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세 번째 시간, ‘포기’란 없다 [시가 필요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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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필요한 스물세 번째 시간, ‘포기’란 없다

 

마리횬

 

♦ 귀로 읽는 시간-하나(재생버튼을 눌러주세요~)

어제 오랜 친구를 만났어요. 처음 알게 된 때부터로 계산하면 13년, 마지막으로 만난 때부터로 계산하면 약 9년 만에 연락이 되어 만나는 셈이었는데요,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까 궁금했습니다. 어렴풋이 상상을 해보기도 했죠. 하지만 친구는 제가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전공을 다시 공부했고, 제가 생각지도 못한 분야의 전문인이 되어 있더라구요. 그렇게 되기까지의 친구의 방황과 고민의 시간, 쉽지 않았을 선택의 과정 등을 들으며 한편으로 너무나 신기하기도 했고, 한편으로 이 단계에 오기까지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그 많은 어려움을 견뎌낸 친구가 참 대견하기도 했습니다.

친구를 만나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생각난 시 한 편이 있었습니다. 그 시를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어서 가져왔습니다. 송경동 시인의 시 <먼저 가는 것들은 없다>입니다.

 

 

먼저 가는 것들은 없다

                                   송경동

 

몇 번이나 세월에게 속아보니

요령이 생긴다 내가 너무

오래 산 계절이라 생각될 때

그때가 가장 여린 초록

바늘귀만 한 출구도 안 보인다고

포기하고 싶을 때, 매번 등 뒤에

다른 광야의 세계가 다가와 있었다

 

두 번 다시는 속지 말자

그만 생을 꺾어버리고 싶을 때

그때가 가장 아름답게 피어나보라는

여름의 시간 기회의 시간

사랑은 한 번도 늙은 채 오지 않고

단 하루가 남았더라도

우린 다시 진실해질 수 있다

 

♦ 귀로 읽는 시간-둘(재생버튼을 눌러주세요~)

이 시의 화자는 아마 어느 정도 나이가 든, 중년의 한 사람일 것으로 생각됩니다. 시를 읽으면 이 화자는 살면서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겪으며 적잖이 굴곡진 인생을 산 사람으로 보입니다. 바늘귀만 한 출구도 안보여서 포기하고 싶었을 때, 그만 생을 꺾어버리고 싶었을 때가 있었다고 표현하고 있죠.

우리도 이런 순간들이 있지 않나요? 어쩌면 지금 이 시간에도,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도 그런 녹록치 않은 삶을 살아야만 하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시인은 말합니다. 내가 너무 오래 살았다고 생각 될 때, 생을 꺾어버리고 싶을 때가 있지만 그 때가 가장 여린 초록, 그 때가 가장 아름답게 피어나보라는 여름의 시간, 기회의 시간이라고 말입니다.

소나무를 한 그루 생각해볼까요? 모든 나무들 중에 특히 소나무는 무수한 세월을 살아가죠. 어느 날, 소나무가 “너무 오래” 살았다고 느끼는 순간이 찾아왔다고 생각해 봅시다. 몇 백 년을 살고 있으니, 이제 왠지 이파리도 좀 시든 것 같고, 볼 품 없다고 느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 때가 그 나무에게는 가장 여린 초록의 시간이겠죠.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비하면 말이죠.

시인은 그것을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이야기 해 주고 있습니다. 오년 후, 십년 후의 너의 모습에 비하면 지금이 “가장 여린 초록빛”이라고 말입니다.

 

바늘귀만 한 출구도 안 보인다고

포기하고 싶을 때, 매번 등 뒤에

다른 광야의 세계가 다가와 있었다

 

이 시인의 시처럼, 앞이 꽉 막힌 상황에서 나에게는 도대체 출구가 없다고 불평할 때, 사실은 등 뒤에 그저 작은 ‘출입문’과는 비교할 수 없는 광활한 길이 열려 있는데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어쩌면 쉽고 편하고 안전한 길을 ‘출구’라고 정의해 놓고, 진정한 출구인 ‘광야의 세계’를 너무 쉽게 놓쳐버렸던 것은 아닐까요?

 

두 번 다시는 속지 말자

그만 생을 꺾어버리고 싶을 때

그때가 가장 아름답게 피어나보라는

여름의 시간 기회의 시간

사랑은 한 번도 늙은 채 오지 않고

단 하루가 남았더라도

우린 다시 진실해질 수 있다

 

이 시를 읽으면서 예전에 버스에서 들었던 한 라디오 사연이 기억났습니다. 어느 95세 할머니의 사연이었는데, 듣다가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95세 할머니가 자신의 인생 목표로 지금 제2외국어 공부를 시작했다는 사연이었거든요. ‘아니 그 늦은 나이에 무슨 외국어를 공부하시려고 하지?’ 싶었는데, 이 분의 사연을 끝까지 듣고는 더 놀랐습니다. 30년 전, 당신이 65세 생일을 맞이했을 때, 그 때는 자신이 이렇게 30년이나 더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었고, 이젠 늙었다고 생각하고 그냥 하루하루를 의미 없이 보냈다는 겁니다. 그 때 미리 알았더라면 아마 자신은 지금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95세 생일을 맞이했을 거라고.. 그러면서, 이제 10년 후, 자신의 105세 생일이 왔을 때 또 지금처럼 10년 전을 아쉬워하며 후회하지 않기 위해, 지금 새로운 인생을 시작 하련다는 내용의 사연이었습니다. 대단하죠?

이 시의 표현처럼, 세상은 우리를 자주 속이려고 합니다. “넌 안 돼,” “이젠 너무 늦었어,” “네 나이를 생각해라,” “네 나이또래 친구들은 벌써…,” “이제 와서 무슨!” “네가 그럴 능력이 되니” 등등 힘 빠지게 만드는 직접적인 말, 암묵적인 사회적 분위기에 어깨가 짓눌릴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두 번 다시는 속지 말자는 이 시인의 다짐처럼, 그만 생을 꺾어버리고 싶을 때, 그 때가 가장 아름답게 피어나보라는 기회의 시간이라는 것, 그리고 뒤를 돌아보면 진짜 내가 가야할 ‘출구’가 있다는 것.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시와 함께 들으면 좋을 노래 소개해 드릴게요. <팬텀싱어>라는 프로그램 기억하시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는데요, 성악가, 뮤지컬 배우, 일반인들이 모여 노래경연을 하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그 프로그램에서 들었던 곡 중에 한 곡 가져 왔습니다. 이탈리아의 국민가수라고 불리는 Renato Zero 원곡의 “L’impossibile Vivere” 라는 제목의 곡인데요, 번역하면 ‘불가능한 삶’이라는 뜻이 됩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노래는 “불가능해 보일지라도 살아내야지”라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시인의 시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 힘 있는 가사가 가슴을 울리는 곡입니다. 어제 만났던 친구에게도 들려주고 싶네요. “살아있음을 느끼는 삶을 살자. 너보다 더 잘해내는 사람은 없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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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impossibile Vivere – https://youtu.be/HOhsVSmqKuQ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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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 팟케스트 <마리횬의 시와 음악공간(2012)>에서 러시아의 시와 노래를 직접 번역하여 소개하는 방송을 진행하였고, 호주 퀸즐랜드주 유일의 한인라디오방송국에서 시를 읽고 생각을 나누는 <시가 필요한 시간(2016-2018)>을 진행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연세대학교에서 노어노문학을 전공하였고, 현재 동대학원에서 러시아 문학을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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