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하늘 밑에는 내 살던 집이 있겠지[치유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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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리 (인제대 인문의학연구소 연구교수)

 

오래된 풍경

 

기억 속의 풍경은 원색보다는 무채색에 가깝다. 아주 오래된 시간 속의 풍경이 원색으로 재현된다는 것은 그 기억이 그만큼 강렬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색깔만이 아니라 어떤 소리, 어떤 풍경은 아무리 많은 시간이 지나도 퇴색되지 않고 점점 더 뚜렷하게 기억으로부터 떠오른다.

나에게 지금까지도 기억되는 시간은 유년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의 교실 옆에는 작은 연못이 있었다. 그 연못 주변에는 가지가 늘어져 땅에 닿는 버드나무가 있었다. 버드나무 잎은 처음에 연한 노랑을 띤 연둣빛에서 점점 초록으로 물들어갔다. 연못에 담긴 버드나무 잎을 보는 내내 나는 시간의 제약에서 벗어나 있었다.

중학교에 입학하여 매일 걸어 다니는 등교 길에서 이른 아침에 만나던 초록빛 군무는 가끔 꿈에서도 만난다. 보리가 익기 전, 바람 따라 춤을 추던 보리들은 초록빛 바다였고, 나는 그 초록빛 군무에 넋을 잃고 서 있곤 했다. 마치 바람마저 초록빛이 되어 그 바람 속에 서 있는 나는 투명한 초록빛이 되어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착각에 빠졌다.

나이 들어가면서 힘들거나 분노를 느낄 때 어린 시절의 그 기억들은 나의 마음을 평화롭게 가라앉혀 주었다. ‘그래, 그런 시절이 있었지. 그땐 참 행복했지.’라는 생각에 젖어들고, 세상은 그래도 살만하고 나는 살아야 할 의미가 있는 가치로운 존재라는 느낌이 들었다. 나에게도 행복했던 시간이 있었고, 그 행복에는 이유가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나는 또 다른 행복감을 느꼈다.

유년의 시간은 그런 것이다. 시인 김춘수도 유년의 기억을 천사와 함께 하고 있다. 남녀의 구별이 없고 선과 악의 구별이 없는 시간, 그 시간이 천사와 같은 유년이 아닐까. 노자가 말하는 무위의 시간, 본성과 자연에 충실한 시간이 유년이 아닐까. 따라서 유년은 순수 그 자체일지 모른다. 유년은 온전함 그 자체일지 모른다.

시인 천상병은 ‘뼈와 살을 태우던’ 고통의 기억을 어린 아이와 같은 순진함으로 지워낸다. 천상병의 초기 시는 매우 어렵고 형이상학적인 면이 있지만, 고통의 시간 이후에 쓴 시들은 점점 후기로 갈수록 어린 아이처럼 기교가 없어진 단순?간결한 미를 지닌다. 천상병의 아내 목순옥은 약을 먹기 때문에 단순해진다고 말했다지만, 천상병은 본성에 충실하고 자연에 가까웠던 어린 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그의 고통을 스스로 치유했다고 본다.

어떤 인위성도 없고 강압적인 힘도 없던 그 시절이 유년이기 때문에 어른이 되어 본성과 자연성을 하나씩 상실해 갈 때마다 유년의 기억도 하나씩 깊은 무의식의 세계에 가라앉는 것이리라. 그러다 지극한 고통의 시간이 지나고 그 시간의 끝에서 나를 바라볼 때 유년의 기억은 마치 거짓말처럼 하나씩 떠오르는 것이 아닐까.

 

고향을 노래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할머니의 시는 유년의 기억으로 가고 있었다.

 

고향을 떠나 타향살이에 돌고 도니

부평 같은 신세가 되어

어언간 60여년이 되었구나.

세월은 빨라 유수와 같으니

내 청춘은 흘러흘러

머리에는 벌써 백발이 휘날리네.

아, 고향에 가고 싶다

보고 싶기도 하다

못 가는 신세가 되었으니

저 푸른 하늘 밑에는

내 고향 내 살던 집이 있겠지.

 

집옆에서는 올해에도 살구나무에

활짝 핀 살구꽃이 피었겠지

마당 뒤에 있는 감나무에서

감꽃이 떨어지면

바가지로 주워담아

실로 꿰어서 목에 걸던

그 어린 시절이 그립구나

장독 뒤에는 목단꽃이

활짝 피어 그 옆에는 나리꽃이

돌담 위에는 호박 덩굴이 올라가서

금년에도 익은 호박이

주렁주렁 누렇게 매달렸겠지.

삽짝거리로 나와서

돌다리를 건너

사랑하는 모교에 가고 싶구나

칠계단을 올라가면

우편에는 벚꽃나무와

좌편에도 벚꽃나무가

엉겨 붙어서 봄이 되면

벚꽃이 장관이더라.

사계단으로 올라가니

매실 열매가 무르익어서

벌겋게 익으면 많은 사람 보시기에

입맛을 돋운다.

그리고 칠계단으로 올라가 서니

큰 운동장에서는

우리가 뛰놀던

그 모습들이 떠오르네.

운동장 옆에는

전부 벚꽃나무가 줄을 서서

너무나도 아름답더라.

친구들과 사진 찍던

그 추억이 떠오르며

선생님과 기념촬영도 했건만

모교가 잊혀지지 않고

사무치도록, 꿈속에서도 그리워지네.

 

언제나 가보리

언제나 보고 싶어

먼 산만 바라보네.

-<고향> 전문-

 

9번째 시 [고향]에서 할머니는 고향을 회상하며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말과 말 사이에 으레 있던 침묵이 보이지 않았다. 멀리 보며 천천히 말을 하던 평소와 달리 나를 보며 동의를 구하기도 했다. “봐라, 김선생. 니 감꽃으로 목걸이 걸어봤다 했제?” “니 감꽃 냄새 기억하나?” 할머니는 나의 맞장구에 씨익 웃으며 시를 읊었다.

특히 시 [고향]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집과 동네, 그리고 학교를 정확하게 묘사했다. 마치 지금 이 순간 그 곳을 걷고 있는 것처럼 눈을 지그시 감고 한 구절 한 구절 시를 읊어 나갔다. 할머니의 시를 받아 적는 동안 잔잔한 호수 가를 걷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전해져왔다. 기억 속의 고향은 꽃밭이었다.

할머니는 시 [고향]에서 ‘가고 싶다’ ‘그립구나’ ‘아름답더라’는 표현으로 고향에 대한 마음을 표현했다. 그리고 갈 수 없는 마음을 “저 푸른 하늘 밑에는/내 고향 내 살던 집이 있겠지.” “언제나 가보리/언제나 보고 싶어/먼 산만 바라보네”라는 표현으로 묘사했지만, 그 그리움마저도 할머니에게 찾아온 작은 행복을 어쩌지 못했다.

시 [고향]에 묘사되는 여러 종류의 꽃은 “사무치도록, 꿈속에서도 그리워지”는 고향이 할머니의 기억 속에 어떻게 남아 있는지를 말해 준다. ‘집 옆에는 활짝 핀 살구꽃’이 있었고, ‘마당 뒤에는 감꽃’이 가득 떨어져 ‘바가지로 주워 담아 실로 꿰어 목에 걸’고 다녔다. ‘장독 뒤의 목단꽃과 그 뒤에 피어 있는 나리꽃’ ‘돌담 위를 오르는 호박 덩굴’에는 ‘누렇게 익은 호박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유년의 집은 이제 갈 수 없지만 할머니의 기억 속에 온전히 보존되어 있었다.

“삽짝거리로 나와서/돌다리를 건너” 학교에 가면 그 곳은 벚꽃천지였다. “벚꽃이 그렇게 많았어요?” “하모. 요요 칠계단이 있었거든. 조게는 사계단이 있었고”라며 말을 이어가는 할머니는 마치 나의 손을 잡고 그 계단을 오르는 듯이 보였다. 두 팔을 넓게 벌려 한 손으로는 “여게 칠계단이 있는 기라”하며 허공의 한 지점을 가리키고, 다른 손으로는 허공의 어딘가를 가리키며 “여게는 사계단인데, 계단을 오르다 서서 돌아보면 온통 벚꽃천지제.”

뭉툭한 할머니의 손끝을 따라 좁은 방안 가득 벚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큰 운동장 한쪽에서는 어린 할머니가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뛰고 있었고, 계단 위에서는 또 다른 어린 할머니가 학교를 가득 덮고 있는 벚꽃을 경이로운 눈으로 보고 있었다. 어린 할머니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벚꽃들은 우리가 앉아 있는 방안 가득 흩날리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유난히 덥던 여름 날 할머니의 집을 처음 방문하던 그날, 나를 맨 먼저 반겨준 것도 꽃이었다. 대문도 없고 울도 없는 집에 울타리 대신 피어 있던 코스모스가 생각났다. 그 마을은 꽃이 없는 집이 많았다. 많은 집들이 마당을 시멘트로 개조하였고, 마을 곳곳에도 산속 시골마을치고 꽃이 보이지 않았다. 마을 입구 교회 옆에 있던 키 큰 야생화가 그나마 눈에 띄었다. 교회 예배실 앞에는 화분에 꽃이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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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의 문이 열리다

 

할머니의 유년 기억 속에 유난히 꽃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잊고 있었던 유년의 기억을 떠올리며 가장 먼저, 가장 많이 꽃을 기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발병을 알고 난 뒤부터 할머니의 삶에서 꽃은 사치였는지 모른다. 발병과 함께 시작된 할머니의 고통 속에서 꽃은 더 큰 상처로 남았던 게 아닐까?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유년의 기억을 지배하고 있는 꽃으로부터 할머니는 상실의 아픔을 더 크게 느꼈을지 모른다.

시인 김춘수는 꽃을 보며 환희와 행복을 노래하지 않았다. 흔들리는 가지의 끝에서 수없이 생겨났다 사라지는 시간의 운명을 보았다. 김소월은 저만치 홀로 피어 있는 꽃으로부터 끝없이 순환하고 있는 시간의 흔적을 찾았다. 삶의 아픔을 지닌 사람들에게 꽃은 아름다움의 대상이라기보다 자신이 도달할 수 없는 ‘그 무엇’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할머니에게도 유년의 꽃은 깊은 절망과 메울 수 없는 상실의 시간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즐거움을 느끼는 것, 즉 쾌락은 매우 간단하다. 보고 싶으면 보고, 보아서 좋으면 즐기면 된다. 간단한 쾌락 대신 고통이 자리 잡는 것은 자아의 붕괴를 의미한다. 더 이상 내가 나를 즐겁게 바라보지 못할 때, 나 자신으로부터 행복을 찾을 수 없을 때 우리의 자아는 이미 붕괴되어 있는 것이다.

자아의 붕괴는 지극한 심적 고통을 동반한다. 고통은 그것과 연관된 것들을 무의식의 세계로 밀어 넣고 문을 잠가 버린다. 이 고통의 끝에서 유년의 기억이, 꽃의 기억이 되살아나 그 기억을 이야기하며 지금 현재를 잊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무엇이 60년 동안 굳게 닫혔던 무의식의 문을 열게 했을까? 고통을 느끼지 않으며, 아니 오히려 꽃의 기억이 할머니의 얼굴에 홍조를 가져다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할머니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야야, 김선생. 벚꽃나무가 얼매나 큰지 모른다. 그 큰 나무들이 전부 꽃을 활짝 피우면 학교는 꽃밖에 안 보이는 기라. 이리이리 계단에 서서 손을 내밀면 꽃이파리가 손바닥에 떨어진다. 후 하고 불면 또 날아가는 기라.” 나도 할머니를 따라 손을 내밀고 있었다. 할머니의 손바닥을 떠난 벚꽃 하나가 내 손바닥 위에 앉는 환상 속으로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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