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탄넨바움! [베를린에서 온 편지 10]

Spread the love

오 탄넨바움!

?한상원(한철연회원/베를린 통신원)

 

*베를린에서 유학 중인 한상원 회원이 인문학 동향이나 정치 소식을 연재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12월 25일 새벽, 성탄절을 맞아 쓰는 편지.

독일에서 가장 널리 사랑받는 성탄절 노래는 독어로 탄넨바움이라고 불리는 전나무를 예찬한 곡 <오 탄넨바움(O Tannenbaum)>이다. 16세기부터 내려오던 전래동요로서, 1824년 라이프치히의 에른스트 안쉬츠(Ernst Ansch?tz)에 의해 크리스마스와 연관된 곡으로 가사가 수정되면서 대표적인 독일의 캐롤이 되었다. 전나무는 독일에서 흔하게 자라는 나무이면서 동시에 크리스마스 트리로 사용되는 나무이기 때문에 독일의 크리스마스와 겨울을 상징한다. 어느 곳에서 나무가 많은 독일에서는 한 겨울, 흰 눈에 뒤덮인 전나무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winter-196339_640

이곡은 영국으로 옮겨가 아일랜드 출신의 혁명가 Jim Connell에 의해 가사가 붙여져 1889년 <적기가(The Red Flag)>라는 민중가요로 재탄생했는데, 이 곡은 영국 노동당을 비롯한 노동운동진영뿐 아니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응원팬들에 의해 널리 불리며 여전히 전승되고 있다. 이 곡이 과거 북한에서 번안되어 <적기가>라는 군가로 사용되었는데, 우리에겐 영화 <실미도>에서 북파 암살요원들이 결의에 찬 채 이 곡을 부르는 장면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이 영화는 당시 심기가 불편했던 몇몇 우익들로부터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고소를 당하기도 했다. 국가보안법과 ‘종북’ 논란까지 불러일으킨 이 곡이 실은 독일에서 어린이들이 즐겨 부르는 평온한 느낌의 성탄 캐롤이라는 점은 우리가 사는 “실재의 사막”이 얼마나 아이러니한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총 3절로 이뤄진 노래 <오 탄넨바움>의 가사는 지역별로, 시대별로 조금씩 다르지만, 가장 고전적인 버젼은 다음과 같다. 독어로 먼저 쓰고 한글로 번역해보자.

1.

O Tannenbaum, o Tannenbaum,

wie treu sind deine Bl?tter!

Du gr?nst nicht nur zur Sommerszeit,

nein, auch im Winter, wenn es schneit.

O Tannenbaum, o Tannenbaum,

wie treu sind deine Bl?tter!

오 전나무야, 오 전나무야

너의 잎은 얼마나 충직한가!

너는 여름에만 초록빛인 것이 아니다.

아니다. 겨울에도, 눈이 올 때도 초록빛인 것이다.

오 전나무야, 오 전나무야

너희 잎은 얼마나 충직한가!

2.

O Tannenbaum, o Tannenbaum,

du kannst mir sehr gefallen.

Wie oft hat nicht zur Weihnachtszeit

ein Baum von dir mich hoch erfreut!

O Tannenbaum, o Tannenbaum,

du kannst mir sehr gefallen!

오 전나무야, 오 전나무야

너는 내 마음에 쏙 드는구나.

몇 번이고 성탄 기간에는

너라는 한 그루 나무가 이토록 나를 즐겁게 하는구나!

오 전나무야, 오 전나무야

너는 내 마음에 쏙 드는구나.

3.

O Tannenbaum, o Tannenbaum,

dein Kleid will mich was lehren:

Die Hoffnung und Best?ndigkeit

gibt Trost und Kraft zu jeder Zeit.

O Tannenbaum, o Tannenbaum,

dein Kleid will mich was lehren.

오 전나무야, 오 전나무야,

너의 옷은 내게 무언가를 가르쳐 준단다.

희망과 강인함은

매 시간 위안과 힘을 주는구나.

오 전나무야, 오 전나무야,

너의 옷은 내게 무언가를 가르쳐 준단다.

노래 가사가 말해주는 것처럼, 전나무의 잎은 비단 여름에만 푸르게 만개하는 것이 아니다. 춥고 눈과 바람이 몰아치는 매서운 겨울에도 전나무의 잎은 초록빛과 그 풍성함을 유지하며 다가오는 따스한 봄을 기다린다. 그래서 전나무는 변하지 않고 늘 푸르른, 충직한, 믿음직스러운 나무이며, 또한 온갖 시련과 역경을 이겨내는 강인함을 지니고 있다. 이 때문에 전나무는 우리에게 깨달음을 준다. 전나무의 강인한 생명력처럼 우리도 이 힘겨운 시련을 버티고 이겨낼 때, 다시 도래할 따스한 봄날의 햇살을 마주할 수 있으리라는 진리가 바로 그것이다.

한 겨울의 살얼음처럼 차가운 추위 속에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칼처럼 매섭게 불어오는 바람은 살갗을 할퀴고 상처를 내며 지나간다. 한 겨울 한국은 민주주의의 죽음이라는 재앙을 선고받았다. 유권자에 의한 직접 투표로 5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한 당이, 국민에 의해 선출되지 않고 정권과 권력자들에 의해 임명된 헌법재판소에 의해 해산명령을 받았다. 북한과의 실질적 연관성이 증명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당의 강령이 북한의 주장과 유사하다는 것만으로 정당을 해산시킨 유례가 없는 판결이다. 선출된 국회의원들은 제명되었고, 일반 당원들에 대해서까지 공안수사의 보복이 몰아칠 예정이다.

이 판결이 매서울 칼바람인 이유는 해산판결을 받은 당의 구성원들뿐 아니라, 정권과 권력자들, 그리고 그들이 지배하는 거대한 사회적 억압체계에 대항하는 주장을 펴거나 행동을 추구하는 모든 사람들이 잠재적으로 ‘종북’이라는 낙인이 찍힐 위협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낙인찍기와 마녀사냥이 터져나올 것이다. 극단적인 불평등과 경제난에 고통받는 사람들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때마다 ‘종북’이라는 꼬리표가 붙어다닐 것이다. 생존의 권리, 평등, 자주적 주권 등 실제로는 ‘부르주아적’ 근대 사회의 산물인 개념이 ‘종북’이라는 낙인과 함께 법의 외부로 추방당할 위기에 처해 있다. 사회가 전근대화될 위기, 민주주의 이전의 단계로 퇴행할 위기에 처해 있다. 모든 독립적이고 비판적인 주장들이 ‘자기검열’에 시달릴 것이다. 이렇게 주장하면 ‘종북’으로 몰리는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마법처럼 모든 사람들의 생각을 사로잡을 것이다.

10년 전, <오 탄넨바움>을 원곡으로 한 북한가요 <적기가>로 인해 영화 <실미도>가 국가보안법 논란에 휘말렸을 때, 많은 사람들은 그와 같은 상황이 하나의 희극이며 구시대적 냉전적 사고의 유물이라고 웃어넘겼다. 그 때 사람들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한 우스꽝스러운 희극적 사건이 드러내는 비극성이 커지고 커져, 결국 한 사회 전체를 잠식하게 될 줄은.

 

실미도 항공사진

실미도 항공사진

 

거센 칼바람이 휘몰아치는 냉혹한 겨울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사회적 시련이다. 이 현실의 역경 속에서, 다시 전나무가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을 새겨야 하는 것이 아닐까. 현실이 어렵다 하여 색을 변화시키지도 말 것이며, 고난과 역경이 닥치더라도 잎을 떨어뜨리지 말고 언제나 한결같이, 늘 그래왔던 것처럼 푸르름을 유지하라. 그러면 지금 너를 떨게 만드는 추위도, 너의 얼굴에 생채기를 내는 매서운 찬 바람도 그칠 것이다. 해가 나고, 따스한 봄이 올 것이다. 그러면 너의 푸르름도 더욱 빛을 발하리라. 전나무는 이렇게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성탄의 밤에, 충직하고 또 강인한 전나무를 생각한다.

 

 

0 replies

Leave a Reply

Want to join the discussion?
Feel free to contribute!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