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Too운동에 토를 다는 그대들에게 [피켓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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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Too운동에 토를 다는 그대들에게>

 

이나연

 

현재 한국에서는 성폭력 사실을 고발하는 #MeToo운동이 한창이다. 영화계, 문학계, 예술계, 정치계, 교육계까지. 여태껏 얼마나 많은 피해가 ‘피해가 아닌 일’로 치부되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피해자들이 혼자서 참아냈어야 할 그 울분을, 상상만 하더라도 고통스럽다. 나도 성폭력 피해자였기 때문이다.

가해자는 연인 관계에 있던 자였고 그때 나는 애인 사이의 ‘강간’이 범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기에 고소도 하지 않았다. 갑작스레 주어진 괴로움 앞에서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할 일이라 생각하며 자책하는 것이 내가 당시에 할 수 있던 것의 전부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그것이 분명한 범죄라는 것을 깨달았고 이후 나는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공개적으로 그를 고발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에게 이러한 메시지를 받았다. “나, 네 글 보고 충격 받았어. 우리 얘기 좀 나눌 수 있을까?” 자기가 잘못했다는 걸 전혀 몰랐다는 듯이 뻔뻔하게 연락을 남긴 그를 보며 나는 또다시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지금 #MeToo운동을 하며 피해 사실을 알린 피해자들 또한 가해자들의 태연한 부인 앞에서 나와 같은 분노를 느낄 것이다. 그리고 그녀들을 그리고 나를 피해자로 만든 일이 분명 그 하나만이 아닐 거라는 사실을 잘 알기에 더욱 화가 난다. 만일 성폭력에 대한 경각심이 높은 사회에서 살았더라면, 여성들이 당당하게 고소하고 나섰을 일이 더욱 많았을 테다. 한 명의 피해자로서 내가 그러지 않았던 건 신고해봤자 피해 사실을 증명하는 과정에서 나만 더 답답하고 힘들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경찰이 내게 2차 피해를 줄 것 같다는 두려움, 재판을 위해 돈을 들였어도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지 못할 거라는 불신 그리고 이 일을 진행하며 오롯이 내가 감당해야 할 신체적, 정신적 스트레스. 이 모든 걸 견디고 싶지 않았기에 그냥 운이 좋지 않아 생긴 일이라고 넘긴 일들이 무수하다.

그러나 중요한 건, 이는 결코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내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만 듣더라도, 성폭력을 겪었으나 가해자를 처벌하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나처럼 사법기관을 믿지 못해 법적으로 처리할 생각조차 안 한 이들이 대부분이다. 고민 끝에 경찰서에 신고를 한 사람들도 “이런 일은 너무 사소해서 사건으로 처리되지 않는다, 관련 법이 없어서 처벌할 수 없다, 소문나면 어차피 당신만 손해니 고소하지 말고 그냥 ‘좋게’ 합의해라” 등의 소리나 해대는 경찰들로 인해 또 다른 상처를 입었다. 그리고 이런 일들이 당연해지면서 피해자는 점점 더 가해자를 고발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과연 이들은 고소하지 않은 것인가, 못한 것인가? 그들이 그때 신고하지 않았던 게 정말 괜찮아서 그랬던 것인가?

이처럼 한국은 피해자가 가해자를 신고했을 때, 그들이 법적으로 합당한 처벌을 받을 거란 믿음을 전혀 주지 못하는 사회였다. 그렇다면 사적인 처벌이 가능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털어놓으면 비난의 화살은 피해자를 향했고 가해자는 가해자들끼리 만든 방패 속에서 안전하게 지낼 수 있었다. 그랬기에 많은 여성은 자신의 성폭력 피해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걸 두려워했던 것이다. 한국처럼 여성 인권에 대한 인식이 척박한 곳에서 가해자를 고발하는 일에는 엄청난 용기와 그 일련의 과정에서 지치지 않을 힘이 필요했다. 그리고 이 일을 거뜬히 해낼 수 있는 이가 많지는 않았을 테다. 그러므로 지금 성폭력 피해 사실을 제보하는 피해자들에게 “그때 말했어야지, 왜 이제 와서 그래?”라고 비난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현재 변화가 발생하고 있는 건, 여성들의 폭로가 실질적인 처벌로 이어지는 것을 목격하며 피해자들이 가해자들을 제대로 징벌할 수 있을 거란 가능성을 엿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또, 이제는 전처럼 내게 있었던 일을 말하더라도 나를 책망할 사람들보다 내 편이 되어 함께 싸워줄 이가 많을 거라는 믿음이 싹트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남성들은 그들의 더러운 편의를 위해 의도적으로, 암묵적으로 ‘그들만의’ 무죄의 기준을 만들어냈다. 자기들 멋대로 여성을 갖고 놀기 위해 서로의 죄를 눈감아주고 감싸줬다. 그렇게 남성들은 그들이 저지른 범죄를 범죄가 아니라고 밀어붙이며, 범죄자이면서도 안일하게 지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는 헤아릴 수 없는 피해자들의 억울함과 울분을 양산했다. 그러나 그들의 뻔뻔함을 보며 참지 않는 여성들의 움직임에 의해 그 기준은 점차 바뀌어나갈 것이다. 천박한 그들의 결속이 만들어낸 결백이, 더는 통하지 않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의 목소리를 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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