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이야기 [침몰한 세월호 침몰한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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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벼리

출판사에서 일하는 나는 오늘 다음 날 있을 출판사 총판 회의에 필요한 자료 준비와 출시될 도서들을 정리하느라  저녁 식사도 거르고 10시 30분까지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밥도 못 먹고 온 나에게 신랑은 안쓰러운지 옷도 갈아 입지 않은 내게 빨리 소파에 앉으라며 테이블에 늦은 저녁을 차렸다.
몇 번을 데웠는지 모른다는 따근한 두부찌개. 나랑 같이 먹으려고 신랑은 김치볶음밥으로 우선 먹었다고…

신랑의 전매특허 두부찌개는 늘 맛있다. 오늘은 더 맛있다. 그 마음이 고마워서 더 맛있다. 목마름이 밀려와 맥주 한 캔 마시고 싶다고 했더니 내가 오기 전에 담배 사러 나갔다가 맥주도 사서 미리 냉장고에  뒀노라고.
이렇게 말하면 신랑은 집에서 살림만 하는 남자로 오해받을까? 살짝 걱정도 되지만 내 남자는 그런 거에 개의치 않는다. 무엇이든 잘~ 하는 사람이 하면 된다고 한다.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작년에 사들인 텔레비전에서는 세월호에 관한 101분 기록으로 이야기를 다시 꺼내 영상으로 보여준다. 신랑과 나는 세월호  이야기에 대해  “이제 좀 그만하자.”고  말하는 사람들과  목에 핏대 세우며 싸울 준비가 되어있다. 남의 고통은 어찌 그리 쉽게 잊자고들 하는지 되려 묻고 싶다. “교통사고 같은 거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정의 내리면 쉬운 표현이라 그리 했는지 모르겠으나 참으로 개탄스럽다. 나와 신랑 사이에는 아이가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살고자 약속한 부분도 있고… 나이도 이제 마흔 중반에 생각도 많다. 사실 아이를 키우며 살 자신도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신랑은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나는 아동 전문 출판사에서 일을 하고 있다.

 

누군가 내게 물었다.
세월호 탑승자 중에 가족이 있느냐고… 분노하는 내가 그렇게 비쳤는가 보다.

우리가 연결하면 연결 안 되는 고리가 있던가?
그렇다. 나도 내 아버지에게 들은 충격적인 사실이 있다.
가족 여행으로 세월호를 탔다가 엄마, 아빠, 형 모두 잃은 요셉이는 나의 먼 친척이었다.
내가 평소 친척으로 알고 지낸 사이가 아니어서 몰랐지만, 아버지는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그 주에 친인척들 모임이 있었는데  당시 사고로 인해 모임을 취소했고, 그 안타까운 사연을 뉴스로만 들었다고 하셨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하니… 주변 왈 그래서 네가 그렇구나… 세상에!
우리 다 같은 국민 아닌가?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일을 안타까워하며 목소리 좀 냈다고…
그런 관계들이 있어서 내가 그러는 것이라고 이런 취급을 당하는 건 사건보다 더 아픈 또 하나의 사건이다.
‘세월호’에 직접 탑승했거나 탑승한 가족이 있어야만, 또 다른 어떤 관계가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이야기란 말인가?

다만 그 아이들은 우리의 아이들이고 우리의 미래다. 하고 싶은 것도 많았고, 꼭 했어야 하는 일들이 지금은 미련으로 남았을 그 꿈 많은 아이들을… 우리는 그 찬란한 미래를 무참히 물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사고였다’라고 말한다. 진실은 어디에도 없고 변명만이 소란하다. 비겁한 변명들을 듣고 있노라면 화가 치밀어 올라 참을 수가 없다.

맛있게 먹던 밥을 짧게 마무리한다. 맥주를 벌컥벌컥! 목이 메어와 숨쉬기가 곤란하다. 목 아픔을 참고 있는데… 난데없이 눈물 줄기가 참아지질 않는다. 그 부모들의 속은 어찌할꼬. 그 영상을 처음 보는 것도 아니면서… 미처 공개하지 못했던 어느 부분은 정말이지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가만히 있으라고  말하고 자기들은 빠져나가겠지?”, “지난번에도 그랬었잖아”, “아~ 이러다가 혹시 죽는 거 아니겠죠?”, “마지막이 될지 모르니 부모님께 하고 싶은 말 남겨야지. 엄마, 아빠 사랑해요.”, “커튼이 이 만큼 들렸다는 건 그만큼 기울었단 말이겠죠.”, “물이 들어와요.”, “아~~~ 안돼! 정말 화가 나서 욕을 하고 싶은데 이 영상 어른들이 볼 거라 욕은 못하겠고… 아… 나는 꿈이 있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데… 이대로 죽을까 봐 걱정돼요. 아~~~.”

아프다.
많이 아프다.
그 영상 속 우리 아이들이 혹시나 했던 말들은 그리 되어 버렸다.

핸드폰 영상으로 담으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기록했을 우리 아이들의 희망을…
우리는 끊어 버렸다.

선장과 선원들은 상황실 신호도 끊고, 어떠한 조치도 하지 않은 채 ‘패닉 상태였다’라고 말하며 살고자 허둥지둥 세월호 밖으로 가까스로 빠져나왔다. 그 모습은 참으로 초라했고, 비겁했다.
또 그들을 구한 해경들은 선장인지, 선원인지 몰랐다고 했다.

선장답지 못했고, 선원답지 못했고, 해경답지 못했고, 어른답지 못했고, 인간답지 못했다.

상황실은 각각 보고만 잘 하고 있으라고…
해경들은 그 모습들을 보고도 퇴선 명령은 없다.
관저에서는 ‘세월호가 물속으로 빠져 들어간 모습을 보고 싶어’  하시니 사진으로 찍어 빨리 보고 하라고…
보고 싶어 하신다고…
민간 민박 선원들이 보다 못해 뛰어들자 해경은  접근하지 말라는 명령을 한다.

세상이 미쳐 돌아간다.

1분 1초를 불안해하며 말을 이어가는 학생들과 선생님, 그리고 사연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 어느 것이 생명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되는 것인가?
아이들의 목소리는 다급한데…
상황실 보고하는 목소리는 여유가 있고 웃음도 있고…
참으로 비통하다.

아이들은 밀려오는 공포 속에서도  다른 객실에 있는 선생님과 친구들을 걱정한다.
부모님께 보내는 메시지에는 곧 구하러 온다고 했으니 염려 말라고 안심시킨다.
선장이나 선원들이 아무런 지시 사항도 내리지 않고 그저 선내 방송으로 ‘움직이지 말고 그대로 가만히 있으라’라고  반복 방송을 하고 있다.  스피커에서 되풀이 되는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을 듣는 아이들은 위급한 상황임을 직감하고 그 지시에 따른다. 보통 다른 날이었더라면 어른들이 하는 말에 의문을 가졌을 법 한데… 이 날은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느끼고, 그대로 따르는 것이 맞다 생각해서 아마 그들 전부가 그렇게 행동한 것 같다. ‘내가 움직이면 배가 더 기울어져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갈 수도 있다’라고 생각한 아이들이  선내 방송의 지시에 의문을 품기보다는 그대로 따른게 아닐까 싶다. 어찌해야 하는지를 잘 모르는 아이들은 스스로 구명조끼를 나눠 입고 못 입은 친구들을 챙기며 불안한 감정들을 서로 다독인다.

그 공포와 불안 속에서도 웃음을 보이던 아이들은 그 상황이 그대로 진행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기에 아마 그리도 천진난만한 모습을 보였을 것이다. 그 모습을 보고도 혹자는 ‘애들이 철이 없어서 그런다’라고 한다.

같은 것을 보고도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이것은 그것과 다르다.
그냥 비판을 위한 비판인 것이다.
내 자식을 그렇게 수장시킨 부모들도 그리 말할까? 철이 없다고?
그 부모들을 대신해서 마구마구 싸워주고 싶다.

길게 끌어 봐야 국민들 세금만 더 늘어난다고 말하는 그들은 끝인지 모르겠지만,

이제 다시 시작이다.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

그 누구도 억울해서는 안 된다.

나는 이 상태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나는 책을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그것도 어린이 책!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순간순간 고민이다.
내 모든 힘을 다 동원해서…
인성이 바로 서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
꼭! 그래야만 한다.
내가 나에게 내리는 주문이다.

다시 봄이 찾아왔다.
세월호에 탑승했던 모든 사람들과 그 가족들, 그들을 도왔던 민간 잠수부와 민간 선박 선원들에게 이제 봄은 없다.
아픔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
그들이 맞는 봄이 새롭기를 희망하며 글을 마친다.

p.s  서로 나누고, 도우며… 함께 살자고 말하고 싶습니다.
                                                                              

                                                                               아픈 마음으로 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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