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단상[가동(可洞)선생의 삶의 철학]
아침단상
?이종철(연세대학교 철학연구소)
아침에 일어나서 페북의 타임라인을 보다 보니 두 가지 기사가 유독 눈을 끈다. 하나는 삼성 반도체 노동자로 일을 하다가 백혈병에 걸려 죽은 황유미 양의 아버지에 관한 기사이고, 다른 하나는 ‘경영판단의 원칙’에 관한 김 상조 교수의 시론이다. 둘 다 삼성과도 관련이 있다.
고 황양의 아버지는 인터뷰에서 항소심에서도 유가족의 판단에 손을 들어준 법원의 판단을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딸이 백혈병에 걸린 지 9년만이고, 죽은 지 7년 만이다. 그 긴 세월 동안 꽃 같은 딸이 백혈병에 걸려 죽어가는 모습에 가슴아파하고, 또 그만큼 긴 세월동안 나 몰라라 하는 재벌 기업을 상대로 분노하면서 싸워왔던 아버지의 힘들었던 모습이 오버랩된다. 한국사회에서 개인이 재벌을 상대로 싸운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외롭고 힘들고 모든 것을 바쳐야 하면서도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무력감과 좌절감을 이겨내고 승리한 것이다. 딸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힘이다. 그만큼 이런 승리는 보석같이 빛난다.
삼성반도체와의 싸움은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다. 직업병으로 판정된 것은 2 케이스 뿐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번 판결이 산재 보상의 좋은 선례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정치 논쟁은 끝이 없지만 법원의 판결은 중요한 판례로 유사 사건들의 판결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투쟁만을 일삼는 세월호 공방이 눈여겨 볼 대목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막강한 권력을 가진 삼성도 기업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에 적극적인 자세를 가져야 하며, 다른 유사 사건들도 전향적으로 잘 마무리를 했으면 한다. 삼성이 오늘날의 성공 신화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이건희 회장을 위시한 소수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님을 직시해야 한다. 그 이면에 수많은 직원들의 헌신과 고통, 그리고 반도체 사망자들처럼 산재로 죽어간 노동자들의 피와 땀, 그리고 국민들의 소비와 국가의 정책적 지원 등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제 세계적으로 성장한 기업으로서 윤리의식과 책임의식을 같이 키워야 할 것이다.
사실 이번 판결이 나기까지 무려 7년이나 걸렸던 데는 삼성의 무력시위와 악의적인 방해 공작, 그리고 막강한 로펌의 인력들이 동원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는 법률가들의 지원을 받았기는 하지만, 이런 삼성의 권력에 맞서 일 개인이 소송을 벌인다는 것 자체도 상상하기 힘들다.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과 같기 때문에 미국의 법정이었더라면 이번 판결에서 단지 유족들의 손을 들어주는 것 이상으로 소송과정에서의 재벌의 행태에 대해 ‘징벌적 손해 배상’이 적용되어 천문학적 책임을 물게 했을 것이다. 이 법은 우리 국회에도 상정이 되었지만 국회로 진출한 법피아들의 방해로 아직도 계류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징벌적 배상 제도가 적용된다면 기업도 마음대로 소송과정에서 횡포를 부릴 수가 없을 것이다. 법원도 이 문제를 좀 더 전향적으로 생각해야만 한다. 그래야 이 땅에 정의가 살지 않겠는가?
다른 하나는 2년 가까이 소액주주운동을 벌여온 김상조 교수의 ‘경영판단의 원칙’에 관한 글이다. 지난 세기 말 IMF를 겪고, 2009년 금융위기도 거쳐 온 기업들이 투자 불확실을 이유로 사내에 엄청난 유보금을 쌓아 놓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대학도 천문학적 유보금을 쌓아 놓고 등록금 타령만 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 유보금을 그대로 적립할 것인지 아니면 특정 부문에 투자를 할 것인지는 기업의 고유한 경영판단이라는 것이다.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현 경제 내각이 이 부분에 높은 세율을 적용하겠다고 했지만 용두사미 격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런 경영판단은 일종의 초헌법적인 통치행위와 비슷한 의미가 있다. 국정의 총책임자인 대통령의 판단은 사법 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 특별권력관계의 통치 행위라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지난 정권 때 엄청난 부실과 이권으로 진행된 4대강 사업에 대해 제대로 된 조사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오늘 날 헌법학자들은 이런 초헌법적 통치행위가 헌법의 정신을 무력화한다고 해서 인정하지 않는 쪽으로 학설을 정리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기업의 경영판단의 원칙이라는 것도 그 경계와 책임이 모호한 면이 적지 않다. 오늘날 기업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역할은 막중하다. 그런 기업, 특히 삼성과 같은 세계적인 기업의 경영판단의 잘잘못은 국가 경제와 국민들의 일상적 삶에도 큰 충격을 미칠 수가 있다. 때문에 그런 기업의 경영 판단을 감시하고 견제할 수 있는 장치가 필수적이다. 김 교수가 벌이는 ‘소액주주운동’도 그런 견제의 한 방식이다. 김 교수는 20년 전부터 경실련을 배경으로 소액주주 운동을 벌였고, 그 과정에서 삼성과도 많은 마찰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사실 이런 감시와 견제를 위해서는 단순히 분노와 의기만 믿고 할 수 없는, 고도의 전문적 지식이 요구된다. 때문에 이것은 그 방면의 전문가들, 지식인들만이 사회적 책임을 갖고 뛰어들 수 있는 부문이다.
나는 김 교수를 보면서 이 땅의 지식인들의 역할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가늠한다. 전문적 지식을 갖고 높은 연봉을 받는 대학교수들이 일반인들과 똑같이 피켓 들고 행진하고 단식 흉내 내고 하는 것은 직무 태만이고 유기이다. 물론 그런 행동들이 전혀 필요가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고도의 전문적 지식과 높은 연봉을 받는 만큼 그런 전문성을 발휘하는 방식으로 싸우는 것이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그들은 사회를 비판하고, 국민들을 움직이는 글을 쓰고 이론을 만들어야 하고, 전문적 식견을 통해 그런 비리와 불평등을 실증적으로 밝혀내야 한다. 1980년대 초 프랑스에서 사회당이 압승을 거둔 데에는 68운동 세대들의 이론들이 밑거름이 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몸담고 있는 대학사회의 구조적 부정의와 불평등과 싸워야 하고, 이제 노골적으로 극우행동을 하는 젊은 학생들의 생각을 바꾸기 위해 교육 현장에서 싸워야 한다. 오늘날 자본과 권력에 의해 순치된 대학이 자기 검열에 급급하는 데 어떻게 사회 비판을 할 수 있겠는가? 세월호 문제가 정체된 데는 지식인들과 법률가들의 전문성이 실종된 상태에서 일반인들과 똑같이 행동한 책임도 크다. 공론장을 이야기하고 의사소통의 합리성을 떠들던 이 땅의 수많은 하버마스리언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궁금할 뿐이다. 결국 그들에게는 피켓 들고 세월호 운운 하는 것과 이 땅의 현실과 유리된 이론들을 수입해서 저들끼리 골방에서 티격태격 하는 것 사이에 아무런 연관도 없는 것 같다.
사정은 정치인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국회의원 한 명을 운영하는데 연간 들어가는 비용이 5-6억이 넘는다고 한다. 본인의 세비와 보좌관들의 연봉, 그리고 사무실을 운영하고 기타 등등으로 들어가는 비용이다. 입법과 의정 활동을 하라고 국회에 보내주었지만 이들이 지난 몇 개월 동안 세월호 문제로 정치가 실종되는 동안 입법 활동을 한 것은 단 한 건도 없다고 한다. 이 정도 되면 직무 태만이 아니라 유기이고 해고감이 아닌가? 그러면서도 세비는 꼬박꼬박 챙기고 있다. 하다못해 감옥에 있는 통진당의 이석기 의원도 그동안 챙긴 세비가 6억이라고 한다. 거기다가 동료의원의 비리를 감싸는 방탄 국회를 만드는 데는 여야 없이 합심단결하고 있다. 이게 말이나 되는가? 하루 종일 폐지를 줍는 이 땅의 노인들의 한 달 폐지 수입이 5만원이고, 사회 변화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NGO 단체의 간사들이 한 달 100-150만원도 안 되고, 열심히 지식보따리를 들고 이 대학 저 대학으로 강의를 위해 뛰어다니는 대학 강사들의 연 수입이 1000-2000만원도 안 되는 현실을 그들은 아는가? 그럼에도 그들은 탱자탱자 하면서 엄청난 세비만 챙기고 특권만 누리고 있는 것이다. 무노동 무월급은 파업현장의 노동자들이 아니라 바로 이런 정치인들에게 적용되어야 할 원칙이다.
한 마디로 우리 사회는 전문가들이 사라진 사회이고, 전문가들의 윤리와 책임의식이 실종된 사회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저 구석에 있는 지식인들의 이름은 꿰고 있지만, 우리 현실을 대처할 때는 그저 몸으로 때우는 것 외에는 -그것이라도 제대로 하면 모르겠지만- 할 줄 모르는 게 지식인이다. 아무런 전문적 훈련도 받지 못하고, 역량도 없는 인간들이 열심히 눈도장 찍어서 공천 받고 발품 팔아 당선되고 나면 나 몰라나라 하는 정치인들이 득세하는 한 이 땅의 변화와 개혁은 요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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