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아홉 번째 시간 – 다시, 사랑 [시가 필요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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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아홉 번째 시간 – 다시, 사랑

 

마리횬

 

귀로 읽는 시간-하나(재생버튼을 눌러주세요~)

  이번 주에도 ‘귀로 읽는 시간’이 마련되었습니다. 위 파일을 누르시면 편하게 ‘시가 필요한 시간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시가 필요한 시간의 마리횬입니다. 오늘은 “다시,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합니다. 제가 이 코너를 시작하고 두 번째 시간이었나요? ‘사랑’이라는 주제로 김인육 시인의 시 <사랑의 물리학>을 들려드렸던 적이 있습니다. 기억하고 계실지 모르겠네요. 수학과 과학에 존재하는 법칙이 있죠. 질량의 크기는 무게를 말하고, 부피는 물체의 가로 세로 높이를 곱한 크기를 가리킵니다. 보통 무게가 무거우면 그 물체의 크기도 더 크기 마련이죠. 무게를 재는 추를 생각해보면, 5g짜리 추와 50g짜리 추가 있다면 50g짜리 추가 훨씬 그 부피가 크지 않겠어요? 그것이 자연의 물리학에서 말하는 법칙이라면, 김인육 시인은 ‘사랑의 물리학’이라는 새로운 법칙을 내 놓으며 우리의 생각을 뒤엎습니다. 궁금하시다면, [시가 필요한 시간] 두 번째 시간을 찾아보시면 되겠습니다.   🙂 

오늘 “다시,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또 다른 한 편의 사랑 시를 읽어보려고 합니다. 지난 번 <사랑의 물리학>과 함께 읽어도 좋을 시로 한 번 골라 봤는데요, 장석남 시인의 <배를 매며>라는 제목의 시입니다. 장석남 시인은 1965년 인천에서 출생했고, 198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데뷔한 시인입니다. 현재 한양여대 문예창작과 교수이면서 시인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계신 분이시죠. <배를 매며>라는 제목만 들어서는 사실 사랑에 대한 시라는 감이 잘 안 올 수도 있겠는데요, 시를 한 번 듣고 더 이야기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장석남 시인의 시 <배를 매며> 입니다.

 

 

배를 매며

 

                       장석남

 

아무 소리도 없이 말도 없이

등 뒤로 털썩

밧줄이 날아와 나는

 

뛰어가 밧줄을 잡아다 배를 맨다

아주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배는 멀리서부터 닿는다

 

사랑은, 호젓한 부둣가에 우연히,

별 그럴 일도 없이 넋 놓고 앉았다가

배가 들어와

던져지는 밧줄을 받는 것

그래서 어찌할 수 없이

배를 매게 되는 것

 

잔잔한 바닷물 위에

구름과 빛과 시간과 함께

떠 있는 배

 

배를 매면 구름과 빛과 시간이 함께

매어진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사랑이란 그런 것을 처음 아는 것

 

빛 가운데 배는 울렁이며

온종일 떠 있다

 

귀로 읽는 시간-둘(재생버튼을 눌러주세요~)

 

모든 사랑에 대한 시 – 예고 없이 찾아오는 사랑

이 시에서 시인은 배가 정착하는 것과 사랑이 다가오는 것을 함께 연결 시키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시를 들으면서 여러분들 머리 속에 나도 모르게 떠오르는 어떤 존재가 있을 거 같아요. 아무 소리도 없이 말도 없이, 등 뒤로 털썩” 이렇게 예고 없이 찾아오는 사랑이라는 점에서 아무래도 ‘첫사랑’을 떠올리게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런데 사실 ‘첫사랑’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든 사랑이 다, 사실은 다 예고 없이 시작됩니다. 그렇죠? 그렇다면 이 시는 예고 없이 찾아오고 예고 없이 시작되는 모든 사랑에 대한 시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심지어 밧줄이 ‘등 뒤로’ 날아 온다고 말하고 있으니까, 정말로 언제 올지 모르는 상태에서 누군가를 만나게 되는 거죠.

이 시에 ‘호젓한 부둣가’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호젓하다’ 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호젓하다’ 라는 말에는 두 가지 뜻이 있는데요, ‘무서우리만치 고요한’이라는 의미와 함께, ‘매우 홀가분하여 쓸쓸하고 외롭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보통 ‘홀가분하다’는 느낌은 언제 가지게 될까요? 예를 들면.. 오래 준비했던 시험을 마침내 다 끝냈을 때 라던지, 한바탕 청소를 다 하고 자리에 앉았을 때, 그럴 때에 “와 진짜 홀가분하다” 라고 말하는 것 같아요. 무언가를 훌훌 털어버렸을 때의 기분과 상황일 때 쓰죠.

그렇다면 말 그대로 그냥 ‘홀가분’만해야 하는데, 이 ‘호젓하다’라는 말에는 “홀가분하여 ‘쓸쓸하고 외롭다’”라고 그 뒤에 ‘외로움’의 느낌이 덧붙여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홀가분한 건 홀가분한 거고, 쓸쓸하고 외로운 건 쓸쓸하고 외로운 건데, 홀가분해서 쓸쓸하고 외롭다는 건… 생각해보면 잘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라는 느낌도 들죠. 왜 시인은 사랑에 대한 비유로 ‘부둣가’라는 배경을 잡으면서 ‘외로운 부둣가’라던지, ‘조용한 부둣가’가 아니라, ‘호젓한 부둣가’라고 썼을까요? 한 번 생각을 해 보죠.

혼자가 되면, 사실 이것 저것 생각하거나 신경 쓸 필요가 없으니까 굉장히 편하고 홀가분한데, 막상 또 곁에 아무도 없으면 뭔가 마음 한 켠이 쓸쓸하고 외롭기도 합니다. 그렇죠? 그 감정을 딱 정확하게 표현하는 말이 바로 ‘홀가분하여 쓸쓸하고 외로운’이라는 뜻의 ‘호젓하다’가 아닐까 싶어요. 그렇기 때문에 이 ‘호젓한 부둣가’라는 표현은, 사랑에 대해서, 사랑을 기다리는 마음에 대해서 아주 적절하게 표현한 단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혹시… 지금 굉장히 호젓해지셨나요? J  

 

문득 들어온 배, 문득 던져진 밧줄

이 시가 사랑에 대해서 아주 많은 것들을 이야기하고 있죠. 그래서 공감 가는 표현들이 많은 거 같아요. 어느 날 밧줄이 던져지고, 배가 들어오고 하는 사랑이 시작되는 경험을 하긴 했는데… 우리는 알고 있죠. 그것이 그저 아름답게 끝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죠. 사랑이라는 게 어느 날 불쑥 찾아온다는 것도 공감이 되고, 다 공감이 되는 표현이라는 것도 인정하지만!! 그렇게 왔다가 또 떠나 간단 말이죠. (그럴 거면 들어오지를 말던지,..) 그런데 한편으로 배의 입장에서는 ‘아니 그러면 밧줄을 매지를 말던지’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 이쪽 입장에서는 “아니, 그러길래 누가 들어 오래?” 라고 또 말할 수도 있을까요? 다가온 배가 잘못인 건가, 아니면 던져진 밧줄을 맨 내가 잘못인 건가… 그 책임을 묻기 시작하면 끝이 없습니다. 따가운 공방전이 되겠죠.

 그런데 사실 이 시를 잘 읽어보면, 들어오는 ‘배’도, 그리고 그 배를 매는 ‘나’도, 어느 쪽에도 책임이 없음을 알 수 있어요. 이 시를 잘 보면 밧줄이 ‘던져진다’라고 되어 있지, 밧줄을 던진 존재가 누구인지는 나오지 않죠. 배에 손이 달린 것도 아니니까 배는 밧줄을 직접 던질 수가 없고, 그렇다면 과연 누가 던진 것인지… 우리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것도 사랑이 시작되는 단계에 대한 아주 적절한 설명이 되지 않나 생각해요.

제 개인적인 경험을 이야기 해 보자면, 바야흐로 제가 러시아에 유학을 갔을 때였습니다. 도착한지 몇 일 안 되어서 학교 행사에 유학생 신분으로 초대가 되었어요. 그 행사 중간에 유학생 학생회에서 러시아 소설 작품 중 한 장면을 연극으로 만들어서 무대에 올리는 순서가 있었고, 한 한국인 남학생이 무대에서 노래를 불렀는데… 너무 잘 부르더라구요. 굉장히 인상적으로 무대를 봤고, 한 눈에 반해버렸죠. 그게 어떻게 보면 이 시에서 말하는 ‘밧줄’이지 않았을까요? 그 사람도 일부러 나에게 던진 것이 아니고, 나도 억지로 잡아 끈 것도 아니고, 아주 우연한 기회에 갑작스럽게 던져진 밧줄이었던 셈이죠.

그날 이후 알고 보니 같은 기숙사 건물에 사는 남학생이어서 서로 조금씩 친해졌습니다. 아주 천천히 조용히 배가 들어 온 셈이고, 그 사이에 저는 그 친구를 좋아하게 되었죠. 그러니까 나도 모르게 던져진 밧줄을 매었던 것이고, 그 친구라는 배가 내 호젓한 부둣가로 천천히 와서 머물렀던 것이죠. 그래서 어떻게 되었냐구요?

몇 개월 후에 그 친구가 곧 한국에 들어가게 되는 상황이 찾아왔고, 용기를 내서 저의 마음을 이야기 했습니다. 좋아한다고. 그런데 그 친구도 저를 좋아하지만 친구로만 좋아한다는 대답을 들었어요. 그 이후로 그 친구가 한국에 돌아가기 전까지 계속 친구로 잘 지냈지만, 저는 한 동안 좋아하는 마음을 살짝 숨기고 친구로 지내야 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저도 모르는 사이에 그토록 좋아했던 마음이 점점 작아지더라구요. 밧줄이 어느 새 풀려서 배가 떠난 셈이죠.

 

떠나간 사랑도 아름답다

아까도 우리가 잠깐 얘기했지만, “누군가를 정말 사랑하면 뭐하냐, 내가 원하든 원치 않든 떠나가지 않냐”라고, 그리고 “그렇게 떠나 갈 거였으면 들어오지를 말았어야 되는 거 아니냐”라고 이야기를 했었는데요, 그런데 이 시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 “배를 매면 구름과 빛과 시간이 함께 매어진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사랑이란 그런 것을 처음 아는 것”이라고 하거든요.

저는 이것도 정말 사랑에 대해서 잘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배와 함께 구름과 빛과 시간이 함께 매어져 있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생각해보면, 이것은 배가 떠나간 다음에야 알 수 있는 것 같더라구요. 배가 떠나가고 그 자리가 드러나게 되었을 때, 그때서야 “아, 배만 머물렀던 게 아니구나, 그 사람이 머물렀던 장소, 그 사람이 있었던 시간, 그 때의 구름의 모양, 빛의 빛깔 그런 것들이 다 머물렀던 거구나” 라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되는 거 아닐까 싶어요. 그리고 시인은, 그것을 알게 되는 것 역시도 사랑이라고 정의하고 있죠.

 밧줄을 매고, 배를 붙잡아 매고, 그 배를 내 부둣가에 머물게 두는 것만이 사랑이 아니라, 아이러니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어쩌면 떠나 가야지만(떠났을 때에 비로소) 알게 되는 것 그것이 사랑이 아닐까라고 시인은 말하고 있는 거죠.

아…. 다시 호젓해지네요..

 

모든 사랑에 대한 시 – 다시, 사랑

예전에 제가 들었던 어느 강의에서 한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한 적이 있어요. “많은 문학작품이나 드라마, 영화, 노래가사에 왜 성공한 사랑 이야기는 별로 없고, 이별 이야기나 실패한 사랑 이야기, 애틋하게 이어질 듯 말 듯 하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들은 그렇게 많은 걸까?” 라고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그리고 생각 끝에 내린 결론을 한 문장으로 말씀하셨는데요, “성공한 사랑은 아기를 낳고, 실패한 사랑은 이야기를 낳는다”였습니다. 아기를 뜻하는 프랑스어(Enfant)는 다르게 풀이하면 ‘말 없음(En-fant)’이라고도 해석이 가능하게 되는데요, “성공한 사랑에는 아기가 생기지만, 실패한 사랑에게는 아기(말 없음)를 대신해 무수한 이야기들이 나오게 된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럴 듯하죠?

비록 사랑이 실패했다고 하더라도 대신 그 사랑으로 아름다운 수많은 이야기들을 남긴다면, 그것 역시도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요? 이 시를 읽으면서 “성공한 사랑이든, 혹 실패한 사랑이든, 아름답지 않은 것은 없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장석남 시인도 시를 통해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어요. 여러분들도 이 시를 읽으면서 여러분 만의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를 내려 보시기 바랍니다.

이 장석남 시인의 시 <배를 매며>와 함께 들으면 좋을 노래로 곽진언의 <고스란히>라는 곡 가져왔습니다. 이 노래에는 내가 놓아버린 적이 없는데 어느새 끈이 풀려 멀어져 버린 사랑의 이야기가 그려져 있습니다. 문득 찾아왔다가 스르륵 떠나버리는 사랑의 이야기가 가사에 잘 드러나면서 이 시와 참 많이 연결이 되더라구요. 호젓한 부둣가에 앉아 있다고 생각하면서 한번 감상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럼, 저는 2주 후에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곽진언  – <고스란히> https://youtu.be/2c181Ra66as

 


필자 마리횬

아이폰 팟케스트 <마리횬의 시와 음악공간(2012)>에서 러시아의 시와 노래를 직접 번역하여 소개하는 방송을 진행하였고, 호주 퀸즐랜드주 유일의 한인라디오방송국에서 시를 읽고 생각을 나누는 <시가 필요한 시간(2016-2018)>을 진행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연세대학교에서 노어노문학을 전공하였고, 현재 동대학원에서 러시아 문학을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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