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Barbara Fultner eds., Jürgen Habermas: Key Concepts, NY: Routledge, 2014라는 책을 발췌 번역한 것이다. 영미권의 여러 전문가들이 모여 하버마스의 이론을 충실하게 소개하고 있는 훌륭한 개론서다. 하버마스를 이해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서툰 번역으로나마 틈나는 대로 소개하고자 한다.
이 글에 인용된 하버마스 저작의 축약어는 아래와 같다. 꺾쇠 안에 표기된 년도는 영문판 출간 년도다.

BFN Between Facts and Norms (1992 [1998])
BNR Between Naturalism and Religion (2005 [2008])
CES Communication and the Evolution of Society (1976 [1979])
DW The Divided West (2004 [2007])
IO The Inclusion of the Other (1996 [1998])
JA Justification and Appilication [1993]
LC Legitimation Crisis (1973 [1975])
KHI Knowledge and Human Interests (1968 [1971])
MCCA Moral Consciousness and Communicative Action (1983 [1990])
OPC On the Pragmatics of Communication [1998]
PDM The Philosophical Discourse of Modernity (1985 [1990])
PMT Postmetaphysical Thinking (1988 [1992])
PNC The Postnational Constellation (1998 [2001])
STPS The Structural Transformation of the Public Sphere (1962 [1989])
TCA The Theory of Communicative Action (1981 [1984/1987])
TRS Toward a Rational Society [1970]
TJ Truth and Justification(1999 [2003])

6회 [하버마스 읽기: 열한 개의 길]

하버마스 읽기: 열한 개의 길 – 6회

 

한길석(한철연 회원)

 

의사소통적 이성 이론

『인식과 관심』은 근대적 지식 형식의 기초를 인식하고자 하였지만 일반적으로는 성공하지 못한 시도였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이것은 하버마스가 『공영역의 구조변동』에서 제시했던 사회적 지식에 관한 역사 맥락적 분석에서 완전히 벗어나 1970년대와 1980년대를 통틀어 전념하고자 했던 기획으로 이동하는 데에 결정적 역할을 담당한 저작이었다. 새로운 기획은 의사소통적 이성 이론인데, 그것은 분화된 인간 지식과 행위의 실제적 토대를 이루는 “미시논리적” 수준과 사회적 근대성을 발생시킨 “거시논리적” 수준 모두를 포괄한다. 근대성은 이러한 토대를 구현하는 실천들이 새로운 제도들과 다양한 형태로 어우러져서 이룩된다.

비판사회이론의 명확한 개념화라는 작업에 있어서 『인식과 관심』의 인간학적 지향을 승인하는 것은 적당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래서 하버마스는 언어학, 특히 언어행위이론의 한 분야인 화용론이라는 인접 분과학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는 합리성 이론의 원천을 [언어행위라는] 사회적으로 뿌리내린 일련의 보편적 능력들 속에서 발견하기 위한 시도였다. 언어를 의미 목록으로 여기기보다는 상호주체적 체계이자 조정 행위로 간주하던 하버마스는 어떻게 언어가 실제로 행위 조정에 활용되는지 탐구하였다. 즉 화자와 청자들이 서로 성공적인 의사소통을 이룩하기 위해서 갖춰야 할 핵심적 능력이 무엇인지를 탐구한 것이다 (CES를 볼 것).

이런 발상에 깊은 영향을 준 것은 현대 언어학과 미국 프래그머티즘의 전통이었다. 하버마스는 모든 자연 언어들의 저변에는 보편적인 것들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즉 언어행위의 교환을 가능하게 하는 매개인 화용론적으로 불가피한 기술과 능력들이 보편적으로 존재하며, 그것없이는 행위 조정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나”라는 화자와 “너”라는 청자의 위치를 자유롭게 번갈아 가며 변환시킴으로써 인칭대명사의 체계 내에서 부여되는 위치를 확정된 것으로 간주하지 않고 가정적인 것으로 여기는 능력은 올바른 근거를 제공함으로써 발언의 타당성을 정당화하는 데에 필요하며, 상호주관적인 언어 행위의 대칭적이면서 호혜적인 요구들을 파악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하버마스는 특히 참이라고 주장되거나 정당화된 발언들의 실천적이면서 사회적인 차원을 강조하지만 궁극적으로 그것은 보편적인 능력이라고 주장한다.

하버마스는 그의 초기 저작이래 지속되어왔던 철학과 재구성적 과학들 사이의 밀접한 협업 관계를 대표작인 『의사소통행위이론 (1981 [1984/1987])』에서 마침내 완성된 형태로 주장할 수 있었다. “자리 지키는 자이자 해석자로서의 철학”이라는 논문은 이러한 입장을 요약적을 제시하고 있다.

초기 저작에서 하버마스는 보편적 언어 능력들을 분석하면서 사회적으로 구현된 합리성 이론을 발전시킨다. 이 이론은 성인 화자와 청자들이 집단적 행동을 조정하기 위해 자기 및 상대방에게 부여해야만 하는 언어 능력에 대한 분석을 통해 이루어진다. 하버마스는 보편적 언어 능력을 재구성하기 위해 여러 학문 분야를 깊숙이 파고 들었다. 그는 언어학과 행위 및 논의 이론, 발달심리학에 대한 사회심리학적 이론들과 이에 연관된 인지적이고도 도덕적인 학습 과정에 대한 이론적 연구방법들, (인간의 의사소통을 자연 언어에 숙달되는 것으로만 보는 게 아니라 상호주관적 행위로 분석하는) 언어행위이론 그리고 경험적 근거를 지닌 자연적 논의 이론들까지 섭렵하였다.

『의사소통행위이론』 역시 여러 사회학 분야들의 역사, 구조 그리고 목표에 대한 심오하고도 일관된 문제로 구성되어있다. 거기에는 막스 베버의 합리성으로서의 근대화 이론, 조지 허버트 미드의 상징적 상호작용론, 에밀 뒤르켐의 세속화 및 집단 의식 변형이론 그리고 탈코트 파슨스의 기능주의 이론에 대한 깊이있는 해독이 망라되어 있다. 이처럼 놀랍게도 다양한 지식들을 묶어내게 되면 그 이론은 중심점이나 안내자 없는 상태로 머무르게 되어 이론 기획 전체가 전복될 위험에 이를 수도 있다. 그러나 근대 세계에서의 철학의 역할이 바뀌었다는 하버마스의 입장을 좀 더 넓은 관점에서 이해한다면 『의사소통행위이론』의 이러한 접근 방법은 궁극적으로는 심오한 철학적 시도임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이론은 근대적 주체와 사회적 삶에 대한 근대적 형식들의 바로 그 구조 안에 존재하는 합리적 행위의 잠재력을 찾아내고, 식별하고, 정교화하려는 목적을 일관되게 유지한다. 이는 언어 능력에 관해 보편 화용론이 작업하던 세부 사항을 통하거나, 해석 사회학에서 오랫동안 유지되었던 방법론적 논쟁을 통하는 등의 모든 단계에서 이루어진다. 그럼으로써 이런 [근대사회의 합리적] 잠재력에 대한 주요 위협들을 식별해내고, 이러한 위협들에 대응할 수있는 방법을 나타내 보여준다.

 

하버마스의 지적 영향

 

하버마스가 철학과 사회 영역에 끼친 가장 의미있고도 지속적인 영향은 물론 추산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개략적으로는 소개할 수 있다.

『공영역의 구조변동』에서 『의사소통행위이론』과 『사실성과 타당성』에 이르는 하버마스의 철학 및 정치이론을 다룬 저작들은 2차대전 이후 반세기와 21세기 초에 걸쳐 나타난 서양철학의 변형의 와중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그 영향은 다음과 같은 세 측면으로 부각된다.

 

학제적 협력

첫째, 위에서 논의했듯이, 하버마스는 철학에 융합적 학제적 백과사전적으로 광범위하게 접근하면서 철학적 활동의 기존 모델(때때로 이것은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풍자되었는데)에 사려깊은 대안을 제시하였다. 철학 활동의 기존 모델은 고독하고도 자아 성찰적인 철학자가 내적 의식의 심연에서 심오한 진리를 불러내는 이미지로 그려졌는데, 이와같은 철학적 활동 방식은 2차대전 이후 비트겐슈타인과 하이데거에 이르기까지 오랫동안 유지되어왔다. 하버마스의 철학 저작은 방법론적 고립이라는 이런 이미지를 완전히 등지고 있다. 이제 철학은 인간에 대한 탐구 성과에 관한 다양한 목소리가 오가는 대화의 한 당사자로서 참석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 철학에게 특별히 요구되는 것은 전문적 기술 용어로 된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의 발견을 공적 토론에 적합하도록 일상 언어로 번역하는데 도움을 제공하는 통역사로서의 책임이거나 필요하다면 그런 공적 토론의 장에서 심판관으로서의 책임을 맡는 일에 그칠 뿐이다. 이런 의미에서 하버마스의 철학적 저작은 대중적이다. 아마도 [하버마스의] 이런 철학적 모델은 장구한 세월에 대한 인식을 다루는 역사학이나 제도의 기나긴 역사를 다루는 사회학과 다르다. 이 철학 모델은 자연에 대한 그리고 학문적 혹은 과학적 탐구의 한계에 대한 고도의 자기 성찰성과 자기 인식의 문제를 끈덕지게 다룬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진리에 대해 독점적으로 접근하게끔 하는 원칙과 방법을 모두 단념했다. 진리에 대한 독점적 태도는 여타 관련 학문에서도 결핍된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철학의 본질과 목적을 축소시키는 관점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또한 철학에게 과학의 시대에서도 적합성을 유지하도록 더 나은 기회를 제공하는 방도이기도 하다.

 

이성의 복권

둘째, 하버마스의 철학적 작업은 전체적으로 보자면 이성의 복권으로 대표된다. [앞서 보았듯이] 하버마스는 “자리하는 자 및 번역자로서의 철학”이라는 글에서 이제까지 철학은 여타 학문들이 [자기 영역에서 발견한 사실을] 정당하게 인식할 수 있는지 그리고 다른 학문들이 다양한 인간 문화의 영역들과 어떤 식으로 관계를 맺어야만 하는지에 대해 최종적 판단을 내려주는 역할을 맡아왔다고 허세를 부렸는데 그러한 허세를 포기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렇지만 이 말이 “합리성의 수호자”로서의 철학의 역할을 포기하여야 함을 함축하고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 반대다.

주체와 이른바 이성적 중핵의 불확정성에 대한 영미 분석적 인식론, 언어철학, 논리학 및 유럽 대륙의 ‘포스트모던’ 이론들의 궤적과는 다르게, 하버마스의 담론이론은 인간이 시도해왔던 모험의 중심에는 이성이 있어야 한다는 고대 철학의 주장을 유보 없이 받아들인다. 나아가 하버마스가 방어하려던 이성이라는 것은 인류의 기본적인 역량이자 재능이다. 우리는 이성이 인간사를 의식적으로 규제하는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성이 예외를 허용하지 않는 강제적 규범이나 주장들의 원천으로서 간주될 수 있으려면 나름의 근거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그것은 보편적인 것이다. 또한 이성은 토대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자연적인 것이 될 수 없다. 즉 인간 이성 및 보편적 주장의 원천으로서의 그것의 지위는 자연적 혹은 사회적 진화의 우연한 과정 속에서 얻은 자연적 결과물로 여겨질 수 없다. 이성이 사회적 개인적 규범들의 정당화 요구에 관한 인식가능한 원천이라고 한다면, 그리고 그저 성공 전략이나 타산에나 관련된 합리적 계산 능력에 불과한 게 아니라면 궁극적으로 이성은 규범적인 것이다.

이성의 복권과 관련된 이 두 번째 주장은 [철학은 자리하는 자로서의 역할에 만족해야 한다는] 첫 번째 주장과 충돌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첫 번째 주장은 철학이 인문학과 사회과학 내 인접 학문과 협력적 상호작용에 나서는 탈신화적 실천을 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사실 하버마스적 철학의 기획에서 발견되는 독특성은 이 둘[이성에 대한 겸손한 태도와 이성이 인간적 사유와 행위에 있어서 여전히 중심적 위치를 점하고 있다는 입장] 간의 조화에서 잘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철학의 기존 특성과 자율성에서 연유하는 역할과 방법을 가치 절하할 것을 요구하는 [겸손한] 입장은 이성의 중심적 위치를 복권하려는 입장과 조화될 수 있다. 만일 하버마스의 작업이 ‘주체 철학’ 및 ‘의식철학’과 관계를 끊는다는 조건에서라면 말이다. ‘주체 철학’과의 관계를 끊는다는 것은 이성을 자율적 주체의 소유물로 간주하는 입장을 거부하고, 이성이란 단지 상호주관적 상호작용과정에서 도출되는 특성일 뿐이라는 입장을 채택하는 것이다. ‘의식철학’과 관계를 끊는다는 것은 철학적 탐구를 수행하기 위한 본래적 토론장은 자기 성찰적 정신이 수행하는 내적 삶이라고 여겼던 입장을 거부하는 것이다. 하버마스에 있어서 상호작용은 사회 속에서 주체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언어를 매개로 한 것인데, 이런 상호작용은 주체들의 [내적] 자기 관계 과정 속에서 도출된 것으로 간주되며 그에 따라서 패턴화한 것이다.

하버마스에게 이성은 무엇보다도 인간의 상호작용, 즉 상호인격적 의사소통을 하면서 근거들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이끌어진다는 것을 요점으로 삼는다. 이런 류의 협동적 의사소통이 성공하려면 관련 담론 절차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합의를 지향해야만 한다. 만일 담론 참여자들이 합당한 이들이라고 할 수 있으려면, 이 담론 절차에 관련된 모든 참여자들은 암묵적으로든 명시적으로든 평등, 호혜성, 솔직함 혹은 비기만성 그리고 공정성의 규칙을 채택해야만 한다. 그리고 이러한 규칙은 궁극적으로는 정당화가 가능한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보편적이고 불가피한 조건들로 간주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도덕적 올바름, 정치적 정의 그리고 법적 공정성과 같은 ‘실생활에서 유통되는(downstream)’ 규범적 주장들을 위한 토대로 기능한다.

하버마스의 저 유명한 ‘담론원칙’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규범은 때로는 올바를 수도 있고 그른 것일 수도 있는 행위 계획인데, 이 규범은 그것에 의해 영향을 받는 모든 사람들이 위에서 언급된 조건들에 의해 조성된 담론 절차 속에서 합의해 낼 수 있을 때에만 정당화되었다고 간주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담론원칙은 합당성(reasonableness)이 정당성(rightness)과 내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주장을 핵심으로 삼고 있다. 담론원칙은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지니고 있는 직관을 철학적 용어로 정련한 것이다. 그것은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수행할 수 있고 기꺼이 하기도 하는,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어떤 행위 요구지만 잘 실행되지는 않는 요구이기도 하다. 즉 굳이 전문적 자질이 없어도 모든 사람들이 행하는 방법을 알고 있고 행할 수 있는 것으로서, 올바른 사회에서라면 그들의 정치 체계 내에 될 수 있는 한 정말로 많이 제도화하도록 권고하는 그런 요구인 것이다. 지배는 결국에 가서는 사회의 합리적 잠재력을 좌절시킨다. 그것이 사람들이 서로 강요하는 바 없이 협력 행위를 하도록 하는 기본적 자유를 부정하는 정치 체제와 같은 노골적인 형태든, 생활세계의 의사소통적 자원들을 말라붙게 하여 사람들이 합리적 담론에 진입하지 못하도록 만들어 버리는 것과 같은 훨씬 음흉한 형태든 상관없이 그러하다. 『공영역의 구조변동』에서 『사실성과 타당성』에 이르는 하버마스의 거대한 연구주제는 이성과 민주주의의 내적 연관을 보여주는 것인데, 이는 계몽 기획에 이바지하려는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민주주의는 그저 정치적 권위(political authority)를 지닌 수많은 그럴싸한 경쟁적 정치체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 것도 아니고, 역사적 우연에 의해 잠깐 ‘현재 선호되고 있는’ 것에 불과한 것도 아니다. 민주주의는 우리가 알 수 있는 모든 대안들과 비교해 볼 때 합당한 것이라 할 만 하다. 하버마스는 민주적 삶의 합당성을 철학적으로 재구성하는 데에 헌신하였다. 또한 그에 못지않게 그는 이러한 입장을 모든 적대자들에 맞서 방어해왔다. 이 적대자들 중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이들은 아마도 ‘포스트 모던’ 이론가들로서 미셸 푸코와 자크 데리다와 같은 사람들일 것이다. 하버마스는 그들이 이성을 통해 민주적 삶을 강건하게 그리고 명백하게 방어하리라는 약조를 포기해 버렸다고 혹독하게 비판하였다(PDM).

이성을 이렇게 의사소통적이면서 절차적이고 형식적인 개념으로 회복시키는 입장은 기존 철학이 지니고 있었던 야망을 위해 입증의 토대를 세우는 것을 열망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에서] 우리가 앞으로 보게 되듯이, 오늘날의 철학과 사유에 영향을 끼친 하버마스의 핵심 요소는 사회적으로 구현된 상호주관적 이성의 본성을 다시 상상해 보는 것이다. 이러한 상상은 우리 시대에서는 지지하기 어려운 전체론(holism)을 재생하려는 실질적이고 배타적이며 궁극적으로는 교활한 노력과, 합리성 담론을 전적으로 단념하는 풍조(이러한 풍조는 현대적 삶의 형식으로서의 다원주의 문화 속에서 흔히 발견되는 것이다)를 정당화하는 손쉬운 냉소주의 그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으면서 항해해 가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이라 하겠다.

 

탈형이상학적 사유

이것[탈형이상학적 사유]은 하버마스의 철학적 영향에 있어서 세 번째 및 마지막 측면으로 소개될만한 것이다. 수십년 간 하버마스는 자기의 철학적 기획을 ‘탈형이상학적(PMT)’이라고 일관되게 규정해왔다. ‘탈형이상학적 사유’는 하버마스의 모든 사유에 있어서 중심 용어이기는 하지만 그에 대한 정확한 정의는 결여되어 있다. 이 용어는 특별한 철학적 주장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철학적으로 사유하고 저술하는 방법을 위한 넓은 차원의 정신 혹은 전제(postulate)로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탈형이상학적 사유는 우선 칸트적 주장을 수반한다. 즉 영혼불멸, 전지전능한 창조주의 존재, 도덕적 의지의 자유의 사실 등의 철학적 형이상학의 전통적 문제들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답이 가능하며 그러한 문제들은 인간의 끊임없는 관심사임을 다양하게 표현하는 것들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탐구는 우리 인간이 확정적으로 알 수 있는 능력은 제한적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조건 속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나아가 인간 삶의 근본 조건이 무엇인지 인식하고자 하는 관심은 결국에는 인간의 인식 가능성과는 완전히 다른 문제라는 특정한 상황을 받아들이면서 추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좀 더 명확하게는 탈형이상학적인 것에 대한 하버마스의 관점은 변화한 근대세계 안에서의 변화한 철학적 역할과 관련된다. 롤스의 ‘비이상주의적 non-ideal’ 정치이론 작업에서 말하는 것과 유사하게 하버마스는 근대 사회의 현실이 복잡성, 다원주의 그리고 다양성을 향해 극적이고도 돌이킬 수 없게끔 전개되고 있다고 논평한다. 이러한 전개양상은 철학이 정당하게 해명하고자 할 수 있는 문제 설정에 있어서 강력한 제한을 두게끔 한다. 롤스가 근대 민주사회에서는 전체론적 가치 합의 가능성을 배제하게 만드는 불가피한 가치다원주의적 사실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듯이, 하버마스 역시 근대성에 대한 ‘탈중심화된’ 자기 이해에 대해 말하고 있다. 즉 근대사회는 삶과 가치와 좋음의 이상과 연관된 기본적 지향에 대한 폭넓은 합의를 강제할 수 있는 현실적 가능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불가피한 다원주의의 조건과 좋은 삶에 대한 관념에 대한 갈등 아래서, 근대적 생활형식의 합리성은 오직 갈등을 규제하고 사회적 연대를 산출해내는 합당한 절차 속에서만 구성될 수 있으며, 이러한 합당한 절차들은 민주적 자기지배의 실천과 근대 민주 시민들이 지닌 관용적이고 겸손한 태도에 성공적으로 자리 잡은 의사소통 합리성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근대사회 자체와 마찬가지로 철학이 근대사회적 실존의 합리성을 인식하고 다듬으며, 혹시 가능하다면, 증진시키기는 일을 다시 맡아 보기 위해서는 초월적 지식과 모든 것을 아우르는 의미를 획득하려는 야심을 버려야 한다. 이 임무는 비록 기존의 것에 비해 훨씬 보잘 것 없지만 여전히 중대한 임무다.

 

공적 지식인이자 조언자

하버마스가 2차대전 이후 끼친 광범위한 영향에 대한 논의는 철학 이외의 다른 두 영역에 대한 언급 없이는 끝날 수 없을 것이다. 우선 하버마스는 철학자로서 이론화했던 ‘정치적 공영역’에 공적 지식인으로 관여하면서 괄목할만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지난 반세기 동안 독일이나 세계 독자들을 대상으로 국제적 사안에 대해 신문이나 잡지를 통해 열렸던 회담이나 토론에 하버마스가 참가하지 않은 적은 거의 드물었다.

하버마스가 참여했던 논쟁이 몇 개나 되고 어느 범위까지였는지 세세히 밝히는 것은 아마도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그저 몇몇 부분을 부각시켜보기만 해도 그 영향력은 충분히 가늠해 볼 수 있다. 1950년대 하버마스는 새로운 독일연방공화국이 민주적 지배의 요구를 그저 관용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포용하기 위해 갖춰야할 정치문화의 이행 문제에 대한 논쟁에서 핵심적 목소리를 냈다. 교육과정 개혁 문제부터 서독의 국제 협약, 모든 국내 정치적 사안, 전후 배상 및 기념 사업에 관한 정책에 이르기까지 하버마스는 일관되게 열린 사회를 요구해 왔다. 냉전이 종식될 때 하버마스는 독일 통일이 자기 반성적인 토의에 기초하여 이루어져야 한다고 소리 높였고, 통일 이후로는 유럽 연합 내 독일의 역할과 유럽연합의 정치적 통합과 확장의 중요성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논평자로 활약해왔다(DW). 근래에 하버마스는 유전자 기술의 도덕적 정치적 측면에 대한 논쟁과 서유럽의 ‘세속적’ 사회 내 공적 삶에 있어서 종교 및 종교적 가치의 역할에 대한 논쟁에 참여하여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이런 여러 개입 과정을 통틀어 보자면, 하버마스의 작업은 공적 철학자이자 공적 지식인으로서의 역할을 통합한 것이라 하겠다. 그는 탈형이상학적인 민주적 세계에서는 좋은 근거들만이 유일하게 궁극적 보증을 제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둘째, 지난 반세기 동안 하버마스는 활동적 철학자로 활약하면서 국제적으로 널리 분포된 후배 학자들의 지적 성장을 촉진하는 데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하버마스의 이전 제자들은 독일에서는 악셀 호네트, 하우케 브룬트호르스트, 라이너 포르스트, 그리고 미국에서는 토마스 매카시, 세일러 벤하비브, 낸시 프레이저와 같은 이들인데, 사실 이들이 비판이론 ‘3세대’를 구성하고 있다고 할만한 것이다.

 

5회 [하버마스 읽기: 열한 개의 길]

하버마스 읽기: 열한 개의 길 – 5회

한길석(한철연 회원)

 

철학 및 철학의 역할에 대한 재개념화

1980년대 초 “자리하고 있는 자 및 번역자로서의 철학”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하버마스는 철학이, 특히 칸트와 헤겔에서 정점을 이룬 독일 철학 전통에서 너무나 익숙한 학구적 철학의 역할, 즉 자연 과학이 알 수 있거나 알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적법하게 결정하고 보다 넓은 문화적 학습의 지붕 아래서 어떻게 학문적 지식들이 적법하게 발생할 수 있는지에 대해 판정하는 재판관의 권위를 휘두르는 스타일은 더 이상 그럴싸한 것으로 주장될 수 없다고 선언하였다(MCCA: 1~21).

하버마스는 근대라는 조건에서는 철학은 좀 더 겸손해져야 하지만 여전히 중대한 포부, 즉 재구성적 사회과학을 위해 “자리를 메워 주는” 포부를 지녀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철학이 강한 보편주의적 주장을 지닌 인간 행위에 관한 경험적 이론들을 설명하고 분석하는 공개적 장소를 열어 유지해 주어야 함을 의미한다. 하버마스는 구 계몽주의의 합리성에 대한 설명이 오늘날의 현안에 있어 겸손한 모습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실현 가능한 판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언어 능력에 관한 이론 같은 것들은 세계에 존재하는 이성의 주권적 힘을 칸트와 헤겔이 그러하듯 권위적으로 간단히 억측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보편성에 대한 강한 경험적 근거들을 이미 제공하고 있는 인간의 기본적 능력들, 즉 우리가 자신과 타인들을 책임 능력이 있는 주체들로 간주할 경우 다른 대안적 능력들에는 결핍되어 있는 기본적 능력들과 더불어 시작되는 것이다.

이러한 능력들의 주요 후보자들은 분명히 언어와 의사소통이다. 그래서 하버마스는 언어와 의사소통을 탐구하는 재구성적 과학들이 자기 이론에 함축된 보편주의적 주장의 의미를 충분히 표현하고 널리 전파할 수 있도록 철학이 보조하고 도와야 한다고 제안한다. 이러한 도우미로서의 역할을 충족하고자 하는 철학은 여타 학문들에게 허가장을 발부하고, 이론으로서의 정당성을 부여하며, 합리성에 대한 고유한 주장을 지성적으로 이해 가능한 형태로 제기하는 법(결국 그것이 [경험적 자기 학문 영역의 좁은 범위를 넘어서게 하는] 보편적 역량들인 것이므로)을 학습시키는 자기 이해자로서의 역할을 그만둬야만 할 것이다.

 

비판이론의 유산과 변형

이와 같은 입장은 하버마스로 하여금 철학의 자기이해에 대해 두 번째로 수정하게끔 하였다. 즉 철학은 과학적 지식이 인간의 문화적 이해 전체와 적절한 관계를 맺도록 방법을 일러주는 주권자적 판관으로서 자임할 것이 아니라, 재구성적 과학들의 전문화되고 기술적인 언어를 시민들이 매일 수행하는 생활 세계의 “통상적” 담론으로 번역하여 그런 지식들로부터 얻은 통찰을 시민들이 의사소통하게 하는 번역자로서 봉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민들이 과학적 진보에 함의된 규범적이고도 정치적인 함축을 발견하는 것은 민주적 공영역에서 논쟁을 벌임으로써 가능하다.

“자리 지키는 자 및 해석자로서의 철학”의 논의에서 함축된 바는 철학이 간직해야 할 분과 학문적 핵심은 자연과학 및 사회과학 등의 병존 분야들과 지속적 대화의 관계를 구성해야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철학의 목표는 사회이론과의 지속적 대화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는 일찍이 1950년대부터 하버마스의 고유한 지적 궤적을 안내하고 있는 입장이다.1

유연하고 세심하며 자기 제한적인 철학에 관한 이러한 주장은 분명히 하버마스에게서 기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는 철학 학위를 받은 후 수년간 언론인 생활을 하던 청년 하버마스가 프랑크푸르트 사회 연구소에서 둥지를 튼(비록 편안한 둥지는 아니었지만) 이유를 설명해 준다. 저 유명한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비판 사회이론은 하버마스의 사회적 의식이 명확하면서 학제적 특성을 지닌 철학이라는 입장에 잘 어울리는 것으로 보인다.

1920년대 프랑크푸르트 대학에 세워진 사회조사 연구소는 철학자, 사회학자, 경제학자, 법학자, 정신의학 및 문학도들이 현대적 사회 병리 현상의 구저와 원천을 넓은 범위에서 연구하기 위해 협력 작업을 했던 곳이었다. 1930년대에 이 연구소는 막스 호르크하이머의 감독 아래 불의, 지배 그리고 억압을 비판적으로 인식하고 고발하려는 목적으로 경험적 사회 연구와 철학적 분석을 통합하는 개혁을 단행하였다.

이 연구소가 마르크스 이론에 깊은 영향을 받기는 했지만, 구성원 중 공공연한 마르크스주의자는 극소수였다. 호르크하이머는 자유민주주의를 전체주의로 눈에 띄지 않게 이행시킴으로써 자본주의사회를 생존하게 하는 환상과 기만을 폭로하고자 하는 비판이론을 발전시킬 것을 서약했다.

마르크스와 프로이트를 통합시키는 추진력을 보여주면서, 호르크하이머, 테오도르 아도르노, 허버트 마르쿠제, 에리히 프롬, 프리드리히 폴락과 같은 프랑크푸르트학파의 구성원들은 사회 병리 현상들이 어떻게 발생하고, 그것이 “거시적”이면서 “미시적인” 수준에서 어떻게 퍼져나가는지 논평하기 위한 독창적인 방법을 만들어냈다. 즉, 한 편으로는 조작되고 억압된 시민 대중이 자기들의 독립성과 정치적 권리를 포기하게 하고 지배에 굴종하도록 만드는 신경증, 정서 및 인지 장애를 개별 주체의 차원에서 연구하면서, 다른 한 편 국가 주도적 시장과 대중의 충성을 강력하게 혼합하여 일당 지배 아래에 둠으로써 약화되던 입헌 민주주의에 대해 제도적 수준에서 연구하였다. 그들은 독일과 미합중국에 존재하는 “권위주의적 인격”을 분석하고 논평하였다. 이것은 반유대주의의 정치적 세력화를 가능하게 한 심리적이면서 사회적인 조건들을 규명하기 위한 시도이자, 표면상으로 사회의 물질적 풍요와 정치적 자유에 헌신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사람들이 이 모두를 부인하도록 만들기 위해 공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숨겨진 메커니즘을 폭로하는 작업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학제적 연구 프로그램은 계몽주의적 근대성 속에 내재된 규범적 원천에 경보를 발령하는 일이 거듭되면서 점차 계몽주의적 근대성 기획 전체를 회의하게 되었다. 연구소 구성원들은 1930년대에 이미, 그리고 나치즘의 성공과 세계대전이 코앞에 닥친 게 명확해지던 이후부터 특히 점점 더 암울한 전망의 글을 쓰게 되었다. 전쟁기 저술된 고전적 연구서인 『계몽의 변증법』에서 호르크하이머와 테오도르 아도르노는 유럽 계몽주의 전통을 인간 이성의 보편적 형식을 바탕으로 한 정의와 평등의 정치적 요구에 대한 원천으로 더 이상 보지 않으려 했다. 대신에 그들은 근대 역사의 시작 이래로, 아니 사실상 인간의 역사가 기록되기 시작하기 전부터 “이성”은 “신화”와 상호 얽힌 상태에서 전개되어왔다고 논평하였다. 자연[혹은 본성]의 힘에 복종하던 주체성을 해방시키도록 독촉함으로써 인간으로 하여금 합리성을 계발하도록 하였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합리성은 자연 지배를 통해 인간에게서 자연을 분리시킨 자연에 저항하는 힘이다. 그런데 시간이 흐름에 따라 외적 환경 및 인간이 지닌 자연적 충동, 욕구 그리고 갈망으로서의 “내적 본성”으로서의 자연을 길들이고 통제하도록 하던 경향성이 점점 더 가혹하고 교묘한 지배 및 통제의 형태로 갱신을 거듭했다는 것이다(Horkheimer & Adorno 2002).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가 프랑크푸르트로 돌아와 사회연구소를 재건하던 1950년대에 이 연구소의 작업에 밑바탕을 이루고 있었던 마르크스주의의 영향력은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연구소와 그 구성원들은 사회적 지배의 사회심리학적 차원에 대한 경험적 연구를 계속하면서 독일연방공화국의 불안정한 정치문화 속에서 진보적 역할을 지속하고 있기는 했지만, 철학에 있어서 그들은 종래에 지녔던 급진 정치적 포부를 포기하였다. 철학은 예전의 보수적인 기능, 즉 진리와 미의 전통적 가치들에 해를 끼치는 근대적 사회 현실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도록 수호하는 역할로 회귀하는 듯 보였다. 그리고 그것은 전쟁 이후에 있어서는 호르크하이머 자신, 나아가 아도르노조차도 그러했다.

하버마스는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비판이론 “2세대”로 표상되곤 한다. 사회조사연구소의 주요 구성원들의 작업들이 하버마스의 철학적 발전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는 점, 그리고 그가 2년 간 아도르노의 조수로서 일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비판이론이 그에게 의심할 수 없는 중요한 영향을 주기는 했지만, 이 이론의 영향이 지나치게 과장된 것도 사실이다. 비판이론이 하버마스의 독창적 이론의 성숙에 있어서 긍정적 영향 못지않게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점 또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프랑크푸르트의 사상이 하버마스에게 이바지한 바는 미묘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다.

하버마스는 괴팅겐 대학, 취리히 대학, 본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1954년 본 대학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박사 학위 주제는 독일 관념론 철학자 쉘링의 역사 철학에 대한 연구였다. 그는 마르틴 하이데거의 연구에 깊은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박사 논문을 마치기도 전에 하버마스는 독일철학이 (나치) 시대에 대한 철저한 진단은 고사하고 인지조차 못하고 있었다는 점을 알게 되자 독일철학과 하이데거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 급진 철학의 전통에 투신하게 되었다. 이러한 전통은 그의 대학 시절에는 전수받지 못했던 전통이었다. 1950년대 중반, 그는 서구 마르크스주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던 선구자들과 당대인들의 핵심 저작을 발견하게 되었다. 호르크하이머 및 아도르노는 물론이고 죄르지 루카치, 에른스트 블로흐, 헤르베르트 마르쿠제, 발터 벤야민 그리고 프랑스의 실존주의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인 장-폴 사르트르와 모리스 메를로-퐁티의 저작들이었다.

1956년 하버마스는 프랑크푸르트로 이사해 아도르노의 조수로 일하면서 그의 “교수자격논문”에 대한 연구에 착수했다. 교수자격논문은 독일에서 대학 교수가 되기 위해 박사 이후에 저술해야 하는 단행본 분량의 논문을 일컫는다. 프랑크푸르트에 머물 무렵, 하버마스와 막스 호르크하이머 사이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호르크하이머는 사실 하버마스를 연구소에서 일하도록 초청한 아도르노의 처분에 강하게 반대하였다. 그는 아도르노에게 쓴 편지에서 젊은 하버마스가 마르크스에게 강하게 영향을 받아 너무 급진적이어서 연구소의 구성원으로서는 적합하지 않다고 강한 어조로 주장했다.

호르크하이머는 하버마스의 지도교수가 될 것이 뻔했다. 두 사람은 2년 동안 충돌하였고, 결국 하버마스는 프랑크푸르트 사회조사연구소에서 마르쿠르크 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여기서 그는 볼프강 아벤트로트의 지도 아래 교수자격논문을 완성하였다. 아벤트로트는 1950년대 중반 서독의 보수적이자 반공주의 분위기에서 마르크스주의 철학 교수임을 공개적으로 드러냈던 극소수 학자 중 하나였다.

그의 개인적 어려움과는 별개로, 프랑크푸르트학파에 대한 하버마스의 학문적 관계 역시 어려워질 수밖에 없었다. 『계몽의 변증법』이 출판되고 나서,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 결국 철학과 경험적 사회학이 상호 보강 및 이의를 제기하는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사회비판이론의 원래 기획을 포기하고, 전통적인 철학 분야에 좀 더 초점을 맞추는 방향으로 서서히 돌아갔다. 두 사람은 1968년 독일 대학과 도시들을 휩쓸었던 급진적 학생 운동의 목표와 전술에 날카로운 비판을 가했다.2 하버마스는 사회적으로 구현된 인간 합리성의 해방적 차원을 거부하는 지구적 흐름을 수용하기를 거부하였다. 이런 그의 입장은 지성 및 정치적 계몽에 대한 칸트주의에서 발견되는 규범적 요구에 핵심을 두고 있다. 따라서 하버마스는 호르크하이머 및 아도르노의 회의적 저술에 도전하면서 그들의 지적 상속자이자 계속적인 장애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이유로 하버마스가 아벤트로트의 지도 아래 생산해 낸 테제는 비판이론과 변증법적 관계를 맺으며 표현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공영역의 구조변동(1962 [1989]) 이라는 제목을 지닌 이 테제는 굉장한 성공을 거두어 하버마스를 서독에서 가장 유망한 철학자이자 지식인 중 하나로 만들었다. 이 책은 그 논지나 방법에 있어서 이성, 자유 그리고 위엄 사이의 내적 연관에 대한 계몽주의의 핵심적 주장—비록 이러한 주장 속에 내재한 철학적 과시물들은 옹호될 수 없는 것이지만—을 보존할 수 있는 사회이론 및 정치 이론을 생산하고자 한 하버마스의 포부를 성공적으로 이행하였다.

하버마스는 살롱, 커피하우스, 클럽, 신문과 같은 18세기 유럽에서 정치적 토론을 벌이던 비공식적 장소의 전개에 대해 분석하였다. 그는 제도화된 정치 체계 바깥에 있던 그러한 비공식적 회합장소들에서 시민들이 생활 속 쟁점들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그러한 쟁점들에 대해 토론하여 정치적 여론을 형성함으로써 다양한 민주적 접근 경로를 통해 정치적 여론을 정치 체계에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고 논평하였다. 이런 정치적 여론의 “풀뿌리”적 원천들은 하버마스가 나중에 의사소통 합리성의 핵심 요소로서 분석한 공개적 담론이라는 절차적 원칙들에 기초하여 운영되었다. 공영역에 참여한 화자와 청자들은 담론에 기꺼이 참여하고자 했으며, 담론 참여자들의 동등한 지위를 인정하고, [그런 담론 과정을 통해 이룩한] 식견을 널리 공유함으로써 합의에 이르고자 했다. 그들은 공정한 이해 지향적 관행을 그 어떤 정치적 입장이나 이해관계보다도 우선적인 것으로 간주하였다. 다시 말해, 그들은 이성과 민주주의의 강력한 개념적 상호독립성을 드러내었다는 의미에서 찾아볼 수 있는 합리적이고도 민주적으로 담론을 운영하였다. 절차적으로 온당하게 정치적 공영역에 참여한다는 것은 특정한 기술, 식견 그리고 행동을 요구하였다. 민주적 참여는 근거들을 주고받는 담론에 의존하고 있으며 이 과정을 거친 합의를 지향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유럽의 정치적 공영역은 하버마스의 이후 저작이 역사적이기보다는 이론적으로 탐구했던 현상들이었다. 정치적 공영역은 공유된 참여 경험과 태도들이 존재하던 일상적 생활세계와 위계적이고 관료적인 근대 통치 제도 사이를 비집고 열려진 근대적 참여정치의 공간이다. 이 좁고도 깨지기 쉬운 공간은 시민으로서의 주체들이 이해관계의 공유라는 문제에 대해 논하는 비공식적 담론들에 참여함으로써 그들의 합리적 행위 능력을 단련하는 경연장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공영역의 구조변동』이라는 제목이 함축하듯이 이 책에서 하버마스는 초기 민주적 의사소통의 규범적 토대를 분석하는 것에 그친 것이 아니라 공영역의 쇠퇴에 대해 분석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공영역은 19세기와 20세기 무렵 복잡한 관료행정과 고도로 조직된 국가 기구들이 흥기함에 따라 위태롭게 되었다. 이 시기에 국가 권력과 거대 시장 경제는 서로 연결되어 사회적 복잡성에 대응하는 새로운 “조정 매체”가 되었고, 그것들은 발전된 국민국가 사회에서 발생하는 조정 문제들에 대해 점차 세련되고 효율적인 대응을 제공하였다. 그러나 국가 관료행정과 시장 경제 역시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했다. 즉 국가와 시장 사이의 협소한 공적 공간을 폐쇄하게 만들어 능동적 시민들을 관료행정의 수동적 고객이나 시장경제의 고객으로 변형시켜버린 것이다.3

하버마스의 초기 저작은 전쟁 기간 동안 저술되었던 비판 이론 “1세대”의 저작들에 퍼져있던 사회 병리에 대한 암울한 전망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그는 근대 민주 사회의 위기 경향과 구조적 결함이 합리성 자체에 내재한다는 입장을 결코 취하지 않는다. 대신에 그는 효율적 관료 행정 권력을 실현한 계산적 통제의 합리성 유형과 동등한 시민들에 의해 성공적으로 수행되던 의사소통적 조정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던 근거를 주고받는 능력의 합리성 유형이 확연히 다르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철학의 사명이란 이러한 합리성이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고 어떻게 민주적 생활 형식의 원천으로 지속될 수 있는지를 인식하는 것일 뿐이라는 입장을 갖고 있는 하버마스로서는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가 제공한 근대성 진단과 근본적으로 불화할 수밖에 없다. 이 역시 위에서 논했던 철학과 재구성적, 경험적 사회과학의 협업을 위해 설정한 방향이었다.

이후 이어진 수십 년간의 저술에서 하버마스는 사회이론과 여타 재구성적 과학들로 선회하였다. 이는 근대 사회의 병리현상들과 합리성을 탐구하고 합리성의 갱신을 위해 그것에 내재한 잠재성이 무엇인지 연구하기 위한 주된 도구였다. 1960년대의 가장 중요한 철학적 저술인 『인식과 관심』(1968 [1974])에서 하버마스는 철학적 인간학, 역사기록학(historiography) 그리고 심지어 정신분석이론을 포괄하는 수많은 기타 재구성적 과학들로 선회하였다. 이는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보편적 실현 조건으로 작동하는 “인간학적으로 깊게 자리한” 관심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한 작업이었다. 또한 그러한 관심들이 서로 다른 종류의 지식으로 구현되도록 하는 타당성 조건에 기초하여 인식될 수 있고 서로 구분될 수 있다는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런 관심들은 인류의 자연사적 역사 과정에서 나타나는 심리적 특성들로 환원될 수 없으며, 인류에 구현된 다양한 제도들과도 동일시 될 수 없다. 그보다는 인식 구성적 관심들은, 화용론적 관점에서 말하자면, 인간 인식 활동에 연관된 초월적 토대였다.

하버마스는 그러한 관심들이 세 가지로 식별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외적 자연을 통제하고 조작하는 기술적 관심, 상호주관적 이해에 내재한 실천적 관심, 다양한 지배, 강제 및 통제 형식으로부터 해방되려는 해방적 관심이 그것이다. 기술적 관심은 과학과 기술공학이 복합되면서 그것의 자체적인 내적 기준에 따라 전문지식, 진리, 성공, 진보로 간주되던 것을 통해 근대에서 꽃피웠다. 실용적 관심은 19세기 정신과학 혹은 인문학으로 통합되었던 일련의 해석학적 분과학문들을 발생시켰다. 이런 학문들은 역사기록학, 문예비평, 문화 연구 같은 것으로서, 연구 대상을 제어하거나 예견할 수 없고 연구 참여자들 간의 이해를 증진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그러나 해방적 관심을 설정한 것은 하버마스에게 심각한 문제를 제공하였다.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세 번째 관심, 즉 개방적으로 규범적이며 정치적인 관심을 인식한다는 임무는 기술적인 만큼이나 야심만만한 것이기 때문이다. 분명하게도 하버마스가 한 작업은 불필요한 지배 유형을 이해하거나 통제하는 작업이라기보다는 불필요한 지배 유형을 폭로하고 극복하려는 임무에 헌신하면서 여타 지식들을 조직하는 방식으로 마르크스주의적인 영감을 받은 사회 비판을 수행하는 것이었다. 그는 그것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마르크스 못지않게] 프로이트적 정신분석학이 분명한 문제점—(잠재적으로 한 없이 계속되는) 심리치료의 성과가 어떻게 지식으로 간주될 수 있는지, 정신분석가와 분석 대상자 간의 근본적으로 비대칭적인 관계가 어떻게 해방의 범형으로 간주될 수 있는지 등—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의미에서 살펴볼 만한 것이라고 주장했다는 점 또한 사실이다.


  1. 하버마스의 탈초월화된(detranscendentalized) 이성과 탈형이상학적(postmetaphysical) 사유에 대한 심도있는 논의에 대해서는 이 책의 2장을 보라.

  2. 당시 하버마스가 학생 운동에 어떻게 개입했는지에 대해서는 이 책의 7장에서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3. 이후 하버마스는 이러한 현상들을 체계에 의한 생활세계의 식민화라는 용어로 이론화하였다. 이 책의 4장을 보라.

4회 [하버마스 읽기: 열한 개의 길]

하버마스 읽기: 열한 개의 길 – 4회

 

번역: 한길석(한철연 회원)

 

1장 역사적인 그리고 지성적인 맥락

 

맥스 펜스키(Max Pensky)

하버마스의 역사적이고도 지적인 영향들

Max Pensky, 사진출처: https://www.binghamton.edu/philosophy/people/faculty-pensky.html

 

하버마스의 철학적 저작들이 미치는 영향에 대해 논하는 것은 철학자의 작업에 대한 위의 수정된 관점을 바탕으로 삼아 이루어져야만 한다. 왜냐하면 반세기를 거쳐 온 하버마스의 철학적 작업은 위에서 내가 논한 두 번째 유형, 즉 현실 참여적 범형의 완벽한 사례이기 때문이다. 하버마스에게 맥락 초월적 진리 혹은 주장과 규범의 보편적 정당화 가능성과 그러한 주장과 규범들이 제공되고 수용되는 사회적 세계의 맥락 내재성 간의 변증법적 관계는 사실 그가 생각하는 철학자의 임무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적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만일 우리가 하버마스가 의식적으로 모으고 개조했던 수많은 다양한 지적 영향과 원천들이 어떤 것이었는지 정리해보고자 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그가 다음과 같은 신념을 지니고 있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즉 그는 현대에 요구되는 철학함의 적절한 역할과 범위는 철학자가 속한 시대, 지적 분야 역사적 상황과 사회적 요구에 대한 포괄적인(overarching) 전망-누군가는 이것을 형이상학적 전망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으로부터 생성된다고 확신하고 있다.

몇몇 이론의 여지는 있겠지만, 하버마스가 현대 철학자들 중에서 가장 다양한 영향을 미친 철학자라는 점은 거의 확실한 사실이다. 이 점은 그가 저술한 철학적 저작뿐만 아니라 그렇지 않은 저작에서 활용하는 자료들이 놀라울 정도로 광범위하다는 사실에서 그러하다. 어떤이들은 그가 동원하는 자료들과 영향력이 지나치게 광범위하고 다양하다는 불평을 늘어놓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철학자가 속한 시대에 영향을 미치는 일을 철학자의 중심적 업무-철학적 활동의 부산물로서가 아니라-로 삼는 게 하버마스의 철학적 의도라는 점을 상기한다면 이러한 광범위한 작용력은 납득할 만한 것이다.

하버마스의 전기는 독일이 0년(“Stunde null”)에 머무르던 시기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이 시기는 1945년 종전 후 독일 문화와 사회가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폐허의 상태에 있게 된 때였다. 하버마스는 1929년 국가 사회주의의 “일상”이 뿌리내린 굼머스바흐라는 작은 지방 도시에서 나고 자랐다. 그는 히틀러 청소년단에 입회를 당하여 2차대전이 끝나기 직전 몇 달 간 잠시 방공포병대에서 복무하였다. 전쟁이 끝나던 16살 때 하버마스는 홀로코스트의 본성과 규모 그리고 그가 따르던 나치 지도 체제의 도덕적 타락을 폭로한 뉘른베르크 재판 라디오 방송에 심대한 영향을 받았다.

게다가 1929년이라는 출생년도는 하버마스로 하여금 전후 독일 문화와 정치에서 독특하고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매우 특별한 세대의 구성원이 되게끔 하였다. 한 편으로, 하버마스와 동세대인들은 바이마르 공화국에 대한 기억을 갖거나 국가 사회주의 체제가 초래한 일에 대해 책임을 질만큼의 일을 벌이기에는 너무 어렸다. 그러나 다른 한 편, 그들은 독일 사회의 끔찍하고도 돌이킬 수 없는 붕괴에 대한, 총력전이라는 최후 단계에 참여했던 그리고 물리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산산조각 난 사회를 재건하는 거대 과업을 직접 보았던 노골적이고도 개인적인 경험들을 겪을 만큼의 충분한 나이는 먹고 있었다.

이 세대에게 독일의 정치적 미래, 더 정확히 말하면 정신적 미래는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어떻게 하면 독일은 파시즘의 폐허에서 벗어나 안정적이고 평화적인 민주 사회를 건설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 돌무더기 속에서 간직할만한 가치가 있는 독일 문화의 핵심 요소들 -정치적이고도 도덕적인 근대성의 핵심 요소들, 무엇보다도 칸트와 괴테, 쉴러와 바흐와 같은 계몽의 전통 –을 골라 내 새로운 사회 질서의 기틀로 포함시킬 수 있을까? 사회 재건과 재발명이라는 거대 과업을 스스로의 도전적 과제로 자기 의식적으로 인식했던 세대는 현대에서는 거의 찾기 어렵다. 하지만 독일은 철학적 활동에 커다란 가치를 부여했으며, 자기네 철학 전통을 집단 정체성과 자기 이해의 주요 원천으로 받아들이던 문화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이 세대들이 자기네 철학 유산의 집단적 재정향을 사회적 재탄생의 과업에 포함되는 것으로 간주했던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1950년대 초 마르틴 하이데거에 깊은 감화를 받은 채 대학을 갓 졸업한 젊은 철학과 대학원생이었던 하버마스는 독일 철학의 고유한 유산을 현실과의 관계 속에서 새롭게 그려보는 세대적 과업이 사실상 실현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큰 충격을 받았다. 대신에 그가 당시에 대해 매섭게 기록했듯이 전후 독일 학계의 뿌리 깊은 보수주의는 머리를 모래에 처박은 채 현실을 부정하고 회피하고자 하는 문화를 후원하고 있었다. 이 문화는 독일이 자행했던 직전의 과거사에 대해 공개적으로 논쟁하기보다는 그것을 억누르고 침묵시키려 하는 전후의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었다. 국가 사회주의와 제휴했던 과거를 간직한 채 하버마스를 가르쳤던 몇몇 교수들을 비롯해 저명한 교수들은 과거사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하거나 폭로하지도 않았다.

독일적 재난에 응하면서 철학은 변화해야 한다는 발상은 강한 저항에 직면했다. 전후 독일의 현실에서 철학은 기존에 해 왔던 대로 자기 일을 수행할 수 있다는, 그리고 1933년에서 1945년 사이에 일어났던 일은 고려대상에서 간단히 제외될 수 있다는 생각에 실망과 좌절을 느낀 이는 하버마스가 유일했던 것은 아니었다. 독일 철학은 칸트와 헤겔뿐만 아니라 (부분적이긴 하지만 확실히) 마르크스에 의해서도 만들어진 것이었다. 독일 철학의 전통은 보수학계만으로 이루어진 협량한 전통뿐만 아니라 이에 대해 내적 비판을 가하는 전통도 포함한다. 게다가 계몽의 유산은 철학적 통찰과 내가 앞에서 논했던 진보적 사회 개혁에 대한 요구 사이의 변증법 속에 핵심을 두고 있다.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의 저자일 뿐만 아니라 “물음에 대한 답변: 계몽이란 무엇인가?”(1996: 11~22)라는 글의 저자이기도 하다. 이 글은 공적 논증, 탐구 그리고 관용 개념-칸트 철학은 이것을 인간이 보편적으로 지닌 인지 능력이라고 보았다-이 사회 일반과의 만남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요구한다.

독일연방공화국 초기 하버마스 및 그와 뜻을 같이 하던 철학적 동료들이 직면했던 문제는 18세기의 지적 정치적 계몽의 전통이 유례없는 손상을 당한 사회의 요구에 어떻게 적절히 봉사할 수 있을까에 관한 것이었다. 세속주의, 합리성, 관용, 대의적 공화정, 보편적이고도 평등한 도덕 및 법적 권리들 그리고 광범위한 사회적 포용력 등과 같은 인간적 가치들에 헌신하던 계몽주의가 어떻게 당대의 요구와 공명하면서 재전유될 수 있을까?

이러한 물음에 대한 답은 무척 복잡하기는 하지만 다음의 세 가지 연관된 주장들로 알맞게 정리될 수 있다. 첫째, 계몽주의적 근대성의 가치를 만회하고 전후 세계에 적합하게 촉진시켜야 한다는 요구는 기존 철학이 담당하던 역할, 즉 선험적이고도 토대적인 진리를 주장하는 것에 특화되어 학문적 받침돌의 역할을 하던 것을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그만두고, 좀 더 겸손하게, 그렇지만 좀 더 사회적으로 중대한, 세속적이고 “탈형이상학적”이며 민주적인 사회의 가치와 도전들에 특히 잘 들어맞는 역할을 담당하라고 주문한다. 둘째, 이러한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기 위해서는 철학, 무엇보다도 독일 대학에서 발전해 왔던 편협하기로 악명높은 철학이 전통적으로 멀리하던 새로운 인접 학문들과 생산적이고도 호혜적인 대화에 실질적으로 참여해야만 한다. 하버마스는 이미 초기 저작에서부터 이런 종류의 협력 관계를 위한 주요 후보를 지목하고 있었다. 사회과학, 특히 정치적 사회학을 구성하고 있는 분야들이 그것이었다. 훗날 그는 이것을 “재구성적” 과학이라는 용어로 불렀다. 그에 따르면 재구성적 과학은 보편적이라고 추정될만한 주장을 담지한 인간 상호작용의 측면들이 무엇인지 해명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셋째, 하버마스는 전후 독일(혹은 더 적절하기로는 유럽) 철학이 이와 병존하던 철학 전통들, 특히 철학과 민주주의 간의 생산적 관계를 가장 기본적 문제로 취급했던 미국 프래그머티즘의 전통의 영향에 열려있어야 한다는 점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버마스는 유럽 철학이 너무도 철저히 다루어 고갈시켜 버린 이론적 모델들-즉 철학적 분석의 “기본 단위”로서의 고독하고도 자율적인 자아 그리고 이러한 자아가 자기자신 및 외적 세계와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한 의식 철학적 모델-로 부터 벗어나 새로운 사안과 문제들을 보게 되었다.

이후부터 나는 우선 하버마스가 새롭고 겸손하며 상호작용적인 철학 모델에 어떻게 천착했는지에 대해 몇 가지 간략한 설명을 제공하겠다. 그리고 철학과 재구성적인 비판 사회 과학들 간의 열린 대화라는 하버마스의 기획에 대해 좀 더 길게 논하겠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초기 하버마스가 전후 프랑크푸르트 비판 이론 학파의 그 대표자들인 막스 호르크하이머 및 테오도르 아도르노와 협력했다는 점을 상기하게 될 것이다. 끝으로 나는 주체 철학과 의식 철학 모두와 확실히 절연해야 한다는 철학적 요구를 충족시키고자 하버마스가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전개했던 언어적 능력 및 의사소통 합리성에 관한 이론적 작업으로 선회할 것이다.

 

3회 [하버마스 읽기: 열한 개의 길]

주제의 개관

 

번역: 한길석(한철연 회원)

 

이상에서 서술한 관심사와 강조점의 이동에도 불구하고, 하버마스의 이론 작업에서의 체계성과 일관성이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에도 유지되고 있다는 점은 놀라운 사실이다. 어떤 주제들은 하버마스의 저작을 통해 울려 퍼지게 되었고 연이어 이 책을 통해서도 되풀이해 이야기되고 있다. 그가 공들여 발전시킨 많은 주제들은 결국 첫 번째 주요 저작인 『공영역의 구조변동』에 이미 담겨있던 것이다. 이 주제들 중 으뜸가는 것은 공영역이라는 관심사다. 이 주제는 하버마스로 하여금 자기 사상의 주요 특징인 상호주관적 의사소통을 강조하도록 몰고 갔다. 사람들이 사회적 행위자인 것은 그들이 서로 상호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며, 규범들이 존재하고 그것이 근거를 통해 뒷받침될 수 있다면, 사람들이 준수하는 규범은 규범적 구속력을 지닌다. 하지만 [규범적 구속력을 지닐 수 있는 규범이란 무엇이며, 그것은 어떤 근거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는지에 관한] 그러한 논의가 발생할 수 있는 건강한 공영역은 다른 사회 구조적 조건들에 의존하고 있다. 『공영역의 구조변동』에서 이미 제시된 것이지만, 또 다른 중요한 측면은 인간적 행위의 본성은 역사적으로 조건화된 것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는 점이며, 그러한 행위를 만들어 내어 참여하도록 하는 사회적 구조들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이 점은 하버마스의 사상에 있어서 주요한 특징이지만 이후의 저작에 대한 비평에서 자주 간과되거나 망각되는 사항이다. 구조변동이라는 개념은 『의사소통행위론』에서 다루는 근대성 및 합리화에 대한 하버마스적 이해 방식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개념이다. 이 개념은 지구화-하버마스는 이것을 근대화의 한 과정으로 여기고 있다-에 대한 그의 최근 저작에서 으뜸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철학적으로 보자면 하버마스의 중심 주제는 칸트적 프래그머티즘이다. 그의 기획은 칸트, 다윈 그리고 마르크스의 화해로 묘사될 수 있다(TJ: 9를 참고할 것). 그의 담론 윤리학, 범세계주의 그리고 의사소통적 이성 개념은 몹시 분명하게도 철저히 칸트적이다. 그는 진리나 도덕성에 관한 상대주의적 입장에 굴복하려들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연주의적 환원주의에도 무릎 꿇지 않으려고 한다. 그에게 철학이란 규범적 기획(enterprise)이다. 결국 비판이론의 이상은 시대에 대한 비판적 진단을 제공하는 것이다. 즉 상황을 더 좋게 만들 수 있는 규범적 기준이 눈에 잡히도록 진단하는 것이다. 따라서 하버마스는 “근대성에 관한 규범적 자기 이해의 탈근대적 ‘극복’”(PNC: 130)에 반대할 뿐만 아니라 “강한” 자연주의적 환원주의자에 대해서도 반대하고 있다. 대신에 그는 『진리와 정당화』와 『자연주의와 종교 사이』에서 명확히 설명하고 있듯이 “부드러운” 혹은 “약한” 자연주의를 옹호한다. 그는 무릇 보편주의적이고 규범적인 이성이고자 한다면 그것은 맥락초월적이고 무조건적으로 타당한 주장들을 내세워야 하며, 그러한 주장들이 합의를 지향하는 가운데 [보편규범적] 이성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지키고 있다. 같은 이유로 그의 칸트주의는 고전 프래그머티즘에 영향을 받으면서 “탈초월화(detranscendentalized)”되었다. 예를 들어 조화로운 세계에 관한 칸트의 “범세계주의적 이상”은 객관 세계에 관한 프래그머티즘적 가정에 의해 대체되고 있다. 실천이성의 자명한 전제로서의 “자유의 이념”은 책임 능력이 있는 행위자들의 합리성이라는 프래그머티즘적 가정으로 대체된 것이다. 그리고 “관념의 역량”으로서의 이성은 언어적으로 구체화되고 역사적 상황에 영향을 받는 담론적 이성으로 대체되었다(TJ: 87). 다윈, 마르크스 그리고 퍼스를 따라서, 하버마스는 우리의 관습(practices)이 진화하며 역사적 상황에 영향을 받는 것이라는 생각을 진지하게 채택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오늘의 우리를 존재하게 한 진화의 역사-생물학적이면서 동시에 문화적 진화 모두의 의미에서의-를 핵심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

하버마스의 원숙한 개념 틀의 토대는 『의사소통행위이론』에 모여 있기 때문에, 이 책의 대부분의 글들은 『의사소통행위이론』과 그 이후의 저작을 다루고 있다. 1장에서 맥스 펜스키(Max Pensky)는 하버마스의 저작을 사회 역사적 맥락 속에, 특히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비판이론과 연관된 사회 역사적 맥락 속에 자리하게 함으로써 하버마스에 관한 좀 더 상세한 지적 생애를 제공하고 있다. 2장~5장은 하버마스의 의사소통 합리성 개념에 관련된 쟁점들을 다루면서 의사소통행위 이론의 기본 개념들에 관한 윤곽을 그려내고 있다. 2장에서 멜리사 예이츠(Melissa Yates)는 하버마스의 형이상학 비판과 사회과학에 대한 평가를 설명하면서 하버마스의 “부드러운” 자연주의와 약한 혹은 “유사” 초월주의에 관하여 상술하고 있다. 또한 그녀는 하버마스의 합리적 재구성과 탈형이상학적 사유라는 용어에 내포된 것에 관한 방법론적 쟁점들을 다루고 있다. 예이츠가 해명한 것처럼, 형식 화용론은 탈초월화 된 이성 개념에 있어 핵심적인 것이다. 나는 3장에서 이에 관해 다룬다. 3장은 상호 이해를 지향하는 행위자들의 상호행위 과정 속에서 가능해야만 하는 필요조건에 대해 뚜렷한 설명을 제공한다. 하버마스의 표식인 의사소통 행위 개념은 상호 이해 지향적인 사회적 행위자들의 언어적으로 매개된 상호행위를 주목하도록 하고 있다. 타당성 및 상호주체성이라는 개념들은 그것의 설명에 있어서 중심적 역할을 담당한다. 하버마스는 서로 다른 이들의 발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발언들이 [입장이 다른 사람들에게] 수용될 수 있게끔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우리가 말할 때 명시적이거나 암묵적으로 제기한 주장들이 성공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게 하는 근거들을 이해해야만 하는 것이다. 합리성은 이렇게 언어적 의사소통 속에서 구체화 된다. 3장에서는 또한 하버마스의 사유가 “대륙의” 해석학적 언어철학과 영미권에서 이론화된 “분석적” 언어철학의 경계선을 어떻게 넘어서고 있는지 설명하고 있다. 하버마스 사회이론의 기초를 이루고 있는 의사소통행위와 전략적 행위 간의 구분은 3장에서 소개되고 있으며, 4장에서 다시 조 히스(Joe Heath)가 이 문제를 다루게 된다. 물론 의사소통행위는 행위 조정의 한 형식에 지나지 않는다. 사회는 [의사소통행위에 의해 행위가 조정되는 생활세계에서 뿐만 아니라 전략적 행위에 의해 행위가 조정되는] 체계적 구조들에 의해서도 조직된다. 하버마스는 이러한 측면을 발전시키기 위해 탈코트 파슨스의 기능주의 이론을 끌어와 베버와 뒤르켐의 고전적 사회이론들을 알맞게 수정한다. 히스는 하버마스적 기능주의에 존재하는 장점과 한계에 대해 개략적으로 다루면서 체계와 생활세계의 구분을 설명한다. 기능주의적 사회이론들에 대한 반대 견해는 이 이론들이 행위자 및 개인적 자율성의 여지를 남겨두지 않았다는 점을 비판함으로써 너른 지지를 받고 있다. 하버마스적 2단계 사회 모델의 목표 중 하나는 사실 기능적으로 조직된 사회 구조들이라는 배경에 맞서 어떻게 하면 자율적 행위자의 개념을 유지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를 해명하기 위한 것이다. 조엘 앤더슨(Joel Anderson)은 5장에서 자율성, 정체성 그리고 자아에 관한 상호주관적 개념에 관해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그는 책임능력을 지닌 행위자와 진정성을 지닌 자아정체성을 구분할 뿐만 아니라 정치적, 도덕적, 개인적 자율성 역시 구분하고 있다. 하버마스의 상호주관주의적 설명에 따르면, 주체들인 우리는 사회문화적, 역사적 상황의 영향을 받는다. 자율성은 따라서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나오는 어떤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자라면서 만들어지고 성숙하게 될 수밖에 없는 어떤 것이다. 성숙한 주체들은 이러한 사회화 과정을 통해 등장하는 것인데, 그러한 주체가 되는 것은 담론에 참여함으로써 가능해 진다.

3장에서는 의사소통행위의 가능성 조건들에 대해 매우 기본적인 개관을 제공한다. 다양한 담론 유형들은 저마다 고유한 가능성 조건을 갖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의 다음 장에서는 하버마스의 도덕담론, 민주주의 담론, 법담론에 대해 다룬다. 이 세 가지 담론들은 “[논의되고 있는 규범에 의해] 영향 받을 가능성이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합리적 담론들의 참여자로서 동의할 수 있을 규범만이 타당한 규범”이라고 명문화 된 “담론 원칙”(BFN: 107; 이 책의 6장 p. 120를 볼 것)을 적용한 것이거나, 하버마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운용”(BFN: 103)한 것이다. 내가 이미 지적했듯이, 하버마스는 초월적 진리나 도덕성과 같은 생각을 거부한다. 그는 도덕적으로 옳거나(right) 정치적으로 온당하거나(correct) 법적으로 정당한(legitimate) 것은 담론적으로, 말하자면 합리적 논의를 통해 결정되어야 한다는 관점을 지지하고 있다. 윌리엄 레그(William Rehg)는 6장에서 하버마스의 도덕이론인 “담론 윤리학”에 대해 설명한다. 하버마스는 도덕적 주장들은 보편적이면서 상호주관적인 타당성을 담지해야 한다는 생각에 따라 도덕적 정당화를 수행하는 칸트적 절차주의 모델을 옹호한다. 규범이나 도덕적 규칙은 “그것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다”면 정당화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도덕적 규범들의 타당성에 관한 담론 [과정]은 그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이해관계와 가치들을 불편부당한 관점에서 고려함으로써 수행되는 것이다. 레그는 도덕성과 인륜성이 어떻게 구분되고 있는지 보여준다. 하버마스는 인륜성을 좋은 삶과 행복이라는 개념과 관계된 것이라고 규정한다. 특히 현대 다원주의 사회에서 사실 우리는 좋은 삶과 행복에 관한 다양한 관점들이 보장되기를 기대하고 [이러한 관점들 간의] 합당한 불일치를 관용한다. 또한 동시에 도덕적 영역에 있어서는 보편적 합의를 목표로 삼기도 한다. 7장에서는 케빈 올슨(Kevin Olson)이 동일한 절차주의적 개념들을 사용하여 하버마스의 토의 민주주의론의 개요를 설명한다. 보편화 원칙에 의해 규제되는 도덕성과 달리, 정치는 정당한 입법 원칙을 세우는 데에 봉사하는 민주주의 원칙에 의해 규제된다(혹은 규제되어야 한다). 도덕담론은 규범과 가치를 지향하면서 모든 인격들(persons)의 합리적 합의를 목표로 삼는다. 반면에 정치담론은 법의 정당성을 지향하면서 모든 시민들이 “법적으로 구성된” 정치적 공동체에 관해 합의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그러므로 민주주의 원칙은 “[정치적] 자기 결정의 실천에 연관된 수행적 의미”(BFN: 110)를 담아내고 있다고 하겠다. 올슨은 모든 시민들의 동등한 정치적 참여를 보장해주는 권리들[혹은 법]의 체계를 통해 어떻게 합리적이고도 정치적인 의지 형성이 제도화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그는 5장에 소개되었던 정치적 자율성 개념과 평등, 호혜성 그리고 포용의 이상이 어떻게 권리로 제도화되는지에 관해 더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정치적 정당성은 궁극적으로 의사소통적 권력으로부터 도출되며, 결국 그것은 공적 담론을 통해 발생한다. 그리하여 올슨은 공영역에 관한 논의로 자기가 맡은 장을 마무리 짓는다.

의사소통행위의 주체들은 도덕담론에서의 [도덕적] 인격들이나 정치담론에서의 시민들이 하는 상호작용에 있어서 합리적으로 책임질 능력이 있는 주체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버마스는 정당한 민주적 절차들의 제도화를 요구한다면 정치담론은 법적으로 구성되어야 한다고 여기기 때문에, 그는 법 이론을 필요로 하게 된다. 8장에서 크리스 저언(Chris Zurn)은 사회학, 철학 그리고 법적 판결에 연관된 관점들을 가지고 조직된 하버마스의 법 담론이론을 제시한다. 사회학적으로 볼 때, 하버마스는 법을 체계와 생활세계와 상호작용하는 “전송 벨트(transmission belt)”로 생각한다. 이 전송 벨트는 (유대, 화폐, 권력[의 매개체로 이루어지는]) 사회적 상호작용의 의사소통적 형식과 기능적 형식을 연결한다. 법은 잠재적 해방 메커니즘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도덕적 규범들과 사회적 가치들(societal values)을 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법은 전문화된 경제용어와 행정용어로도 표현될 수 있기 때문에 영향력 있는 로비단체들의 이익을 위해 이용될 수도 있다. 철학적으로 볼 때, 하버마스는 법 실증주의와 자연법 이론 간의 구분을 극복하고자 한다. 그는 법과 도덕이 독립적인 동시에 모두 동등하게 근원적인(equiprimordial) 담론 영역이라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판결[문제에 대한 하버마스의] 담론 이론은 법 적용 논리에 관해서 그리고 판사들과 법학자들이 법적 공영역에서 특정 판결의 정당성뿐만 아니라 법 자체에 적용되는 법의 정당성을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마지막 세 글은 하버마스의 이론적 작업이 당대의 사회 정치적 그리고 문화적 문제들에 대해 개입하던 하버마스의 활동 속에서 어떻게 등장했는지를 다른 저자들에 비해 좀 더 많이 설명하고 있다. 키스 해이섬(Keith Haysome)은 9장에서 공영역이라는 주제를 다루면서 하버마스의 시민사회 개념, 복지국가의 위기에 대한 분석 그리고 1960년대 학생운동에 참여하면서 시작되었던 사회운동에 대한 하버마스의 논법을 고찰하면서 그가 사회적 병리에 대해 어떤 처방을 내리는지에 대한 진화 과정을 추적하고 있다. 해이섬은 하버마스가 그의 후기 저작에서 공영역과 시민사회 [개념]을 『공영역의 구조변동』에서 생각하던 부르주아적 형식에서가 아니라 자발적 풀뿌리 시민조직의 형식 속에서 “재발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키어런 크로닌(Ciaran Cronin)은 10장에서 “후기국민국가적” 정치 질서가 어떤 것이 될 것인지에 관한 하버마스의 고도로 복잡한 모델을 제시하면서 해이섬이 빠트린 부분을 여러 측면에서 정리하고 있다. 하버마스가 옹호하는 범세계주의적 민주주의 모델은 경제적 지구화, 소비에트 체제의 붕괴, 이라크전을 뒤이은 미국 주도의 군사개입 뿐만 아니라 발칸 전쟁에 관해 그가 수행했던 성찰의 결과물이다. 11장에서 에두아르도 멘디타(Eduardo Mendieta)는 하버마스의 최근 관심사, 즉 사회에서의 종교의 역할을 다루고 있다. 해이섬이 사회운동 [개념]을 활용하는 방식과 다르지 않게, 멘디타는 하버마스적 사회 진화 개념을 고찰하면서 세속화 [개념]를 다루고 있다. 그는 하버마스가 근대화란 오랜 세월에 걸친 합리화의 형식이라고 했던 자신의 테제를 재고하면서 세속화 개념을 다루고 있다고 말한다. 멘디타는 종교의 역할에 대한 하버마스의 사유를 추적한다. 하버마스는 종교가 초기에는 합리화의 촉매제 역할을 하다가 사회질서의 한 원천(이 기능은 이후 근대에서 법이 담당하게 된다)으로 기능하고, 이제는 철학이 대체할 수 없는 담론과 사회적 실천의 독립적 영역으로 기능한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현대사회에서 종교는 결국 행위 동기 및 가치의 한 원천으로서 함께 생존하는 방법을 배워야 하며, 그럴 경우 철학이 사실 의존해야 할지도 모르는 무언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이런 마지막 단계에서 종교는 다시 매개물로 여겨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마무리 장은 하버마스의 저작이 통합적 본성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종교에 관한 그의 저술 작업이 여전히 진행 중이기 때문에, 하버마스의 차기 거작을 기대하게 되는 일종의 가늠자가 되며 그것은 여심의 여지없이 영향력 있는 묵직한 저작이 될 것임을 보여주기도 한다.

2회 [하버마스 읽기: 열한 개의 길]

하버마스 읽기: 열한 개의 길 – 2회

 

번역: 한길석(한철연 회원)

 

  1. 사적 유물론의 재구성에서 의사소통행위이론으로(1971~1982)

『인식과 관심』 이후 하버마스는 체계이론(루만), 발달 심리학(피아제, 콜버그), 사회 이론(베버, 뒤르켐, 파슨스, 미드 등)을 끌어와 마르크스주의를 새롭게 변형시키는 작업으로 전환하였다. 『후기자본주의의 정당성 문제』(1971[1973]), 프린스턴대학에서 행한 가우스 강의록(『사회적 상호작용의 화용론에 대하여』라는 책에 수록(1984[2001]), 『의사소통과 사회진화』(1976[1979])에 실린 글들이 이 시기에 속한 결과물이다. 가우스 강의록은 하버마스 사상에 있어서의 의미심장한 변화를 나타내는 저작이다. 여기서 그는 자신의 이론적 구상에 있어 적절한 개념틀을 모색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강의에서 하버마스는 사회이론이 “언어적 전회”를 단행해야 한다고 제안하면서, 인간 행위와 상호이해가 언어적 구조에 의해 충실하게 분석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사회이론의 토대를 다시 만들고자 했던 이러한 예비적 시도는 1976년에 발표된 중추적 논문인 「보편화용론이란 무엇인가?」(CES: 1~94; OPC: 21~103)라는 결실을 거두게 한다. 이 글에서 하버마스는 의사소통 능력에 관한 이론의 토대를 다졌다.

이 시기에 가장 드높은 성과는 말할 것도 없이 『의사소통행위이론』이다. 하버마스는 이 두 권짜리 책의 목적을 세 가지로 구분하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첫째, 이성이 인지도구적으로 축소되는 것에 저항하는 의사소통적 합리성의 개념이다. 나는 이 합리성 개념이 회의적 고찰을 너끈히 견딜 수 있도록 전개하였다. 둘째, 생활세계와 체계의 패러다임을 결합하는 2단계 사회 개념이다. 두 패러다임은 단순히 수사적 방식으로 결합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오늘날 점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사회병리 유형들에 대한 설명이다. 나는 그러한 사회병리의 유형들을 의사소통적 구조를 갖는 삶의 영역들이 형식적으로 조직된 자립화된 행위체계들의 명령 아래 놓이게 되면서 발생하게 되었다는 가정 아래 설명한다. 그러니까 의사소통행위이론은 근대의 역설들에 초점을 맞추어 사회적 삶의 연관을 파악하고자 하는 것이다. (『의사소통행위이론 1』 20쪽)

 

『의사소통행위이론』에 도입된 이론적 모델의 핵심에는 하버마스의 의사소통 합리성 개념[에 대한 고찰] 그리고 생활세계와 체계 간의 이항대립이 자리하고 있다. 하버마스는 사회진화(social evolution)를 사회적 학습(societal learning) 형식으로 이해한다. 그리고 이 학습은 사회 체계 안에 침전되어 있다고 한다. 사회 체계는 점점 복잡하게 분화되는 가운데 고유한 자체 논리를 획득하면서 개인이나 사회적 행위 집단의 통제에 더 이상 종속되지 않는다. 반면에 사회화와 개인화 과정은 생활세계-훗설에게서 가져온 이 개념을 하버마스는 형식화용론적 관점에서 새롭게 인식하고 있다-에서 이루어진다.

 

  1. 탈형이상학적 사유: 합리성, 도덕성 그리고 민주주의(1982~2000)

『의사소통행위이론』의 출판 이후, 하버마스는 합리성 및 근대성 이론을 정교하게 다듬는 동시에 그것의 개념적 토대를 강화하는 노력을 계속해서 기울인다. 그는 탈근대주의, 회의주의, 역사화된 상대주의(historicizing relativism) 그리고 교조적 실증주의에 대한 비판을 전개한다. 『진리와 정당화(1999 [2003])』에서 그는 진리에 대한 기존 설명을 고치면서 “약한 자연주의”[적 입장](이후 내용을 참고할 것)을 뚜렷하게 표현하였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의사소통행위이론』의 개념적 뼈대는 모든 종류의 인간 행위에 적용될 수 있도록 설계된 것이다. 윤리학과 사회 정치 철학으로 전환하면서 하버마스는 의사소통행위이론의 개념적 뼈대를 이용해 담론윤리학적 형식의 도덕이론, 토의민주주의론 그리고 법에 대한 담론이론을 전개한다. 이 세 영역을 탐구함에 있어서, 그는 각 영역들의 담론 및 합리성 형식들과 연관된 규범에 대한 분석뿐만 아니라 그러한 영역들에 참여하는 이들에게 필요한 능력들을 갖춘 주체들을 배출할 수 있는 사회구조들의 종류에 대한 분석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이 시기에 해당되는 저작은 『도덕의식과 의사소통행위(1983 [1990])』, 『근대성의 철학적 담론(1985 [1987])』, 『탈형이상학적 사유(1988 [1992])』, 『담론윤리의 해명(1991 [1993]), 『이질성의 포용(1996 [1998]) 그리고 정치이론 및 법이론에 관한 기념비적 저작인 『사실성과 타당성(1992 [1996])』이다.

 

  1. 후기세속주의적(postsecular) 사유와 후기국민국가적(postnational) 사유(2001~ )

21세기에 접어들면서 하버마스는 이성과 신앙의 관계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면서 철학적 인간학으로 다소 회귀하는 것 같은 모습을 보인다. 특히 담론 윤리학에 대한 토론은 동기화의 문제를 자주 불러일으켰다. 이를테면 합리적으로 행위 해야 할 이유는 무엇이고, 무엇이 도덕적으로 올바른가와 같은 문제 말이다. 하버마스는 지나치게 합리주의적이며 보편주의적인 칸트적 인식 및 행위 주체관에 대해 줄곧 비판해왔다. 그러나 지난 십 년간의 저작에서 그는 육체적 존재로서의 인간과 그로 인한 취약성에 대해 주목하는 경향을 뚜렷이 보여줬다. 이러한 전개는 2001년 독일서적상협회평화상의 수락 연설인 “신앙과 지식”에서 시작된다. 이것은 『인간이라는 자연의 미래(2001 [2003b])』에 수록된 <인류의 윤리적 자기이해에 관한 논쟁>이라는 긴 논문과 더불어 선보여졌다. 여기서 그는 인간복제와 착상 전에 이루어지는 유전자 검사에 반대하고 있다. 우리 인류는 도덕적 인격이라면 모두 공유하고 있는, 그리고 도덕성은 그러한 인격 속에 구현된 것이라는 어떤 윤리적 자기이해를 지니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버마스는 피험자의 동의 없이 생물학적인 조작이 이루어지면 그러한 일은 우리가-동시에 이 피험자가- 자율적 행위자라는 생각을 위협하고 자유로운 행위자로 살아온 우리의 경험을 훼손할 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개략적으로 제시한다. 하버마스는 생명윤리학적 논쟁에 이바지하면서 자유의지에 관한 문제와 그가 “후기세속주의적”이라는 용어를 가지고 지칭한 사회에서의 종교의 역할에 대해 썼다. 여기서 그는 “근대성에 대한 철학적으로 계몽된 자기이해와 주요 세계종교에 대한 신학적 자기이해-이것은 과거에서 생성된 가장 다루기 어려운 요소로서 작금의 현대에 튀어나온 것이다- 사이의 기이한 변증법”(하버마스 2010: 영문 번역본 16페이지. 번역은 수정)으로 묘사한 문제를 다루었다. 하버마스는 도덕성, 민주주의 그리고 법에 대한 담론 이론적 절차주의뿐만 아니라 탈형이상학적인 철학에 전념해 왔는데 이런 그의 입장은 『자연주의와 종교 사이에서(2005 [2008]』라는 책에서 언급한 근대사회에 대한 후기세속주의적 자기 이해로 여겼던 것과 정확히 수렴한다.

후기세속주의적 사회에 대한 명확한 설명을 시도하고 종교 문제에 참여하게 된 까닭은 담론 윤리학에 내재하고 있었던 쟁점들(위에서 언급했던 동기화의 문제 같은 것)뿐만 아니라 구체적 정치 상황에 대한 고찰로 인한 것이었다. 독일을 비롯해 여타 유럽 지역에서는 늘어나는 종교적 다원주의의 문제들로 얼룩지고 있었다. 소련과 동유럽의 붕괴 이후 팽창한 유럽연합은 조화로운 유럽이라는 개념에 새로운 부담으로 다가왔다. 지구적 타원에서 보면, 종교는 유고슬라비아 전쟁, 9. 11 테러 그리고 이라크 전쟁의 분명한 요인이었다. 1999년 코소보 사태에 대해 하버마스는 나토의 군사 개입과 폭격을 지지한 반면에, 2003년 미국이 벌인 이라크 전쟁에 대해서는 반대하였다. 이는 정당한 근거를 필요로 하였고 하버마스로 하여금 국제법과 그것의 규범적 강제력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지지 및 적용될 수 있는가에 대해 탐구하도록 만들었다. 요컨대 하버마스는 사회 민주주의가 국민국가의 한계를 넘어 확장될 수 있는지 그리고 지구적 정치 질서 안에서의 범세계적(cosmopolitan) 민주주의란 어떤 것일 수 있는지 밝히고자 한 것이다. 이처럼 그는 최근 저작들에서 분명히 철학적 인간학으로 회귀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규범적 비판이론을 좀 더 명확하게 했다고 할 수 있다.

1회 [하버마스 읽기: 열한 개의 길]

하버마스 읽기: 열한 개의 길 – 1회

 

번역: 한길석(한철연 회원)

 

이 글은 Barbara Fultner eds., Jürgen Habermas: Key Concepts, NY: Routledge, 2014라는 책을 발췌 번역한 것이다. 영미권의 여러 전문가들이 모여 하버마스의 이론을 충실하게 소개하고 있는 훌륭한 개론서다. 하버마스를 이해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서툰 번역으로나마 틈나는 대로 소개하고자 한다.

이 글에 인용된 하버마스 저작의 축약어는 아래와 같다. 꺾쇠 안에 표기된 년도는 영문판 출간 년도다.

 

BFN Between Facts and Norms (1992 [1998])

BNR Between Naturalism and Religion (2005 [2008])

CES Communication and the Evolution of Society (1976 [1979])

DW The Divided West (2004 [2007])

IO The Inclusion of the Other (1996 [1998])

JA Justification and Appilication [1993]

LC Legitimation Crisis (1973 [1975])

KHI Knowledge and Human Interests (1968 [1971])

MCCA Moral Consciousness and Communicative Action (1983 [1990])

OPC On the Pragmatics of Communication [1998]

PDM The Philosophical Discourse of Modernity (1985 [1990])

PMT Postmetaphysical Thinking (1988 [1992])

PNC The Postnational Constellation (1998 [2001])

STPS The Structural Transformation of the Public Sphere (1962 [1989])

TCA The Theory of Communicative Action (1981 [1984/1987])

TRS Toward a Rational Society [1970]

TJ Truth and Justification(1999 [2003])


 

들어가며

바바라 풀트너(Barbara Fultner)

 

Barbara Fultner, 출처: https://denison.edu/people/barbara-fultner

 

의심할 여지없이 위르겐 하버마스는 독일 철학자 중 가장 중요한 인물이자 전 세계 사회이론가들 중에서 가장 비중 있는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는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설립자들인 막스 호르크하이머와 테오도르 아도르노의 후계자이자, 비판이론이라고 하면 맨 처음 머리에 떠오르는 사람들 중 하나이기도 하다. 다른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이론가들과 마찬가지로 하머마스는 사회과학과 인문학을 넘나드는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나아가 그는 탁월한 공적 지식인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는 여러 주요 신문에 칼럼을 정기적으로 기고하면서 수많은 유명인들과 공개 대화를 전개하였다. 거기에는 자크 데리다에서 미셸 푸코, 리처드 로티 그리고 베네딕트 14세 교황이 된 라칭거 추기경까지 다양하다. 하버마스는 심오한 체계적 사상가이며 완벽한 통합이론가다. 그의 이론적 개념들은 영미 분석철학뿐만 아니라 사회학, 마르크스의 이론, 유럽대륙철학을 끌어와 합친 것이다. 이런 까닭에 그의 저작을 읽는 일은 여간한 도전이 아니다.

하버마스는 1929년 뒤셀도르프에서 태어나 굼머스바흐라는 작은 도시에서 자랐다. 그의 아버지 에른스트 하버마스는 이 도시의 상공부 책임자였다. 2차 대전 후 그는 괴팅겐 대학, 취리히 대학, 본 대학에서 공부하였다. 이 무렵 나치의 잔혹행위와 기만행위에 커다란 두려움을 갖고 있던 하버마스는 학계의 많은 지식인들이 나치 체제와 공모하거나 소극적으로나마 지지했던 것에 대해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그중에서도 마르틴 하이데거가 가장 악명이 높았다-에 대해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는 1950년대 반핵 운동과 1960년대 학생운동에 적극적이었던 세대들의 비판적 목소리를 대변하던 이들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이었다. 하버마스는 마르부르크 대학에서 교수자격논문을 완성한 후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잠시 교수로 활동하다가, 1964년 호르크하이머의 후임자로서 프랑크푸르트 대학 사회 연구소의 철학 및 사회학 교수로 지명되었다. 1971년에서 1982년까지는 슈타른베르크에 자리한 과학기술세계에서의 삶의 조건에 관한 막스플랑크 연구소 소장으로 일하였다. 그러다가 다시 프랑크푸르트로 돌아왔다. 그는 1994년 은퇴하여 저술에 몰두하면서 일리노이주 에반스턴의 노스웨스턴 대학, 뉴욕의 사회연구를 위한 뉴스쿨과 스토니브룩 대학을 비롯한 여러 대학들의 초청 강좌를 맡았다.

이 책의 글들은 여전히 성장하고 있는 하버마스의 광범한 지적 성과에 대한 개념 지도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지난 40 여 년 간 그는 각 연구 영역에 지울 수 없는 인상을 남긴 수많은 획기적인 저작들을 내놓았다. 이 책들은 사람들이 무엇을 생각해야 하고,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를 설정해 주곤 했다. 그의 영향은 비판이론과 사회정치철학에서 가장 뚜렷하다. 그뿐만 아니라 이 책의 기고문들이 보여주듯이, 언어학적으로 구현된 합리성 이론으로서의 의사소통행위이론은 윤리학, 인식론, 심리 철학, 언어철학에도 이바지하고 있다. 『의사소통행위이론』은 아마도 하버마스의 가장 중요한 저작으로 남을 것이다. 이 책에서 하버마스는 사회, 근대화 및 합리성에 관한 포괄적 이론을 형성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이후에 이어지던 연구 작업, 즉 도덕이론, 정치 이론 그리고 법 이론의 토대가 되고 있다.

 

이론 진화의 발자취

이 책은 개념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하버마스의 지적 발전을 역사적 관점에서 추적하고 있기도 하다. 하버마스의 저작들에서 눈에 띄는 사실은 체계성 및 연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역동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입장과 관심사들은 이론의 내적 논리에 따라 진화하기도 했지만, 결정적으로는 다른 이론가들의 비판에 답하고 대화하는 과정을 거치며 진화하기도 하였다. 그는 변증법적 사상가이기도 하지만 대화적 사상가이기도 한 것이다. 그의 저작은 크게 네 시기로 구분될 수 있다.1 대부분의 경우 시기 구분은 기본 관점의 변화를 나타낸다. 하지만 하버마스에서 이 네 시기는 기본 관점에서의 변화를 보여준다기보다는 초점이나 강조하는 바가 달라짐을 나타낸다. 하버마스 사유의 흐름이 이런 시기 구분을 넘나들고 있다는 점에서 보자면, 네 시기 구분은 다소 임의적이라 하겠다.

 

  1. 철학적 인간학: 의식철학과 실증주의 비판(1954~1970)

첫 번째 시기는 박사논문에서 『인식과 비판』까지다. 이 시기의 저작에는 『공영역의 구조변동(1962[1989])』, 『이론과 실천(1963[1973])』, 『사회과학의 논리(1967[1988])』, 『철학적이면서 정치적인 소묘(1971[1983])』가 있다. 이 시기 동안 하버마스는 독일 관념론(칸트, 피히테, 헤겔)과 후설 현상학 모두에게서 발견되는 선험적 주체(transcendental subject)에 대한 비판을 전개하였다. 해석학과 사적 유물론을 연구하였던 하버마스는 사회진화와 인류 역사를 강조하는 사회이론을 출발점으로 삼게 되었고 이에 따라 의식철학을 거부하게 되었다. 18세기 커피 하우스 문화에 대해 세세히 분석하고 있는 『공영역의 구조변동』은 비판이론과 문학 연구에 있어서 표준이 된 책이다. 이 책에서 하버마스는 부르주아 공영역이 역사적으로 특정한 물질적 조건 속에서 발생한 것이며, 당시에 생겨난 특정한 경제적 변화(자본주의, 세계 무역 등)와 긴밀히 묶여 있다는 점을 입증하였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바로 공영역의 구조가 역사적 조건 속에 존재한다는 점이다. 물론 『공영역의 구조변동』이라는 책은 공영역이라는 개념을 하버마스의 일생에 걸친 관심사로 만듦과 동시에 앞으로 전개될 연구를 미리 예시한 작품이다. 예를 들어 문화 상업화에 대한 그의 비판은 이후에 등장한 생활세계의 식민화 테제를 미리 예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렇듯 1980년대에 천착하게 될 주체성의 사회적 해명이라는 주제뿐만 아니라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관계에 대한 연구도 이미 이때부터 관심의 싹이 트고 있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또한 이 시기에 하버마스는 실증주의 과학에 대한 비판을 고조시켰다. 그는 과학에 내재하고 있는 잘못된 객관성 개념을 거부하였다. 과학이 몰역사성에 사로잡히는 바람에 문화가 우리의 본성을 결정하는 데에 있어서 부정할 수 없는 역할을 담당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결점은 의식철학도 공유하고 있다. [하버마스에게] 인간은 사회문화적 과정에 의해 매개되고 구체적 현실 속에서 형성되며, 역사적으로 조건화된 상태에서 진화의 결과물로서의 지식을 얻게 되는 주체다. 이런 인간이 구체적 현실에서 멀어져 버린 선험적 주체(transcendental subject)와 객관적이고도 편향적이지 않은 과학자로 대체되어버린 것이다. 이런 하버마스적 주체의 인지 능력은 따라서 변치 않는 본성으로서 미리 새겨진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학습되어 [본성적 능력으로 보이게끔] 아로새겨지는 것이다. 이러한 능력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습득되는 것인지에 대해 연구하는 기획은 평생의 동료이자 친구인 칼-오토 아펠에 의해 인식인간학 (Erkenntnisanthropologie)혹은 인간학적 인식론(anthropological epistemology)으로 일컬어졌다.

『인식과 관심』 역시 앞으로 등장할 이론의 토대를 놓은 저작이다. 여기서 하버마스는 인간의 관심을 인간의 인식 영역을 구성하는 요소로 여기면서 세 가지 근본적 인식을 구성하는 관심들을 식별하고 있다. 그것은 기술적, 실천적, 해방적 관심이다. “기술적 통제를 지향하고, 처신(conduct of life)에 있어서의 상호 이해를 지향하며, 외관상 ‘자연적’ 속박으로 보이는 것으로부터 해방됨을 지향하는 것”(KHI: 311)은, 정확히 연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후에 등장한 세 가지 구분들, 즉 이론적, 실천적, 미적 담론과 이에 각각 상응하는 세 가지 타당성 요구, 즉 진리성요구, 규범적 정당성 요구, 진실성 요구의 전조가 되었다. 『인식과 관심』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그것이 언어를 “그것의 본성에 대해 우리가 유일하게 파악할 수 있는 것”(314)으로 도입함으로써 의사소통행위이론의 토대가 될 언어적 전회의 도화선을 놓았다는 점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식과 관심』은 방법론적 쟁점을 제기하였다. 즉 그것은 하버마스에게 경험적 근거와 근대성에 대한 규범 비판적 분석을 통합한 사회이론을 형성하려는 목적에 적합한 이론적 틀을 제공해 주지는 못했다.

 

 


  1. 이 시기 구분은 Eduardo Mendieta가 제안한 것을 채택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