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번째 시간, 손 [시가 필요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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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번째 시간, 손

 

마리횬

 

♦ 귀로 읽는 시간-하나(재생버튼을 눌러주세요~)

‘귀로 읽는 시간’입니다. 위 재생버튼을 누르시면 편하게 ‘시가 필요한 시간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시가 필요한 시간의 마리횬입니다. 여러분, 요즘 손 잘 씻고 계신가요? 2월말에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이 발발한 이후로 지금까지도 전 세계적으로 그 추세가 꺾일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는데요, 한국의 상황은 그나마 안정권에 접어들고 있는 것 같지만, 여전히 조심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 때문에 이번(2020년 초) 겨울에는 독감과 감기 환자의 수가 확연히 줄었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코로나를 예방하려고 손을 자주 씻고 마스크를 모두 착용하고 지내다 보니, 사람들 사이에서 감기 바이러스가 활발히 옮겨지지 않았다는 것이죠. 손 씻기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이번에 새삼 느꼈습니다.

오늘 왜 갑자기 손에 대한 이야기를 하냐구요? 오늘 여러분과 함께 읽을 시가 바로 ‘손’에 관한 시이기 때문이죠. 오늘 제가 가져온 시는 정호승 시인의 <손에 대한 예의>입니다. 제목부터 심상치가 않죠? 여러분은 평소에 ‘손’하면 어떤 이미지가 가장 먼저 떠오르시나요? 저는 악수하는 이미지나 하이파이브 하는 이미지도 생각이 나고,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 와 같은 말도 생각이 납니다.

생각해보면 ‘손’이 의미하는 것이 꽤 많아요. 누군가의 손을 보면 때론 그 사람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그 사람이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어렴풋이 알 수 있죠. ‘인생’까지는 아니더라도, 한 사람의 손을 보면 그 사람의 성격이 어느 정도 손에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손톱을 예쁘게 길러서 아주 화려한 네일 아트로 손을 꾸미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무 꾸밈없이 손톱을 바짝 깎는 사람도 있죠. 손만 보아도 어느 정도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약간은 비약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내 손이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준다면, ‘손에 대한 예의’라는 것은 어쩌면 곧 내가 지켜야 할 ‘나 자신에 대한 예의’와 같은 말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손’에 대해서 어떤 예의가 있을까, 우리는 손에게 어떤 예의를 지키면서 살아가야 할까.. 시인의 시를 통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봅시다.

 

 

손에 대한 예의

                               정호승

 

가장 먼저 어머니의 손등에 입을 맞출 것

하늘 나는 새를 향해 손을 흔들 것

일 년에 한번쯤은 흰 눈송이를 두 손에 고이 받을 것

들녘에 어리는 봄의 햇살은 손안에 살며시 쥐어볼 것

손바닥으로 풀잎의 뺨은 절대 때리지 말 것

장미의 목을 꺾지 말고 때로는 장미가시에 손가락을 찔릴 것

남을 향하거나 나를 향해서도 더 이상 손바닥을 비비지 말 것

손가락에 침을 묻혀가며 지폐를 헤아리지 말고

눈물은 손등으로 훔치지 말 것

손이 멀리 여행 가방을 끌고 갈 때는 깊이 감사할 것

더 이상 손바닥에 못 박히지 말고 손에 피 묻히지 말고

손에 쥔 칼은 항상 바다에 버릴 것

손에 많은 것을 쥐고 있어도 한 손은 늘 비워둘 것

내 손이 먼저 빈손이 되어 다른 사람의 손을 자주 잡을 것

하루에 한번 씩은 꼭 책을 쓰다듬고

어둠 속에서도 노동의 굳은살이 박인 두 손을 모아

홀로 기도할 것

 

♦ 귀로 읽는 시간-둘(재생버튼을 눌러주세요~)

네, 정호승 시인의 <손에 대한 예의> 들어보았습니다. 이 시에서 말하는 손에 대한 예의는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우리의 ‘삶에 대한 충고’와 다름이 없는 것 같습니다. 시가 조금 길지만, 주요 내용을 정리해보면 몇 가지로 묶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1) 부모님의 사랑을 늘 기억할 것

2)여유를 가지고 살며 자연을 사랑할 것

3)비굴하지 않은 선한 삶을 살 것

4)때론 나를 위해 고독할 것

 

시인이 가장 첫 번째로 꼽은 손에 대한 예의는 바로 어머니의 손등에 입을 맞추는 것입니다.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놓치기 쉬운 존재가 우리의 부모님이죠. 여러분은 언제 마지막으로 부모님의 손을 잡아 보셨는지 모르겠네요. 부모님과 따로 떨어져서 살다 보면, 전화나 메시지는 자주 할지 몰라도, 부모님을 찾아뵙는 시간을 자주 가지기는 참 쉽지 않은 요즘 젊은이들이죠.

부모님을 찾아뵙는다면 한번 부모님의 손을 꼭 잡아보시기 바랍니다. 그 손이 없었다면 오늘의 우리도 이만큼 자랄 수 없었을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시인이 ‘가장 먼저’ 지켜야 하는 손에 대한 예의로 어머니의 손등에 입을 맞추라는 항목을 거론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합니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그 근원, 원천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니까요.

두 번째로 시인은 자연으로 눈을 돌립니다.

 

하늘 나는 새를 향해 손을 흔들 것

일 년에 한번쯤은 흰 눈송이를 두 손에 고이 받을 것

들녘에 어리는 봄의 햇살은 손안에 살며시 쥐어볼 것

손바닥으로 풀잎의 뺨은 절대 때리지 말 것

장미의 목을 꺾지 말고 때로는 장미가시에 손가락을 찔릴 것

 

위에서 말하는 자연을 어루만지는 손의 행위들을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을 찾을 수 있는데요, 바로 ‘여유’입니다. 마음에 여유가 없는데 하늘을 올려다보고 하늘에 나는 새를 향해 손을 흔들 수 있을까요? 여유가 없이 분주하게 살아간다면 겨울에 내리는 눈송이도, 봄에 내리쬐는 햇살도, 여름에 길 한편에 자라난 풀잎, 가을에 핀 장미도 그저 스쳐 지나칠 뿐 눈 여겨 볼 수 없을 것이고, 계절의 순간순간의 아름다움도 느끼지 못하고 사는 삶이 될 겁니다. 그래서 시인은 분주한 삶의 한 자락에서 여유를 가지는 마음의 태도를 소유할 것을 충고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로 시인이 말하는 ‘손에 대한 예의’는 무엇이 있을까요?

 

남을 향하거나 나를 향해서도 더 이상 손바닥을 비비지 말 것

손가락에 침을 묻혀가며 지폐를 헤아리지 말고

눈물은 손등으로 훔치지 말 것

손이 멀리 여행 가방을 끌고 갈 때는 깊이 감사할 것

더 이상 손바닥에 못 박히지 말고 손에 피 묻히지 말고

손에 쥔 칼은 항상 바다에 버릴 것

손에 많은 것을 쥐고 있어도 한 손은 늘 비워둘 것

내 손이 먼저 빈손이 되어 다른 사람의 손을 자주 잡을 것

 

이 시를 읽다 보면, 말을 하지 않는 손이 때로는 어떤 언어보다도 더 많은 것을 전달하기도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남의 호의를 얻으려고 손바닥을 비빈 적은 없는지, 손가락에 침을 묻혀가며 지폐를 헤아릴 만큼 돈에 현혹된 적은 없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우리의 손이 칼을 쥐는 손이 될 수도 있지만, 상처 입은 사람의 등을 가만가만 쓸어주는 손, 놀란 아이의 가슴을 토닥토닥 두드려주고 쓸쓸한 사람의 손을 잡아줄 수 있는 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시인은 비굴하지 않은 선한 삶을 살기를 충고하고 있죠. 이 시의 표현에서처럼 나를 위한 많은 것들을 쥐고 있더라도 한 손은 비워두고, 다른 사람의 손을 자주 잡아주길 바라봅니다. 그럴 때 우리 손은 어떤 언어보다도 더 마음을 전달하는 도구가 되겠죠. 우리는 우리의 손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나요?

마지막으로는 ‘때로는 나를 위해 고독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읽어봅니다. 저는 마지막에 어둠 속에서도 홀로 기도할 것이라는 부분이 좋았습니다. ‘기도’라는 것은 여럿이 나누는 왁자지껄한 대화가 아니라, 나 홀로 절대자인 신과 나누는 고독한 대화죠. 그 시간을 통해서만이 얻어지는 통찰과 반성, 위로의 경험이 있기 마련입니다. 시인은 그 시간을 가지기를 충고하고 있습니다. 또한 어둠 속에서도 노동의 굳은살이 박인 두 손을 모아 홀로 기도할 것이라는 시행은, ‘기도’의 시간이 노동자이건 회사원이건, 배운 사람이건 못 배운 사람이건, 누구에게나 열려있다는 의미로도 읽힙니다. 내가 비록 어둠에 있더라도, 또 손에 박혀있는 굳은살처럼 내 삶이 녹록하지 않더라도, 인생에 어떤 얼룩이나 굳은살이 있다 하더라도 기도의 문은 늘 열려 있다는 거죠. 누구든 두 손을 모아 홀로 기도하는 시간을 가질 것. 그것이 손에 대한 예의다. 이것을 끝으로 시는 끝이 납니다.

우리가 이 시에서 말하는 손에 대한 예의를 지키며 살아가면, 그건 곧 나 자신에 대한 예의를 지키며 사는 삶이 되겠죠.

이 시와 함께 들으면 좋을 노래로 연주곡을 하나 가져왔습니다. 우리나라 가곡 중에 <연(緣)>이라는 제목의 가곡이 있는데요, 그 멜로디를 첼리스트 정우리의 연주로 담은 곡입니다. 오늘 ‘손’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요, 손으로 연주하는 악기들이 참 많이 있지만, 그 가운데 첼로의 선율이 주는 묵직한 감동을 여러분과 나누려고 가져왔습니다. 이 곡 들으시면서, 오늘 시를 통해 들었던 충고들 마음에 잘 담으시고 기억하면서 하루를 잘 마무리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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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리(첼로) – <연> https://youtu.be/MPqCDvU2g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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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마리횬

아이폰 팟케스트 <마리횬의 시와 음악공간(2012)>에서 러시아의 시와 노래를 직접 번역하여 소개하는 방송을 진행하였고, 호주 퀸즐랜드주 유일의 한인라디오방송국에서 시를 읽고 생각을 나누는 <시가 필요한 시간(2016-2018)>을 진행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연세대학교에서 노어노문학을 전공하였고, 현재 동대학원에서 러시아 문학을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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