고, 정의로운 것에 봉사하고 그것을 증진토록 하면서 나라를 바로잡을 때가 바로 그때이다.(540d-e)
*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위와 같은 나라와 정치체제를 가장 쉽고 빠르게 수립하기 위해 통치자들은 나라 안에 있는 열 살 이상의 사람들은 모두 시골로 보내버리고 그들의 아이들을 넘겨받아서, 부모들도 가지고 있는 오늘날의 습성에서 벗어나게 하고, 우리가 앞서 설명했던 것과 같은 자신들의 생활방식과 법들 속에서 양육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해야 나라 자체도 행복하고 그 나라를 이루는 집단τὸ ἔθνος도 가장 크게 이득을 볼 것ὀνήσειν이기 때문이다.
* 이에 글라우콘은 그런 나라가 언젠가 생겨난다면 어떤 식으로 생겨날지에 대해 지금까지 이야기가 잘 된 것 같다고 말하고 소크라테스 또한 그런 나라와 그런 나라와 닮은ὅμοιος 사람에 대한 논의가 충분히 이루어졌다고 말한다. 이로써 정의로운 나라와 정치체제 그리고 그러한 나라를 닮은 정의로운 사람에 관한 이야기가 모두 마무리 된다.(541a)
– 제7권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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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35c ‘앞서도 말했듯이’ : 이 부분은 제6권 495c-496a에서 언급된 내용을 가리킨다.
* 535c-d ‘서자’nothos, ‘절름발이’chōros : 신분으로서 ‘적자와 서자’, 신체 상태로서 ‘사지 멀쩡한artimelēs 자와 절름발이’가 차별적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물론 내용적으로 그 말들은 장차 나라의 수호자와 통치자가 되어야 할 사람들의 자질에 걸맞게 영혼과 신체의 균형을 갖춘 자와 그렇지 못한 자를 구분하기 위해 사용된 것이다. 그렇지만 플라톤의 그 말은 그 또한 신분적 차이와 신체적 장애 여부를 사회적 차별의 기준으로 당연시했던 당대의 정치·사회적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 535e ‘의도하지 않은 거짓은 가볍게 받아들이고 자신이 모르고 있다는 게 발각되어도 성내지 않고 마치 돼지 닮은 짐승처럼 무지 속에서 맘 편히 뒹구는 영혼’ : 제2권(372d)에 나오는 ‘돼지들의 나라’가 말해주듯 이곳에서도 돼지는 무지와 탐욕을 상징하는 동물로 나온다. 소크라테스가 <변명>(38a)에서 말했듯이 ‘반성적 성찰이 없는 삶은 사람으로서 살 가치가 없는 삶이다’ho de anexetastos bios ou biōtos anthrōpō. 누구든 실수를 한다. 그러한 한, 사람의 위대함은 실수나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남에 의해서건 자신에 의해서건 그 실수나 잘못이 드러나는 대로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아파하며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반성하고 다짐하는 데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신의 실수를 변명하는데 너무나 익숙하고 어떤 때는 변명은커녕 아예 뻔뻔스러운 태도를 취하기도 한다. 그런 영혼이야말로 돼지 닮은 짐승처럼 무지 속에서 맘 편히 뒹구는 그런 영혼이다. 설사 거짓이나 잘못이 없더라도 그것을 자부하기 이전에 더 잘하지 못하거나 잘한 것이 없음을 부끄러워하고 혹시나 나의 무지가 타인의 눈물이 되지 않을까 늘 지적 긴장을 보전하는 것이 곧 지성이다. 세속 지식은 타자를 이기는 힘에 비례하여 커지지만, 지성은 타자의 고통에 대한 감수성에 비례하여 커지고 자라난다.
* 536c ‘우리가 놀이paidia를 하고 있었다는 것hoti epaizomen을 내가 잊고 있었네. 그래서 너무 열을 내며enteinamenos 말을 했군.’ : 놀이하고 있었다고 해서 한갓 장난치고 있었다는 의미로 이해해선 안 된다. <파이드로스>(276a-e)를 보면 ‘배우는 사람의 혼에 앎과 함께 글로 쓰이며 자기 자신을 방어할 능력이 있으면서 그래야 마땅할 사람들을 상대로 이야기하고 침묵할 줄 아는 이야기’를 ‘더없이 아름다운 놀이’로 표현하고 있다. 이곳에서 말하는 ‘놀이’도 소크라테스와 글라우콘 등 대화 상대자들이 일정한 논의 주제를 가지고 서로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표현한 말이다. 그런데 소크라테스는 지금 놀이의 주제에 맞지 않게 혼자 흥분하여 배울 거리에 적합하지 않은 자들을 지나치게 길게 이야기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래서 스스로 책망하고 있다. 이것은 소크라테스가 당대 철학에 적합하지 않은 자들을 얼마나 혐오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들이 철학에 끼치는 해악에 대해 얼마나 분노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대표적으로 소피스트들을 비롯해 이른바 철학자를 자칭하는 이소크라테스 같은 당대 지식인들이 그들이다. 제6권 495c에서도 이 부분을 연상시키는 장면이 나온다. 그곳에서 소크라테스는 가짜 철학자들을 비판하면서 이소크라테스로 짐작되는 인물에 대해 그답지 않게 대머리에 작달막한 외모까지 끌어들여 다소 흥분상태로 비난하고 있다. 이곳에서 느닷없이 다른 곳에서와 달리 통치자의 여러 조건 중 잘 생김을 꺼내든 일도 그 때문일까?
* 536c ‘이전에 통치자를 선발할 때에는 우리가 연장자를 선발했지만, 이번에는 그러면 안 될 것이네.’ : 문장만 보면 3권(412c)에서 언급했던 통치자 선발 방식을 이번에는 바꾸겠다는 것으로 읽힐 수도 있다. 그러나 통치자의 선발 기준은 이곳에서도 쉰 살 이후로 언급된다는 점에서 내용 상 바뀌는 것은 없다. 게다가 제2권과 3권에서 수호자를 위한 교육을 다루면서 이미 전 연령의 단계마다 시험과 선발이 주어진다는 점이 언급되고 있음을 고려하면(412d-e) 이 부분을 그렇게 해석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바로 이어지는 문맥도 통치자의 선발 방식의 변경이 아니라 다만 배울 거리는 장차 통치자가 될 나이 어린 예비 통치자 때부터 제공되어야 한다는 것이 강조될 뿐이다. 이렇게 보면 ‘이번에는en tautē 그러면 안 될 것’이라는 문장에서 ‘이번’은 ‘배울 거리를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부여할지’에 관한 ‘이번’ 논의를 가리키고 ‘그러면 안 될 것’이란 그에 관한 논의에서 전번처럼 연장자를 불쑥 제시하지 않고 습득 능력이 뛰어난 젊은 시절부터 교육해야 한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라 할 것이다.
* 537a ‘아이들을 말에 태워 전쟁터에 데리고 가서 구경하게 해야 하며’ : 이 이야기는 앞서 제5권에서 언급된 내용이다.(467c-e)
* 537e ‘오늘날 변증술적 대화와 관련해서 나쁜 일이 많이 벌어지고 그걸 하는 사람들은 불법paranomia으로 가득 차 있는 것 같네’ : 불법으로 가득 차 있다는 말은 그들이 현실에서 많은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변증술의 맛만 보고 함부로 사용하는 사람들의 영혼 상태가 불법 상태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변증술을 제대로 배우는 것이 그만큼 매우 어려운지라 안타깝게도 초기 단계에서 그런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이어지는 소크라테스의 언급은 그런 일들이 많이 발생하는 것에 대한 자신의 안타까운 심정을 담고 있다. 그러나 변증술의 그릇된 사용이 초래하는 위험이 워낙 심대한 만큼 최대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시작하는 단계에서부터 신중하고도 철저한 준비와 대책이 필요하다.
* 538d ‘질문이 찾아와서’, ‘논변이 그를 논박하는데’ : 변증술은 앞선 강해에서 살폈듯이 기본적으로 끈질긴 질문과 그에 대한 대답의 상승적 반복을 통해 좀 더 확실한 진실로 다가가는 토론 과정을 토대로 한다. 그것은 입장이 다른 복수의 사람들끼리 문답을 통해 혹은 혼자 자문자답 형식의 치열한 사색을 통해서도 가능하다. 소크라테스는 여기서 그러한 변증술적 문답 과정을 보다 생동감 있게 표현하기 위해 질문과 논변을 의인화하고 있다.
* 539b ‘젊은이들이 처음 논변을 맛보면 마치 애들 장난처럼 사용해서 항상 반박하는 데 써먹고’, : 논변은 변증술적 논변을 말한다. <필레보스> 15d-16a, <변명> 23c에서도 소크라테스는 이런 양태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어서 보이는 ‘‘마치 사냥개 새끼처럼 매번 옆에 있는 사람들을 끌어당겨서 찢어발기기를 즐기기 때문’이란 표현은 제1권에서 소크라테스가 트라쉬마코스를 두고 ‘마치 야수처럼 혼신의 힘을 가다듬어 찢어발기기라도 할 듯이 우리한테 덤벼든다’(336b)는 말한 것과 거의 그대로 일치한다.
* 539d ‘이것보다 먼저 이야기된 것들도’ : 539b에서 언급된 크게 조심해야 하는 것 즉 젊어서 논변의 맛 정도만 보고 섣불리 그 논변을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 539e ‘다시 저 동굴로 내려가게 해야 하며’ : 애초의 동굴 비유에서는 수감자가 풀려나 동굴 바깥으로 나와 태양을 본 다음 동굴로 내려가지만, 여기에서는 태양 즉 좋음의 형상을 보기 전에도 동굴로 내려간다. 이것은 쉰 살 이후 본격적으로 통치자로서 현실 통치 업무에 임하기 전에 실습 차원에서 15년 동안 통치 보조 업무를 의무적으로 수행하는 것을 말한다.
* 540a ‘영혼의 눈길을 들어 올려 만물에 빛을 제공하는 것 자체를 바라보도록 강제해야 한다.’ : 이 말은 변증술 교육을 억지로 하게 한다는 것이 아니라 변증술의 최종단계인 좋음의 형상을 본다는 것 자체가 그만큼 매우 힘들고 어려운 것이므로 그것을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이루어낼 수 있도록 좀 더 강화된 방식으로 좀 더 주도면밀하고 철저한 방식으로 교육을 수행한다는 것을 말한다. 쉰 살에 이르러 모든 점에서 모든 식으로 가장 뛰어난 성취를 이룬 자들은 그만큼 이미 최종 목적지에 이르려는 자발적인 의지로 충만해 있는 사람들로서 어떠한 어려움이라도 감내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 540b ‘복된 자들의 섬’makrōn nēsos : 헤시오도스 <일과 나날> 171에 나오는 신들과 영웅들이 사는 축복의 섬. 생전에 훌륭한 업적을 이루었거나 착하게 산 사람들도 사후에 그곳으로 갈 수 있다고 믿었다. 519c에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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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의 논의 주제는 ‘배울 거리들을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부여할지를 배정하는 일’이다. 이에 따라 이 부분(535a-541b)은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다. 1) 우선 누가 배움의 대상으로 적합한지와 관련하여 이전에 수호자의 선발 기준을 논의할 때 제시되었던 수호자의 기본 자질과 성향들이 다시 소환된다.(535a-536b) 2) 이어서 그들을 대상으로 언제부터, 어떠한 방식으로 그리고 무엇에 중점을 두어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다룬다.(536c-537d) 3) 그런 연후 그러한 교육 단계에서 경계해야 일들, 즉 철학적 자질이 부족한 자들이 저지르는 일과 그럴 경우 발생하는 나쁜 일에 대한 논의가 비유까지 포함해서 제법 길게 논의된다.(537e-539c) 4) 그래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변증술을 배우기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을 잘 가려내야 하고, 나아가 그 배움의 중요성만큼 얼마 동안 어떻게 그것을 단련하고 실천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 즉 앞서 논의 주제로 제시되었던 배울 거리에 대한 배정의 문제가 연령별, 단계별로 다루어진다.(539d-540c) 5) 그리고 끝으로 이제까지 논의해온 나라와 정치체제들이 실현 가능한지에 관한 언급이 간략히 주어진 후, 양육과 관련해서 현재 상태에서 그런 나라를 가장 쉽고 빠르게 수립하기 위한 과도기적 방안이 제시된다.(540c-541b)
* 1) 그런데 누구에게 배정될지에 대한 논의는 특별히 새로울 것이 없다. 배울 거리들의 배정 대상은 당연히 통치가가 될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곳에서 소크라테스가 개진하고 있는 배울 거리들의 대상이 갖추어야 할 기본 성향과 소질들 또한 모두가 제3권 수호자의 성향(375a-376c)과 제5권 철학자의 자질(484a-487a) 부분에서 다루어진 내용들과 크게 차이가 없다. 그럼에도 이곳에서 그것을 따로 반복하고 있는 이유는 통치자가 되기 위한 배움의 과정 특히 최종적인 배울 거리로서 변증술의 습득 과정이 아무나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매우 특별하고도 높은 수준의 것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다만 ‘가장 잘생긴’eueidestatos이라는 외모 관련 조건은 통치자의 성향으로 여기서 처음 언급된 것이다. 오히려 그 말은 제6권 494c에서 부유하고 명문 태생이지만 지성은 갖추지 않을 수 있는 자를 언급할 때 한 번 사용된 적이 있다. 알키비아데스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 점에서도 외모상 잘 생김은 다른 조건들과 달리 통치자의 필수 조건으로 제시된 것은 아닐 것이다. 전승에 따르면 소크라테스조차 이 기준엔 부합하지 않는다.
* 2) 여기선 위와 같은 자질을 가진 자들 대상으로 언제부터, 어떠한 방식으로 그리고 무엇에 중점을 두어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다룬다. 우선 나이가 들면 배우기 어려우므로 교육은 어려서부터 시작되어야 하고 방식 또한 자유인답게 강제가 아닌 놀이를 하듯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 물론 교육 과정에는 일정한 강제가 개입된다. 그러나 그 경우도 그 강제의 의미를 인지하고 그것을 감내하려는 자발적인 의지가 전제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른바 억지 내지 강요와 근본적으로 구분된다. 게다가 어려서부터 전쟁터에도 데려가 새끼 사냥개들처럼 피 맛도 보게 해야 한다. 그런 연후 필수적인 신체단련 기간이 지나 스무 살 즈음에 이르면 나중 최종적인 배울 거리로서 변증술을 습득하기 위한 예비적인 교육이 이루어진다. 그 과정에서 ‘전체적인 조망 능력’이 주요 과제로 제시된다. 이것은 변증술적 능력의 요체가 ‘전체를 조망하는 능력’synopis 즉 복잡다단한 사안들을 총체적이고도 통일적인 관점에서 파악할 수 있는 능력임을 잘 보여준다. 앞선 강해에서도 살폈듯이 변증술은 총체적인 관점에서 ‘모든 것을 조정하고 모든 것을 다스리며 모든 것을 유용하게 만드는 기술’(<에우튀데모스>290d)이며 ‘누구든지 듣는 사람들의 본성들을 일일이 헤아릴 뿐만 아니라 있는 것들을 부류에 따라 일일이 나누고 그 하나하나를 한 형태에 포괄하는’ 능력이고, ‘하나의 형상이 많은 것들을 관통하여 모든 곳에 퍼져 있음을 그리고 서로 다른 많은 형상들이 하나의 형상에 의해 바깥으로부터 둘러싸여 있음을 분명하게 지각하는’ 능력(<소피스트>(253d )이다.
* 3) 논의의 주제가 ‘배울 거리를 누구에게 어떻게 배정할 것인가’임을 고려하면 ‘배정에 있어 고려해야 할 적극적인 사안’이 중심 내용이 될 것이라 예상되지만 정작 내용을 보면 ‘배정에 있어 경계해야 할 사안’이 논의의 주를 이루고 있다. 이곳에서 교육 단계에서 많이 경계해야 할 일이란 앞서 살폈듯이 철학에 적합하지 않은 이른바 서자나 절름발이가 그 한계를 드러내 영혼이 불법으로 가득 차게 되는 일이다. 그러므로 그런 일이 생겨나지 않도록 시험이나 선발 과정에 철저함을 기해야 한다. 그러나 십 년 동안 예비 교과와 철학 일반을 마친 사람들을 대상으로 누가 변증술에 적합한지 아닌지를 가려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때까지는 누가 진짜 적자인지 서자인지 본인은 물론 다른 사람들도 채 인지하지 못한 상태인 데다가 설사 적자라고 하더라도 반드시 시험을 이겨낼 것이라는 보장도 없기 때문이다.
* 소크라테스의 비유에서 자신이 서자임을 알게 된 사람은 서른 살에 이르러 변증술을 배우기 시작하는 단계에서 철학에 부적절한 자임이 드러난 자를 말한다. 그리고 아첨꾼이란 그들에게 지혜를 가르친다는 명목으로 그들을 유혹하는 당대 소피스트들과 수사학자들 즉 가짜 철학자들을 가리킨다. 그러나 젊은이들 모두 서른 살이 될 때까지는 친부모 밑에서 즉 전통적 신념들을 잘 보전하며 자라왔다고 여기고 있고 이후 변증술을 모두 배우기까지의 기간 또한 절대 짧지 않은 터라, 그들 중 누가 적자와 서자인지 즉 누가 철학에 적합하고 누가 그렇지 않은지를 가려내기란 크게 신중을 요하는 일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이후 교육 단계에서 여러 가지 시험의 방식으로 일부가 변증술에 부적합한 자로 판정되었을지라도 그간의 사정이 이러하므로 그들에게 이해와 연민이 따를 수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그러한 이해와 연민이 생겨나지 않도록 최대한 배움의 시작 단계에서부터 누가 변증술에 적합한지를 잘 가려내지 않으면 안 된다. 철학에 부적합한 젊은이들이 제대로 가려지지 못했을 경우 변증술의 힘의 크기만큼 왜곡된 변증술이 초래할 수 있는 부정적인 결과 또한 심대하기에 더욱 그러하다.(539b-c)
* 플라톤이 가히 실감 날 정도로 생생하게 그리고 있는 이러한 그릇된 가짜 철학자들의 모습과 그들에 의해 발생할 수 있는 위험들은 당대 지식인들에 대한 플라톤이 겪은 절망스런 체험에서 나온 것으로 플라톤 자신의 절절하고도 심각한 우려를 가득 담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당대 아테네의 지적 상태는 오늘날의 철학적 상황에 비추어도 그리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특히 어설프게 논박의 기술을 익혀 당대 지식계를 주도하고 있는 가짜 철학자들의 모습은 오늘날 철학계를 여전히 주름잡고 있지만, 오히려 철학 자체의 위상과 영향력을 그 어느 시대보다 떨어뜨리고 있는 현대 영미 분석철학의 모습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플라톤이 2500년 전 토로하고 있는 ‘마치 사냥개 새끼처럼 매번 옆에 있는 사람들을 끌어당겨서 찢어발기기를 즐긴다’는 표현은 오늘날 철학계를 주름잡고 있는 영미 분석철학자들의 행태와 너무도 닮아 있다. 그들은 문제 해결을 위한 절박한 상황에서 생각을 창조하고 구성하는 일에 전혀 관심이 없다. 더욱 한심한 것은 형이상학적 문제의식으로 가득한 플라톤 철학 분야에서조차 분석철학자들이 창궐하고 있다는 점이다. 나날이 분화되어가는 오늘날 학문 현실에서 여전히 앎의 극치로서 철학의 총체성이 요구되는 상황임에도 그들이 생산하는 담론들은 마치 사사로운 써클 활동처럼 공적 삶의 세계와 단절되어 그들만의 세계에 갇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한 놀이로 그들끼리만 공유된다. 논리적 분석과 비판이 진정 의미 있으려면 그 절차의 형식적 정밀성을 따지기 전에 삶의 현실과 관련하여 과연 무엇을 위한 비판과 분석인지, 무엇을 위한 정확성인지를 먼저 되새겨 봐야 한다. 마치 어설프게 변증술의 맛만 보고 전체를 조망하지 않고 그저 형식적 논박을 즐기고 있는 이른바 아첨꾼이나 서자들처럼 철학의 총체성을 간과한 채 그저 주어진 것에 대한 파편적 분석에만 몰두하는 자들은 시대를 불문하고 플라톤의 말대로 가짜 지성, 가짜 철학자들일 뿐이다.
* 그런데 변증술 교육 과정에서 경계할 일로 소크라테스가 제기하고 있는 것과 관련하여 오늘날 전체주의의 폐해를 경험한 우리로서 좀 더 짚어 볼 물음이 있다. 앞서 살폈듯 변증술 교육에서 플라톤이 경계하는 것은 변증술의 요체 중 하나인 질문과 대답 능력 즉 집요하고도 끈질기게 진실에 다가가는 고도의 문답 능력이 잘못 전수되어 초래될 수 있는 위험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변증술의 또 다른 요체이자 핵심 즉 ‘전체를 조망하는 능력’이 잘못 전수되었을 경우 어떤 부작용이 초래될 수 있을지도 함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일련의 문답 과정에서 일어나는 부작용도 심대하긴 하지만 그야말로 진실 전체를 모든 국면에서 모든 방식으로 전도시킬 수 있는 최종적인 단계에서 발생하는 위험에 비할 바가 못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들은 오늘날 이른바 나치즘, 파시즘, 스탈리니즘 등 이른바 전체주의 정치체제들이 모든 국면에서 전체를 내세워가며 얼마나 나랏일을 황폐화시켰는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20세기 이후 많은 사상가들은 그러한 정치체제들은 물론 플라톤의 정치체제까지 민주주의의 적으로 비난을 퍼붓고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플라톤은 오늘날 전체주의 정치체제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모자라지 않은 참주정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변증술에서 경계해야 할 사안을 다루면서 ‘전체를 조망하는 능력’이 초래하는 부작용의 경우는 단 한마디도 언급하고 있지 않다. 왜 그랬을까? 단적으로 말해 그것은 플라톤 자신 그 자체로 이미 애초부터 변증술의 ‘전체를 조망하는 능력’을 참주나 이른바 전체주의자들이 갖춘 능력과 비슷하기는커녕 아예 거론할 만한 어떠한 접점조차 갖고 있지 않은 그야말로 정반대의 것으로 여겼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실 오늘날 자유주의자들은 단지 권력자의 머릿수를 기준으로 철인왕정과 참주정을 동일시하고 있지만 플라톤의 관심은 오로지 권력이 철학적 지성을 갖추고 있느냐에 있었다. 그러므로 플라톤에게 철인왕정과 참주정은 원천적으로 처음부터 비교조차 될 수 없는 것이었다. 철인왕정은 본질적으로 좋음과 아름다움 자체를 자연세계를 구성하는 우주적 실재이자 진실이며 나아가 정의로운 나라의 토대임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앞으로 제8권에서 밝혀지겠지만 참주정은 위와 같은 우주적 진실과 정의라는 모두의 좋음을 부정하고 오로지 특정 개인 내지 기득권자들만의 좋음을 즉 배타적 이기적 탐욕만을 정치의 원리이자 목표로 내세운다. 그럼에도 오늘날 많은 자유주의자들은 좋음의 형상의 존재와 그것을 통해 나라에서 우주적 좋음을 구현하려는 플라톤의 절절한 선의지를 단칼에 외면하고 플라톤의 철인왕정을 마치 현대 폭압적 전체주의 체제의 시조인 양 비하하고 있다. 물론 그것은 근대 자연과학의 발달과 20세기 피폐한 전체주의적 정치체제의 등장 이후 이른바 ‘선한 우주agathos kosmos’에 대한 믿음 자체가 무너져 버린 데 기인한 것이긴 하다. 그러나 자연사 및 세계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철인왕정에 대한 그들의 비난은 그 시대 나름의 의미와 타당성을 가질 수는 있어도 그들의 견해가 우주적 실재를 관통하고 지배하는 원리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근거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최소한 우리는 현 단계에서 가히 시간적으로 무한하고 공간적으로 무한하다 싶을 정도의 우주가 실재하며 나아가 그 우주가 일정한 질서와 법칙 이른바 자연의 제일성(齊一性, unifomity)을 갖고 있다는 것을 우주적 진실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 과학 또한 그러한 전제와 토대 위에서 성립한다. 플라톤의 철인왕정 또한 그러한 믿음을 토대로 우주의 일부로서 인간적 삶의 공동체를 목표로 최대한 우리가 바라고 지향할 수 있는 이상적 푯대로 제시된 것이다. 물론 플라톤의 철인왕정은 오늘날의 관점에서 당연히 비난의 대상이 될 만한 사안들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폭압적 전체주의에 대한 플라톤의 혐오는 현대 자유주의자들보다 컸으면 컸지 절대로 작지 않다. 아무려나 플라톤이 살았던 시대건 오늘날이건, 플라톤이건 현대 자유주의자들이건 궁극적으로는 모두가 하나같이 서로 다른 욕망을 가진 사람들끼리 조화를 이루며 평화롭게 공존하길 원한다. 그러한 한, 상이한 여럿의 조화와 공존을 본질로 하는 좋음의 형상 자체는 쉽게 외면할 일이 아니고 또 그렇게 외면될 수도 없다. 그것은 인간의 본성 내부에 현존하는 불멸의 힘이자 희망으로 끝없이 도전을 이겨내고 우리 영혼을 북돋고 고양시키며 인간의 역사를 견인하고 구성하는 하나의 실재체ousia가 아닐 수 없다.
* 4)에서는 변증술의 부작용이 생겨나지 않도록 변증술을 배우기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을 잘 가려내야 하고, 나아가 그 배움의 중요성만큼 얼마의 기간 동안 어떻게 그것을 단련하고 실천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 즉 앞서 논의 주제로 제시되었던 배울 거리에 대한 배정의 문제가 다루어진다. 소크라테스가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그 구체적인 연령별 단계별 내용을 어린 아이 시절부터의 교육을 포함하여 함께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i) 4-5살부터 17-18살까지 : 시가 및 체육 교육
시가교육(376e-403c)과 신체 단련 교육 즉 체육 교육(403c-412b)은 제2권과 제3권에서 다루고 있다.
ii) 17, 18-20살(2-3년) : 필수적인 신체 단련 기간(537b)
이 기간은 청소년 시절 시가와 더불어 진행된 체육 교육이 아니라 군대에서 의무적으로 복무하는 기간을 말한다.
iii) 20-30살(10년) : 변증술을 위한 예비적 배울 거리들을 배우는 기간(537c)
스무 살이 된 자 중 선발된 자를 대상으로 교육이 이루어지는 이 기간은 변증술에 적성이 있는지 없는지를 가늠하는 가장 큰 시험이 되는 기간이다.
iv) 30-35살 : 변증술을 단련하는 기간(537d-539e)
서른 살이 된 자들을 대상으로 오로지 변증술적 논변에 참여하고 그것을 단련케 하는 기간이다. 이때 변증술의 맛만을 보고 그릇되게 사용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초기 단계부터 조심해야 하고 만약 그런 경우가 생기는 경우 그런 자들을 걸러내야 한다.
v) 35-50살(15년) : 의무적으로 나랏일을 실제 경험하고 실습하는 기간(539e)
앞선 모든 과정에서 가장 뛰어난 자들로 하여금 경험에서 남들에 뒤지지 않도록 전쟁 업무를 포함하여 그들에게 맞는 관직을 의무적으로 수행케 하는 기간이다. 통치자가 나랏일을 관장하는 최고 관리직이라면 이들은 그들을 보조하는 관료들이라 할 것이다.
vi) 50살 이후 : 통치자로 임명되어 번갈아 가며 통치 업무를 수행하는 기간(540a-b)
이들 중 쉰 살에 이른 자들을 대상으로 다시 선발 과정을 거쳐 변증술의 최종단계인 좋음의 형상을 본 자들을 통치자로 임명한다. 이들은 남은 생애 대부분을 철학을 하며 지내면서 자신의 차례가 되면 좋음 자체를 본으로 삼아 통치 업무를 수행하고 동시에 장차 통치자가 될 수호자들을 길러낸다. 그리고 사후에는 복된 자들의 섬에서 거주한다.(540b-c)
* 5) 그리고 끝으로 소크라테스는 앞서 다루었던 나라와 정치체제와 관련한 모든 이야기가 전적으로 기원euchē에 불과한 것들이 아니라 어렵긴 하지만 어떤 식으로는 가능한 것들이라고 말한다. 플라톤의 이상국가의 실현 가능성과 관련한 이전의 논의(강해 64)에서도 이미 살폈듯이 매우 제한적인 조건에서만 가능할 정도로 그 실제적인 가능성은 극히 낮다. 그런 점에서 <국가>의 정치체제는 플라톤에게도 실제로는 말 그대로 말로 세우는 이상으로서 정치체제이다. 그리고 철학자 왕이 ‘한 명이냐 여럿이냐’의 문제 역시 앞선 강해(강해 44)에서 살폈듯이 플라톤에게는 별 의미가 없다. 오로지 중요한 것은 이곳에서도 언급하고 있듯이 ‘여럿이든 한 명이든’ 그 사람이 진정한 철학자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플라톤은 이곳에서 제5권(456a-466e)에서 이미 밝혔듯이 그 통치자에 여성 또한 포함되어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있다.
*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나라와 정치체제를 가장 쉽고 빠르게 수립하기 위한 방안을 이곳에서 제기하고 있는데 그것은 말로 세운 국가가 안정적으로 구축된 이후 상시적으로 시행되는 방안이 아니라 현실국가를 이상 국가로 정화하는 단계에서 과도기적으로 요구되는 방안이다.
* 이로써 제5권에 들어와 배우자 공유에 대한 이의가 제기되면서 논의 일탈의 형식으로 제시된 주제 즉 통치자로서 철학자 왕의 불가피성 그리고 그들을 위한 교육 내용과 단계에 관한 논의가 제7권을 끝으로 모두 마무리된다. 그러니까 정의로운 나라와 사람 그리고 그 반대로 부정의한 나라와 사람을 비교하여 누가 더 행복한가를 살피고자 했던 최초의 논의 계획의 전반부 즉 정의로운 나라와 그 나라를 닮은 정의로운 사람에 관한 논의가 모두 마무리된 셈이다. 이제 부정의한 나라와 그것을 닮은 사람에 관해 논의할 차례이다. 제8권부터 우리는 그 주제와 마주한다. -제7권 끝-
다음 주제 : VI 본론 3 : 부정의와 현실 비판 – 현실 국가 분석(제8권-제9권)
A. 부정의한 나라들과 부정의한 개인들.
- 도입부 : 원래 문제로 복귀. 고찰의 방법과 순서(543a-545c)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