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 미학 산책4- 절대정신[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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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 미학 산책4- 절대정신

 

1)

헤겔의 철학 어디에도 절대정신의 개념에 부딪히지 않는 곳이 없다. 헤겔 미학에서 이 개념은 자주 이념이라는 논리적 범주로 표현되거나, 간단하게 정신이라는 말로 언급되기도 한다. 절대정신 개념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헤겔의 철학에 한발자국도 다가가지 못하니, 헤겔의 미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부득이 절대정신이라는 개념 벽에 도전하지 않을 수 없다.  

헤겔 해석자 대부분은 절대정신을 신을 지칭하는 말로 간주한다. 이런 해석에서 신의 개념은 이미 전제되고 있다. 그 개념이란 흔히 기독교 신학에서 말하는 세계의 창조주이며 전능한 유일자라는 개념일 것이다.

하지만 헤겔 철학전서에서 보듯이 신 개념은 절대 정신의 종교적 형태에 속하는데, 절대정신을 유일자라는 신 개념으로 해석한다면, 절대정신의 최종적 형태가 왜 종교가 아니라, 절대지 즉 철학 또는 학문인지가 밝혀지지 않는다. 아무리 헤겔이라도 유일자 신을 인간의 학문으로 알 수 있다고 주장하지는 못하지 않을까?[1]

절대정신이 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면, 대체 절대정신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헤겔에서 하나의 정신은 자기 모순에 부딪히면서 자기 내로 반성하는 것을 통해 새로운 정신으로 이행한다. 그러므로 새로운 정신이 무엇인가를 이해하려면, 이행의 계기 즉 그것이 어떤 모순으로부터 출현했는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절대정신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헤겔 정신현상학에서는 절대 정신은 양심의 모순에서 나온다[2]. 이 양심 개념은 5장 정신 장의 마지막 C절 자기를 확신하는 정신(도덕성)에 속하는 마지막의 형태이다. 여기서 최초로 등장하는 절대정신은 종교이다.

 

2) 이 부분을 이해하기 위해 헤겔의 철학적 전개 과정을 전반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설명을 간단하게 만들기 위해 하나의 도해를 만들어 보았다.

 

이 도해는 왼쪽에서 만나는 두 가지 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위의 선은 국가의 외적인 측면 즉 객관정신이 발전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아래 선은 국가의 내적인 측면 즉 주관적 정신의 발전과정이다.

두 개의 선이 결합하여 국가의 세계사적인 발전과정이 전개된다. 구체적으로 동방(인도 및 이집트) 부족국가, 그리스 로마의 민족 국가, 중세에서 근대에 이르는 오성적 국가, 마지막으로 헤겔이 이상으로 삼는 이성적 국가이다.

(이집트, 동방의 국가는 본래적an sich 정신이며, 이성국가는 곧 실현된 an und fuer sich 정신이다. 논리적 범주로는 전자가 개념이며 후자가 개념의 실현으로서 이념이다.)

 

객관적 정신의 측면에서 본다면, 이 과정에서 발전하는 것은 소유관계인데, 이 소유관계는 근대에 교환을 통한 소유로 발전한다. 이게 오성 국가의 기초가 되는 근대의 사회적 실체이다. 주관적 정신의 측면에서 본다면, 근대에 이르러 개인의 법적인 인격이 출현한다. 교환을 통한 소유와 법적 인격이 결합하여 국가가 출현한다. 이것이 곧 오성 국가 즉 근대 자본주의 국가이다.

여기서 개인의 주관성의 발전이 이루어진다. 이 발전과정은 정신현상학에서 서술되는데, 마침내 양심을 넘어서 절대정신이 출현하며, 사회적으로는 시장 교환을 통해 생겨나는 불평등이 국가의 개입으로 해소되면서 오성 국가는 이성 국가로 발전한다.

 

3)

절대정신은 정신현상학에서 보듯이 양심을 넘어서 출현하게 된다. 절대정신의 구체적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이 과정을 좀 더 상세하게 살펴보자.

우선 양심의 개념을 생각해 보자. 칸트에서 순수의지는 추상적 도덕법칙을 추구하면서, 자연적 욕망과 대립한다. 양심은 칸트 순수의지에서 모순을 극복하면서 나온다. 양심은 그 개념에 따르면 구체적 법칙을 직각적으로 인식하는 동시에, 어떤 주저도 없이 단호하게 행동한다.

그러나 양심의 실제 모습에서 분열이 일어난다. 행동하는 의지는 행동을 우선하는 가운데, 도덕법칙보다 개인적 야심을 따른다. 반면 순수한 양심은 도덕법칙의 순수성을 고민하는 가운데 행동을 유보하게 된다. 행동하는 의지와 순수한 양심은 대립하는 가운데 마침내 자기의 잘못을 고백하고 서로 화해에 이르게 된다. 즉 서로가 자기와 다른 사람의 필요성을 인정하게 된다. [3]

순수의지나 양심에서 정신은 개인적인 차원에 머물렀다. 서로 대립하는 두 정신, 행동하는 의지와 순수한 양심이 서로를 인정하면서 마치 성령과 같이 “불의 혀처럼 갈라져.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는” 정신이 출현한다. 이것이 바로 절대정신이다. 이 정신은 “같은 한 성령이…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다른 역할로 나타난다.[4] 성령의 본질이 곧 사랑이듯이, 절대정신은 공동체적인 정신이다. 

헤겔에게서 절대정신은 마치 성령이 교회공동체의 바탕이 되듯이 새로운 공동체의 바탕이 되는 정신을 말한다. 여러 자아가 서로 다른 역할을 하면서도 서로 필요로 하면서 구성하는 공동체가 곧 국가이니, 이 국가의 바탕이 되는 정신이 곧 절대정신이다. 이 점을 헤겔은 이렇게 말한다.

기독교에서 성령 개념은 곧 삼위 일체라는 제도적 형태로 발전한다. 마찬가지로 헤겔의 절대정신은 이상적 국가의 삼위일체적인 제도로 발전한다. 이상적 국가는 보편성(성신)과 개별성(성자), 특수성(성령)으로 구성된다. 그것이 각각 의회, 군주, 관료를 의미한다. 마치 삼위일체에서 각각이 전체이며 동시에 전체의 한 부분이듯, 헤겔은 이상국가에서 의회와 군주, 관료는 각각이 전체이며 또 전체의 한 부분이니 서로 대립하면서도 서로 보완하여 공동체를 구성한다고 말한다.

 

4)

절대정신을 공동체적 정신이라 할 때, 여기서 공동체적 정신이라는 것은 결코 공동적인 목적으로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이 공동적 목적으로 공동체의 단결된 힘을 통해 실행하려 할 때 출현하는 것이 절대정신이니, 이 절대정신은 공동체의 단결된 의지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민족적 영웅은 그 민족의 의지를 대변한다고 할 때 그런 영웅을 중심으로 단결하고 응집하는 정신이 곧 절대정신이다.

공동체가 단결된 의지라고 해서 개인의 주관적 자유의지가 제거된 기계적인 통합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주관적 정신의 발전과정에서 근대에 이르러 개인의 자유의지가 자각되고 그런 자각 위에서 양심이 출현했다. 따라서 절대정신에서 공동체의 단결된 의지는 개인의 자유의지 위에서 성립하며, 그렇기에 이런 단결된 의지는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는 의지가 된 것이다.

서로가 서로의 자유의지를 인정하는 것은 서로의 고유한 역할을 인정하고, 각자의 역할이 지니는 과잉은 비판하고 결핍은 보완하는 것이니, 이미 그 속에 서로 대립하는 것을 포함하니, 여기서 하나가 곧 전체이며 전체가 곧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공동체적 정신 즉 절대정신을 가장 잘 보여주는 정신은 사랑의 정신이라 하겠다. 사랑은 하나 즉 전체(hen kai pan)라는 공동체의 정신의 표현이다.

헤겔은 이런 점에서 예수의 복음에 주목한다. 예수는 새로운 복음 즉 신약인 사랑을 선포했다[5]. 그러면서도 그는 구약인 심판 즉 정의를 부정하지 않았으니, 절대정신의 두 측면 통일과 대립의 두 측면을 잘 보여준다. 이런 사랑의 정신은 한평생 교회 공동체(Gemeinde)의 수립에 전력을 기울였던 바울의 설교에서도 잘 드러난다.

헤겔은 예수의 복음이 우연히 나온 것은 아니라 본다. 절대정신 자체가 곧 공동체의 정신이고 이 공동체 정신을 잘 드러내는 것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즉 정신의 개념 자체가 본래 사랑이므로 예수는 이를 복음의 내용으로 삼았다는 것이다.[6]

사랑의 절대정신의 종교적 표현이다. 종교적 사랑은 구체적으로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의 사랑을 의미한다. 헤겔의 절대정신은 교회 공동체를 벗어나 사회적 상호 관계 즉 정신적 실체 속에서 실현되는 시민적 사랑을 의미한다. 전자는 제도적으로 삼위일체라는 제도으로 실현되며 후자는 헤겔이 법철학에서 구상한 이상 국가에서 삼권분립의 제도로 실현된다.

포이어바흐는 신을 인간 본성의 소외라 보았다. 인간의 본성은 사랑인데 신이란 내면적 사랑이 초월적인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설정된 것에 불과하다. 헤겔에서 신 역시 절대 정신의 환상적 표현이고, ‘환상적 표현’이라는 말과 ‘소외’라는 개념이 서로 유사하며, ‘공동체 정신’과 ‘사랑’의 본성이 유사하니, 포이어바흐의 신 개념은 사실 헤겔의 신 개념에서 이미 내재하고 있던 것이라 할 수 있다.


[1] 이점과 관련하여 헤겔은 철학 전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러나 [신의] 진정한 구체적 소재는 존재(우주론적 신학에서처럼)도 아니고, 합목적 활동(자연신학적 증명에서처럼)도 아니고 정신이다. 이 정신의 절대적 규정은 실효적인 이성 즉 자기를 규정하고 실현하는 개념 자체 즉 자유이다.”(§ 552 주석) 헤겔은 이런 점에서 칸트가 실천이성으로부터 신을 도출하려 했던 시도를 찬성한다. 

[2] 정신현상학에서 종교 장과 절대지 장을 묶어서 절대정신으로 해석한다. 정신현상학에서는 절대정신에 속하는 예술을 다루는 부분이 없다.

[3] 정신현상학 양심의 마지막 부분에서 헤겔은 이렇게 말한다.

“두 개의 나[Ich]는 화해하면서 상대방을 긍정하는 가운데, 서로 대립하는 현존이기를 그친다. 이런 화해하는 긍정은 이원화된 두 개의 나[Ich]가 그런 가운데서도 서로 동일하게 머무르는 현존이며 또한 이런 현존 속에서 두 개의 나[Ich]는 완전히 소외되고 대립하는 가운데에서도 오직 자기자신을 확신한다. – 상호 화해하는 긍정을 통해 신은 자신이 곧 순수한 인식임을 깨우치고 있는 두 개의 나 한복판에 그 모습을 나타낸다.

[4]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사도행전 2:2-4]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고린도전서 12:8-13]

[5] 요한복음 14: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로마서 13: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6] 이런 점에서 독일어 Geist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한편으로 정신을 의미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성령을 의미한다. 헤겔이 절대정신이라는 말은 곧 성령이라는 말에서 유래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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