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철학사전[가동(可洞)선생의 삶의 철학]
일본철학사전
이 종철(연세대학교 철학연구소)
어제 Yes24에서 건국대의 이신철 박사가 번역한 헤겔 관련 책을 2권 주문해서 받았다. 하나는 하세가와 히로시의 『헤겔 정신현상학 입문』이
고 다른 하나는 곤자 다케시의 『헤겔과 그의 시대』다. 히로시는 헤겔 원전 번역으로 독일 정부로부터 <레싱> 상도 받았다고 한다. 아직 제대로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두 권 다 연구가 탄탄한 느낌이다. 일본 학계의 연구 수준을 잘 반영하는 것 같다. 그런데 표지 날개를 보니 이 책을 번역한 이신철 박사가 칸트, 헤겔, 현상학, 마르크스, 니체까지 막대한 분량의 철학 사전을 다 번역한 것을 보고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평생을 작업해도 힘들 엄청난 분량과 난이도 높은 철학 사전들을 이렇게 혼자서 번역을 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고, 또 그러면서 한국 철학회나 출판계에서 그 흔한 번역상 하나 받지 못했다는 것이 무얼 의미하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뒤로는 볼 것 안 볼 것 다 보면서도 앞으로는 무시하는 우리 학계와 문화계의 전형적인 이중성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두 번째로 놀란 것은 오전에 <법철학> 강의에서 발표하던 한 학생이 의도(Vorsatz)와 기도(Absicht)라는 용어를 이해하기 위해 네이버 사전을 활용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다. 네이버에 『헤겔 사전』이 제공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한 번 네이버에서 검색을 해보니 이박사가 번역한 일본철학계의 사전들이 다 제공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지식검색 사이트에서 제공되는 사전들의 내용이 모두 일본에서 출간된 철학사전에 기초한 것이다. 이것을 확인하고 나서 착잡한 느낌이 든다. 한국 철학계에 수없이 많은 학회들이 존재하고, 그 이상의 학회지들을 발간하며 수많은 논문들을 쏟아내면서도 솔직히 사전 한 권 못 만들고 있다. 오래 전에 학원사에서 나온 철학 사전도 다 일본 사전을 번역하고, 몇 개 항목만 국내 학자가 추가한 것들이다. 20여 년 전 <한국철학사상연구회>에서 나온 『철학대사전』은 구동독에서 출간된 것을 집단 작업을 통해 번역했고, 동양철학 항목들은 국내 소장 학자들이 공동 집필했다. 하지만 이 사전은 마르크스-레닌주의 세계관이 유명무실해졌기 때문에 더는 생명을 유지하기 힘들다. 사정이 이런데 한 개인과 한 출판사의 노력으로 사전들이 대거 번역이 되고, 또 그것이 네이버에서 실시간으로 제공되고 있다. 이런 사정을 한국 철학계가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알고 있으면서 짐짓 모른 체 눈감고 있는 것인지…어떤 경우든 한국 철학계와 책임 있는 철학자들이 참으로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한국 철학계가 대중과 거의 유리된 상태에서 A4 10장짜리 논문과 연구비, 실적과 승진을 위한 연구에 매달릴 때 일본 철학회는 우리가 감히 넘볼 수 없을 정도로 탄탄하게 기초 연구 시스템을 만들어 놓은 것 같다. 지방 대학출신들도 노벨상을 받는 일본 과학계의 탄탄한 연구 시스템이 인문학계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 같다. 지금은 그렇게 노골적으로 하기 힘들겠지만 우리 윗세대 학자들 가운데는 일본 논문이나 저서를 이름만 바꿔서 출간한 것도 적지 않고, 나 개인적으로도 구체적으로 확인한 바 있다. 내가 대학졸업 논문을 쓸 때이니까 30년도 더 된 현실이다. 그런데 그 이후로 우리 학계가 양적으로 많이 성장했지만 내부적으로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내 전공과 관련해서 갖는 느낌이다. 헤겔의 주요 저작들이 우리말로 번역되고 여러 차례 재번역까지 되었지만 전공 학자들이 인용하기 힘들 정도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똑같은 책들이 여러 번역자들에 의해 최근까지 재번역되고 있다. 이렇게 기초 작업과 기초 연구가 무시되고 소홀히 되다 보니 우리 연구자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이론, 새로운 철학만 찾아 헤매는 것이 솔직한 실정이다. 물론 새로운 것을 찾고 연구하는 것은 학자들의 당연한 임무겠지만 뿌리 없이 유행 따라 이루어지는 연구는 생명이 길지도 못하고 더더구나 창의적인 작업을 기대하기는 더 힘들다.
개인적으로 오늘부터 일본어를 배워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당장 인터넷으로 하세가와 히로시가 번역한 헤겔의 『정신현상학』 일본판을 주문했다. 일본어는 같은 알타이어 계 언어이고 한자문화권에 있어 다른 언어보다 쉽게 배울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다보면 일본에 지나치게 의존될 것 같아 의도적으로 안 배우고 일본 학계의 동향을 무시했었다. 하지만 더는 그래서는 안 될 것 같다. 지금 수준에서는 우리가 여러 모로 수입하고 의존할 수밖에 없겠지만 어떻든 공개적으로 이 문제를 접근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우리 학계, 아니 그 전에 나 스스로도 자극을 받고 무엇에 역점을 두고 무엇을 중시할지를 반성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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