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마스, 『세상은 더 나아져야 한다』(2024) – [6] [내게는 이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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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마스세상은 더 나아져야 한다(2024)

Es musste etwas besser werden

Gespräche mit Stefan Müller-Doohm und Roman Yos

 

옮긴사람 행길이(한철연 회원)

 

[6]

 

3. 실증주의 비판에서 기능주의적 이성 비판으로 –  –

 

□ 기술 사회학(beschreibende Soziologie)도 사회적 갈등의 측면들을 충분히 잘 조명하고 있습니다이에 비해 당신의 비판 사회이론(kritische Gesellschaftstheorie)이 더 나은 점은 정확히 무엇입니까?

 

■ 정치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즉 기존 정치적 지배를 정당화하는(legitimieren)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은 그저 특별한 경우일 뿐입니다사회 비판은 일반적으로 행위 주체와 그에 상응하는 제도들의 합리성 전제(Rationalitätsunterstellungen)에서부터 시도해 볼 수 있습니다예를 들어 민주적 법치국가에서 시민들은 법정에서 어느 정도 공정한 판결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가정—이것은 현실주의자들이나 비판 법학(Critical Legal Studies)을 지지하는 이들이 제시하는 주장즉 판사들이 내리는 판결에는 이해관계에 편향된 동기들이 있다는 점을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달라지지 않습니다—을 전제로 삼고 있기 때문에 법정에서 갈등을 해결해 보고자 합니다시민들은 합리성 전제가 성립될 수 있을 경우에만 법적 해결을 신뢰하면서 참여합니다이러한 합리성 전제는 때때로 [체제 반대와 같은일탈 행위를 설명하는 데에도 활용할 수 있습니다예를 들어어느 정도 기능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들은 자신들의 목소리가 경청될 수 있고정치 과정에서 자신들의 의견이 중요하게 여겨진다고 암묵적으로 전제할 때에만 습관적으로 총선에 참여할 것입니다민주 헌법은 심지어 그들의 표가 다른 모든 시민의 표와 동일한 가치를 가진다고 약속하기까지 합니다이러한 것들 역시 이상화된 전제들이지만 이것들은 사회적 결과를 낳습니다왜냐하면 지속적으로 소외되었다고 느끼는 유권자들은 더 이상 선거에 참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오늘날 우리는 그러한 투표거부자들(Nichtwähler)이 종종 포퓰리즘 운동에 동원되는 것을 목격합니다그러나 이때 그들은 자신을 체제 반대자(Systemopposition)’로 이해하면서 민주적 선거의 전제 조건을 가지고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작동을 가로막으려는 의도를 가지고 참여합니다이러한 [체제거부적실천들에서 문제거리가 되는 것은 참여자들에게 요구하는 이상화된 전제들이 아니라 제도 자체의 신뢰성입니다이를테면 소외된 투표거부자들과 그들의 이해관계를 정당정치적 차원에서 참작하지 못함(parteipolitische Nichtberücksichtigung) 사이를 돌고 도는 악순환이 발생하거나공적 의사소통의 기반구조가 붕괴하여 충실한 정보에 입각한 공적 의견이 아닌 어리석은 원한감정(dumpfe Ressentiments)이 마당[공적 의사소통 공간즉 공론장]을 장악하게 되는 일이 벌어지는 거죠비판 사회이론은 이러한 체제 반대의 실천 경향을 민주적 절차에 함축된 이상화된 전제에서 갈라져나온 것이라는 식의 합리적으로 재구성된 이해를 가능하게 합니다바로 이것이 오로지 객관화로만 접근하는 기술 사회학적 설명보다 비판 사회 이론이 낫다고 할만 한 것입니다.

 

□ 그렇다면 당신의 견해를 이렇게 요약할 수 있을까요정치적 행위 영역에서 행위자들의 다소 합리적인 의도 및 의견을 경험 사회학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그저 첫 단계에 불과하며행위자들(Handlungsakteure)의 실천은 민주적 제도들의 객관적 의미에 비추어 생각해 볼 때 비로소 드러나게 되는 규범적 기대를 재구성하기 위한 접근법으로 보완되어야 한다는 식으로 말이죠왜냐하면 우리가 [민주적 제도들의 객관적 의미에 비추어 행위자들의 규범적 기대를 재구성하지 않는다면 행위들에 대한비판적 판단을 형성할 수 있는 어떠한 기준이나 척도도 가지지 못하게 될테니까요.

 

■ 네저는 이런 논점에 대해 『의사소통 행위 이론』을 가지고는 전문가들을 설득하지 못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그런 상황 속에서 저는 이성(Vernunft)’을 주관적 능력이 아니라 상호주관적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의사소통적으로 사회화된 주체들이 공동의 언어를 가지고 근거들의 공간을 공유하면서 담론적으로 규제된 주제입장논증의 교환에 참여하는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루만(Luhmann)의 체계이론도 자기성찰성에 바탕을 두고 이론을 전개한다는 특징을 공유하고 있습니다그는 이러한 종류의 성찰성을 (전통적 철학 개념으로서의이성에 귀속시키지 않습니다그런 의미에서 루만 역시 사회이론에 종사하고 있습니다그렇지만 그는 자기성찰(Selbstreflexion)’을 처음에는 후설(Husserl)적인 생활세계(Lebenswelt)’ 개념으로 파악하다가 생물학을 모범형으로 삼아 그것을 다시 대상화합니다체계의 자기성찰은 다음과 같습니다복잡한 환경에 직면한 체계는 자기 준거적 경계 유지(selbstbezügliche Grenzerhaltung)를 고수하면서 환경에 대한 대응 기능을 자기산출적으로(autopoietisch) 제어합니다즉 그의 이론에서 자기성찰은 세계에 존재하는 개별적인 것들(Entitäten in der Welt)을 끝내 관찰 가능한’ 것으로 파악하려는 특성을 버리지 않습니다.

 

□ 힘차게 노 저어 가다보니 어느새 루만과의 논쟁 지점까지 도달버렸습니다이 논쟁은 근대에 대한 철학적 담론에 관한 당신의 설명을 배경으로 염두에 둬야만 하는 것이죠만

 

■ 맞습니다그 부분은 지금 나누고 있는 대화 주제의 범위에서 벗어난 듯 하군요제가 합리적 재구성[사회 현상이나 행위자들의 행위에 내포된 규범적 기대와 가능성을 합리적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에 대해 너무 길게 설명했는데요이 부분은 변증법의 역할에 대한 당신의 원래 질문과는 관련이 없습니다당시 실증주의 논쟁에서 아도르노의 부정 변증법은 주제가 아니었고방법론적 담론에서도 다룰 것도 아니었습니다제가 이해한 바로는 헤겔의 변증법은 엄격한 의미에서 결코 논리학이 아닙니다오히려 범주론(Kategorienlehre)이죠헤겔은 이 범주론을 지나치게 보편화했지만 사실 그것은 마르크스가 뚜렷하게 강조했듯이 특정한 문제의식에 맞춰진 것이었습니다즉 당시 부르주아적’ 사회다시 말해 다소 자유주의적인 근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 위기의 전개 양상과 그 동학을 묻는 질문에 대해 어떤 개념들로 답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의식 말입니다.

우리가 앞서 헤겔이 근대 사회의 위기 경험즉 인륜적’ 생활 형식의 해체를 야기하는 압도적 소용돌이라는 위기와 그에 대한 대응으로서 제기되었던 대답즉 해체된 생활 관계로부터의 해방의 운동을 어떻게 특수성과 보편성’ 사이에서 나타나는 배열 변화로 파악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이러한 것들은 기존의 총체성이 해체되고 다시 복원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총체성의 특징은 개별적인 것특수한 것 그리고 보편적인 것을 강제없이 통합한다(zwanglos integriert)는 것입니다저는 제 최근 저서의 헤겔 장에서 점점 늘어나는 사회적 복잡성과 심화하고 있는 개별화의 조건(Bedingungen wachsender gesellschaftlicher Komplexität und fortschreitender Individuierung아래에서 이러한 위기와 화해 경험을 언어 화용론적 방법을 통해 풀어내려 시도했습니다. 이 방식으로 풀어내보면헤겔의 총체성 개념과 그에 관련된 변증법이란 것은 서로를 만족스럽게 통합된 생활 형식의 구성원으로서 인정하는 개인들의 자기 서술(Selbstbeschreibung)에 결부되어 있다는 점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저는 헤겔 변증법의 논리적 기본 개념에 담긴 규범적 의미를 개인들이 참여자적 관점에서 생활 형식의 상태를 표현하고자 할 때 사용해야 하는 인칭 대명사의 수행적 의미를 통해 설명합니다즉 생활 형식에 대한 소속감이나 소외감을 표현할 때는 인칭대명사를 [관찰자의 입장에서가 아니라참여자의 입장에서 수행적 의미로 사용한다는 겁니다왜냐하면 개별성(Individualität) –또는 비동일적인 것(das Nichtidentische)–의 모습은 기술적 관찰자의 객관화된 시각으로는 단지 지칭할 수만 있을 뿐 그 자체로는 결코 파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즉 그것은 관찰자의 관점에서 3인칭으로 기술되는 관점에서가 아니라 라고 말하는 1인칭의 관점으로 전환할 때 비로소 언어의 공간 속으로 들어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물론 그것이 끝없는 자서전적 맴돌기(Einkreisung)의 형태로만 가능할 뿐그 자체를 완전히 표현될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말이죠.

제 생각에는 헤겔 변증법의 기본 개념들은 본래 특정한 경험에 불과한 것을 집합적 형식으로 자기 서술하는 것즉 헤겔이 『법철학』에서 분석한 근대 사회의 위기 경험을 우리라는 말로 행했던 자기 서술에 적합한 것이라고 여겨집니다이 개념 장치를 국지적 적용 대신에 헤겔처럼 객관화하여 모든 존재하는 것즉 자연과 정신 전체에 적용하는 경우 이는 역사 철학적인 포편화를 암묵적으로 시도하는 것입니다그래야만 위기 상황을 표현하는 모든 사회 현상을 선험적으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즉 이 위기는 관련 당사자들의 관점에서는 해결이 필요한 것으로 파악되는 것은 물론이고변증법적 필연성의 관점에서는 (비록 잠정적일지라도해결이 가능한 것으로 간주될 수 있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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