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알바에 숨겨진 비밀 [내가 읽는 『자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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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알바에 숨겨진 비밀

 

최재식(경희대 철학과)

 

필자는 축구를 상당히 좋아한다. 직접 하는 것, 보는 것 모두 좋아한다. 축구 관련 기사들도 자주 찾아본다. 응원하는 팀의 경기는 직접 보거나 하다못해 하이라이트 영상이라도 찾아봐야 직성이 풀린다. 축구팬 최재식에게 축구를 볼 때 가장 짜릿한 순간을 꼽아보라면 추가시간 극적인 동점 혹은 역전골이 터질 때, 연장전의 치열한 공방, 승부차기의 정적을 꼽을 것이다. 아마 필자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그 순간 피치 위의 선수들은 정말 힘들겠지만 팬의 입장에서는 그 힘듦을 이겨내고 한 발짝 더 뛰는 선수들의 움직임 하나에 열광하게 된다. 축구선수들도 팬들이 있기에 자신들이 존재함을 알 것이고, 그래서 힘들어도 경기를 포기하지 않으며 극적인 승부를 만든다.

그런데 만약 축구선수들이 경기를 뛴 시간만큼만 돈을 받는다면? 그것도 정규시간 90분 안에서만 돈을 받는다면? 말하자면 축구선수들이 정규시간 90분 중 경기를 뛰는 시간동안은 분당 10,000원의 돈을 받기로 계약한 것이다. 그리고 추가시간과 연장전, 승부차기는 가외시간으로 쳐 돈을 안 받고도 뛰어야 한다. 정규시간 70분 뛴 선수는 700,000원의 돈을 받게 된다. 정규시간 70분경에 교체 투입된 선수는 90분경까지 20분을 뛰고 200,000원의 돈을 받는다. 90분 풀타임을 뛰고 추가시간 5분을 더 뛴 선수는 950,000원이 아닌 900,000원을 받아야 한다.

말이 안 된다. 교체 투입된 선수가 아니고서야 모든 선수들은 경기 막판으로 갈수록 힘든 게 당연하다. 더 힘든 것도 서러운 데 그 시간만큼 돈도 못 받으면 정말 그 선수는 억울해서 어떻게 살까?

상황을 조금 바꿔보자. 축구팬 최재식은 전날 축구장에서 본 명승부에 취한 채 다음 날 아르바이트 작업장에 출근했다. 15시부터 23시까지 서울의 한 식당에서 아르바이트 노동자 최재식으로 일하는 그는 14시 30분에 미리 작업장에 도착하여 업무 준비를 한다. 15시가 되기도 전에 전 타임 아르바이트 노동자를 돕던 그는 15시부터 같은 시간대 같이 일하는 아르바이트 노동자와 둘이 23시까지 일을 한다. 분명 식당 입구에는 ‘22시 30분 주문 마감, 23시 영업 종료’라고 적혀 있건만, 오늘도 어김없이 22시 31분에 술에 취한 한 무리의 손님이 들어온다. 그나마 오늘 온 손님들은 소주 5병과 함께 1시간 만에 떠나셨다. 손님들이 있을 때 작업장 마감 준비를 했지만, 그래도 30분은 더 마감일을 해야 퇴근할 수 있다. 작업장 문 밖을 나서며 시계를 보니 벌써 23시 57분이다. 하지만 아르바이트를 시작할 때 15시부터 23시까지 8시간 분의 임금만 받기로 구두계약을 했기에 추가로 지급받는 임금은 없다. 법은 그렇지 않다지만, 근로계약서 써주는 아르바이트 자리가 어디 그리 흔하던가. ‘집에 가서 축구게임이나 해야지’ 생각하며 아르바이트 노동자 최재식은 다시 축구팬 최재식으로 변한다.

작업장 마감 시간 아르바이트, 소위 ‘마감알바’는 그 시간대가 아르바이트 시간대 중 최악으로 꼽힌다. 일단 할 일이 많다. 작업장 청소, 하루치 정산(만약 정산을 하다가 장부에 구멍이 나면 아르바이트 노동자 임금에서 깎이기도 한다), 문단속 등등이 모두 마감알바 시간대 아르바이트 직원이 해야 할 일이다. 차라리 일만 많으면 좋겠는데 식당이나 술집 마감알바면 영업 종료 시각이 되어서도 밖으로 나가지 않는 손님들을 잘 달래 집으로 돌려보내는 일도 해야 한다. 이런 일들을 해도 제 시각에 퇴근할 수 있으면 참 다행이다. 이래저래 일들을 하다 보면 원래 퇴근하기로 한 시간대는 훌쩍 지나있기 마련이다. 추가근로수당도 없다. 근로계약서 제대로 쓰고 근로기준법 지키는 아르바이트 자리는 이 나라에 없다시피 하니까. 힘든 일을 많이, 그것도 오래 하면서 돈도 못 받는 시간대의 아르바이트가 바로 마감알바이다. 마치 공짜로 추가시간을 뛴 축구선수처럼 억울할만한 사람들이 마감알바 시간대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인 것이다. 일은 다른 시간대보다 더 힘들 뿐만 아니라 일하는 시간도 한도 없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겉으로는 그냥 힘들게 보이기만 하는 마감알바에 또 다른 비밀이 숨어있다.

비밀 이야기 전에 잠깐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들은, 아니 더 나아가 일을 하여 돈을 버는 사람들은 왜 일을 할까? 그 이유는 너무나 명확하다. 돈을 벌어야 먹고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먹을거리를 사고, 옷을 사고, 집을 사려면 돈이 필요하다. 가끔 놀러 다니고 학비를 충당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애인이랑 데이트하는 것도 다 돈이다. 이렇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고, 돈을 벌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 하니 마감알바라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일하는 사람들이 순전히 자기 자신만을 위해 일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자신도 모르게 자기 자신의 노동력을 구매하는 사람들도 먹여 살리고 있다. 언뜻 보면 반대로 보일 것이다. ‘고용주들이 노동자들을 고용함으로써 노동자들과 그가 부양해야 할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말이다. 그런데 거꾸로 생각해보자. 우리가 순전히 우리 자신만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라면 고용주들은 왜 우리에게 일자리를 제공할까? 우리가 일을 하는 게 고용주들에게도 이익이 되기 때문에 그들이 노동자들을 고용하는 게 아닐까? 만약 어떤 노동자가 하루에 10시간을 일한다면 그 10시간을 일해서 만드는 가치 중 순전히 자기 자신에게 돌아오는 몫이 10시간어치 전부일까? 적어도 5시간 정도의 몫은 고용주들이 가져갈 수 있으니 그들이 노동자들의 노동력을 사는 것일 터이다.

물론 고용주들도 충분히 똑똑하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자기 자신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일을 하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고용주들은 노동자들이 생산한 가치 중 일부, 노동자들이 어느 정도 본인들의 삶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의 가치를 노동자들에게 준다. 그리고 그 나머지를 고용주 본인의 주머니에 집어넣는다.

삶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의 가치를 만들어내는 시간을 ‘필요노동시간’, 그리고 이 때 행하는 노동을 ‘필요노동’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노동자들이 고용주, 즉 자본가가 가져갈 가치를 만들어내는 시간을 ‘잉여노동시간’, 이 때 행하는 노동을 ‘잉여노동’이라고 이름 붙였다.

노동자들의 삶을 유지한다는 것에는 여러 가지가 들어간다. 우선 본인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하겠다. 뿐만 아니라 만약 노동자가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면 그 가족의 의식주를 해결해야 할 뿐 아니라, 자식 교육이나 노후 대비도 신경 써야 한다. 또한 사람은 밥만 먹고 사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취미나 문화생활을 할 여유도 있어야 하고, 가끔 놀러갈 돈도 있어야 한다.

자본가들은 노동자들 본인이 위의 일들을 할 수 있을 만큼의 임금을 준다. 그렇지 않으면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밑에서 일을 하지 않을 걸 알기 때문이다. 물론 나머지 가치들은 자본가들이 가진 자본을 불리는 데에 들어간다. 그래서 필요노동이든 잉여노동이든 노동자들이 행하는 것이지만, 실상 그 노동을 소유하는 건 자본가들이 된다.

마르크스 『자본론』

‘잉여가치율’이라는 개념이 있다.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언급한 개념이다. 마르크스에게 잉여가치율(rate of surplus-value)은 “가변자본의 (중략) 가치증식의 비율 또는 잉여가치의 상대적 크기”1를 뜻한다. 쉬운 말로 풀어서 얘기하자면, 자본이 자기 자신을 불리기 위해서 생산과정에 새롭게 집어넣은 가치를 분모로, 그 결과 새로이 생성된 가치를 분자로 하는 비율이 바로 잉여가치율이다. 100원을 투입하여 200원의 가치가 만들어졌다면, ‘(200-100)/100=1’, 이 경우 잉여가치율은 100%가 된다.

잉여가치율은 사실상 ‘잉여노동/필요노동’과 같다. 그리고 잉여가치율이 커질수록 자본가가 가져가는 몫도 커진다. 그렇다면 자본가는 잉여가치율을 키우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할 것이다. 잉여가치율은 비율이기 때문에 그것의 분모를 줄이거나 분자를 키우면 그 크기가 커지게 되어 있다. 즉 다른 조건이 같다면 필요노동을 줄이거나 잉여노동을 늘릴 때 잉여가치율은 커진다. 여기서는 필요노동을 줄이는 것보다 잉여노동을 늘리는 데에 집중해보자. 작업장 사장에게는 축복이고 마감알바 담당 아르바이트 노동자에게는 비극인 마감알바의 비밀이 여기에 있다.

우선 필요노동은 거의 고정이라는 점을 알 필요가 있다. 사람이 하루를 살면서 필요한 가치가 널뛰기를 타진 않기 때문이다. 어제는 하루에 필요한 열량이 세 끼 밥으로 충분했는데, 오늘은 열두 끼의 밥을 먹어야 하는 경우는 없다. 즉 필요노동이 고정된 상황에서 노동의 총량을 늘리면 늘어난 노동의 양은 전부 잉여노동의 증가로 이어진다.

이제 노동시간을 늘리면 잉여노동시간이 늘어남을 알게 되었다. 마치 축구경기의 추가시간이나 연장전, 승부차기와 같이 계속해서 그 끝이 미뤄지는 마감알바는 잉여노동시간을 늘리는 데에 최적화된 아르바이트 노동 시간대이다. 물론 여기서 이익을 보는 사람은 아르바이트 노동자가 아니다. 아르바이트 노동자는 어차피 거기서 거기인 돈을 받고 일하는 시간만 늘어날 뿐이기 때문이다.

마감알바의 비밀은 마감알바 시간대 아르바이트 노동자의 힘듦이 단지 그 노동자가 일하는 시간에 있음이 아니라, 자신의 주머니에 떨어지는 가치의 양을 늘리기 위해서 행동하는 자본의 본성에 있음을 알 때 드러난다. 그냥 밤에 진상 손님이 와서 마감이 힘들다는 점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 진상 손님이 와서 그 진상 손님을 처리하는 아르바이트 노동자에게 수고의 대가가 돌아가는 게 아니라, 결국 그 아르바이트 노동자를 고용하는 점주에게 이익이 돌아간다는 점에서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이 드러나는 것이다.

누군가는 다음과 같이 반문할 것이다. ‘대부분의 자영업자들이 하루하루 고단하게 장사해서 먹고 사느라 사장이 직접 마감까지 다 하는데, 그러면 그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물론 나에겐 대답이 있다. 그런 영세자영업자들 위에 또 다른 자본이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장사가 조금만 잘 되어도 임대료를 팍팍 올리는 건물주, 손해는 가맹점에게 떠넘기면서 이윤은 악착같이 뜯어가는 프랜차이즈 본사, 오히려 자신들의 소비자에게 갑질하는 거대 유통망, 통 큰 경영을 하겠다면서 좁아터진 골목 한편에 있는 슈퍼 옆에 편의점을 내는 대기업의 골목상권 침투 등등……. 이런 상황에서 영세자영업자들은 마감알바 시간대 아르바이트 노동자의 다른 이름이다. 자신들이 일해서 번 돈을 거대자본에게 바쳐야하기 때문이다.

마르크스가 이야기하고자 했던 자본주의의 모순은 거대하기만 하고 거창하기만 한 말이 전혀 아니다. 당장 어머니 아버지가 매일 야근에 시달리는 직장인이고, 학교 친구는 매일 마감알바 하느라 등골이 휜다고 신세한탄하며, 자주 가던 단골 식당이 어느새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폐업하는 게 일상이다. 자본주의의 모순은 마치 공기와도 같이 우리 곁에 존재한다. 너무 익숙해서 이게 있는지도 모르는 것이다. 우리 모두 익숙함에 속아버렸다.

익숙함을 거둬내고 세상을 바라보면 지금 우리가 발을 디디고 있는 이 땅 위의 모든 게 새로이 보일지도 모른다. 마감알바라는 일상도 알고 보니 엄청난 비밀을 숨기고 있지 않았던가. 새롭게 보이는 세상은 무섭고 낯설게 보일 게다. 그래서 그냥 모른 채 살고 싶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일상이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면 모험을 떠날 필요도 있지 않을까? 마르크스는 『자본론』을 통해 나에게 이런 메시지를 던졌다.

잠시 익숙함을 벗어나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자. 글 중간에서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삶을 유지하는 것에 관해 잠시 언급했다. 언급했듯 삶을 유지하는 것에는 의식주 이외에도 많은 것들이 있다. 필자는 이 사실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생물인 이상 기본적으로 자신의 생명활동을 유지하는 게 가장 기본적인 목적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인간이 이성을 가지고 사고할 수 있으며 감성을 가지고 타자와 관계 맺을 수 있다면 우리는 의식주 이외의 것도 상상해야 한다. 그런 상상력을 가진 인간들이 서로서로 손잡고 힘을 모을 때,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의지가 실현되어 세상을 바꿔나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바뀐 세상에서는 내 친구가 마감알바로 고통 받지도 않을 것이며, 행복하게 장사하던 사장님이 계시던 단골가게가 망하지도 않을 것이다. 일하다 죽고 다치는 사람도 없으리라 믿는다. 그런 세상이 오면 좋겠다.


  1. 칼 마르크스 지음, 『자본론Ⅰ 상』, 김수행 옮김, 비봉출판사, 2015, 2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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