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스분과 보고서] 우리는 지금 『공산당 선언』을 다시 본다
우리는 지금 『공산당 선언』을 다시 본다
이순웅
처음에는 『선언』을 다시 한 번 정독해보고 싶었다. 암울했던 시기, 그래서 젊은 피가 더 끓었던 시기에 『선언』의 몇몇 구절은 우리를 흥분시키기까지 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자본주의 질서는 이런저런 부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기 정화능력을 지닌 채 건재한 상태이고 지배질서에도 별다른 변화가 없다. 이런 때일수록 고전으로 돌아가 치열하게 살았던 혁명가들의 고뇌와 투쟁을 성찰해보자는 제안이 『선언』을 다시 집어 들게 했다.
그런데 곧 우리들의 관심은 ‘읽기’에서 ‘번역+풍부한 해설’로 바뀌었다. 젊은 시절 그럭저럭 잘도 넘어갔던 구절들에 자꾸 눈길이 멈춘다. 예전처럼 쉽게 넘어가지질 않는다. 심지어는 어렵게 느껴지기까지. 그동안 우리는 지식을 축적했고 지적으로도 더 성숙해졌을 텐데 어찌된 일일까?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갔던 구절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인다. 알고 있다고 단정했던 것들을 다시 보니, 잘 모르겠다. 아는 만큼 보이지만 아는 만큼 안 보이기도 한다. 알면 알수록 잘 모르겠는 부분이 새롭게 등장하는 것이다. 『선언』은 생각보다 어려운 책이었다.
게다가 당시의 노동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비판받을 만한 면모까지 있다는 사실은 ‘진보’를 꿈꾸는 이들에게 『선언』을 경전 읽듯이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우쳐준다. 우리는 『선언』을 다시 읽으면서 우리들의 무지를 일정부분 고백해야 했고 『선언』을 새롭게 재해석해야 스스로도 만족할 수 있는 지점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였다.
우리가 번역 대상으로 삼은 책은 1848년 독일어판이 아니라 1888년 영어판이다. 영어판은 독일어판이 나온 지 40년 후에 나온 것으로서 그동안 변화한 사회상을 반영하려고 은근히 노력한 흔적이 있으며 맑스 사후에 엥겔스의 생각을 더 반영한 부분도 있다. 예를 들면 사회역사를 일종의 자연사적 과정으로 보려는 시각을 한층 더 강조한 사람은 맑스가 아니라 엥겔스라는 평이 있는데, 이러한 평을 가능하게 하는 구절을 하나 발견하기도 했다. 독일어를 영어로 옮기면서 주어를 아예 바꿔버린 것이다. 엥겔스의 의지가 작용했음이 분명하다. 번역자는 사무엘 무어이지만 엥겔스가 수정에 관여하기도 하고 따로 각주를 달기도 했기 때문이다. 주어가 뒤바뀐 이 문장은 이른바 ‘과학적 사회주의, 합법칙적 역사발전 단계’ 등의 사회역사관이 가진 문제점을 비판할 때 맑스보다는 엥겔스에게 혐의점을 두었던 이들에게 확신을 심어줄 수 있는 좋은 근거 자료가 될 것이다.
번역에다가 ‘풍부한 해설’까지 더하는 것으로 읽기의 방향을 바꾸자 예상하지 못했던 어려운 상황과도 마주해야 했다. 번역어 선택부터 문장표현, 해석·해설상의 차이 때문에 번역이 논쟁으로 이어져 진행 속도가 매우 더디었다. 우선, 책 제목에서부터 이견이 생겼다. Manifesto of the Communist Party가 ‘공산당 선언’이냐 ‘공산주의 당 선언’이냐 ‘공산주의자 당 선언’이냐 하는 문제였다. 이미 있었고 현재 있는 공산당의 공식 명칭이 ‘Communist Party’이므로 일단은 ‘공산당’으로 하기로 했다. 가장 많이 알려진 대중적 명칭이 ‘공산당 선언’이란 점도 한몫을 하였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당은 오늘날 일반적으로 이해되는 정당이 아니라 일종의 ‘비밀 결사체’ 같은 것이었다는 점은 환기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이미 20여 종 내외의 해석판이 나온 상태였다는 사실도 새로운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해설까지 덧붙인 번역서는 그리 많지 않았다. 훌륭한 번역과 해설도 있어 참고자료로서의 가치가 충분한 부분을 여기저기에서 발견했지만 이들을 모으고 보완하는 일은 여전히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에는 우리들 사이에 별다른 이견이 없었다.
우리는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라는 구호를 번역하면서도 논쟁을 해야 했다. 1848년 독일어판에서는 ‘Proletarier’이었으나 영어판에서는 이를 ‘Working Men’으로 번역했기 때문이다. ‘Proletarians’라고 해도 될 텐데 왜 ‘Working Men’으로 했을까 하는 의문이 제기되었다. ‘Men’에는 인간이라는 뜻이 있기 때문에 문제 삼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단어가 ‘남성’이라는 뜻을 갖고 있기 때문에 문제시할 수도 있다. 1888년 당시에는 부인노동과 아동노동도 많았기 때문에 이 번역어는 당시의 노동현실을 반영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남성주의 또는 남성우월주의를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게다가 이른바 ‘부인 공유제’에 관한 애매모호하고도 지나치게 절제된 표현은 그만큼 해석의 여지를 많이 남겨둔다. 맑스나 엥겔스 같은 당시의 혁명가들이 가진 속물적이고도 ‘마초’적인 여성관으로 볼 수도 있고, 결혼 제도를 넘어서는 혁명적인 관점을 제시하는 것으로 읽을 수도 있다.
『선언』은 일반적인 논문이 아니다. 당 강령으로 작성된 ‘선언문’이므로 여기에는 압축과 비약이 있다. 쉽게 읽을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행간에 숨은 뜻까지 그때그때 다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선언』은 맑스가 초안을 쓴 ‘맑스와 엥겔스의 공저’로 알려져 있는데, 엥겔스가 먼저 문답식의 초안을 쓴 적이 있다는 것, 그리고 맑스가 맡아서 썼을 때는 의인동맹을 공산주의자 동맹으로 재편한 샤퍼의 검열 내지는 교열이 있었다는 것 등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샤퍼의 ‘간섭’을 의식하면 『선언』은 ‘온전히’ 맑스(엥겔스)의 것도 아닌 셈이다.
『선언』이 세상에 나온 시기는 ‘공산주의’라는 이상적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일종의 결사체를 만들고 자신들의 생각을 글의 형식으로 정리해서 최초로 공표해보려고 한 때였다. 당시에는 맑스, 엥겔스에게 그다지 권위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 만큼 『선언』을 만들 때는 생각이 다른 여러 분파를 아우를 필요가 있었다. 『선언』은 타협의 산물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맑스와 엥겔스가 고집했을 만한 부분은 어디이고 양보한 부분은 어디일지를 생각해보는 것도 유의미한 일일 것이다.
『선언』이 갖는 현재적 의미를 말해보는 것도 우리의 관심사 중 하나이다. 맑스와 엥겔스가 현실에 입각해 실천해보려 했던 맑스주의는 국가주의와 아나키즘 사이에 있었다. 아나키즘을 지향하면서도 국가적 역할을 무시하지 않았던 그들은 국가주의자는 물론이고 아나키스트와도 대결해야 했다. 국가 해체로 가는 길목에 자리를 잡을 수밖에 없다고 여겼던 것이 프롤레타리아 독재였다. 레닌의 사회주의 실험은 이들이 가졌던 생각을 현실에 옮겨본 것이기도 했다. 『선언』에 담겨 있는 국가주의적 요소나 국제주의적 요소는 여러 정파를 아우르려는 맑스와 엥겔스의 정치적 계산이기도 했지만 당시의 사회에 대한 진단과 처방이기도 했다. 세계화 시대지만 국가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는 오늘날, 『선언』은 ‘현실 사회주의의 실패’를 목도한 오늘날의 진보진영에게 일종의 방향지시등을 제시하는 것으로 읽히기도 한다.
앞으로 우리는 『선언』을 번역하고 해설하면서 만들어낸 결과물들을 차례차례 웹진에 게재할 것이다. 완성도를 높일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겠지만 장담할 수는 없다. 채워야 할 빈 공간이 가끔씩 발생할지도 모른다. 독자들의 비판과 조언은 우리가 가진 문제점을 해결하고 한계를 극복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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